【당신이 몰랐던 위대한 예술가 #01】 로트렉이 그리던 여자, 로트렉과 나란히 걸리다 | 수잔 발라동 || 원피스 | 아트인코리아 ArtIn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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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만승의 ONE PIECE는 전시 전체가 아닌 작품 하나에만 집중해, 다양한 분야와 연결 짓는 통섭적 감상문 연재입니다. '많이'보다 '깊이' 보자는 다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https://artinkorea.kr/one





【당신이 몰랐던 위대한 예술가 #01】 로트렉이 그리던 여자, 로트렉과 나란히 걸리다 | 수잔 발라동    네이버 구글

로트렉과 르누아르의 모델이었던 여자가 직접 붓을 들기까지 (세종미술관 《툴루즈 로트렉 & 수잔 발라동》 전시를 앞두고)
아트커넥터   승인 2026.10.31 18:30  |  최종 수정 2026.10.3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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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발라동 Suzanne Valadon
국적 | 프랑스
출생 | 1865년 9월 23일, 프랑스 베신쉬르가르탕프
사망 | 1938년 4월 7일, 프랑스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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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발라동, 1885년경, 사진가 미상       

카페 탁자에 팔꿈치를 괴고 앉은 여인 앞에 반쯤 빈 술잔과 술병이 놓여 있습니다. 툴루즈 로트렉의 〈숙취〉입니다. 로트렉의 이름은 알아도, 그림 속 여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녀는 로트렉의 모델이자 몽마르트르의 이웃이었고, 르누아르의 〈부지발의 무도회〉 속 붉은 모자의 여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그림 속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지켜보다가, 어느 날 직접 붓을 들었습니다. 수잔 발라동, 그림 속 모델에서 그림 밖의 화가가 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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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숙취〉, 1887–89, 캔버스에 유채, 47×55cm, 하버드 미술관(포그 미술관)       

세탁부의 딸,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

발라동의 본명은 마리클레망틴 발라동입니다. 어머니는 혼자 딸을 키운 세탁부였고,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끝내 알지 못했습니다. 모녀는 파리 몽마르트르로 옮겨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녀는 열한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모자 가게 보조, 화환 공장, 채소 장수, 식당 종업원을 거쳤습니다.

열다섯 살에는 서커스 곡예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중그네에서 떨어져 등을 다치면서 1년 만에 무대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 무렵 그녀가 찾은 일이 화가들의 모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일했고, 퓌비 드 샤반, 르누아르, 툴루즈 로트렉 같은 화가들 앞에 10년 넘게 섰습니다. '수잔'이라는 이름은 로트렉이 붙여 주었다고 전해집니다. 성경 속 목욕하던 수산나를 훔쳐보는 노인들 이야기에 빗대, 나이 든 화가들의 모델을 즐겨 선다는 농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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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부지발의 무도회〉, 1883, 캔버스에 유채, 보스턴 미술관       

붉은 모자를 쓴 여인이 밀짚 모자의 남자에게 안겨 춤을 춥니다. 하얀 드레스 자락이 휘날리고, 여인은 눈을 내리깔고 살짝 웃고 있습니다. 열일곱, 열여덟 살의 발라동입니다. 르누아르는 같은 해 〈도시의 무도회〉에서도 그녀를 그렸습니다. 그의 그림 속에서 그녀는 늘 화사하고 사랑스러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살던 몽마르트르 투르라크 거리에는 로트렉의 작업실이 있었습니다. 로트렉은 이 젊은 이웃을 여러 번 그렸습니다. 1885년의 초상에서 그녀는 모자를 쓰고 조용히 한쪽을 바라보고, 몇 년 뒤 〈숙취〉에서는 카페 탁자 앞에 홀로 앉아 있습니다. 르누아르가 그린 그녀가 화사하고 사랑스러운 무도회의 여인이었다면, 로트렉이 그린 그녀는 생각에 잠긴 몽마르트르의 여자였습니다.

모델은 몇 시간이고 가만히 서 있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 시간 동안 그녀는 화가들이 선을 긋고 색을 올리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혼자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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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1883, 종이에 흑연·목탄·파스텔, 43.5×30.5cm, 퐁피두 센터(파리)       

그녀가 남긴 첫 자화상입니다. 다른 화가의 눈으로 그려지던 얼굴을, 이번에는 자기 눈으로 그렸습니다. 꾸미거나 예쁘게 다듬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입니다. 르누아르의 무도회, 로트렉의 카페에서 본 여인과 나란히 놓고 보면, 같은 사람인데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입니다. 같은 해 그녀는 아들 모리스를 낳았습니다. 훗날 몽마르트르의 거리를 그려 이름을 날린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입니다. 열여덟 살의 미혼모는 이 그림에 처음으로 '수잔 발라동'이라고 서명했습니다. 남이 붙여 준 이름을, 자기 이름으로 받아들인 순간이었습니다.

로트렉과 드가가 알아본 드로잉

발라동은 미술 학교에 다닌 적이 없습니다. 스승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드로잉을 먼저 알아본 사람은 바로 이웃 로트렉이었습니다. 로트렉은 그녀의 그림을 보고 화가가 되라고 권했고, 에드가 드가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드가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화가였습니다. 그런 드가가 그녀의 드로잉을 사 모았고, 판화 기법을 가르치고, 볼라르 같은 화상에게 그녀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그녀의 거칠고 대담한 선을 보고 "당신은 우리 중 한 사람이오"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두 사람의 우정은 드가가 세상을 떠난 1917년까지 이어졌습니다.

1893년에는 몽마르트르의 가난한 작곡가 에릭 사티와 여섯 달 동안 사랑했습니다. 〈짐노페디〉의 그 사티입니다. 사티는 사랑을 시작하자마자 청혼했고, 그녀가 떠난 뒤에는 "머리를 비우고 가슴을 슬픔으로 채우는 차가운 외로움"만 남았다고 썼습니다. 그녀는 사티가 평생 가장 가까이 두었던 연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894년, 발라동은 국립미술협회(소시에테 나시오날 데 보자르) 살롱에 작품을 낸 첫 여성 화가가 되었습니다. 모델이 그린 그림이 미술관 벽에 걸린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소동은 15년 뒤에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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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 1909, 캔버스에 유채, 162×131cm, 퐁피두 센터(파리)       

나무 아래 벌거벗은 남녀가 서 있습니다. 이브는 거리낌없이 사과로 손을 뻗고, 아담은 그 손목을 조심스럽게 붙잡습니다. 성경 이야기인데 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브는 발라동 자신이고, 아담은 스무 살 넘게 어린 연인이자 아들의 동무였던 화가 앙드레 위터입니다.

여성 화가가 벌거벗은 남자를, 그것도 자기 연인을 그려 내건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여성 화가가 벌거벗은 남녀를 그려 공개한 첫 작품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녀는 나중에 전시를 위해 아담의 허리에 나뭇잎을 덧그려야 했습니다. 수백 년 동안 남자 화가들이 여자의 몸을 그려 왔는데, 그 시선을 거꾸로 뒤집은 그림입니다.

그림 한가운데에 서다

당시 여성 화가가 주로 그린 것은 창가의 꽃이나 아이를 안은 어머니 같은 조용한 장면이었습니다. 발라동은 달랐습니다. 그녀는 자기 가족을, 그것도 싸우고 화해하며 함께 사는 복잡한 가족을 그대로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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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초상〉, 1912, 캔버스에 유채, 98×73.5cm, 오르세 미술관(파리)       

한 화면에 네 사람이 있습니다. 늙은 어머니, 연인 위터, 아들 위트릴로, 그리고 한가운데에 발라동 자신이 있습니다. 발라동만 꼿꼿한 자세로 보는 사람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알코올에 시달리던 아들은 앞쪽에 풀이 죽은 모습으로 앉아 있습니다. 누가 이 집을 버티게 하는지 한눈에 보입니다. 그림 속 모델이었던 여자가, 이제는 자기 그림의 가장 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10년 뒤 그녀는 미술사에서 가장 오래된 주제 하나를 정면으로 다시 그렸습니다. 누워 있는 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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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방〉, 1923, 캔버스에 유채, 90×116cm, 퐁피두 센터(파리)       

티치아노의 비너스부터 앙그르와 마티스의 오달리스크까지, 누워 있는 여자는 늘 벌거벗고 있었고 남자의 시선을 기다리는 모습이었습니다. 발라동의 여자는 다릅니다. 편한 줄무늬 바지를 입고, 입에는 담배를 물고, 발치에는 책이 놓여 있습니다. 몸은 당시의 미인상처럼 가늘지 않고 넉넉합니다. 무엇보다 그녀는 보는 사람을 위해 누워 있지 않습니다. 자기 방에서 자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입니다. 프랑스 정부는 이듬해 이 그림을 사들였습니다.

예순여섯, 끝까지 자기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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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드러낸 자화상〉, 1931, 캔버스에 유채, 46×38cm, 개인 소장(스위스)       

예순여섯 살의 발라동은 윗옷을 벗은 자기 모습을 그렸습니다. 늘어진 가슴도, 주름진 얼굴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여성 화가가 늙어 가는 자기 몸을 그대로 기록한 초기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열여덟 살에 처음 자기 얼굴을 그렸던 그녀는, 반평생이 지나서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이 아니라 자기 눈으로 자기를 보는 일입니다.

1938년 4월, 발라동은 일흔두 살에 파리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뒤 오랫동안 그녀는 두 가지 이름으로 기억되었습니다. '로트렉의 모델', 그리고 '위트릴로의 어머니'입니다. 화가 수잔 발라동은 그 뒤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이름이 다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2021년 미국 반스 재단이 그녀의 미국 첫 대형 개인전을 열었고, 2024년에는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국립미술관이, 2025년에는 파리 퐁피두 센터가 작품 200여 점으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2026년 11월 7일, 서울 세종미술관에서 《툴루즈 로트렉 & 수잔 발라동: 몽마르트르의 화가들》이 시작됩니다. 한때 로트렉의 그림 속 모델이었던 그녀가, 이번에는 로트렉과 나란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출품작 가운데에는 1916년 작품 〈곡예사〉도 있습니다. 공중그네에서 떨어져 무대를 떠난 열다섯 살 소녀가, 반평생 뒤 붓으로 다시 그린 곡예사입니다.

보이는 사람에서 보는 사람으로

수잔 발라동의 삶은 한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옮겨 간 이야기입니다. 이젤 앞에 서 있던 여자가, 이젤 뒤로 걸어갔습니다. 그녀에게는 미술 학교도, 스승도, 안정된 형편도 없었습니다. 가진 것은 화가들 앞에 서서 오래 지켜본 눈뿐이었습니다. 수잔 발라동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화려한 연애담이 아니라, 남이 정해 준 자리에 머물지 않고 자기 눈으로 세상을 다시 그린 용기입니다.


유튜부 영상으로 보기 
https://youtu.be/_iZ3otgod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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