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숙 개인전 & 오픈스튜디오 《숨을 빌려 사는 것들》 검게 그을린 뿌리가 땅을 짚고, 수백 가닥의 소나무 가지가 두 다리가 …
아트인코리아
승인 2026.10.25 23:12
이윤숙 개인전 & 오픈스튜디오 《숨을 빌려 사는 것들》
검게 그을린 뿌리가 땅을 짚고, 수백 가닥의 소나무 가지가 두 다리가 되어 하늘을 걷어찹니다. 화성 봉담의 내건너창작촌. 작업장 문을 열자마자 일곱 개의 몸이 물구나무를 선 채 춤추고 있었습니다.
이윤숙 작가의 〈되 사르다〉는 두 번의 죽음에서 시작된 작품입니다. 작가와 이 터를 함께 지켜온 참죽나무는 불에 탔고, 작가가 묘목부터 20년을 키운 반송은 폭설의 무게에 꺾였습니다. 작가는 불탄 뿌리에 부러진 가지를 하나하나 잘라, 대고, 다시 잘라 곡선에 맞춰 이어 붙였습니다. 한 번 마른 나무는 휘지 않기에 수없이 오가며 각을 맞춘 손의 시간이 그대로 결이 되었습니다. 깎아낸 덩어리가 아니라 쌓고 이은 선들이 근육이 되고 힘줄이 된 몸입니다.
처음엔 십자가에 매달아 공중에 띄울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작업을 위해 거꾸로 뒤집어 놓고 보니 오히려 지구를 떠받치는 사람들 같았고, 그래서 그대로 세웠다고요. 버텨내는 몸부림이 어느 순간 춤이 되는 자리. 저는 이 일곱 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전시 제목처럼, 이 작업은 '숨을 빌려 사는' 이야기입니다. 숨이 끊긴 두 나무는 서로에게 건넬 숨이 없었고, 그 사이를 이은 것은 작가의 숨, 곧 창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작가 역시 나무의 몸에 기대어 지난 시간을 건너왔습니다. 빌려주고, 빌리고. 나무와 사람이 서로의 목숨을 잇대는 사귐입니다.
밖으로 나가면 야외 설치 〈아직, 죽지 않은〉이 기다립니다. 폭설에 쓰러진 소나무의 뿌리, 줄기, 옹이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뒤엉킨 뿌리 더미 속에서, 하우스 천장에 매달린 통나무에서 흙으로 빚은 얼굴들이 불쑥 나타납니다. 썩어 사라지기 전에 한 번 더 숨을 쉬게 해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그 얼굴들에 담겨 있었습니다.
새가 씨앗을 떨궈 저절로 자란 뽕나무가 은행나무와 껍질을 맞대고 어우렁더우렁 사는 모습도, 작가의 설명을 들으니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시의 또 다른 작품, 잔치. 마당에 긴 식탁이 펼쳐지고, 돌판 위에서 고기가 익고, 밭에서 막 거둔 쌈채소가 수북이 올라왔습니다. 오늘은 이곳에서 아홉 달 동안 작업하셨던 김윤신 선생님과 인연 맺은 분들이 모인 날. 작가, 평론가, 출판인, 사진가, 선생님의 중학교 시절 제자까지 둘러앉아 웃고 먹고 이야기했습니다. 전시 기간 동안 이런 잔치를 여섯 번이나 연다고 하니, 이 오픈스튜디오는 관람이 아니라 '함께 숨 쉬기'였습니다.
전시 기획은 작가의 며느리이자 미술사를 공부한 하예라 님이 맡았습니다. 작가의 삶터에서 전시를 여는 이유를, 관객도 작가와 나무가 나눠온 같은 공기를 마시며 그 순환에 함께 들어서기 때문이라고 썼더군요. 정말 그랬습니다. 오늘 제가 들이쉰 그 마당의 공기가 한동안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20년 동안 대안공간 눈을 운영하며 마을과 예술가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준 작가가, 이제 자기 터에서 죽은 나무에 숨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작업과 삶, 개인과 공동체를 나누지 않는 실천. 이윤숙이라는 작가 자체가 하나의 생태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에 감동받고 작가님의 인자하고 넉넉한 성품에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이윤숙조형연구소(내건너창작마을)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창작마을길 22-4
🗓 2026.10.17 – 11.15
☎ 방문 전 전화 문의 필수 010-4723-4519
@spacenoonyouns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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