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리본, 중국 AI 에너지 플랫폼 '이파워'와 전략적 협약
국내 탄소 저감 전문 플랫폼 기업 에코리본이 중국의 AI 기반 스마트 에너지 관리 기업 China ePower Solutions(苏州易助能源管理有限公司, 이하 이파워)와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양사는 협약서에 서명한 당일 곧바로 실증사업 세부 협의에 들어가, 통상 선언에 그치기 쉬운 MOU의 관행을 벗어났다.
체결식은 지난 10월 21일 중국 장쑤성 쑤저우시 하이테크산업개발구에 위치한 이파워 본사에서 열렸다. 이파워 측에서는 위안난(袁楠) 동사장 겸 창업자와 리웨(李越) 박사(공동창업자·상무부총재·최고전략책임자), 청위루(程妤露) 해외사업부 책임자가, 에코리본 측에서는 이상민 전략담당대표(CSO)가 참석했다. 이파워의 글로벌 사업을 총괄하는 상해상윤무역의 박상윤 회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에코리본 두진문 의장은 건강상의 사유로 현장에 참석하지 못했으며, 이상민 CSO에게 협상 전권을 위임했다.
서명 당사자(좌측) 리웨(李越) 박사(공동창업자·상무부총재·최고전략책임자), 서명 당사자(우측) 이상민 전략담당대표(CSO)가 전략적 협약서에 서명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뒷편으로 이파워 위안난(袁楠) 동사장 겸 창업자와 이파워의 글로벌 사업을 총괄하는 상해상윤무역의 박상윤 회장도 참석했다.
에너지 디지털화부터 탄소자산까지 8개 분야 협력
이번 협약은 한국 에너지 시장을 1차 무대로 삼아 양사의 기술·제품·플랫폼을 결합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제3국 시장으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협력 분야는 ▲한국 시장 공동개발 ▲에너지 디지털화 및 절감 솔루션 ▲컴퓨팅 인프라 및 컴퓨팅·전력 연계 ▲시범 및 실증 ▲가상발전소(VPP)·분산에너지 자원 ▲탄소감축 성과 및 에너지 데이터 자산화 ▲한국 현지화 ▲해외시장 공동진출 등 8개다.
에코리본은 전력효율개선장치(SEPIS), 이온히팅, 비상발전기 수익화(GEMS), 태양광, 수열 히트펌프, 탄소회계 플랫폼 등 에너지·환경 솔루션 포트폴리오와 전국 49개 권역의 책임파트너사·에너지컨설턴트(EAC)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이파워는 에너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하는 엣지 컴퓨팅 단말과 AI 기반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다계층 계량·정산 엔진을 갖추고 있다.
이상민 CSO는 "에코리본은 좋은 솔루션을 다수 보유했지만 개별 솔루션만으로는 영업이 어렵다"며 "한 고객사에게 태양광도, 전력절감도, 탄소회계도 모두 필요한데, 그 앞단과 뒷단을 연결하는 것이 실시간 계측과 관제 체계"라고 협력 배경을 설명했다.
"MOU로 끝내지 말자"… 서명 직후 실증 설계 돌입
이번 협약의 특징은 체결과 동시에 실무 협의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2시간 30분간 이어진 회의는 서로의 회사 소개가 아니라 어느 현장에 무엇을 몇 대 설치할 것인가라는 구체적 논의로 채워졌다.
양사가 우선 합의한 실증 구상은 에코리본의 전력효율개선장치 SEPIS에 이파워의 엣지 단말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현장은 부하 특성이 서로 다른 세 가지 유형으로 정했다. ▲냉장·냉동 창고 ▲건물 공조 계통 ▲폐수처리장 등 유량 설비다. 각 현장의 변전반에 SEPIS와 엣지 단말을 한 대씩 설치해 실제 운전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검증 기간 단축 가능성이다. 그동안 전력절감 장치의 성능을 확인하려면 설치 전 4주와 설치 후 4주를 나누어 측정하는 사후 비교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이파워 측은 엣지 단말이 현장에서 직접 연산을 수행해 클라우드를 거치지 않고도 수치를 즉시 확인할 수 있으며, 장치의 가동·정지에 따른 전력 변화를 모바일·단말·클라우드에서 같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양사는 계측 정확도 등급과 한국 KC 인증 절차가 선행 과제라는 데에도 인식을 같이했다. 이상민 CSO는 "국제 기준상 계측 정확도 등급이 어느 수준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확인을 요청했고, 이파워 측은 유럽(EU) 표준의 최고 수준을 충족한다고 답변했다. 단말의 한국 반입은 시험 샘플 단계에서 먼저 진행하고, 본격 공급에 앞서 KC 인증을 별도로 추진하기로 했다.
실증은 한국과 중국 양쪽에서 동시에 추진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SEPIS는 이미 중국에 수출된 사례가 있어, 이들 현장에 이파워의 단말을 붙이면 인증 절차 없이도 즉시 실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이 경우 한국과 중국 양쪽에 각각 실증 사례가 확보되며, 상해상윤무역을 통해 엣지 단말은 한국으로, SEPIS는 중국으로 양방향 수출된다는 구상이다.
미국 버클리 연구실에서 출발… 내년 홍콩 증시 상장 추진
이파워는 2018년 미국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LBNL) 연구실에서 출발한 기업으로, 현재 유럽·미국 연구자들이 합류해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중국 국가첨단기술기업(国家高新技术企业)과 장쑤성 전문화·정밀화·특성화·혁신형 기업(专精特新)으로 지정됐고, 시안교통대학·LBNL·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학과 기술협력을 맺고 있다. 누적 지식재산권은 발명특허 20건을 포함해 57건이다.
회사 측 설명에 따르면 현재 공장·산업단지·병원·학교 등 1만 2천여 곳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상하이·항저우 등 화동 지역 시장에서는 약 75%의 점유율을 확보했다. 고객사에는 마이크로소프트, 메르세데스벤츠, 미츠비시케미캄그룹, 차이나텔레콤, 차이나모바일, 독일 Mahr 그룹 등이 들어 있다.
이파워는 최근 상하이시 자딧구 정부의 투자유치로 상하이 법인 Encomflux(上海易科赋序)를 설립했으며, 이 법인은 컴퓨팅 인프라와 컴퓨팅 부하 예측 등 이르바 '산전협동(算电协同)' 영역을 담당한다. 이번 협약서에도 관계회사로 명시됐다.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흐름을 염두에 둔 포지셔닝으로 읽힌다.
이파워 측은 또한 내년 홍콩 증시 상장을 준비하고 있으며, 상장 시 기업가치를 한화 약 4조원 수준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전공자가 아닌데 에너지 책을 썼다"… 신간 증정 대목
회의 막바지에는 예상치 못한 장면도 연출됐다. 이상민 CSO가 이달 출간한 신간 『에너지 프로슈머, 전기를 경영하라』를 위안난 동사장과 리웨 박사에게 전달한 것이다. 한국의 에너지·전기 관련 정책을 두루 정리한 책으로, 전기를 아끼는 소비자에서 전기로 수익을 만드는 사업자로의 전환을 다룬다.
이파워 경영진은 저자가 전기·에너지 전공자가 아니라는 대목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이상민 CSO는 연세대에서 수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언론학을 전공한 커뮤니케이션 학자다. 그는 "저는 전기나 에너지 쪽은 잘 모르지만 기업의 전략과 사업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전문 영역이기 때문에 이 구조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이에 이파워 측은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쓴 책이라는 점이 오히려 의미가 있다"며 "서로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이 에너지를 말하는 일이 더 필요하다"고 화답했다. 이상민 CSO는 미술인문학자이자 비영리단체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에너지 구독경제로 확장… "실적 먼저, 구조는 나중에"
양사는 이번 협의를 바탕으로 실무 창구를 지정하고 기술자료를 교환한 뒤, 연내 실증 현장 선정과 설치 일정을 확정할 계획이다. 합작법인 설립이나 독점 사업권 등 구조적 사안은 실증 성과가 확인된 이후 논의하기로 했다. 이번 협약은 효력기간 2년으로, 현 단계에서는 비독점적 협력이다.
에코리본은 웅진코웨이 전 대표이사인 두진문 의장이 이끄는 종합 그린에너지 플랫폼이다. 두 의장은 정수기 렌탈 서비스와 '코디'라는 직업을 만들어 구독경제를 국내에 정착시킨 인물로, 이번에는 같은 모델을 에너지 설비에 적용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고객사가 설비를 목돈으로 구매하는 대신 전력 절감액으로 월 사용료를 상계해 나가는 방식이다.
이상민 CSO는 "두진문 의장이 위임하며 당부한 것은 MOU로 끝내지 말고 하나라도 빨리 실적을 내서 한국과 중국에서 함께 사업을 일으켜 보자는 것이었다"며 "오늘은 첫 인사 자리였지만 절박한 심정으로 구체적인 진도를 요청드렸다"고 말했다.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