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승의 ONE PIECE M] 이 그림 속 여인은 화가가 그리지 않았다 — 이삭 레비탄의 「가을날, 소콜니키」와 차이콥스키의 「사계」 중 '10월: 가을의 노래' || 원피스 | 아트인코리아 ArtIn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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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만승의 ONE PIECE는 전시 전체가 아닌 작품 하나에만 집중해, 다양한 분야와 연결 짓는 통섭적 감상문 연재입니다. '많이'보다 '깊이' 보자는 다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https://artinkorea.kr/one





[손만승의 ONE PIECE M] 이 그림 속 여인은 화가가 그리지 않았다 — 이삭 레비탄의 「가을날, 소콜니키」와 차이콥스키의 「사계」 중 '10월: 가을의 노래'    네이버 구글

879년, 도시에서 쫓겨났던 열아홉 살 레비탄은 아무도 없는 숲길을 그렸습니다. 친구는 그 길에 누군가 걷고 있어야 한다며 붓을 들었습니다
아트커넥터   승인 2026.10.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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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레비탄, 「가을날, 소콜니키」, 1879, 캔버스에 유채, 64.3×51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동북쪽에는 소콜니키라는 커다란 숲 공원이 있습니다. 이름은 러시아어로 '매'를 뜻하는 '소콜'에서 왔습니다. 17세기 러시아 차르들이 이곳에서 매사냥을 즐겼고, 사냥매를 돌보던 매잡이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1879년, 열아홉 살의 화가 지망생 이삭 레비탄이 이 숲의 가을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그림이 「가을날, 소콜니키」입니다.
 

그림은 단순합니다. 키 큰 소나무와 노랗게 물든 나무 사이로 낙엽 덮인 오솔길이 휘어져 들어가고, 하늘은 잿빛 구름이 낮게 덮고 있습니다. 그 길 위로 검은 옷의 여인이 홀로 우리 쪽을 향해 걸어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레비탄이 그리지 않았습니다. 같은 학교 친구 니콜라이 체호프가 그림을 보고는 길 위에 누군가 걷고 있어야 한다며 직접 붓을 들었습니다. 니콜라이는 훗날 대문호가 되는 안톤 체호프의 형입니다. 풍경화가와 인물화가가 한 화면을 나눠 그리는 일은 당시 레비탄이 다녔던 모스크바 회화·조각·건축학교에서 드물지 않았다고 합니다. 레비탄은 사람을 좀처럼 그리지 않은 풍경화가였기에, 이 여인은 그의 그림 속에서 더욱 귀한 존재가 됩니다.
 

하지만 이 그림이 그려진 1879년은 레비탄에게 결코 평온한 해가 아니었습니다. 그해 봄, 혁명가 알렉산드르 솔로비요프가 황제 알렉산드르 2세를 저격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사건과 아무 관련 없던 유대인들이 그 여파로 대도시에서 대거 쫓겨났고, 유대인이었던 레비탄의 가족도 모스크바 교외의 살티코프카로 밀려났습니다. 그는 가을이 되어서야 재능을 아낀 미술계 사람들의 청원 덕분에 모스크바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텅 빈 숲길과 낮게 내려앉은 하늘이 그저 계절의 풍경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이 그림은 그해 겨울 학생 전시회에 걸렸고, 이듬해인 1880년 수집가 파벨 트레티야코프가 100루블에 사들였습니다. 트레티야코프는 그 뒤로도 레비탄의 그림을 20점 넘게 모았습니다. 도시에서 쫓겨났던 청년의 그림이 러시아 미술의 보물창고, 지금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레비탄의 그림을 '기분의 풍경화'라고 부릅니다. 자연의 모습에 사람의 마음을 실어 보내는 풍경이라는 뜻입니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가을은 그런 마음이 가장 짙어지는 계절입니다. 시인 푸시킨은 1833년의 시 「가을」에서 이 계절을 "슬픈 시절이여, 눈의 매혹이여"라고 불렀습니다. 쓸쓸함과 아름다움을 한 줄에 함께 담았습니다.
 

그로부터 43년 뒤인 1876년, 차이콥스키는 한 음악 잡지에 매달 피아노곡을 한 곡씩 실었습니다. 이 열두 곡이 모음곡 「사계」입니다. 그중 10월의 곡 '가을의 노래'는 느린 단조 선율이 한 음씩 떨어지는 잎처럼 내려앉습니다. 레비탄의 그림보다 3년 앞선 곡이지만, 이 곡을 틀어 놓고 그림을 바라보면 오솔길을 걷는 여인의 발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래도 1879년이 레비탄에게 상처만 남긴 해는 아니었습니다. 그해 그는 니콜라이를 통해 동생 안톤 체호프를 만났고, 두 사람은 20년 넘게 우정을 나눴습니다. 1892년 체호프의 단편 「베짱이」가 자신을 비꼬았다고 여긴 레비탄이 크게 화를 내 2년 넘게 등을 돌리기도 했지만, 1895년 1월 다시 화해했습니다. 1900년 레비탄이 서른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체호프는 그가 가장 많이 기댄 친구였습니다.
 

다시 그림을 바라볼까요? 낙엽 덮인 길은 숲 깊은 곳으로 사라지고 하늘은 무겁습니다. 레비탄 혼자였다면 이 길은 아무도 없는 쓸쓸한 길로 남았을지 모릅니다. 그때 친구가 붓을 들어 그 길 위에 한 사람을 걷게 했습니다. 그 덕분에 이 그림의 쓸쓸함은 그리움으로 바뀝니다. 길이 끝나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 걸어오는 곳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쓸쓸한 길을 걸을 때, 그 길에 사람 하나를 그려 넣어 주는 이가 바로 친구입니다. 이 작은 그림이 140년 넘게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아 온 이유일 것입니다.
 

글 :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 손만승 @art.connecter
유튜브 영상보기 https://youtu.be/P2kFsIAsG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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