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후기] 박지현·레이·신주 3인전 — 갤러리 크레인 평창동 전시
아트인코리아
승인 2026.10.28 16:17
[전시후기] 박지현·레이·신주 3인전
— 갤러리 크레인 평창동 전시
작가: 박지현, 레이, 신주
전시명: STRANGE SELVES
일정: 2026. 10. 6 ~ 10. 31
장소: 갤러리 크레인 @gallery_crane
(서울시 종로구 평창30길 17)
갤러리 크레인의 이번 전시에 걸린 얼굴과 풍경은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합니다. 박지현, 레이, 신주 작가는 출신도 조형 언어도 다릅니다. 그런데 그림 앞에 서면 세 사람이 같은 질문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던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나는 정말 하나의 나일까, 하는 질문입니다.
이 낯섦은 바깥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우리 자신에게 이방인』에서 이방인이 멀리 있는 타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면에 있다고 말합니다. 《STRANGE SELVES》라는 제목이 가리키는 것도 이 감각일 겁니다. 이번 전시는 기억과 감정, 관계와 사회적 역할 속에서 계속 달라지는 자아를 회화로 따라갑니다.
박지현 작가의 화면은 주황과 분홍,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수련잎이 떠 있는 연못에 소녀가 서 있고, 짙은 초록 숲속 바위에 앉은 노란 인물이 턱을 괸 채 물 위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내려다봅니다. 박지현 작가의 풍경은 기억과 무의식, 현실과 환상이 겹쳐진 마음속 공간처럼 보입니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신경과학의 '기억 재공고화(reconsolidation)' 연구가 떠올랐습니다. 2000년 칼림 네이더 연구팀은 이미 저장된 기억도 꺼내는 순간 잠시 불안정해졌다가 다시 저장된다는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기억은 꺼낼 때마다 지금의 감정을 묻혀 다시 쓰인다는 뜻입니다. 〈여름 빛의 잔상〉이라는 제목을 보면 박지현 작가는 지나간 장면 자체보다 그것이 지금의 감정이 묻힌 잔상을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레이 작가의 인물은 푸른 피부를 하고 있습니다. 검은 코트를 입은 푸른 얼굴이 우리를 돌아보고, 그 뒤 숲에는 분홍빛 뼈대 같은 형상이 누워 있습니다. 〈Undercurrent〉에서는 푸른 인물이 과일 접시와 짙은 잎사귀 곁에서 팔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내리깔고 있습니다. 두 장면 모두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지만, 침묵과 긴장, 고독이 화면 아래로 조용히 흐릅니다. 도시와 일상의 장면이 감정을 거치며 외로운 공간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신주 작가의 얼굴은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Face (2)〉는 갈라진 잔주름 같은 결이 퍼진 누런 피부에 붉게 충혈된 눈을 한 커다란 얼굴입니다. 세로로 긴 〈Frame〉 연작에는 눈이 꽃송이로 피어 있는 얼굴, 눈과 코가 구멍처럼 뚫린 얼굴, 푸른 머리에 분홍 뺨을 단 얼굴이 이어집니다. 일그러진 얼굴과 불안정한 몸은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규율 속에서 스스로를 조정하는 사람의 긴장처럼 보입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일상생활에서의 자아 연출』에서 사람이 상황마다 무대 위 배우처럼 인상을 관리한다고 썼습니다. 타인 앞에 서는 '앞무대'와 긴장을 풀 수 있는 '뒤무대'가 따로 있다는 겁니다. 이 개념으로 〈Frame〉 연작을 바라보면, 꽃으로 눈을 피운 얼굴은 앞무대에 선 얼굴처럼, 구멍 난 얼굴은 막 무대 뒤로 돌아온 얼굴처럼 보입니다. 동일 인물이 프레임마다 다른 얼굴로 비춰지는 듯 합니다.
전시를 보면서 '나'라고 부르는 존재 안에 여러 모습이 함께 산다는 말이 설명이 아니라 시각적 체험으로 다가옵니다. 벽에 걸린 얼굴 가운데 몇몇은 어쩐지 내 얼굴 같기도 합니다.
1~5. 박지현 @parkjihyunart
6~7. 레이(Qiu Lei) @qiulei31
8~10. 신주(Yan Xinzhu) @seanjuuuuu
글: 손만승 @art.connec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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