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승의 ONE PIECE M]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 — 모네의 베퇴유 시절 x 베를렌 「가을의 노래」
올가을 ONE PIECE M은 '가을'을 주제로 명화를 한 점씩 소개하려 합니다. 초가을의 들판에서 시작해 단풍 든 숲을 지나 늦가을의 쓸쓸한 연못까지, 그림으로 한 계절을 건너 보는 여정입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로 클로드 모네가 센강 가의 작은 마을에서 보낸 3년을 골랐습니다.
모네에게도 눈부신 여름이 있었습니다. 1875년, 파리 근교 아르장퇴유에서 그린 이 그림을 보세요. 바람 부는 여름 언덕 위에 흰 양산을 든 아내 카미유가 서 있고, 조금 뒤에 여덟 살 아들 장이 있습니다. 모네는 언덕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각도로 그렸습니다. 그래서 카미유 뒤로는 온통 하늘뿐입니다.
이 그림은 야외에서 단번에 그려졌습니다. 하늘의 푸른색과 회색은 서두른 붓질 그대로 남아 있고, 어떤 곳에는 캔버스 바탕이 비칩니다. 풀밭에 점점이 찍힌 노란색은 미나리아재비 꽃인데, 그 노란빛이 카미유의 흰 소매에도 옅게 비칩니다. 빛이 사물의 색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평생 쫓았던 화가의 눈이 여기 있습니다. 이 그림은 1876년 두 번째 인상주의 전시에 「산책」이라는 제목으로 걸렸습니다.
그 여름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878년, 그림이 팔리지 않아 형편이 어려워진 모네는 파리를 떠나 센강 가의 작은 마을 베퇴유로 옮겨 갑니다. 그곳에서도 모네는 정원부터 가꿨습니다. 이 그림 속 길 양옆에는 키 높이로 자란 해바라기가 늘어서 있고, 계단 위로는 가족이, 길 한가운데에는 어린 아들이 서 있습니다. 어려운 시절의 그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환합니다.
1879년 9월 5일, 카미유는 서른두 살의 나이로 베퇴유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양산을 든 여인」을 그린 지 4년 만입니다. 모네는 숨을 거둔 아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화폭에 담았고, 훗날 친구에게 그 순간에도 아내의 얼굴에서 색이 변해 가는 것을 자기도 모르게 따라가고 있더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이 그림은 그 이듬해의 작품입니다.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빛이 부서지고, 강 건너에는 마을이 뿌옇게 보입니다. 화면 오른쪽 아래, 풀밭에 여인이 홀로 옆모습으로 앉아 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림 전체가 연둣빛과 푸른빛의 짧은 붓질로 잘게 흩어져 있어서, 여인도 풍경 속에 녹아든 것처럼 보입니다.
이 그림 앞에 서면 저는 같은 시대 파리의 시인 폴 베를렌의 시 한 편이 떠오릅니다.
가을날 바이올린의
길고 긴 흐느낌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네
한결같이
나른한
슬픔으로.
종이 울리면
숨이 막히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지난날을
떠올리며
나는 우네.
그리고 나는 떠나네
나를 싣고 가는
궂은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낙엽처럼.
(폴 베를렌, 「가을의 노래」, 1866)
베를렌이 이 시를 발표한 것은 1866년, 스물두 살 때였습니다. 원문은 한 줄이 서너 음절밖에 안 될 만큼 짧고, '가을(automne)'과 '단조로운(monotone)'처럼 줄 끝마다 비슷한 소리가 되풀이되어 노래처럼 읽힙니다. 프랑스 사람이라면 학창 시절 한 번쯤 외워 봤을 만큼 유명한 시라고 합니다.
이 시에는 뜻밖의 뒷이야기도 있습니다. 1944년 6월, 영국 BBC 방송은 프랑스를 향한 라디오에서 이 시의 첫 연을 두 번에 나눠 내보냈습니다. 첫 구절은 작전을 준비하라는 신호였고, 이어지는 구절은 곧 실행하라는 신호였습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앞두고 프랑스 레지스탕스에게 보낸 암호였던 것이지요. 가장 쓸쓸한 가을 시가, 역사에서 가장 긴박했던 여름날의 암호가 된 셈입니다.
같은 해, 모네는 흰 화병에 노란 꽃을 한 아름 꽂아 놓고 그렸습니다. 돼지감자 꽃입니다. 우리에게는 뚱딴지라는 이름으로도 익숙한 이 꽃은 해바라기와 닮은 모습으로, 여름꽃이 다 진 뒤인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핍니다. 화병 둘레로는 꽃봉오리와 잎이 흩어져 있고, 배경은 분홍과 청회색이 뒤섞여 어른거립니다. 노란 꽃잎이 배경의 차가운 색과 부딪히며 화면 전체가 환하게 울립니다.
베퇴유에서 보낸 3년은 모네의 삶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미국 국립미술관의 설명에 따르면, 그 3년 동안 모네는 300점 가까운 그림을 그렸습니다. 생애를 통틀어 가장 왕성한 시기 중 하나였습니다.
베를렌의 시 속 화자는 지난날을 떠올리며 울고, 바람에 실려 낙엽처럼 흩날립니다. 모네의 돼지감자 꽃은 그 낙엽이 지는 계절에 핍니다. 여름꽃이 모두 지고 난 뒤에야 꽃잎을 여는, 한 해의 늦은 꽃입니다.
가을이 쓸쓸한 건 지나간 여름이 그만큼 환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그 쓸쓸한 계절에도, 꽃은 핍니다.
이 글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옮겨 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네 점의 그림과 함께 들어 보실 수 있습니다.
▷ 모네의
베퇴유 시절 | Canvas & Melody
https://www.youtube.com/watch?v=f4sAWhj3f5c
글 :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 손만승 @art.connec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