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승의 ONE PIECE M] 미국의 가을을 그린 남자 — 크롭시 x 소로 「가을빛」
재스퍼 프랜시스 크롭시는 사계절 연작을 여러 번 그렸습니다. 겨울은 스위스, 봄은 영국, 여름은 이탈리아였습니다. 그리고 가을은 언제나 미국이었습니다.
그림이라기보다 창문에 가깝습니다. 벽에 낸 커다란 창.
양옆으로 붉은 단풍나무가 서 있고, 그 사이 먼 곳에 허드슨강이 흐릅니다. 구름 틈으로 햇빛이 부챗살처럼 쏟아져 강물 위에 은빛 길을 냅니다. 앞쪽 풀밭에는 사냥꾼 셋이 개를 데리고 앉아 쉬고 있습니다. 총은 나무에 기대 두었습니다.
이 그림은 미국에서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1856년 미국을 떠나 런던에 자리 잡은 크롭시가, 그곳 작업실에서 스케치와 기억을 더듬어 그린 것입니다. 고향에서 5,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고향의 10월을 그렸습니다.
전시장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이런 색의 가을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영국의 가을은 이렇게 붉게 타지 않으니까요. 사람들이 과장이라고 여기자, 크롭시는 미국에서 단풍잎을 가져와 그림 옆에 늘어놓았습니다. 말로 설명하는 대신 잎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같은 무렵 바다 건너에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매사추세츠의 숲을 걸으며 이런 문장을 쓰고 있었습니다.
"우리 숲의 가을빛 변화는 아직 우리 문학에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10월은 우리 시를 거의 물들이지 못했다."
소로는 아무도 이 가을빛을 쓰지 않는다고 했고, 크롭시는 그려 놓고도 의심을 받았습니다.
잎을 늘어놓은 보람은 있었습니다. 1861년 그는 빅토리아 여왕 앞에 소개됩니다. 이듬해 런던 만국박람회에서 메달을 받았고, 그림은 2,000달러에 팔렸습니다. 1863년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미국의 가을을 그리는 화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그는 가을만 그린 화가가 아닙니다. 이탈리아 풍경도 그렸고 폭풍우와 폭포도 그렸습니다. 생전에 가장 유명했던 작품은 오히려 1851년에 그린 두 점의 알레고리, 「전쟁의 정령」과 「평화의 정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그림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그의 가을입니다.
이 그림은 뉴햄프셔의 화이트 마운틴입니다. 멀리 초코루아산의 뾰족한 봉우리가 안개 속에 서 있고 하늘은 연한 노란빛입니다. 왼쪽 나무들은 붉게 물들었고, 골짜기 아래로 마을과 호수가 보입니다. 길 위에 말과 사람이 아주 작게 그려져 있습니다.
9년 전 그림과 분위기가 다릅니다. 1860년의 그림이 쏟아지는 빛으로 사람을 붙잡는다면, 이 그림은 뿌연 금빛 속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같은 계절인데 다른 공기입니다.
소로는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사물이 우리 눈에서 감춰지는 것은 그것이 시야 밖에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가 마음과 눈을 거기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런던 사람들이 크롭시의 붉은색을 믿지 못한 이유도 여기 있었을 겁니다. 본 적 없는 것은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린우드 호수는 뉴욕주와 뉴저지주 경계에 있습니다. 크롭시는 스무 살 무렵인 1840년대에 이 호수를 처음 찾았고, 그곳에서 훗날 아내가 되는 마리아 쿨리를 만났습니다. 처가가 호숫가 마을에 있어서 부부는 그 뒤로도 자주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이 그림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뒤의 호수입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그는 이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방 스물아홉 개짜리 집을 지었습니다. 건축가로 출발한 사람답게 직접 설계했고, 이름을 '알라딘'이라 붙였습니다. 1869년부터 1884년까지 봄과 여름과 가을을 그곳에서 보내고 겨울에는 뉴욕 작업실로 갔습니다.
그림 오른쪽 아래, 바위 위에 사람들이 앉아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호수 한가운데로 증기선이 하얀 연기를 뿜으며 지나갑니다. 이 배는 그림이 그려지기 두 해 전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관광객이 늘면서 생긴 노선이었습니다. 조용한 호수 그림 안에 새 시대가 들어와 있습니다.
바뀐 것은 배만이 아니었습니다. 1876년 필라델피아 만국박람회까지는 좋았지만, 그 무렵부터 미국 수집가들이 유럽 화가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1880년대에는 인상주의가 들어왔고, 잎 한 장까지 공들여 그리는 그의 화풍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습니다. 그림이 팔리지 않자 그는 건축 일을 다시 맡았습니다. 그러다 1884년, 알라딘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새 작업실에서 그린 작은 그림입니다. 강 위로 흐릿한 해가 걸려 있고, 그 빛이 물 위에 길게 비칩니다. 물가에 두 사람이 서 있습니다. 나무들은 노랗고 붉지만 1860년처럼 타오르지 않습니다. 안개가 모든 것을 감싸고 있습니다.
인디언 서머는 겨울 직전에 며칠 되돌아오는 여름입니다. 크롭시는 예순셋에 이 며칠을 그렸습니다.
크롭시는 허드슨강가 헤이스팅스의 집에서 15년을 더 그리다 190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잊힌 채였습니다. 그의 그림이 다시 발견된 것은 1960년대, 죽은 지 예순 해가 지나서입니다.
여왕 앞에 섰다가 잊혔고, 저택을 지었다가 잃었고, 유행하던 화풍은 구식이 되었습니다. 그사이에도 그는 해마다 가을로 돌아왔습니다. 소로가 아직 아무도 쓰지 않았다고 아쉬워한 그 10월로요.
이 글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옮겨 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네 점의 그림과 함께 들어 보실 수 있습니다.
Fading
into Stillness | Canvas & Melody
https://youtu.be/ZGEhcKoIBpI?si=2hqLVAbGH6vB1YBd
글 :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 손만승 @art.connec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