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04] 협업: 거인들도 홀로 서지 않는다 - <AI시대를 예술로 준비하는 리더십> || 칼럼 | 아트인코리아 ArtInKorea

어제 10,653명
오늘 4,827명
홈 > 아트인코리아 ArtInKorea > 칼럼
칼럼 (20)

Column 미술계 이슈와 전시, 시장, 문화, 동시대 예술 흐름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글을 전합니다. 필진과 에디터의 시선을 통해 변화하는 아트 신(scene)의 흐름과 담론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연재04] 협업: 거인들도 홀로 서지 않는다 - <AI시대를 예술로 준비하는 리더십>    네이버 구글

루벤스와 브뤼헐의 공동 작업이 가르쳐 주는 플러그인 시대의 리더십
이상민   승인 2026.11.08 21:57  |  최종 수정 2026.11.08 22:02
a b

연재명 : AI시대를 예술로 준비하는 리더십 (총 12회)

01회차 취향 / 경영자는 왜 미술관에 가야 하는가

02회차 안목 / 안목: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경영의 눈

03회차 통섭 / 통섭: 경계를 넘나드는 지식의 리더십

04회차 협업 / 협업: 거인들도 홀로 서지 않는다

05회차 관점 / 줌 아웃: 관점을 확장하는 리더의 기술

06회차 직관 / 직관: 압축된 경험이 만드는 결정의 힘

07회차 상상력 / 상상력: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보는 힘

08회차 미적감수성 / 미적 감수성: 감도가 곧 경쟁력인 시대

09회차 회복탄력성 / 애질리언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탄력성

10회차 문제 재정의 / 문제 재정의: 질문을 바꾸는 자가 미래를 만든다

11회차 큐레이션 / 큐레이션 리더십: 선택하고 버리는 결단력

12회차 인간다움 / 인간이라는 유일한 예술: AI 이후 리더의 본질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한쪽 벽에 유난히 화려한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다. 꽃과 과일이 풍성하게 넘쳐흐르는 화환 가운데,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글씨로 두 이름이 적혀 있다. 피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와 얀 브뤼헐 1세(Jan Brueghel the Elder). 두 화가가 하나의 캔버스를 나눠 그렸다. 루벤스가 중앙의 성모자를 그리고, 브뤼헐이 그것을 감싸는 꽃과 풍경을 채웠다. 17세기 플랑드르 미술 역사상 가장 유명한 협업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특별한 이유는 크기나 화려함 때문만이 아니다. 두 사람의 붓이 만나는 경계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협업이 완성되면 누가 어디를 그렸는지 흔적이 사라진다.

 

b08b4ce4724d805d5d71cb1a71a3ea0f_1794142490_5426.jpg

① 루벤스·얀 브뤼헐 1세 〈꽃화환 속의 성모자〉(1617경) — 루브르박물관, 파리

 

 

이 그림 앞에서 나는 오늘날 AI 시대의 협업을 생각했다. 루벤스와 브뤼헐은 당시 유럽에서 각각 독보적인 위치에 있던 거장들이었다. 루벤스는 바로크 회화의 정점, 브뤼헐은 꽃과 자연 묘사의 제왕. 둘 다 혼자서도 충분히 걸작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함께 그렸을까. 이 질문은 오늘날 리더에게도 그대로 유효하다.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 왜 협업을 선택하는가. 그 답이 두 거장의 캔버스 위에 있다.

강점의 결합, 완성도의 도약

루벤스는 꽃을 잘 그리지 못했다. 정확히는, 브뤼헐만큼 그리지 못했다. 브뤼헐은 꽃 한 송이의 결, 이슬방울 하나까지 현미경으로 관찰한 듯 세밀하게 묘사했다. 반면 루벤스는 인체의 역동성과 드라마틱한 구성에서 당대 최고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파트너였다. 중요한 것은 루벤스가 꽃을 '못 그린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거장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그것이 협업의 출발점이다.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이 협업을 막는 가장 큰 장벽이다.

결과는 어느 쪽도 혼자 만들 수 없는 작품이었다. 루벤스의 성모자는 브뤼헐의 꽃화환 속에서 더 신성하게 빛났고, 브뤼헐의 꽃들은 루벤스의 인물을 감싸며 더 의미 있는 배경이 되었다. 1+1이 2가 아니라 3이 된 것이다. 이것이 협업의 본질이다. 단순한 분업이 아니라, 각자의 탁월함이 상대의 탁월함을 끌어올리는 화학적 결합. 루벤스의 인물이 더 신성해 보이는 것은 꽃화환 덕분이고, 브뤼헐의 꽃이 더 의미 있어 보이는 것은 중앙의 성모자 덕분이다. 서로가 서로를 더 크게 만드는 관계—이것이 진정한 협업의 증거다.

두 사람은 이런 공동 작업을 여러 점 남겼다. 기록에 따르면 브뤼헐이 먼저 꽃화환을 완성하고, 루벤스가 중앙에 인물을 그려 넣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했다. 오늘날 우리가 '역할 분리'와 '권한 위임'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들은 400년 전 캔버스 위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주목할 것은 순서다. 브뤼헐이 먼저 완성한 꽃화환 안에 루벤스가 인물을 채워 넣었다. 루벤스가 인물을 먼저 그리고 브뤼헐이 꽃을 두른 것이 아니다. 맥락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 안에 핵심이 들어가는 구조. 협업의 설계에서 순서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러나 이 협업이 가능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기술이나 역할 분리가 아니라 신뢰였다. 루벤스는 브뤼헐이 꽃화환을 완성할 때까지 기다렸고, 브뤼헐은 루벤스가 중앙에 어떤 인물을 그려 넣을지 미리 통제하지 않았다. 상대가 자신의 빈 공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를 온전히 믿었다. 오늘날 많은 협업이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할은 나눴지만 신뢰는 나누지 않는 것. 업무를 위임하면서도 결과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수정 요청을 반복하는 것. 루벤스와 브뤼헐의 캔버스에는 경계선이 없다. 신뢰가 두 사람의 붓을 하나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결과〉: 협업이 무너질 때

루벤스가 1638년 혼자 그린 〈전쟁의 결과(The Consequences of War)〉는 협업과 고독의 대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쟁의 신 마르스가 평화와 예술, 지식을 짓밟고 나아가는 장면이다. 쓰러지는 인물들 중에는 건축가, 음악가, 어머니와 아이가 있다. 루벤스는 이 작품을 그리며 당시 유럽을 황폐화시킨 30년 전쟁에 대한 고통을 담았다고 편지에 썼다. 그는 외교관으로도 활동하며 여러 나라의 평화 협상에 참여했다. 전쟁이 파괴하는 것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그린 그림이다.

 

b08b4ce4724d805d5d71cb1a71a3ea0f_1794142517_3316.jpg

② 루벤스 〈전쟁의 결과〉(1638) — 피티 궁전, 피렌체 (동 시기 네덜란드 순회 전시 연계)

 

 

이 그림이 협업의 관점에서 흥미로운 이유는 따로 있다. 그림 속에서 짓밟히는 것들—건축, 음악, 학문, 가족—은 모두 혼자 이룰 수 없는 것들이다. 도시는 함께 짓고, 음악은 함께 연주하고, 지식은 함께 전달하고, 가족은 함께 이룬다. 전쟁이 파괴하는 것은 결국 '연결'이다. 루벤스는 협업의 결실들이 폭력에 의해 무너지는 장면을 그렸다. 협업이 왜 가치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증명한 그림이다. 연결이 사라지면 문명도 사라진다는 것. 조직에서도 협업이 무너지는 순간 축적된 모든 것이 함께 흔들린다.

오늘날 조직에서 협업을 파괴하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폭력이다. 정보를 독점하는 사일로(Silo), 성과를 혼자 차지하려는 내부 경쟁, 빠른 결정을 명분으로 한 일방적 지시. 루벤스의 그림에서 마르스가 짓밟는 것들처럼, 이런 행동들은 조직이 함께 쌓아온 신뢰와 문화를 무너뜨린다. 경영자가 협업을 말하면서 동시에 개인 KPI로만 평가한다면, 그것은 캔버스에 함께 그리자고 하면서 붓을 빼앗는 것과 같다. 루벤스의 〈전쟁의 결과〉는 400년 전의 그림이지만, 협업을 파괴하는 구조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바르톨로메우스 판 데르 헬스트의 〈민병대 연회〉: 협업의 축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명예의 전당' 입구에는 거대한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다. 바르톨로메우스 판 데르 헬스트(Bartholomeus van der Helst)의 〈뮌스터 조약 체결을 축하하는 암스테르담 민병대의 연회〉(1648). 가로 232cm, 세로 547cm에 달하는 이 대작에는 수십 명의 민병대원들이 전쟁의 종식을 자축하며 연회를 즐기는 장면이 담겨 있다. 당시에는 같은 공간에 걸린 렘브란트의 〈야경〉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정교하고 화려하다. 30년 전쟁이 끝나고 드디어 평화가 찾아온 순간, 함께 싸운 사람들이 함께 기뻐하는 장면. 협업의 결과가 축제가 될 때 어떤 모습인지를 이 그림이 보여준다.

 

b08b4ce4724d805d5d71cb1a71a3ea0f_1794142536_6976.jpeg

③ 판 데르 헬스트 〈뮌스터 조약 체결을 축하하는 암스테르담 민병대의 연회〉(1648) —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이 그림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각 인물의 역할이 명확하다는 점이다. 북을 치는 사람, 술을 따르는 사람, 연설하는 사람, 귀 기울여 듣는 사람. 연회는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이 맞물려야 완성된다. 조직의 협업도 이와 같다. 모두가 같은 일을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역할에서 탁월할 때 전체가 살아난다. 그리고 이 그림에서 어느 역할도 다른 역할보다 더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연설하는 사람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술을 따르는 손도, 북을 치는 손도 동등하게 그려져 있다. 협업의 문화는 기여의 크기가 아닌 기여의 다양함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연회를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역할이 있다. 장소를 마련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분위기를 설계한 사람. 그림 속에는 보이지 않지만 연회 전체를 기획한 누군가가 있다. 이것이 리더의 협업 역할이다.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공연자가 최선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사람. 판 데르 헬스트의 연회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화면 중앙의 연설자가 아니라, 이 장면 전체가 벌어질 수 있도록 준비한 보이지 않는 기획자다. AI 시대의 리더십도 이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들이 가장 잘 연결될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

AI 시대의 협업: 플러그인 생태계

엔비디아(NVIDIA)의 젠슨 황 CEO는 최근 몇 년간 자신의 칩을 단독으로 과시하는 대신, 삼성의 메모리, 현대차의 로보틱스,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가 어떻게 하나로 연결되어 'AI 생태계'를 만드는지를 강조했다. 단일 기업이 모든 것을 갖겠다는 '완결형 전략'을 버리고, 서로의 강점이 최적으로 맞물리는 '플러그인(Plug-in) 생태계'로 수렴한 것이다. 루벤스와 브뤼헐이 400년 전에 실천한 것과 구조적으로 같다. 루벤스의 인물화가 브뤼헐의 꽃화환이라는 생태계 안에서 더 빛났듯, 엔비디아의 칩은 파트너들의 기술 위에서 더 강해진다.

AI 시대의 협업은 그 속도와 범위가 달라졌다. 지금 리더는 사내 팀원들과만 협업하지 않는다. AI 도구와 협업하고, 외부 전문가 네트워크와 협업하고, 파트너 기업과 협업한다. 이 복잡한 협업 생태계를 설계하고 조율하는 능력—지시자(Commander)가 아닌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로서의 리더십—이 지금 가장 필요한 역량이다. AI와의 협업에서도 마찬가지다. AI에게 무엇을 지시할 것인가보다, AI와 인간 각각이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역할을 설계하는 것이 리더의 몫이다. 브뤼헐이 꽃화환을 완성하고 루벤스가 인물을 넣었듯, AI가 분석과 초안을 먼저 제시하고 리더가 판단과 방향을 넣는 구조. 순서와 역할을 설계하는 사람이 협업의 진짜 주도자다.

루벤스는 브뤼헐에게 꽃 그리는 방법을 지시하지 않았다. 브뤼헐은 루벤스에게 인물 배치를 간섭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탁월함을 믿고,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나의 목표—아름다운 그림—를 향해 함께 나아갔다. 협업이란 통제를 내려놓는 용기에서 시작한다. 400년 전 플랑드르 두 화가의 캔버스가 오늘날 리더들에게 건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캔버스 위의 경계선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진정한 협업은 누가 무엇을 했는지보다 함께 무엇을 만들었는지로 기억된다. 루벤스와 브뤼헐은 한 번도 서로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각자가 이미 충분히 탁월했고, 그 탁월함을 존중했다. 협업이란 가르치는 관계가 아니라 존중하는 관계에서 태어난다.

다음 달에는 네덜란드 황금시대 풍경화 앞에서 '관점'을 이야기한다. 소빙하기의 겨울 풍경을 그린 화가들이 어떻게 시대 전체를 화면에 담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리더의 '줌 아웃' 능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본다. 협업이 함께 그리는 일이라면, 관점은 무엇을 그릴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두 사람의 붓이 만나기 전에 먼저 필요한 것, 그것이 다음 달의 주제다.

b08b4ce4724d805d5d71cb1a71a3ea0f_1794142574_0227.jpg

한국생산성본부 <월간품질경영> KSA 매거진 - 연재명 : 명화와 마주한 경영자 2026년 10월호

 

b08b4ce4724d805d5d71cb1a71a3ea0f_1794142617_5486.jpg

한국생산성본부 <월간품질경영> KSA 매거진 - 연재명 : 명화와 마주한 경영자 2026년 10월호

 

이 칼럼에서 소개한 명화

① 루벤스·얀 브뤼헐 1세 〈꽃화환 속의 성모자〉(1617경) — 루브르박물관, 파리

② 루벤스 〈전쟁의 결과〉(1638) — 피티 궁전, 피렌체 (동 시기 네덜란드 순회 전시 연계)

③ 판 데르 헬스트 〈뮌스터 조약 체결을 축하하는 암스테르담 민병대의 연회〉(1648) —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글쓴이: 이상민

미술인문학자·커뮤니케이션 연구자. 연세대 수학·중앙대 대학원 언론학 전공. 전략기획 컨설팅펌 이노바랩(주) 대표,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통섭과 협업, AI 이후 인간의 전략』 『통섭미술관기행·네덜란드』 저자.


0 Comments
아트인코리아 그림감상문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