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심층전시리뷰] 최태훈 <불의 사제> 한벽원미술관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불을 훔쳐 회향풀 줄기 속에 감춘 채 인간에게 건넸다. 그 대가로 그는 카우카소스의 바위에 묶여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였다. 그 불을 가장 오래 지킨 신은 헤파이스토스였다. 올림포스에서 내던져져 다리를 절게 된 대장장이 신은 땅 밑 대장간에서 풀무를 돌리며 신들의 가장 단단한 것들을 빚었다. 신화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불은 선물이면서 형벌이고, 불을 다루는 자는 반드시 상처를 입으며, 가장 상처 입은 몸이 가장 강한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그 신화의 오늘이 서울 삼청동에 있다. 철조각가 최태훈(b.1965)의 개인전 〈불의 사제(The Priest of Fire)〉가 11월 4일부터 17일까지 한벽원미술관에서 열린다. 10년 만의 개인전이자, 작가 스스로 ‘첫 번째 개인전’이라 부르는 전시다. 신작 일곱 점이 나왔다.
통섭미술은 한 점의 작품을 하나의 학문으로만 보지 않는다. 예술과 과학,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여러 렌즈를 겹쳐 볼 때, 작품은 비로소 입체가 된다. 최태훈의 철은 그 방법이 유난히 잘 통하는 대상이다. 11월 7일 전시장에서 나눈 작가와의 대화, 미술평론가 최태만의 서문을 바탕으로 이 기사를 썼다.
필자는 전시를 본 뒤 인스타그램(@iartnoori)에 남긴 감상문 「취향의기록 - 최태훈 〈불의 사제〉」에서 그 첫인상을 이렇게 적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서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힘이다. 검게 그을린 철판이 기울고, 말리고, 허공에 떠 있다. 그러나 한 걸음 다가서면 그 힘은 무수한 구멍으로 뚫려 있고, 표면은 녹아내린 용암이 굳은 듯 울퉁불퉁하다. 강함과 약함이 한 몸에 있다.”
강함과 약함이 공존하는 이 역설을 다섯 개의 렌즈로 차례로 풀어 본다.
첫 번째 렌즈, 신화 — 불가사리에서 사제로
전시 서문을 쓴 최태만은 최태훈을 영등포 문래동 철공소에서 자란 ‘철과 불의 아이’로 소개한다. 그리고 쇠를 먹고 불을 뿜는다는 고려 설화 속 괴물 불가사리를 불러낸다. 평론가가 그에게서 읽어 낸 것은 ‘저돌성’이다. 작업에 몰입할 때는 창조의 에너지가 되고, 일상에서는 조급함과 거친 기질로 드러나는 힘이다.
작가가 들려준 젊은 날의 일화는 그 저돌성을 잘 보여준다. 인사동 전시가 왕성하던 시절, 선배 조각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는 “왜 너희들이 나를 못 알아주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의 가톨릭 대부인 조각가 한진섭은 그때 ‘저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느냐’며 오히려 그에게 끌렸다. 평론가는 오랜 벗으로서 그런 그를 볼 때마다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처럼 불안하다고 고백한다.
최태만은 그 불가사리가 이번 전시에서 다른 존재로 변한다고 본다. 플라즈마 불꽃을 다루는 동안 작가는 자기를 놓고, 세상을 불태우는 괴물이 아니라 재앙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여 녹여 버리는 ‘불의 사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불꽃을 프로메테우스의 불이자 헤파이스토스의 화염이 현대에 되살아난 것으로, 나아가 ‘접신(接神)의 화염’으로 읽는다.
제목을 받은 작가는 ‘사제’라는 말을 오래 고민했다고 했다. 그는 “직접 찾아보니 옛 사제의 가장 큰 역할이 불을 지키는 것이었다”며 그제야 평론가의 뜻을 알았다고 말했다. 사제는 불을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불을 지키고 섬기는 자다. 필자가 감상문에서 불이나 철보다 ‘사제’에 초점을 둔 것도 그 때문이다. “불과 철은 누구나 쓸 수 있는 주제이지만, 사제는 우리 내면의 일이기 때문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불의 정신분석』에서 불을 파괴이면서 정화이고, 사라짐이면서 변화인 요소로 보았다. 최태훈의 철 표면에 남은 그을음은 그 양면성의 기록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불꽃이 튀고 화상을 입어 가며 철을 찢어내는, 스스로를 학대하는 일에 빗대었다. 평론가는 그것을 학대가 아닌 정화라 부른다. 두 말 사이에는 ‘단련(鍛鍊)’이라는 우리말이 놓인다. 불에 달구어 두드리는 일은 철만이 아니라 사람도 단단하게 한다.
리처드 세넷은 『장인』에서 손의 일을 재료의 저항과 모호함을 피하지 않고 함께 일하는 기술로 설명한다. 뛰어난 장인은 저항을 없애는 사람이 아니라 그 저항에서 배우는 사람이다. 필자는 감상문에서 이 대목을 이렇게 맺었다. “최태훈의 작업장에서 단련되는 것은 철만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다.”
두 번째 렌즈, 물리학 — 물질의 제4상태와 바늘구멍의 빛
최태훈의 도구는 플라즈마다. 전기 아크를 극도로 압축해 얻는 초고온의 이온화된 기체, 고체·액체·기체 다음의 ‘물질의 제4상태’다. 단단하고 차가운 철판은 수만 도의 에너지 앞에서 녹고, 뚫리고, 다시 이어진다. 작가는 30여 년 동안 다듬은 이 방식을 ‘플라즈마 기법’이라 이름 붙였고, 자신이 장착한 “무기”라고 불렀다.
흔한 오해가 있다. 표면의 무수한 구멍을 보고 작은 조각을 하나하나 용접해 붙였다고 여기는 것이다. 작가는 중국 전시 때 미술평론가 윤진섭에게서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그때 작가는 용접이 아니라 열로 뚫어낸 것이라고 답했다. 구멍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의 결과다. 이 작품의 질감을 정하는 것은 얼마나 붙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비웠느냐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놀라운 장면은 작품이 아니라 바닥에 있다. 철판의 구멍을 지난 조명이 바닥에 수백 개의 작은 빛의 고리로 맺힌다. 구멍 하나하나가 바늘구멍 사진기, 곧 카메라 옵스쿠라처럼 작동해 천장 조명의 둥근 모양을 바닥에 비추기 때문이다. 수많은 구멍이 수많은 작은 눈이 되어 빛을 받아 적는 셈이다.
필자는 감상문에서 그 장면을 “마치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감정의 결정체 같았다”고 적었다. 전시장에 함께 간 딸이 먼저 걸음을 멈추고 바닥을 가리켰던 것도 그 빛의 고리였다. 작가에게 그림자가 의도된 것이냐고 묻지는 않았다. 우연히 따라온 덤이든 계산된 연출이든, 그것은 이미 작품의 일부로 보였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화가들이 어두운 방의 작은 구멍으로 세계를 비춰 보았듯, 최태훈의 철은 수만 개의 작은 암실이 된다. 눈에 보이는 작품은 철이지만, 바닥에는 빛으로 직조된 또 하나의 작품이 펼쳐진다. 관객이 그 위에 서면 자기 그림자가 빛의 고리와 겹친다. 작품은 그 순간 관객을 안으로 끌어들인다.
세 번째 렌즈, 수학과 철학 — 구멍이 바꾸는 정체성
위상수학(topology)에서는 도형을 아무리 늘리고 구부려도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 커피잔과 도넛이 같은 도형으로 취급되는 이유다. 그러나 구멍 하나가 더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도형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구멍은 결핍이 아니라 정체성을 바꾸는 사건이다.
최태훈의 철도 그렇다. 닫힌 덩어리였던 철판은 구멍을 얻는 순간 안과 밖이 통하는 피부가 된다. 작가는 철을 “타협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녀석”이라 부르며, 그 녀석이 가장 그다운 모습을 찾다가 구멍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그가 오랫동안 이어 온 ‘Dual Skin’, ‘Invisible Man’, ‘막(barrier)’ 연작의 제목이 모두 피부와 경계를 가리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필자는 감상문에서 이렇게 썼다. “최태훈의 철도 구멍을 얻는 순간 더 이상 단단한 덩어리가 아니라 숨 쉬는 피부가 된다.” 수학을 전공한 눈으로 보면,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정확한 기술이다. 뚫린 구멍의 수가 공간의 성격을 규정하듯, 구멍의 밀도가 이 철의 성격을 규정한다.
메를로퐁티는 보는 몸과 보이는 세계가 하나의 ‘살(chair)’로 엮여 있다고 했다. 피부는 나를 가두는 벽이면서 세계와 맞닿는 곳이다. 구멍 뚫린 철 앞에서 관객은 작품의 안쪽을 들여다보고, 어느 순간 자기 안쪽을 본다.
변화는 구멍의 밀도에서도 읽힌다. 10여 년 전 갤러리 아트사이드 시절 작품은 틈이 넓어 그물망처럼 성글었다. 이번 일곱 점은 훨씬 촘촘하고 단단하다. 그것을 본 김정연 조각가는 “밀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구멍이 촘촘해진 만큼, 작가가 건너온 시간도 촘촘했을 것이다.
네 번째 렌즈, 미술사 — 격정과 추상, 우울과 신들린 광기
최태만은 “불의 제전이 훑고 간 그 표면에는 바로크적 격정성과 추상충동이 서로 맞물려 있다”고 쓴다. 뵐플린이 말한 바로크는 닫힌 형태를 열고 선을 덩어리의 움직임으로 바꾼다. 보링거가 『추상과 감정이입』에서 말한 추상충동은 불안한 세계 앞에서 질서에 기대려는 마음이다. 격정은 허물고 추상은 세운다. 최태훈의 철에서 두 힘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지탱한다.
평론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플라톤의 ‘테이아 마니아(θεία μανία)’, 곧 피치노가 르네상스에 다시 불러낸 ‘신들린 광기(furor divinus)’를 연결한다. 르네상스 사람들은 토성 아래 태어난 예술가가 우울과 광기를 함께 지닌다고 믿었다. 최태만은 최태훈에게서 우울과 열정이 진자처럼 오가는 모습을 보고, 그가 불로써 우울을 치유하고 광기를 다스린다고 읽는다.
일곱 점의 작품은 그 격정과 질서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만나는 장면들이다. 가까이 들여다본 표면은 녹아내린 용암이 그대로 굳은 듯하다. 검은 덩어리 사이로 청동빛과 무지갯빛이 비치고, 그 틈마다 하얀 벽이 내비친다. 이것이 일곱 점 모두에 공통된 피부다.
전시장 한쪽 모서리에는 휘어진 사각 틀이 검은 철판을 감싸거나 그 위에 비스듬히 얹혀 있다. 틀은 비어 있다. 필자는 감상문에서 “무언가를 담아야 할 액자가 텅 빈 채 기울어진 모습”에서 세상이 정해 준 틀과 그 틀에서 미끄러져 나온 존재 사이의 긴장을 읽었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긴 철판에 기대 선 커다란 덩어리가 아래로 새어 나온 빛 때문에 공중에 떠 있는 듯 보인다. “무거움이 가벼움을 연기하는 순간”이다.
키 큰 철판 한 장은 외투처럼 말려 올라가 서 있고, 그 가운데 타원형 구멍이 눈처럼 뚫려 있다. 발치에는 벗어 놓은 허물 같은 철판이 누워 있다. 몸은 사라지고 껍질만 남아 선 ‘Invisible Man’의 기억이다. 공중에 걸린 커다란 철판은 깃발처럼 접히고 찢겨, 작은 구멍들이 별처럼 반짝인다. 감상문의 표현대로 “철로 짠 밤하늘, 혹은 은하”다. 숲과 우주와 생명을 말해 온 작가의 주제가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벽에 걸린 부조는 한 폭의 산수(山水)다. 구겨진 철판이 산봉우리처럼 솟고, 그림자가 벽 위에 한 겹의 산을 더 그린다. “동양화의 여백과 철의 무게가 한 화면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좌대 위에서 검은 철판과 은빛 철판이 마주 선 작품은 레이스처럼 뚫린 가장자리 사이로 빛을 들인다. 서로 다른 두 피부가 맞닿은 이 작품은 ‘Dual Skin’이 10년을 건너 도착한 오늘의 모습이다.
그리고 계단 앞 좌대 위에서는 철판이 회오리처럼 비틀려 솟아오른다. 바닥에 구겨진 철판에서 시작해 가늘게 조여졌다가 다시 넓게 펼쳐지는 모습은 타오르는 불꽃 같기도 하고 몸을 일으키는 사람 같기도 하다. 필자는 감상문에서 이 작품이 전시 전체를 요약하는 한 문장 같다고 썼다. “구겨진 시간에서 다시 일어선다는 문장이다.”
이 작품들 앞에서 최태만의 진단은 수사가 아니다. 대형 조형물의 성공 한가운데서 찾아온 공허함과 10년의 침묵을 떠올리면, 그의 조각은 상처를 지닌 존재의 분신처럼 보인다. 감상문의 한 대목이 이를 요약한다. “상처는 감추어지지 않고 구조가 된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간다. 단단해 보이는 삶의 표면 아래, 불에 데어 뚫린 작은 구멍들을 품고.”
다섯 번째 렌즈, 예술사회학 — 35명의 시스템에서 혼자의 작업장으로
최태훈의 10년을 이해하려면 그 이전을 봐야 한다. 그는 공공미술과 대형 조형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국내 대기업들과 두루 일했고, 한창일 때는 작업실에서 35명이 일했다. 그러나 자기 이름이 붙은 작품이 쏟아지는 동안 정작 그는 끼어들 자리를 잃었다. “내가 이러려고 작가의 길을 갔나.” 돈은 쌓였지만 정체성은 사라졌다는 고백이다.
작가는 이후의 10년을 “내면의 수련”이라 불렀다. 작업을 멈춘 것이 아니라 발표를 멈춘 것이다. 신작을 위해 100점이 넘는 드로잉을 그렸고, 최태만에 따르면 새 도약을 위한 드로잉과 마케트를 전면 폐기한 끝에 익숙한 언어로 돌아왔다. 작가는 이를 “한 바퀴를 빙 도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한때 35명이 만들던 그는 이번에 제자 한 명의 도움도 받지 않고 일곱 점을 혼자 만들었다.
최태만의 서문은 그 시간의 다른 면을 전한다. 한동안 연락을 끊었던 작가가 ‘최태훈다우면서도 최태훈답지 않은’ 고백의 글과 함께 작업 사진을 보내왔고, 아프다고 했다는 것이다. 평론가는 그 아픔이 몸의 상처가 아니라 마음의 고통일 것이며, 그것을 치유하려고 그가 미친 듯이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고 썼다. 필자는 감상문에서 이 두 이야기를 하나로 이었다. “새로운 것을 찾아 멀리 돌아갔다가, 결국 가장 자기다운 언어인 플라즈마로 돌아온 것이다.”
그 전환 뒤에는 후원이 있었다. 작가는 이천 예스파크 예술특구의 큰 작업 건물을 비워 두고 파주의 비닐하우스 작업장으로 옮겼다. 오랜 친구인 한주아트스페이스 김한일 회장은 “너는 작업만 해라”며 재료 하나까지 뒷받침했다고 한다. 작가의 시간을 지켜 주는 후원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이 전시는 한국 미술계가 주목할 만한 사례다.
작가가 인터뷰에서 가장 힘주어 말한 것은 사명감이었다. 그는 젊은 작가들이 자본의 논리에 쫓겨 한 방향으로만 조급하게 달려간다며, 그 결과물이 작품이 아니라 장식물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 대학에서 26년 가까이 가르친 그가 제자들에게 남기는 말은 한결같다. “세상을 쫓지 말고, 세상이 너를 바라보게 해라.” 물론 당장 물감과 캔버스를 걱정해야 하는 신진 작가들에게는 가혹한 요구로 들릴 수 있다. 바로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후원의 역할이며, 이번 전시는 그 대답을 말이 아닌 작품으로 보여준다.
매끄러움이 지배하는 시대다. 한병철이 진단했듯 우리는 상처도 저항도 없는 표면에 둘러싸여 있고, AI는 문장 한 줄로 수천 장의 이미지를 만든다. 작가는 그런 시대에도 철의 빛과 소리, 저항감이 자신을 계속 작업하게 한다고 말한다. 바슐라르의 말처럼 인간의 의지는 물질의 저항을 만날 때 깨어난다. 바닥에 맺힌 빛의 고리는 사진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선 몸에게만 열린다. 취향과 안목이 AI를 이기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필자는 졸저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에서 던졌던 물음을 이 전시의 감상문에서 다시 꺼내 들었다. “취향은 몸으로 쌓은 시간의 기록이며, 최태훈의 표면은 그 명제의 물질적 증명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물질 앞에 몸을 세우는 일, 그것이 AI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감상의 기본이다.” 컬렉터의 안목이 시험되는 자리도 여기다.
맺음 — 불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
다섯 개의 렌즈를 겹쳐 보면 하나의 상이 또렷해진다. 신화는 상처가 힘이 되는 이유를, 물리학은 비움이 빛을 만드는 원리를, 수학은 구멍이 정체성을 바꾸는 방식을 말해 준다. 미술사는 격정과 질서가 공존하는 표면을, 예술사회학은 그 표면이 태어난 삶의 조건을 보여준다. 이 모두가 한 장의 철판 위에서 만난다는 것, 그것이 최태훈의 철이 통섭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작가는 작품을 설치하고 나니 벌써 다음 드로잉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번 전시를 마치면 한중일 세 나라가 돌아가며 여는 비엔날레를 꾸려 첫 회를 중국에서 열 계획이다. 동료들이 환갑을 넘겨 삶을 정리하는 때, 그는 “지금부터”라고 말한다. 그의 10년은 침묵이 아니라 응축이었다.
일곱 점을 보고 나오며 필자는 다시 헤파이스토스를 생각했다. 감상문에 적었듯, “절름거리는 발로 풀무 앞에 서서 신들의 가장 단단한 것을 만들던 신”처럼, 10년 만에 돌아온 이 불의 사제도 자기의 상처를 감추지 않고 철 위에 새겨 놓았다.
관람을 앞둔 독자에게는 감상문에서 제안한 세 가지 방법을 권한다. 먼저 작품을 멀리서 한 번, 가까이서 한 번 보기를 바란다. 멀리서는 철의 힘이, 가까이서는 구멍의 연약함이 보인다. 그다음에는 발치를 내려다보기 바란다. 바닥에 맺힌 빛의 고리 위에 자기 그림자를 겹쳐 보는 순간, 철은 덩어리에서 피부가 되고 작품은 나의 이야기가 된다. 끝으로 표면에서 시간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녹이고 뚫고 쓰다듬은 순서를 상상하며 보면, 작가와 철이 주고받은 충돌과 화해의 역사가 드러난다.
불은 모든 것을 태우지 않는다. 불이 지나간 자리에는 더 열린 것이 남는다. 최태훈의 철이 그렇고, 아마 우리의 삶도 그럴 것이다.
전시 정보 — 최태훈 개인전 〈불의 사제(The Priest of Fire)〉는 2026년 11월 4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삼청동 한벽원미술관에서 열린다. 관람 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전시 서문은 미술평론가 최태만이 썼다.
작가 약력 — 최태훈은 1965년 태어나 영등포 문래동 철공소 골목에서 자랐다. 경희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해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고, 파리 시테 인터내셔날 데 제르와 미국 버몬트 스튜디오 등의 레지던시를 거쳤다. 가나아트, 모란미술관, 갤러리 아트사이드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밴쿠버 비엔날레에 〈Skin of Time〉을 설치했다. 동아미술상을 받았고 김종영미술관과 『미술세계』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경희대와 중앙대 등 세 대학에서 26년 가까이 후학을 길렀다.
이 기사는 2026년 11월 7일 전시장에서 진행한 작가 인터뷰, 최태만의 전시 서문 「불의 사제」, 필자의 감상문 「통섭미술 취향의기록 — 최태훈 〈불의 사제〉」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글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주)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