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기록] 손원영 작가 @artist.wonyoungson
아트인코리아
승인 2026.10.08 08:54
[취향의 기록] 손원영 작가
@artist.wonyoungson
손원영 개인전 <빛의 틈 – Light in the Between>
2026. 10. 7 – 10. 24
이브갤러리 / 백합문화재단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119길 5 이브자리코디센빌딩 5층
기획 갤러리비원 | 공간협력 이브갤러리
@gallerybeone
<전시감상 요약문>
전시감상 – 손원영(b.1973)
틈의 인문학: 세 개의 틈으로 스며드는 빛
이 상 민 | 미술인문 작가,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장
작년 인사동에서 손원영의 회화를 '사이'의 현상학이라 불렀다. 꼭 1년 만에 만난 그의 화면은 한 걸음 더 들어가 있다. '사이'가 둘을 잇는 관계의 이름이라면, '틈'은 그 관계 안에 남겨진 빈자리이자 숨구멍이다. 사이는 잇는 쪽을 보고, 틈은 비어 있는 쪽을 본다.
한자 間의 본래 글자는 문(門) 사이에 달(月)이 든 閒, 닫힌 문틈으로 빛이 새어드는 모습이다. 이번 전시 제목은 間 한 글자를 풀어 쓴 문장인 셈이다. 우리말 '틈'도 금이자 갈라진 자리이면서 '틈이 나다', '틈틈이'처럼 여유와 쉼을 뜻한다. 틈은 결핍이면서 동시에 쉼이다.
기획자 이정연 갤러리비원 대표는 이 전시를 '흔적의 층위, 유영하는 빛이 여는 세 개의 틈'으로 정리했다. 지각의 틈, 관계의 틈, 시간의 틈. 이 구도를 빌려 인문학의 언어로 조금 더 넓혀 본다.
① 지각의 틈 – 보는 이의 몸이 채우는 자리
구상과 추상 사이의 틈이다. 가까이서는 물감 방울이 뭉친 추상 표면만 보이지만, 몇 걸음 물러서면 금빛 반점이 나뭇잎 사이로 내려앉은 햇살이 된다. 이 전환은 화면 안이 아니라 그림과 관객 사이의 거리, 곧 틈에서 일어난다. 메를로퐁티의 말처럼 지각은 몸 전체의 일이고, 이 그림은 그 틈을 관객의 걸음으로 채우도록 설계되어 있다. 흐릿함은 결함이 아니라, 선명함이 감추던 빛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② 관계의 틈 – 맞물림 속에 남는 이음매
퍼즐은 완성되어도 이음매를 지우지 못한다. 이음매가 사라지면 그것은 퍼즐이 아니라 한 장의 인쇄물이다. 완전히 하나가 되는 관계는 한쪽이 다른 쪽을 지운 관계일지 모른다. 와쓰지 데쓰로는 '인간(人間)'이 이미 '사람 사이'임을 짚었고, 부버는 '나와 너'의 만남이 둘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자기주장을 앞세우지 않는 조각들이 느슨하게 맞물릴 때, 빈 틈새조차 적극적인 의미를 품는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흰 벽까지 함께 봐야 하는 이유다.
③ 시간의 틈 – 겹쳐진 지층 사이의 지금
작가는 과거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 위에 현재를 병치한다. 지운 자리 위에 다시 쓰는 양피지, 팰림프세스트의 방식이다. 수십 겹의 드리핑이 흘러가는 시간 크로노스라면, 그 층위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는 순간은 의미가 열리는 시간 카이로스다. 베르그송의 '지속'처럼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현재에 스며 있다. 을지로 골목과 오래된 석벽을 걸었던 산책자의 기억이 화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④ 통섭의 틈 – 빛은 틈을 지날 때 정체를 드러낸다
세 개의 틈을 하나로 묶으면 네 번째 틈이 보인다. 토머스 영은 빛을 좁은 두 틈에 통과시켜 줄무늬를 만들었고, 그 실험으로 빛이 파동임이 드러났다. 빛은 틈을 만나기 전까지 본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수학에서도 유리수를 아무리 촘촘히 채워도 틈이 남는데, 데데킨트는 그 틈(절단)을 새로운 수로 정의해 실수를 완성했다. 틈은 채워야 할 결함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가 태어나는 자리다. 노자도 바퀴통의 빈 곳이 있어야 수레가 쓰인다고 했다. 비어 있음이 쓰임을 만든다.
틈을 보는 안목
작년의 손원영이 빛의 '흐름'을 그렸다면, 올해는 빛이 들어오는 '자리'를 그린다. 틈은 균열이 아니라 출입구이고, 결핍이 아니라 여유다. 빈틈없이 완벽해 보이려 애쓰는 시대에 그의 그림은 틈을 남겨두라고 말한다. 그래야 빛이 들어오고, 타자가 들어오고, 시간이 숨을 쉰다. AI가 빈틈없는 이미지를 끝없이 만드는 지금, 인간의 안목은 무엇을 채우는가보다 무엇을 비워두는가에서 드러난다.
자! 이번에는 작품만 보지 말고 '틈'을 찾아보자. 가까이 다가가 물감 방울 사이의 틈을, 뒤로 물러서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빛의 틈을, 마지막으로 벽면에 퍼즐처럼 걸린 캔버스 사이 흰 벽의 틈을 보자. 세 개의 틈을 모두 찾았다면, 당신은 이미 네 번째 틈, 작품과 당신 사이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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