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취향의기록] 수오(김지홍)( b.1986) - 두 개의 번짐, 물과 불
수오(김지홍)( b.1986) (경희대 15학번 회화, 문화경영대학원 석사)
〈상처가 아픔이 되지 않을 때〉 2026, 캔버스에 먹·아크릴·불·한지 콜라주, 41×32cm
— 두 개의 번짐, 물과 불 —
이상민
승인 2026.08.31 00:53
재료 목록에 '불'이 적혀 있다. 나는 도록에서 이 한 글자를 발견하고 잠시 멈췄다. 먹과 아크릴과 한지 사이에 불이 나란히 놓여 있다는 것. 실제로 화면 왼쪽 가장자리는 갈색으로 그을려 오그라들었고, 위쪽 한 귀퉁이는 아예 타서 없어졌다. 대개 작품에서 불은 사고의 이름이지 재료의 이름이 아니다. 이 작가는 그것을 도구 쪽으로 옮겨 놓았다.
화면에는 두 종류의 번짐이 있다. 하나는 먹이 물을 타고 종이 섬유를 따라 퍼져 나간 자국이고, 다른 하나는 불이 종이를 먹어 들어간 자국이다. 발묵(潑墨)과 연소는 정반대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성질이 같다. 둘 다 시작점은 정할 수 있어도 도달점은 정할 수 없다. 손이 개입할 수 있는 구간이 아주 짧고, 그 뒤로는 재료가 알아서 간다. 상처와 상실을 다루겠다는 작가가 통제 불가능한 두 확산을 나란히 놓은 것은 정확한 선택이다.
다만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다. 먹은 덮을 수 있지만 탄 자리는 되돌릴 수 없다. 물감은 위에 얹으면 감춰지고, 지우고 다시 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종이가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얹을 수 없다. 회화에서 유일하게 복구가 불가능한 개입이 태우는 일이다. 작가가 아무것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하나의 고유한 형상으로 남는다고 말할 때, 그 문장은 관념이 아니라 자기 화면에서 매번 확인하는 물리적 사실이다.
나는 지난 작가의 전시 감상문을 쓴 적이 있다. 그때 미술인문학적 시각에서 수오의 작업을 읽었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매체(medium)와 메시지(message)의 일치를 완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맥루한(Marshall McLuhan)이 "매체가 곧 메시지"라 했을 때, 그 의미는 형식 자체가 내용을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수오의 경우, '불로 태운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소멸과 잔존의 서사를 담고 있다. 별도의 내러티브가 필요 없다. 작업 방식 자체가 말을 걸어온다. 동양의 오행(五行) 사유에서 물과 불은 상극(相剋)이다. 그러나 수오의 화면에서 물(안료를 녹이는)과 불(종이를 태우는)은 서로를 지우지 않고 화면 위에서 공존한다. 이것은 단순한 재료의 혼합이 아니라, 대립하는 것들이 결국 하나의 흔적을 만들어낸다는 존재론적 선언이다.
흉터를 생각하게 된다. 상처가 아물 때 우리 몸은 원래 피부를 복원하지 않는다. 새로 만들어지는 조직은 콜라겐 섬유의 배열이 달라 원래와 다른 결을 갖는다. 그래서 흉터는 복구의 흔적이 아니라 새로 생긴 조직이다. 없던 것이 생긴 것이지 있던 것이 돌아온 것이 아니다. 〈상처가 아픔이 되지 않을 때〉라는 제목은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의 문장이다. 아프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것이 되었다는 뜻이니까.
불을 회화에 끌어들인 계보도 짚어 볼 만하다. 알베르토 부리(Alberto Burri)는 2차 세계대전 포로수용소에서 군의관으로 지낸 뒤 화가가 되었고, 자루를 꿰맨 연작과 플라스틱을 태운 연작으로 상처와 봉합을 평생의 주제로 삼았다. 이브 클랭(Yves Klein)은 화염방사기로 그림을 그렸다. 다만 그들이 불을 파괴적 제스처로 썼다면, 수오의 불은 훨씬 조심스럽다. 화면 전체를 태우지 않고 가장자리와 몇 군데만 건드린다. 흔적을 남길 만큼만 태우고 멈추는 그 절제가 이 그림을 요란하지 않게 만든다.
검은 형상들의 처리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화면 위쪽의 큰 먹덩어리는 무언가의 실루엣처럼 보이다가도 이내 그저 얼룩으로 돌아간다. 아래쪽 푸른 자국들 역시 특정할 수 없다. 형상이 될 듯 말 듯한 이 상태를 작가는 끝까지 유지한다. 기억이 실제로 그렇게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일은 장면으로 남지 않고 색과 온도와 대략적인 윤곽으로만 남는다.
태운 자국이 있는 작품은 액자를 고를 때 주의가 필요하다. 탄 가장자리를 매트로 덮어 버리면 이 작품의 핵심이 가려지므로, 프레임 안쪽에 여유를 두고 작품 전체가 보이도록 띄워 거는 방식이 좋다. 유리는 무반사로 하되 작품에 닿지 않게 간격을 두어야 하고, 습도가 급변하는 자리는 피하는 편이 낫다.
글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주)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