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취향의기록] 공재(김영재)(b.1994) -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척도
공재(김영재) (경희대 대학원 22학번 조소)
〈큰 발〉 2024, 흙, 28×27×50cm
—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척도 —
이상민
승인 2026.08.31 01:50
전시장 바닥에 발 하나가 놓여 있다. 좌대도 없고 특별한 조명도 없다. 관람객의 시선은 대개 눈높이를 한 바퀴 훑고 난 뒤에야 뒤늦게 아래를 내려다보게 된다. 나는 그 지연된 몇 초가 이 작품의 첫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조각은 대개 우리를 올려다보게 만들지만, 공재의 발은 우리를 굽히게 만든다. 몸을 낮춰야 비로소 보이는 작품이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젊은 조각가가 관객에게 요구하는 최초의 예의다.
작가노트는 단 한 줄이다. "작가의 발을 보고 만든 큰 발이다." 나는 이 문장의 담백함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노트는 대개 담론으로 무겁다. 그런데 공재는 설명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설명이 작품을 앞지르지 않도록 자리를 비켜 준 것이다. 말을 줄이는 일은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다. 그는 관객이 눈으로 발견할 몫을 문장으로 미리 가져가지 않았다.
발은 미술사에서 늘 화면의 맨 아래, 가장 나중에 그려지는 부위였다. 카라바조가 성모 앞에 무릎 꿇은 순례자의 더러운 발바닥을 화면 정면에 배치했을 때 로마가 술렁였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발은 감춰야 할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길이를 재는 단위 '피트'가 곧 발이라는 사실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류 최초의 자(尺)는 발이었다. 세계를 측량하는 기준이 신체의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되었다는 이 역설이, 흙으로 확대된 이 발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재료가 흙이라는 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라틴어에서 사람(humanus)과 흙(humus), 그리고 겸손(humilitas)은 같은 뿌리를 나눠 갖는다. 공재가 2025년 참여한 단체전 제목이 《HUMANITAS》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흙으로 발을 빚는 일이 그에게 우연한 선택이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매끈한 브론즈나 레진 대신 흙을 택한 것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결국 자신이 흙에서 왔음을 아는 감각이라는 조용한 선언처럼 읽힌다.
부분이 전체를 대신하는 화법을 수사학에서는 제유(提喩)라고 부른다. 조각은 오래전부터 이 화법을 알고 있었다. 로댕은 손 하나만으로 창조의 순간을 말했고, 팔과 머리를 잃은 헬레니즘 토르소는 결손 때문에 오히려 더 강해졌다. 여기에 공재는 확대라는 변수를 하나 더 얹는다. 실물 크기의 발은 해부학 습작이지만, 50센티미터로 커진 발은 더 이상 신체가 아니라 지형이 된다. 클라스 올덴버그가 빨래집게를 광장 높이로 키웠을 때 일어난 일이 여기서도 일어난다. 크기가 달라지면 사물의 종(種)이 바뀐다.
2024년 개인전 제목 《We can shower together, if you want.》도 함께 읽어 볼 만하다. 함께 씻자는 제안, 그러나 원한다면이라는 단서가 붙은 조심스러운 초대다. 몸을 드러내는 일과 상대의 의사를 묻는 일이 한 문장 안에 있다. 그리고 발은 우리가 매일 씻는 부위, 가장 더러워지고 가장 자주 물에 닿는 부위다. 이 작가가 몸을 다루는 방식에는 과시도 폭로도 없다. 대신 조심스러운 제안이 있다. 좌대 없이 바닥에 놓인 발은 그 제안의 조형적 번역처럼 보인다.
또 하나 눈에 밟히는 이력이 있다. 2025년의 단체전 《점진적 과부하》. 이는 근력 운동의 원리를 가리키는 말로, 근육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조금씩 늘려 갈 때만 성장한다는 뜻이다. 한 번에 큰 무게를 들면 부러진다. 조각가의 성장도 다르지 않다. 자기 발 하나를 정직하게 확대해 보는 일에서 시작해 조금씩 부하를 늘려 가는 작가. 나는 이런 순서를 지키는 작가를 신뢰한다.
컬렉터의 관점에서 이 작품의 미덕은 '설명이 적다'는 것이다. 서사가 화려한 작품은 사는 순간이 가장 재미있고, 물성이 정직한 작품은 십 년째가 가장 재미있다. 흙으로 빚은 발 하나는 거실 어느 구석에 놓아도 유행을 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표면의 질감과 무게감만 남을 것이고, 그것이 이 작가의 다음 십 년과 함께 늙어 갈 것이다. 얼굴 없는 자화상, 나는 이 작품을 그렇게 부르고 싶다.
글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주)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