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취향의기록] 배소희(b.1997) - 표백된 들판에서 일렁이는 것 || 취향의기록 | 아트인코리아 ArtIn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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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기록 (35)

『취향의 기록』은 통섭미술 인문학자 이상민이 그림 한 점에서 출발해 철학, 과학, 문학 등 통섭적 지식의 언어로 감상을 확장해가는 연재입니다. 작품 해설에 머물지 않고 동서양의 사유와 작가의 삶을 통섭적 시선으로 엮어, 회화 한 점이 건네는 정서와 통찰을 매회 새롭게 기록합니다.



[이상민의 취향의기록] 배소희(b.1997) - 표백된 들판에서 일렁이는 것    네이버 구글

배소희(b.1997) (경희대 대학원 24학번 회화) 〈풍경Ⅰ〉 2024, 캔버스에 유화, 45.5×53cm — 표백된 들판에서 일렁이는 것 —
이상민   승인 2026.08.31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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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Ⅰ 2024, 캔버스에 유채, 45.5×53cm

 

푸른 풀들이 화면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한 방향으로 눕는다. 그 위와 아래는 흰빛으로 바래 있어 하늘인지 눈밭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오른쪽에 말뚝 하나가 서 있고, 거기서 가느다란 철사 한 줄이 화면을 가로질러 나간다. 그것이 이 그림에 놓인 유일한 인공물이자, 우리가 이 풍경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다. 말뚝이 없었다면 이것은 들판인지 현미경 아래인지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연작을 ‘표백된 것처럼 색과 빛을 잃은 풍경화’라고 부른다. 표백이라는 단어가 지금 이 시대에 어떤 무게를 갖는지 생각해 볼 만하다. 바다에서는 산호가 온도를 견디지 못해 색을 잃고 하얗게 죽어 간다. 백화현상이라 부르는 그 일은 죽음의 이미지가 검정이 아니라 흰색일 수 있음을 알려 주었다. 배소희의 풍경이 서늘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 그림은 어둡지 않다. 다만 색이 빠져나갔을 뿐이다.

작가노트의 마지막 문장이 이 그림의 심장이다. "작은 속삭임 하나에도 들판의 풀들이 일제히 일렁이는 곳." 나는 이 문장에서 물리학의 임계상태를 떠올렸다. 모래를 한 알씩 떨어뜨려 쌓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단 한 알에 전체가 무너져 내린다. ‘자기조직화 임계성’이라 부르는 현상이다. 아주 작은 입력이 전체의 반응을 부르는 상태. 앞 문장에서 아무리 외쳐도 먼지 한 톨 일지 않는다고 했던 세계와 정확히 반대편에 놓인 이 장소는, 그러니까 감응이 가능한 곳에 대한 갈망이다.

그 갈망은 이 작가의 전시 제목들에서 되풀이된다. 2024년의 《환상박피》가 특히 그렇다. 환상박피는 나무 줄기의 껍질을 고리 모양으로 벗겨 내는 원예 기술이다. 체관을 끊어 양분을 가둠으로써 열매를 크게 만들 수도 있고, 그대로 두면 나무는 서서히 말라 죽는다. 살리는 기술과 죽이는 기술이 같은 동작이라는 것. 젊은 작가가 이 단어를 전시 제목으로 골랐다면, 그가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가난한 인간의 빵》이라는 제목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감자를 부르던 이름이었다. 흙 속에서 자라 흙 묻은 채 식탁에 오르고, 기근의 시대에 수많은 목숨을 살렸으며, 동시에 한 작물에만 기댄 대가로 대기근을 부르기도 했던 작물. 배소희가 붙이는 제목들은 하나같이 살림과 죽임이 같은 자리에 있음을 가리킨다. 그의 표백된 풍경은 그 양가성이 도달한 색이다.

유화라는 재료를 쓰면서 이만큼 색을 덜어 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고 한다. 유화는 쌓을수록 진해지는 물감이고, 흰색을 섞으면 대개 탁해진다. 이 화면의 흰빛이 탁하지 않고 서늘하게 남아 있다는 것은 물감을 얹는 순서와 두께를 계산했다는 뜻일 것이다. 특히 풀잎을 그린 짧은 붓질들은 한 방향으로 빠르게 그어져 있어, 바람의 속도가 붓의 속도로 그대로 옮겨져 있다. 그리는 시간과 그려진 시간이 일치하는 드문 화면이다.

말뚝과 철사를 다시 본다. 그것은 울타리의 잔해다. 여기가 누군가의 땅이었음을, 경계를 그으려 한 사람이 있었음을 알려 주는 표식. 그러나 이제 경계는 기능하지 않고 풀만 자란다. 인간이 그은 선이 풍경에 흡수되는 과정을 이 작은 그림은 조용히 기록한다. 아무리 외쳐도 먼지 한 톨 일지 않는 세계에서 약간 빗겨나간 시공간이라는 작가의 말은, 어쩌면 이 방치된 자리를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컬렉터에게 한 가지 조언을 덧붙이자면, 이 작품은 흰 벽에 걸지 않는 편이 좋다. 화면 자체가 밝고 채도가 낮아 흰 벽에서는 존재감이 흐려진다. 회녹색이나 짙은 남색처럼 톤이 있는 벽, 혹은 어두운 나무 프레임과 만날 때 이 그림의 서늘함이 제대로 선다. 45.5×53cm의 10호 남짓한 크기는 침실이나 서재의 낮은 벽에 알맞고, 무엇보다 매일 지나치며 볼수록 좋은 종류의 그림이다. 조용한 그림은 반복해서 볼 때 비로소 이야기를 건넨다.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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