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승의 ONE PIECE] 별에서 와서 별로 돌아간다 — 김윤섭 작가의 〈The One Who Returned〉 작품 감상문 > 원피스 | 아트인코리아 ArtInKorea

최고 1,329명
어제 448명
오늘 480명
홈 > 아트인코리아 ArtInKorea > 원피스
원피스 (10)

손만승의 ONE PIECE는 전시 전체가 아닌 작품 하나에만 집중해, 다양한 분야와 연결 짓는 통섭적 감상문 연재입니다. '많이'보다 '깊이' 보자는 다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https://artinkorea.kr/one





[손만승의 ONE PIECE] 별에서 와서 별로 돌아간다 — 김윤섭 작가의 〈The One Who Returned〉 작품 감상문    네이버 구글

진리(EMET)와 죽음(MET) 사이 글자 한 획, 그 틈에서 반복되는 흙과 별의 순환을 그리다
아트커넥터   승인 2026.08.07 14:34  |  최종 수정 2026.08.07 15:28
a b

진리와 죽음, 글자 하나의 거리

오래된 유대 설화가 하나 있다. 랍비가 진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빚고, 그 이마에 히브리어로 "에메트(EMET)"라는 글자를 쓴다. 진리, 혹은 참됨이라는 뜻이다. 그 순간 진흙 덩어리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명령을 알아듣고,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존재, 골렘이 태어나는 순간이다.

골렘을 멈추려면 방법은 하나다. 이마에 쓰인 "에메트"에서 맨 앞 글자 하나만 지운다. 그러면 남는 단어는 "메트(MET)", 죽음이라는 뜻이다. 글자 하나가 생명과 죽음을, 진리와 소멸을 가르는 셈이다.

서울 삼청로, WWNN 전시장 안쪽에 이 설화를 끌어온 작품이 걸려 있다. 김윤섭 작가의 〈The One Who Returned, oil acrylic clay, 44.5×70×4cm, 2026. 개인전 《호모 이그니스-골렘: 신화 이후의 몸과 이미지》에 속한 작업이다.

86447ba785e65f0c8c060b09e8bbb837_1786080675_212.png

The One Who Returned〉(부분), oil acrylic clay, 44.5×70×4cm, 2026       

낯선 풍경, 판단할 수 없는 몸

깨진 토판처럼 불규칙하게 뜯긴 조형물 안에 캔버스가 박혀 있다. 프레임은 아이보리에서 청록으로 번지듯 색이 바뀌고, 표면에는 손으로 뜯어낸 굴곡과 균열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안쪽으로 사막인지 해변인지 모를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절벽과 물, 풀숲 사이로 벌거벗은 몸 하나가 엎드려 있다. 팔은 뻗어 있고 얼굴은 땅에 파묻혀 있어, 죽어 쓰러진 것인지 막 일어나려는 참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화면 왼쪽 아래, 앞서 이야기한 그 히브리어 단어가 다시 등장한다. "אמת" 옆에 작가의 손글씨로 "EMET / MET"이라 병기되어 있고, 그 밑에 문장 하나가 덧붙어 있다. "You are from the pleiades, Return to your dust." 창세기의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구절을, 흙 대신 플레이아데스 성단으로 바꿔 쓴 문장이다.

86447ba785e65f0c8c060b09e8bbb837_1786084082_346.png

The One Who Returned, oil acrylic clay, 44.5×70×4cm, 2026       

어디로 돌아오는가

골렘의 생사가 글자 하나의 유무로 갈리듯, 이 인물의 생사 역시 화면 안에서 결정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 인물은 어디로 "돌아오는" 것일까. 작가에게 물었더니, 그는 만물이 처음 생겨난 태초의 장소, 원자들이 아직 흩어지지 않았던 어떤 근원의 자리를 이야기했다.

"이 장소로 다시 돌아오는 것, 혹은 이 장소에서 시작된 곳으로 회귀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 시리즈를 만들었어요. 골렘도 결국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암석도 원자들이 모인 거니까, 인간도 똑같잖아요."

골렘이 흙과 광물로 조립된 존재이듯, 인간의 몸 역시 결국 원자들이 잠시 모여 있는 배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인물은 죽은 것도 살아난 것도 아니라, 자신이 처음 왔던 물질의 상태로 돌아가는 중간의 어느 지점에 놓여 있을 뿐이다.

깨진 토판, 다시 짜맞춰지는 것

이 원자적 회귀의 감각은 작품의 형태에도 스며 있다. 깨진 점토판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애초에 골렘 설화 자체가, 그리고 그보다 오래된 길가메시 서사시 역시 완결된 책이 아니라 깨진 점토판 조각들을 모아 재구성한 텍스트였다. 그 조각들이 이렇게 많이 발견된 이유는 뜻밖에도 소박한데, 고대의 필경 학생들이 받아쓰기 시험지로 이 서사시를 베껴 쓰며 문자를 익혔기 때문이다. 완성된 신화가 아니라, 부서지고 다시 짜맞춰지는 연습의 흔적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진 셈이다.

작가노트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 회화는 사라진 믿음을 복원하는 장치가 아니라, 믿음의 체계가 해체된 이후에도 몸과 이미지 속에 남아 있는 신화적 잔여를 가시화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The One Who Returned〉의 깨진 표면 역시, 완결된 형상으로 굳어지기보다 그 잔여를 붙잡아두려는 시도로 읽힌다.

흙에서 별로

다시 화면 속 문장으로 돌아가보자. "You are from the pleiades, Return to your dust." 이 문장이 빌려온 원형은 창세기다. 창세기는 인간이 흙에서 지어졌으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적었고, 이 문장은 수천 년 동안 죽음을 설명하는 가장 익숙한 언어였다. 소멸은 곧 원래 있던 곳으로의 회수였고, 그 회수는 대체로 슬픔의 언어로 읽혀왔다.

그런데 이 작품의 문장은 흙 대신 별을 불러온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인간의 몸을 이루는 탄소와 칼슘이 오래전 죽은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한 바 있다. 신화가 흙이라고 부르던 것을, 과학은 별의 잔해라고 부른다. 언어가 바뀌었을 뿐, 무언가로부터 왔고 언젠가 그리로 돌아간다는 감각 자체는 그대로다.

김윤섭 작가가 인터뷰 내내 반복했던 말이 바로 이 지점과 겹친다. 신화가 상상해낸 것과 AI가 근거 없는 내용을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현상(할루시네이션)이 사실은 같은 사고 과정이라는 것, 마법과 과학이 결국 같은 자리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것이다.

소멸이 아니라 순환

그렇다면 이 회귀는 소멸로만 읽어야 할까. 노자는 『도덕경』 16장에서 만물이 무성히 자라나지만 결국 각자 뿌리로 돌아간다고 썼다.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고요함이라 부르고, 그 고요함을 일러 명()을 회복하는 일이라 했다.

돌아감이 끝이 아니라 다음 생성을 위한 정지라는 뜻이다. 골렘의 이마에서 글자 하나가 지워지면 그것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듯, 이 인물의 회귀 역시 소멸이 아니라 순환의 한 자락일 것이다. 흙이든 별의 먼지든, 돌아가는 몸은 사라지는 몸이 아니라 다시 모일 준비를 하는 몸이다.

흙으로든 별로든, 사람은 결국 자신이 왔던 자리를 향해 조금씩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 손만승
https://www.instagram.com/art.connecter/

0 Comments
아트인코리아 그림감상문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