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승의 ONE PIECE M] 지옥에도 관객석이 있습니다 — 부그로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와 조지 벨로스의 「샤키 클럽에서의 스태그」 || 원피스 | 아트인코리아 ArtIn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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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만승의 ONE PIECE는 전시 전체가 아닌 작품 하나에만 집중해, 다양한 분야와 연결 짓는 통섭적 감상문 연재입니다. '많이'보다 '깊이' 보자는 다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https://artinkorea.kr/one





[손만승의 ONE PIECE M] 지옥에도 관객석이 있습니다 — 부그로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와 조지 벨로스의 「샤키 클럽에서의 스태그」    네이버 구글

지옥을 그리라는 주제를 받은 스물다섯 살 화가는 벌 받는 자와 벌 주는 자만 그려도 됐습니다. 그런데 그는 굳이 '보는 사람'을 그려 넣었습니다
아트커넥터   승인 2026.08.2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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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에서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리는 그림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는 관람객이 한참 올려다보다가, 결국 인상을 쓰며 지나가는 그림이 한 점 있습니다. 세로 280센티미터, 가로 225센티미터. 사람 키를 훌쩍 넘깁니다. 화면 한복판에서 벌거벗은 남자가 다른 남자의 몸을 타고 앉아 목덜미를 물어뜯고 있습니다. 어깨의 힘줄이 밧줄처럼 튀어나와 있고, 물린 쪽은 목이 꺾인 채 허공에 대고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그린 사람의 이름을 들으면 한 번 더 놀라게 됩니다.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 매끄러운 살결의 님프와 성모를 그려 19세기 유럽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화가입니다. 그런 그가 스물다섯 살이 되던 1850, 로마대상에 두 해 연속 떨어진 뒤 이를 악물고 내놓은 그림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 이런 주제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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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아돌프 부그로,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281 x 225 cm, oil on canvas, 1850

 on canvas, 1850       

물어뜯는 자와 물리는 자

장면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30곡에서 왔습니다. 여덟 번째 원, 위조한 자들의 구덩이입니다. 금속을 위조한 자, 화폐를 위조한 자, 그리고 사람을 위조한 자들이 갇혀 있는 곳입니다. 단테의 지옥에서는 죄가 그대로 형벌의 모양이 됩니다. 남의 모습을 훔쳐 살았던 자들은 이제 우리에서 풀려난 돼지처럼 서로를 물어뜯습니다.

목을 물고 있는 붉은 머리 사내는 잔니 스키키입니다. 13세기 피렌체의 실존 인물이었습니다. 부호 부오소 도나티가 유언장 없이 죽자, 시신 대신 침대에 누워 병든 부오소인 척 새 유언을 구술한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당대 최고라던 명마 한 필을 슬쩍 제 몫으로 끼워 넣었다고 전해집니다. 물리는 쪽은 카포키오. 연금술 사기로 시에나에서 화형당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단테와 같은 학교를 다닌 사이였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 속 단테는 옛 동창이 짐승이 되어 뜯기는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셈입니다.

진짜로 보아야 할 것은 구경꾼입니다

당대 평론가 테오필 고티에는 이 화폭에 근육과 신경과 힘줄의 격투가 있다며, 힘이야말로 드문 자질이라고 칭찬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다만 이 그림의 진짜 급소는 싸우는 두 사람이 아닙니다.

화면 왼쪽 그늘에 붉은 망토를 두른 단테와 안내자 베르길리우스가 서 있습니다. 두 사람은 말리지 않습니다. 그저 봅니다. 그리고 그들 위쪽 공중에는 날개 달린 악마가 팔을 벌린 채 히죽 웃고 있습니다. 지옥에서 이 싸움은 형벌인 동시에 볼거리라는 뜻입니다. 부그로는 지옥을 그리면서 관객석까지 함께 그려 넣었습니다.

59년 뒤, 뉴욕 어느 지하실

1909년 여름 뉴욕. 스물일곱 살의 조지 벨로스는 작업실 건너편 건물을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샤키 체육클럽. 당시 뉴욕에서 공개 프로 권투는 불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설 클럽들은 시합 당일 선수를 임시 회원으로 등록시키는 편법으로 법망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렇게 하룻밤짜리 회원이 된 외부 선수를 스태그라고 불렀습니다.

그해 8월에 완성한 「샤키 클럽에서의 스태그」는 그 지하 세계의 초상입니다. 두 육체가 화면 한가운데 뒤엉켜 있고, 조명은 오직 그들에게만 떨어집니다. 그 바깥은 어둡습니다. 어둠 속에서 링사이드의 얼굴들이 일그러진 채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벨로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권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서로를 죽이려는 두 남자를 그릴 뿐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가장 무서운 건 붓질이 아니라 시점입니다. 벨로스는 시선의 높이를 일부러 낮게 깔았습니다. 그림을 보는 사람이 링 밖에서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관중석 사이에 끼어 앉아 올려다보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림 앞에 서는 순간 우리는 이미 표를 산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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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벨로스, 샤키 클럽에서의 스태그, 281 x 225 cm, oil on canvas, 1850

   

스승의 스승

여기 묘한 인연이 하나 있습니다. 벨로스에게 그림을 가르친 스승은 로버트 헨리였는데, 헨리는 1888년 파리로 건너가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배웠습니다. 그를 가르친 사람이 바로 부그로였습니다. 헨리는 부그로에게서 익힌 해부학과 인체 구성력을 그대로 챙겨 미국으로 돌아왔고, 그 기술로 부그로가 대표하던 모든 것을 부수는 데 남은 생을 썼습니다. 벨로스는 그 교실에 앉아 있던 학생이었습니다.

벨로스가 부그로의 지옥도를 보고 그렸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다만 59년의 간격을 두고 두 그림은 똑같은 구조를 쓰고 있습니다. 중앙의 뒤엉킨 육체, 그들에게만 쏟아지는 빛, 어둠 속에서 지켜보는 얼굴들. 달라진 건 하나뿐입니다. 부그로의 관객은 악마였고, 벨로스의 관객은 돈을 낸 사람들이었습니다.

무대 위로 걸어 나온 남자

이야기는 9년 뒤 같은 도시에서 한 바퀴를 돕니다.

1918 12 14,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푸치니의 단막 희극 「잔니 스키키」가 세계 초연되었습니다. 원래 로마에서 올릴 예정이었지만 1차 세계대전 탓에 무산되어 뉴욕으로 건너온 무대였습니다. 부그로의 그림에서 남의 목을 물어뜯던 그 사내가, 이번에는 희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가 바로 이 작품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막이 내리기 직전, 스키키는 객석 쪽으로 몸을 돌립니다. 부오소의 돈을 이보다 더 잘 쓸 수 있었겠느냐고 묻고는, 단테에게서는 얻지 못했지만 여러분께서는 정상참작을 좀 해달라고 청합니다.

구경은 안전한 자리가 아닙니다

부그로가 그린 지옥에서 잔니 스키키는 짐승이 되어 남의 목을 뜯고 있었습니다. 벨로스가 그린 지하실에서 두 남자는 서로를 죽이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18년 뉴욕의 무대 위에서, 그 짐승이 사람의 모습으로 걸어 나와 객석을 향해 말을 겁니다. 오늘 밤 즐거우셨다면, 저를 좀 봐주십시오.

이 부탁이 무서운 건 그가 뻔뻔해서가 아닙니다. 그 말이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즐긴 사람은 봐줄 수밖에 없습니다. 웃어놓고 나서 저 자를 지옥에 두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요. 스키키는 자신을 심판할 자격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 단테가 아니라 방금 웃은 관객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우리는 늘 구경은 죄가 아니라고 여깁니다. 손대지 않았고, 판돈을 걸지 않았고, 그저 봤을 뿐이라고. 그런데 이 세 작품은 서로 다른 시대에서 같은 말을 합니다. 보는 자리는 안전한 자리가 아니라고. 부그로는 지옥 한복판에 관객석을 그려 넣었고, 벨로스는 그림 앞에 선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혔고, 스키키는 거기 앉은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세 사람 다, 구경꾼을 무대 밖에 두지 않았습니다.

부그로가 그린 단테만이 웃지 않았습니다. 굳은 얼굴로 눈을 떼지 못한 채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표정은 결백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알기 때문에 나온 표정입니다. 이 그림이 붙잡는 것은 구경한 사람이 아니라, 실컷 즐겨놓고 나는 그냥 봤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스키키는 바로 그 사람의 소매를 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 손만승 @art.connec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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