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후기] 최혜련 개인전 — 챔버 성북구 전시
아트인코리아
승인 2026.09.13 10:23
[전시후기] 최혜련 개인전
— 챔버 성북구 전시
작가 : 최혜련 @amoutean
전시명 : 오늘 다시 사심을 (Today, She Lives Again)
일정 : 2026. 9. 10 ~ 9. 27
장소 : 챔버 @chamber26_6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로 26-6)
성북구 챔버에서 열리고 있는 최혜련 작가의 개인전 《오늘 다시 사심을》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어린 시절 할머니가 이끌던 가정 예배의 기억에서 출발합니다.
할머니의 집에는 서로 다른 세계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한옥 벽지와 산수화 사이에 기독교 성화가 걸려 있었고, 철제 수납함 안에는 찬송가와 성경책이 들어 있었습니다. 작가에게는 성경 속 세상보다 그 낯선 마을이 그려진 철제함이 오히려 천국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이 전시장도 그 가정 예배가 열렸던 할머니의 안방을 염두에 두고 구성됐습니다.
전시의 여러 작업은 그 시절의 구체적인 장면에서 길어 올린 것들입니다. 〈주렁주렁〉은 밭에서 캐낸 고구마와 감자가 줄줄이 매달린 모습에서, 〈자라서 뭐가 될 거니〉는 어릴 때 미술을 하겠다는 자신에게 가족들이 되풀이해 묻던 질문에서 나왔습니다. 〈날개옷〉은 할머니가 생전에 미리 지어둔 수의를 두고, 오히려 화려해 보였던 그 옷을 자유를 향해 날아가는 옷으로 다시 그린 작업입니다.
〈잃어버린 낙원〉이라는 제목은 존 밀턴의 『실낙원』을 떠올리게 합니다. 밀턴은 인간이 낙원을 잃었지만 그 자리에서 다시 자기 삶을 선택하고 만들어가야 한다고 그렸습니다. 최혜련 작가도 비슷합니다. 어릴 적 성경이 말하는 천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작가는, 그 자리를 자기가 실제로 겪은 기억들 — 철제함 속 그림, 공작새, 할머니의 수의 — 로 채워 자기만의 낙원을 새로 만듭니다. 주어진 천국을 받아들이는 대신, 자기 손으로 다시 지어 올린 셈입니다.
가정 예배에서 부르던 찬송에는 악보가 없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살아온 할머니가 민요 가락으로 부르면, 가족들은 그 음을 귀로 듣고 따라 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음악을 하는 사촌과 함께 그 무반주 찬송을 〈오늘 다시 잇는 노래〉로 되살렸습니다. 자신은 할머니의 목소리에 붙들려 있었을 뿐인데, 사촌은 그것이 이미 여러 목소리가 겹쳐진 합창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오랫동안 기도와 소원을 구분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달리기에서 1등 하게 해달라는 사적인 소원 대신 가족 모두 행복하게 해달라는 말로 얼버무렸던 어린 시절의 기도가, 이제는 한자리에 가족이 무탈하게 모일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감사로 다시 읽힙니다.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이 무너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일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 신애라는 인물을 통해 진짜 믿음과 형식만 남은 믿음 사이의 거리를 집요하게 캐물었던 것처럼, 이 전시도 종교 없이 자란 작가가 뒤늦게 할머니의 믿음 안쪽에 있던 일상에 대한 감사를 더듬어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이 일상에 대한 감사는 손끝의 반복 노동을 통해서도 이어집니다. 작가는 바느질과 누빔을 하며 오늘 할 분량만 생각하고 손을 움직이다 보면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진다고 말합니다. 특별한 사건 없이 그저 오늘 몫을 해내는 그 반복이야말로 일상을 지탱하는 감사의 다른 이름인 셈입니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 상태, 즉 단순하고 반복적인 손동작이 불안한 생각을 걷어내고 마음을 하나의 리듬 위에 올려놓는다는 이론이 이 바느질의 시간과 겹칩니다.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살갑게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작가는 돌아가신 뒤에야 바늘과 실로 다시 잇고 있습니다. 사적이고 쑥스러운 기억일수록 오히려 진정성에 가깝습니다. 이 전시는 화려하지 않은 방식으로 감사라는 감정에 가장 가까이 다가갑니다.
글: 손만승 @art.connec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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