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취향의기록] 이진하(b.2001) 비둘기집의 원리, 그리고 진짜 비둘기
이진하(b.2001) (경희대 대학원 26학번 회화)
〈비틀거리며〉 2026, 캔버스에 유채, 72.7×90.9cm
— 비둘기집의 원리, 그리고 진짜 비둘기 —
이상민
승인 2026.08.30 23:02
타일 바닥 위에서 비둘기 세 마리가 체조를 하는 듯하다. 한 마리는 날개를 펴고, 한 마리는 목을 앞으로 빼고, 다른 한 마리는 몸을 기울인 채 균형을 잡는다. 배경에는 아치와 화분이 있고,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와 커다란 아가베 잎이 화면 왼쪽을 채운다. 파랑과 노랑, 검정의 색면이 바닥과 벽을 나누어 이 장면 전체가 무대처럼 보인다. 도시의 흔한 한 귀퉁이인데 어딘가 연극적이다.
연작의 제목이 『비둘기집의 원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는 반가웠다. 그것은 수학의 정리 이름이기 때문이다. 비둘기집이 n개인데 비둘기가 n+1마리라면 적어도 한 집에는 두 마리 이상이 들어간다. 너무 당연해서 증명할 것도 없어 보이는 이 명제가 수학에서는 놀랍도록 강력한 도구다. 이를테면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학교에서 이런 게임 해봤을 것이다. 사람 수보다 적은 의자를 두고 노래를 부르며 뺑뺑 돌다가 호루라기를 부는 시점에 의자를 차지하는 게임! 이 또한, 의자의 개수보다 사람의 수가 더 많기 때문에 어떤 의자에 2명 이상의 사람이 몰리게 된다.
당연한 사실에서 뜻밖의 결론을 끌어내는 것, 그것이 이 원리의 매력이다. 그리고 이진하는 그 이름을 문자 그대로 받아 진짜 비둘기를 그린다. 수학의 은유로 쓰이던 새를 다시 살아 있는 새로 돌려놓은 것이다. 추상적 정리에 깃털과 발톱을 붙이는 이 되돌림에는 재치 이상의 것이 있다. 우리가 원리라고 부르는 것들이 실은 얼마나 구체적인 관찰에서 나왔는지를 상기시킨다.
작가는 이 비둘기들이 춤을 추듯 비틀거리며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는다고 썼다. 그런데 조류학의 관점에서 비둘기의 그 걸음은 비틀거림이 아니다. 비둘기가 걸을 때 머리를 앞뒤로 까딱이는 것은 균형을 잃어서가 아니라 시야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다.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머리는 공간의 한 지점에 잠깐 고정되어 있다가, 몸이 따라잡으면 다시 앞으로 옮겨 간다.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는 그 동작이 사실은 세상을 또렷하게 보기 위한 최적의 전략인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작가의 문장이 훨씬 깊어진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목표를 향해 넘어질 듯 균형을 잡으며 나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그는 썼다. 비틀거림이 곧 균형을 잡는 방식이라면, 우리의 흔들림도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나아가기 위한 방법일 수 있다. 젊은 화가가 비둘기의 걸음에서 이 위로를 길어 올렸다면, 그 관찰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다.
도시 비둘기라는 존재 자체도 인간이 만든 결과다. 이 새들의 조상은 절벽에 둥지를 틀던 바위 비둘기였다. 인간이 콘크리트 건물을 세우자 새들은 그것을 절벽으로 인식했고, 우리가 흘린 것을 먹으며 도시에 정착했다. 그러니 비둘기가 인간 문화를 학습하는 존재로 보인다는 작가의 관찰은 절반만 맞다. 그들은 우리를 배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조건에 적응한 것이다. 이 화면의 인공적인 색면과 타일 바닥, 화분에 담긴 열대 식물들은 그 조건의 목록이기도 하다.
회화적으로 보면 이 화면은 원근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바닥 타일은 얕게 기울어 있고, 색면들은 깊이 없이 나란히 놓이며, 식물들은 벽지의 무늬처럼 평면적이다. 그 얕은 공간에서 비둘기들만 유독 부피를 가지고 있다. 배경은 무대이고 새들은 배우인 셈이다.
컬렉터에게 30호 크기의 이 그림은 밝고 다루기 쉬운 작품이다. 색이 선명하고 소재가 친근해 어느 공간에서도 환영받고,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더 좋다. 다만 이 그림의 진짜 재미는 제목을 알고 나서 시작된다. 수학의 정리 이름을 단 비둘기 그림이라는 사실을 손님에게 설명하는 순간, 이 작품은 벽에 걸린 그림에서 대화의 소재로 바뀐다. 좋은 컬렉션은 그렇게 집 안의 말을 늘려 준다.
글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주)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