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취향의기록] 임서현(b.1997) 물을 튕겨 내는 옷을 입고 불을 든 아이 || 취향의기록 | 아트인코리아 ArtIn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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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기록 (35)

『취향의 기록』은 통섭미술 인문학자 이상민이 그림 한 점에서 출발해 철학, 과학, 문학 등 통섭적 지식의 언어로 감상을 확장해가는 연재입니다. 작품 해설에 머물지 않고 동서양의 사유와 작가의 삶을 통섭적 시선으로 엮어, 회화 한 점이 건네는 정서와 통찰을 매회 새롭게 기록합니다.



[이상민의 취향의기록] 임서현(b.1997) 물을 튕겨 내는 옷을 입고 불을 든 아이    네이버 구글

임서현(b.1997) (동국대학교 서양화 학사 / 석사 재학) 〈우비와 불꽃〉 2023, Oil and watercolor on canvas, 72.7×50cm — 물을 튕겨 내는 옷을 입고 불을 든 아이 —
이상민   승인 2026.08.3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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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비와 불꽃 2023, 캔버스에 유채, 수채, 72.7×50cm

 

청록색 우비를 입은 아이가 왼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손끝에서 불꽃이 사방으로 터진다. 아이의 뺨은 붉게 달아올랐는데 눈빛은 이상할 만큼 고요하다. 뒤로는 흰 말뚝 울타리가 서 있고, 그 너머 오른쪽에서 노란 불길이 솟는다. 배경은 어둡다. 화면 전체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목록처럼 보이는데, 그 어긋남이 이 그림의 주제다.

제목이 이미 두 요소를 나란히 놓았다. 우비와 불꽃. 비를 막는 옷과 타오르는 불. 물과 불은 서로를 지우는 관계다. 그런데 이 아이는 방수복을 입은 채 불을 손에 들고 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이기지 않고 한 몸에 공존하는 상태, 작가가 관심을 둔다고 밝힌 그 양가적 순간이 소재 배치만으로 이미 성립해 있다.

작가는 붉어진 뺨과 평온한 눈빛처럼 상반된 상태가 한 몸에 공존하는 순간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 관찰이 대단히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자율신경이 하는 일이라 의지로 조절할 수 없다. 표정은 꾸밀 수 있어도 홍조는 꾸미지 못한다. 그러니 평온한 눈과 붉은 뺨이 함께 있다는 것은, 마음이 정리했다고 믿는 것과 몸이 아직 겪고 있는 것이 어긋나 있다는 뜻이다. 이 그림은 그 시차를 그린다.

양가감정이라는 말은 1910년 무렵 정신의학에서 만들어진 용어로, 원래는 한 대상에 대해 사랑과 미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를 가리켰다. 둘 중 하나가 진짜이고 나머지가 가짜인 것이 아니라 둘 다 진짜라는 것이 이 개념의 핵심이다. 이 작가의 2021년 개인전 제목이 《BETWEEN LOVE AND FEAR》였다는 사실은 그가 오래전부터 이 사이의 자리를 붙들어 왔음을 알려 준다. 사랑과 두려움 사이, 그 어느 쪽도 아닌 채로 둘 다인 곳.

재료의 조합도 주제를 밀어 올린다. 캔버스에 유채와 수채를 함께 썼다. 수채는 본래 종이에 스며들어야 제 성질을 내는데, 유성 바탕이 칠해진 캔버스 위에서는 스며들지 못하고 표면에 맺힌다. 흘러내리다 멈추고, 마르면서 가장자리에 테두리를 남긴다. 물을 튕겨 내는 우비 표면에 빗방울이 맺히는 모습과 정확히 같다. 소재가 재료의 물성으로 한 번 더 반복되는 셈인데, 이런 일치는 계산해서 얻어지기보다 오래 그린 사람의 손이 알아서 찾아내는 것에 가깝다.

아이가 든 것이 폭죽이 아니라 손에 쥐는 불꽃이라는 점도 의미가 있다. 그것은 잠깐 타고 꺼진다. 위험하지만 손에 쥘 수 있을 만큼만 위험하고, 아름답지만 붙잡아 둘 수 없을 만큼만 아름답다. 뒤편의 커다란 불길과 대비하면 그 크기 차이가 더 분명해진다. 통제할 수 없는 불이 배경에서 타는 동안, 아이는 통제할 수 있는 작은 불을 들고 서 있다. 두려움 앞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 대개 그렇다.

흰 말뚝 울타리도 그냥 놓인 소품이 아니다. 낮은 나무 울타리는 오랫동안 안전하고 평범한 가정의 상징으로 쓰여 왔다. 그 안온함의 기호 뒤에서 불이 나고 있다. 익숙한 풍경 안에 이름 붙일 수 없는 감각이 들어와 있다는 작가의 문장이 이 배치로 구체화된다. 낯선 것은 바깥에서 오지 않고 가장 익숙한 자리에서 자란다.

컬렉터에게 이 그림은 인물화이면서 인물화가 아니다. 아이의 이목구비는 또렷하지만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고, 그래서 초상이 갖는 부담이 없다. 72.7×50cm의 세로 화면은 좁고 긴 벽면에 잘 맞는다. 유채와 수채를 병용한 표면은 부분마다 광택이 달라지므로, 정면에서 강한 빛을 받는 자리보다 부드러운 확산광 아래가 낫다. 그리고 이 그림은 시선을 오래 붙든다. 아이의 눈이 관객을 똑바로 보지 않고 살짝 비껴 있어서, 볼 때마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다시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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