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취향의기록] 김애영(b.1986) - 구석을 축으로 돌려세우다
김애영(b.1986) (홍익대 05학번 도예유리과 학사, 석사)
〈피봇 시리즈_밤풍경〉 2026, 백자에 고화도 안료·수금, 9×9×32.5cm (each)
— 구석을 축으로 돌려세우다 —
이상민
승인 2026.08.31 01:38
네 개의 백자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다. 하나하나는 가늘고 길어 달항아리라기보다 항아리가 위로 늘어난 형상이다. 그런데 그중 몇은 수직으로 갈라져 있고, 갈라져 드러난 단면은 짙은 청록으로 칠해진 뒤 그 위에 밤 풍경이 그려져 있다. 별과 나뭇가지, 능선의 실루엣. 가장자리는 수금(水金)으로 얇게 둘러 빛이 흐른다. 백자의 바깥은 침묵하고, 안쪽은 이야기한다.
작가는 이 작업이 '모퉁이'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어둡고 소외된 구석을 다시 보는 일. 그리고 제목으로 '피벗(Pivot)'을 가져왔다. 나는 이 단어 선택이 대단히 정확하다고 느꼈다. 농구에서 피벗은 한 발을 반드시 바닥에 붙인 채 다른 발로 방향을 바꾸는 동작이다. 완전한 자유가 아니라 한 점을 고정했기 때문에 얻어지는 자유다. 경영에서 말하는 피벗도 마찬가지여서, 사업을 갈아엎는 것이 아니라 핵심 축은 지키고 방향만 트는 일을 가리킨다. 구석을 중심으로 옮겨 오되 기물의 축은 흔들지 않는 이 작업의 태도가 꼭 그렇다.
도자기를 수직으로 가른다는 것은 그릇이기를 포기하는 결단이다. 노자는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되 그 쓰임은 비어 있는 곳에 있다고 했다. 그릇의 본질이 '없음'에 있다는 말이다. 김애영은 바로 그 없음의 자리를 절개해 열어젖히고, 거기에 밤 풍경을 그려 넣었다. 비어 있어서 쓸모 있던 자리가, 채워짐으로써 보여 줄 것을 갖게 된 것이다. 기능을 잃는 대신 시선을 얻는 이 교환이 공예를 조각으로 이동시킨다.
금의 사용도 그냥 장식이 아니다. 수금은 낮은 온도로 한 번 더 구워 올리는 마감인데, 김애영은 그것을 갈라진 경계선에 집중적으로 둘렀다. 깨진 자리를 금으로 이어 흠을 이력으로 바꾸는 일본의 킨츠기(金継ぎ)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그는 미노 국제도자트리엔날레와 하기 국제도자공모전, 시가라키 도예의 숲 레지던시를 거치며 일본 도예의 물성 감각과 오래 교류해 왔고, 2026년에는 덴마크 굴라게르드 클레이토피아에 초대작가로 나섰다. 이 이력이 표면 처리의 근거를 설명해 준다.
백자에 그림을 그려 온 우리 전통은 청화백자다. 다만 조선의 청화는 언제나 바깥에 그렸고, 그것도 아껴 그렸다. 넓은 여백에 매화 한 가지, 용 한 마리. 여백이 곧 격이었다. 김애영은 그 규칙을 두 번 뒤집는다. 그림을 안쪽으로 옮기고, 그 안쪽을 짙게 채운다. 밖은 여백으로 두되 안은 가득 채우는 이 배분은 조선백자의 미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안팎을 맞바꾼 것이다. 전통을 거스르는 가장 세련된 방법은 규칙을 깨는 것이 아니라 규칙의 방향을 돌려 두는 일이다.
형태의 비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밑변 9센티미터에 높이 32.5센티미터, 지름 대비 세 배 반에 이르는 세장한 몸이다. 물레에서 이런 비례를 뽑아 올리는 일은 쉽지 않다. 벽이 얇아지면 주저앉고, 두꺼우면 둔해진다. 게다가 고화도 안료와 수금을 쓰려면 소성을 여러 번 거쳐야 하니 실패의 구간도 그만큼 길어진다. 완성된 형태의 우아함 뒤에는 가마 앞에서 반복된 계산과 실패가 있다. 도자를 볼 때 나는 늘 이 보이지 않는 공정을 함께 값으로 친다.
어둠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지 않겠다는 작가의 문장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음예예찬》에서 그늘을 미의 조건으로 옹호했던 대목과 겹치고, 그림자를 통합해야 비로소 한 사람이 완성된다고 본 융의 통찰과도 겹친다. 불안과 걱정이 삶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말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실은 조형의 원리에 관한 진술이다. 어두운 단면이 없으면 백자의 흰빛도 그저 흰빛일 뿐이다. 대비가 있어야 밝음이 밝음이 된다.
컬렉터에게 이 작업의 결정적 매력은 '각각(each)'이라는 단어에 있다. 9×9×32.5cm짜리 기물이 여러 점으로 존재하므로, 소장자는 몇 점을 어떻게 세울지 스스로 결정하게 된다. 갈라진 면을 앞으로 둘지 뒤로 돌릴지에 따라 작품은 매번 다른 얼굴이 된다. 감상이 관람에서 끝나지 않고 배치라는 행위로 이어지는 것이다. 소장자가 마지막 한 수를 두게 하는 작품, 나는 그런 작품을 좋은 컬렉션이라고 부른다.
글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주)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