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취향의기록] 노순호(b.1999)- 미래의 폐허를 미리 그리는 일
노순호(b.1999) (경희대 대학원 26학번 한국화)
〈광화문〉 2026, 순지에 잉크·수묵, 33.4×53cm
— 미래의 폐허를 미리 그리는 일 —
이상민
승인 2026.08.31 01:28
무너진 도시 한복판에 좌상(坐像) 하나가 남아 있다. 관을 쓰고 정면을 바라보는 그 형상 뒤로 아파트가 허리를 꺾은 채 서 있고, 잔해가 화면 아래를 가득 메운다. 그리고 그 모든 것 너머, 눈 덮인 산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솟아 있다. 무너진 것은 사람이 지은 것뿐이고 산은 그대로다. 이 대비가 이 작은 화면을 서늘하게 만든다.
제목이 〈광화문〉이라는 사실이 이 그림의 좌표를 정한다. 광화문은 한국 사회에서 신념이 집결하는 장소의 이름이다. 저마다의 확신을 든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광장. 작가는 그 광장의 미래를 폐허로 그렸다. 그리고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폐허의 공허함과 허무함에 여러 신념들을 투영해 맹목적으로 경도된 사회의 극단주의를 성찰한다고. 이제 막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나이의 작가가 쓴 문장이라기에는 서늘할 만큼 냉정하다.
미래의 폐허를 미리 그리는 일에는 계보가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위베르 로베르(Hubert Robert)는 아직 멀쩡히 서 있던 루브르의 대회랑이 폐허가 된 광경을 상상으로 그렸다. 피라네시(Giovanni Battista Piranesi)는 존재하지 않는 지하 감옥의 무한 계단을 판각했다. 폐허는 과거의 잔해가 아니라 시간을 앞질러 보는 장치였다. 노순호의 화면도 같은 문법을 쓴다. 다만 그가 무너뜨린 것은 로마의 신전이 아니라 우리가 어제도 지나온 아파트 단지라는 점이 다르다. 남의 폐허는 낭만이지만 내 폐허는 경고다.
폐허의 미학이 늘 무해했던 것은 아니다. 나치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는 천 년 뒤 아름다운 폐허로 남을 건물을 짓겠다는 이른바 폐허 가치의 이론을 내세웠다. 권력이 자기 붕괴마저 미리 미학화하려 한 사례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파시즘은 정치를 심미화한다고 경고했던 바로 그 지점이다. 작가노트에 '기계적 복제'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을 나는 우연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벤야민의 용어이고, 이 그림은 폐허를 아름답게 만들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기법을 보면 그 애씀이 더 분명해진다. 화면은 무수한 선의 반복으로 채워져 있다. 목판화의 조각칼 자국이나 동판화의 에칭을 닮은, 기계적으로 균질한 선들이다. 그런데 바탕은 순지이고 도구는 잉크와 먹이다. 판화의 시각 문법을 손으로 흉내 내는 것이다. 복제의 외양을 유일본으로 만들어 내는 이 수고는 비효율적이지만, 바로 그 비효율이 화면에 긴장을 만든다. 준법(皴法)이 바위의 주름을 그리던 자리에 이제 콘크리트의 파열이 들어와 있다.
흥미로운 것은 화면 속 좌상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시는 다 무너졌는데 동상만 남았다. 이것은 위로가 아니라 질문에 가깝다. 신념의 상징은 왜 마지막까지 서 있는가. 혹은 마지막까지 서 있는 것이 정말 우리를 구하는가. 작가는 답하지 않는다. 답하지 않은 채로 두는 것이 작가의 겸손이자, 이 그림이 선동이 되지 않는 이유다.
컬렉터의 입장에서 불편한 그림을 소장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거실에 걸기엔 무겁고, 손님에게 설명하기도 번거롭다. 그러나 컬렉션의 품격은 예쁜 그림 열 점이 아니라 불편한 그림 한 점에서 나온다. 시대를 기록한 작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값이 아니라 무게가 오른다. 게다가 33.4×53cm, 그리 크지 않다. 서재의 좁은 벽 하나면 충분하고, 그 정도 거리에서 이 화면의 선 하나하나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글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주)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