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취향의기록] 박보우 - 삼키지 못한 것들이 만든 지형
박보우 (추계예술대학교 판화미디어전공, 동 대학원 판화전공 석사 재학)
〈소화되지 않는 불안, 도래하지 않는 망각〉 2023, 로자스피나에 석판, 60×50cm
— 삼키지 못한 것들이 만든 지형 —
이상민
승인 2026.08.31 01:20
흰 바탕 위에 검은 덩어리 하나가 떠 있다. 관을 닮은 매끈한 줄기들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부글거리며 엉겨 있다. 장기 같기도 하고 뿌리 같기도 하고, 물속에 풀린 먹물 같기도 하다. 어떤 기관인지 특정할 수 없는데도 몸의 안쪽이라는 확신만은 분명하다. 우리가 자기 내장을 본 적이 없으면서도 그 감각만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제목이 두 개의 부정으로 되어 있다는 점을 먼저 짚고 싶다. 소화되지 않는 불안, 그리고 도래하지 않는 망각. 무엇이 있다가 아니라 무엇이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망각을 소극적 결핍이 아니라 능동적 능력이라고 했다. 잘 잊는 자만이 소화할 수 있고, 소화하지 못한 자는 반추동물처럼 같은 것을 되새김한다고. 박보우의 제목은 그 문장의 뒷면에 서 있다. 능력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상태.
불안이 소화의 언어로 표현되는 것은 은유만이 아니다. 우리는 ‘속이 안 좋다’라고 말하고, 영어권에서는 이를 ‘배 속에 나비가 있다(butterflies in the stomach)’라고 말한다. 실제로 장에는 수억 개의 신경세포가 분포해 제2의 뇌라 불리고, 감정 상태는 곧바로 소화기에 나타난다. 뇌와 장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는 양방향 소통 체계를 의미하는 장뇌축(Gut-Brain Axis)이라는 용어가 학계에서 자리 잡은 지도 오래다. 그러니 이 작가가 불안을 그리며 도달한 형상이
내장을 닮은 것은 시적 상상의 결과가 아니라 신체의 사실에 가깝다. 몸은 감정을 기관의 형태로 겪는다.
기법이 석판화라는 점이 이 주제와 절묘하게 맞물린다. 판화 가운데 석판은 유일하게 판을 파지 않는다. 목판은 새기고 동판은 부식시키지만, 석판은 물과 기름이 서로 밀어내는 성질만으로 그린 자국을 그대로 붙든다. 새겨서 남기는 것이 아니라 눌어붙어서 남는 것이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감각을 다루겠다는 작가에게 이보다 정직한 기법은 없다. 게다가 석판은 계조가 부드러워 이렇게 미묘한 회색의 층위를 낼 수 있다.
종이 이름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로자스피나(Rosaspina)는 이탈리아 파브리아노가 만드는 판화지인데, 그 이름이 ‘장미 가시’라는 뜻이다. 아름다움과 통증을 한 단어에 담고 있는 종이 위에, 불안과 기억에 관한 형상이 앉았다. 그리고 이 작가의 2026년 개인전 제목이 《속삭이는 뿌리》다. 화면의 이 덩어리가 장기로도 뿌리로도 보이는 이유가 여기서 설명된다. 그는 땅 밑과 몸 안을 같은 어둠으로 다루고 있다. 보이지 않지만 자라고 있는 것들.
넓은 흰 여백도 이 작품의 중요한 장치다. 덩어리는 바닥에 놓이지 않고 허공에 떠 있다. 배경도 그림자도 없이 대상만 정확히 떠 있는 이 구도는 실은 오래된 형식, 곧 해부도의 형식이다. 해부학의 창시자인 안드레아스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이래 해부도는 장기를 몸에서 떼어 내 흰 지면 위에 홀로 놓아 왔다. 다만 해부도가 이름을 붙이기 위한 그림이라면, 박보우의 화면은 이름 붙이기를 끝까지 거부한다. 명명되지 않은 채 떠 있는 기관, 그것이 불안의 정확한 초상이다.
2025년 개인전 제목 《잠든 사이에도 살갗은 자란다》 역시 같은 자리에서 나온 문장이다. 의식이 쉬는 동안에도 몸은 일한다는 이 관찰은 불안의 작동 방식과 정확히 같다. 우리가 잊었다고 믿는 동안에도 그것은 자기 일을 계속한다. 판화가 에디션으로 존재하는 매체라는 사실까지 여기에 겹친다. 같은 이미지가 여러 장 반복되어 세상에 놓이는 것, 반복이야말로 불안의 본질이다. 형식이 내용을 이미 말하고 있는 셈이다.
컬렉터에게 판화는 좋은 입구다. 회화보다 가격 진입이 낮고, 에디션 번호와 서명이 있어 소장 정보가 명확하다. 다만 이 작품을 권하는 이유는 접근성 때문이 아니다. 젊은 작가가 이만한 밀도의 흑백 계조를 다루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제목과 재료와 형상이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요소들이 서로를 배신하지 않는 작업은 드물다. 60×50cm의 흑백 한 점은 컬렉션 안에서 쉼표 역할을 한다. 색이 많은 벽일수록 이런 한 점이 전체를 정리해 줄 것이다.
글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주)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