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취향의기록] 우이진(배의진)(b.1997) - 구십억 년을 건너온 빛의 이름 || 취향의기록 | 아트인코리아 ArtIn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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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기록 (35)

『취향의 기록』은 통섭미술 인문학자 이상민이 그림 한 점에서 출발해 철학, 과학, 문학 등 통섭적 지식의 언어로 감상을 확장해가는 연재입니다. 작품 해설에 머물지 않고 동서양의 사유와 작가의 삶을 통섭적 시선으로 엮어, 회화 한 점이 건네는 정서와 통찰을 매회 새롭게 기록합니다.



[이상민의 취향의기록] 우이진(배의진)(b.1997) - 구십억 년을 건너온 빛의 이름    네이버 구글

우이진(배의진)(b.1997) (경희대 대학원 24학번 한국화) 〈MACS J1149〉 2026, 분채·펄 안료·래커, 알루미늄 패널, 80.3×53cm — 구십억 년을 건너온 빛의 이름 —
이상민   승인 2026.08.31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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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S J1149 2026, 알루미늄 패널에 분채·펄 안료·래커 , 80.3×53cm

 

깊고 짙은 푸른 면 위로 흰 입자들이 사선으로 솟아오른다. 깃털 같기도 하고 물보라 같기도 한 그 흐름 사이사이에 동그란 광점들이 박혀 있고, 왼쪽 위에서는 그 점들이 하나의 선을 이루며 내려온다. 알루미늄 패널이 바탕이어서 보는 각도를 조금만 바꿔도 화면 전체의 밝기가 달라진다. 정지한 그림인데 관객이 움직이면 함께 움직인다. 이 작품은 서서 보는 그림이 아니라 걸으며 보는 그림이다.

제목의 정체를 알고 나면 화면이 다르게 읽힌다. MACS J1149는 은하단의 이름이고, 그 중력이 렌즈처럼 작용해 인류가 관측한 가장 먼 개별 항성의 빛을 증폭시켜 주었다. 약 구십억 광년 저편의 별. 천문학자들은 그 별에 이카루스라는 별명을 붙였다. 작가가 노트에 적어 둔 그대로다.

이카루스라는 이름이 붙은 사연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신화의 이카루스는 태양에 다가가려다 날개가 녹아 추락했다. 오르려는 자에게 내려진 벌의 이름이다. 그런데 천문학의 이카루스는 정반대의 일을 한다. 그 별은 너무 멀어 보일 수 없었지만, 앞을 가로막은 은하단의 중력이 빛을 휘어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가로막은 것이 도리어 보여 준 것이다. 추락의 이름을 가진 별이 중력의 도움으로 관측되었다는 이 반전은, 시인이 지어낼 수 없는 종류의 이야기다.

게다가 우리가 보는 그 빛은 구십억 년 전의 빛이다. 별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즉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의 실재하는 빛을 보고 있다. 부재를 보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 천문학이라는 사실을 이 작품은 상기시킨다. 밤하늘을 본다는 것은 과거를 보는 일이고, 그러니 화면에 박힌 저 광점들은 모두 시차를 안고 도착한 소식들이다.

중력렌즈 자체도 되새길 만하다. 질량이 시공간을 휘게 하고 그래서 빛의 경로가 굽는다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예언이었고, 1919년 개기일식 때 관측으로 확인되었다.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의 길을 바꾼다는 이 원리는 물리학의 명제이면서 동시에 사람 사이의 일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작가가 우주의 모든 것은 중력에 이끌려 끝없이 어딘가로 떨어지거나 솟아오른다고 썼을 때, 그 문장은 별에 대한 서술이자 사람에 대한 서술로 함께 읽힌다.

재료를 보면 이 작가의 감각이 얼마나 정확한지 알 수 있다. 분채는 전통 채색화의 안료다. 본래 비단이나 종이 위에 얹히던 것이 여기서는 알루미늄 패널 위에 올라간다. 스미지 않는 바탕이니 안료는 표면에 얹힌 채 입자로 남는다. 여기에 펄 안료가 더해지는데, 진주광택 안료는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성질을 갖는다. 관측 조건이 상(像)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중력렌즈와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물감이다. 주제가 재료를 고른 것인지, 재료가 주제를 불러온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한국화 전공자가 우주를 그린다는 것도 생각해 볼 대목이다. 동양의 산수는 오래전부터 자연을 그리되 눈앞의 자연만을 그린 것이 아니었다. 와유(臥遊), 누워서 천하를 노닌다는 그 태도는 실제로 갈 수 없는 곳을 화면으로 불러오는 방식이었다. 작가가 구십억 광년 밖의 별을 분채로 불러오는 일은 그러니 전통에서 이탈한 것이 아니라 전통이 늘 해 오던 일의 규모를 바꾼 것에 가깝다.

화면이 세로로 긴 형태라는 점도 계산된 선택으로 보인다. 80.3×53cm의 세로 화면에서만 떨어지거나 솟아오르는 운동이 성립한다. 가로 화면이었다면 이 흰 흐름은 그저 퍼지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중력이 작동하는 그림을 그리려면 화면에 먼저 위와 아래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 방향을 하나로 정하지 않았다. 이 입자들이 솟는 중인지 흩어져 내리는 중인지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읽히는데, 그 미결정이야말로 중력에 대한 가장 정확한 묘사다.

컬렉터에게 이 작품은 반드시 실물로 확인해야 할 종류다. 도판에서는 평범한 청색 추상으로 보이지만, 실물 앞에서는 조명이 지나갈 때마다 입자들이 차례로 켜진다. 소장한다면 스포트라이트보다 넓게 퍼지는 간접조명이 낫고, 사람이 지나다니는 동선에 걸어 두는 편이 좋다. 걸을 때마다 화면이 반응하니, 이 작품은 소장자가 그 앞을 지나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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