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취향의기록] 양다희 - 서로의 그림자를 지워 주는 빛 || 취향의기록 | 아트인코리아 ArtIn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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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기록 (35)

『취향의 기록』은 통섭미술 인문학자 이상민이 그림 한 점에서 출발해 철학, 과학, 문학 등 통섭적 지식의 언어로 감상을 확장해가는 연재입니다. 작품 해설에 머물지 않고 동서양의 사유와 작가의 삶을 통섭적 시선으로 엮어, 회화 한 점이 건네는 정서와 통찰을 매회 새롭게 기록합니다.



[이상민의 취향의기록] 양다희 - 서로의 그림자를 지워 주는 빛    네이버 구글

양다희 (상명대학교 커뮤니케이션 / 홍익대학교 석사) 〈작고, 흔들리고, 연결되는〉 2025, 캔버스에 유채, 91×65cm — 서로의 그림자를 지워 주는 빛 —
이상민   승인 2026.08.30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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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흔들리고, 연결되는 2025, 캔버스에 유채, 91×65cm

 

어두운 배경 속에서 촛불 여러 자루가 함께 타고 있다. 초들은 이미 많이 녹아 제 몸을 흘려내렸고, 촛대의 장식은 흰 밀랍에 반쯤 덮였다. 오른쪽 끝에 푸른 초 하나가 다른 색으로 서 있다. 붓질은 성글고 빠르며, 불꽃 주변은 물감이 번지듯 풀려 있어 화면 전체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제목의 세 형용사가 그대로 화면에 있다. 작고, 흔들리고, 연결되는.

작가는 이 작업의 바탕에 하이데거의 ‘공속(共屬)’, 곧 미트자인(Mitsein)이 있다고 밝힌다. ‘더불어 있음’이라는 뜻의 이 개념은 인간이 먼저 홀로 존재한 뒤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함께 있음으로써 존재한다는 통찰이다. 관계는 존재에 나중에 더해지는 조건이 아니라 존재의 조건이라는 것. 작가는 이를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배하거나 흡수하지 않고 각자의 개별성을 유지한 채 긴장과 균형을 이루는 관계로 풀어낸다.

그 개념을 촛불로 옮긴 선택이 이 작품의 성취다. 빛에는 특별한 성질이 있다. 두 개의 광원이 있으면 밝기는 더해지지만 그림자는 서로를 지운다. 하나의 초가 만든 그림자를 다른 초의 빛이 채우고, 그 초의 그림자는 또 다른 초가 채운다. 여럿이 함께 켜져 있을수록 어둠의 자리가 줄어드는 것이다. 서로를 대체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결핍을 메우는 이 구조야말로 공속의 가장 정확한 물리적 증명이다. 화가는 개념을 설명하지 않고 광학으로 보여 주었다.

동시에 촛불은 대가도 치른다. 초들이 가까이 모여 있으면 서로의 열 때문에 더 빨리 녹는다. 함께 있음은 서로를 밝히면서 동시에 서로를 소모시킨다. 화면 속 초들이 하나같이 심하게 흘러내려 형태를 잃어 가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우연한 묘사가 아니다. 긴장과 균형이라는 작가의 표현에서 긴장 쪽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이 소모다. 이 그림은 관계를 낭만화하지 않는다.

인류가 빛의 세기를 재는 단위 칸델라(candela)가 라틴어로 양초(candle)를 뜻하는 말에서 왔다는 사실도 여기에 겹쳐 놓고 싶다. 오랫동안 밝기의 기준은 촛불 한 자루였다. 가장 약하고 가장 흔들리는 것이 척도가 되었던 것이다. 작고 흔들리는 것으로 세상을 재던 시절의 감각이 이 화면에 남아 있다. 크고 확실한 것만 신뢰하는 시대에 이 그림이 조용히 저항하는 지점이다.

바니타스 정물의 전통도 떠오른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은 꺼진 초와 해골, 시든 꽃으로 삶의 덧없음을 말했다. 그 전통에서 초는 언제나 꺼지기 직전이거나 이미 꺼진 상태로 그려졌다. 양다희의 초들은 다르다. 많이 녹았지만 여전히 타고 있다. 소멸을 보여 주되 소멸의 순간을 그리지는 않는 것. 아직 타고 있는 동안의 일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이 작가가 학부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회화로 옮겨 왔다는 이력을 나는 특별히 눈여겨보았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은 오랫동안 송신자가 수신자에게 메시지를 보낸다는 일방향 모형에 기대어 왔지만, 이후의 논의는 소통을 주고받으며 서로가 함께 변해 가는 수렴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쪽으로 옮겨 갔다. 양다희가 빛을 주요 언어로 삼겠다고 말할 때, 그 빛은 한 방향으로 발신되는 신호가 아니라 서로를 비추며 되돌아오는 것이다. 전공의 이동이 주제의 심화로 이어진 사례다.

컬렉터에게 91×65cm, 30호 남짓의 이 그림은 거실이나 다이닝의 중심 벽을 감당할 만한 크기다. 어두운 화면이지만 스스로 발광하는 그림이라 공간을 무겁게 누르지 않는다. 다만 정면에서 강한 조명을 쏘면 불꽃의 미묘한 번짐이 죽으니, 측면에서 은은하게 받는 편이 좋다.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 걸어 두기를 권하고 싶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에서 이 그림은 자기 주제를 스스로 증명하게 된다.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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