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취향의기록] 유지수(b.1996) 가시는 원래 잎이었다
유지수(b.1996) (경희대 대학원 26학번 한국화)
〈가시-쉼〉 2024, 비단에 수묵, 41.7×41.7cm
— 가시는 원래 잎이었다 —
이상민
승인 2026.08.30 23:18
길쭉하고 뾰족한 형상들이 화면 위로 솟아 있다. 아래는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며 끝이 날카롭다. 가시다. 그런데 그 가시의 안쪽이 비어 있지 않다. 바위와 소나무, 안개 낀 계곡이 담긴 산수가 그 안에 그려져 있다. 찌르는 형상 안에 쉬는 풍경이 들어앉은 것이다. 제목의 두 단어가 하이픈으로 이어져 있는 이유가 화면에 그대로 있다.
작가의 문장이 명료하다. 취약성은 감추거나 극복해야 할 결핍이 아니라 나를 이루는 고유한 일부라고. 취약성이라는 말은 라틴어로 상처를 뜻하는 불누스(vulnus)에서 왔다. 상처받을 수 있음이 곧 취약함이다. 유지수는 그 상처받을 수 있음을 가시라는 형상으로 옮겼는데, 가시가 방어의 기관이라는 점에서 이 선택은 얼핏 어긋나 보인다. 그러나 식물학을 들여다보면 어긋남이 사라진다.
식물의 가시는 없던 것이 새로 돋은 무기가 아니다. 선인장의 가시는 잎이 변형된 것이고, 탱자나무의 가시는 가지가 변형된 것이며, 장미의 가시는 표피가 자라난 것이다. 모두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기관이 형태를 바꾼 결과다. 특히 선인장이 인상적이다. 물을 지키기 위해 잎을 포기했고, 포기한 그 잎이 가시가 되어 몸을 지킨다. 결핍이 곧 방어가 된 것이다. 취약성이 나를 이루는 고유한 일부라는 작가의 문장은 그러므로 위로의 수사가 아니라 식물이 수억 년에 걸쳐 증명해 온 사실이다.
가시 안에 풍경을 넣은 구성은 창(窓)의 원리를 쓴다. 동양 건축에는 차경이라는 개념이 있다. 창틀로 바깥 풍경을 잘라 들여와 그 자체를 그림으로 삼는 방식이다. 창의 모양이 달라지면 같은 풍경도 다른 그림이 된다. 유지수의 가시는 그 창틀이다. 뾰족한 형태로 잘린 산수는 사각의 화폭에 담긴 산수와 전혀 다른 표정을 갖는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프레임 안에서 풍경은 자꾸 하늘 쪽으로 밀려 올라간다.
작가는 다시는 같은 모습으로 마주할 수 없는 풍경의 순간들을 가시 안에 담는다고 썼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던 헤라클레이토스의 문장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다만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그 불가역성을 대하는 태도다. 사라지는 것을 붙잡으려 하지 않고, 사라진다는 사실 자체를 가시 안에 넣어 두는 것. 붙잡을 수 없어서 아픈 것이 아니라 아픔의 형상 안에 넣어 둠으로써 견디는 방식이다.
재료가 비단이라는 점도 이 주제와 맞물린다. 종이는 먹을 빨아들여 번지게 하지만 비단은 흡수가 더뎌 먹이 표면에 오래 머문다. 그래서 견본수묵은 농담을 아주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고, 이 화면의 회색 계조가 그렇게 부드러운 이유도 거기 있다. 게다가 비단은 그 자체로 취약한 재료다. 얇고, 잘 찢어지며, 시간이 지나면 산화한다. 취약성을 다루는 작업이 취약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우연이지만 의미 있는 우연이다.
컬렉터에게 41.7cm 정방형은 아주 실용적인 크기다. 벽 하나를 요구하지 않고 다른 작품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어들며, 정방형이라 세로 그림과도 가로 그림과도 잘 어울린다. 다만 비단 작품은 습도 관리가 중요하고, 자외선 차단 유리를 쓰는 편이 좋다. 그리고 이 그림은 조금 낮게 거는 것을 권하고 싶다. 눈높이보다 살짝 아래에 걸어야 가시 안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자세가 나온다.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림은 걸이의 높이로 완성된다.
글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주)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