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취향의기록] 유형우(b.1997) 점선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규약이다
유형우(b.1997) (경희대 대학원 22학번 조소)
〈드러냄 연구 01〉 2025, 합판에 수성안료·시멘트·각목, 80×49.6×3.3cm
— 점선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규약이다 —
이상민
승인 2026.08.30 23:14
노란 합판이 벽에 걸려 있다. 사각형이 아니라 여러 번 꺾인 다각형이고, 오른쪽 가운데에는 작은 판 하나가 겹쳐 튀어나와 있다. 표면에는 점선이 그어져 있는데, 그것이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은 것을 말하는 요소다. 두께는 3.3센티미터. 회화라기엔 두껍고 조각이라기엔 얇은, 벽에 붙은 사물이다.
작가는 이 작업이 목공 현장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힌다. 판재와 판재 사이의 이음매, 타카가 박힌 자국. 시공이 끝나면 퍼티로 메워 평평하게 만들고 그 위에 페인트나 벽지를 발라 완전히 감춰 버리는 요소들이다. 유형우는 그것을 조형 요소로 인식하고 드러내는 작업을 한다고 썼다. 짧은 문장이지만 정확한 문제 제기다. 우리가 매일 기대고 사는 벽은 그것을 만든 손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운 표면이다.
이 지점에서 노동의 문제가 떠오른다. 완성된 상품은 언제나 그것을 만든 과정을 감춘다. 매끄러운 벽면은 몇 사람이 며칠 동안 판을 재고 자르고 박았는지를 말해 주지 않는다. 감춤은 완성도의 다른 이름이고, 완성도는 노동을 지운 정도로 측정된다. 유형우의 작업은 그 등식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음매를 메우지 않고, 타카 자국을 지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화면의 중심에 놓는다. 마감이란 무엇을 감출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며, 그 결정은 늘 누군가의 노동을 지우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을 이 노란 판이 조용히 지적한다.
건축사에도 같은 물음을 붙든 사람들이 있었다.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는 서로 다른 재료가 만나는 자리를 감추는 대신 홈을 파고 단을 두어 접합부 자체를 장식으로 삼았다. 우리 전통 목조 건축의 결구 역시 못을 쓰지 않고 나무를 짜맞추는 방식이어서 이음매가 곧 구조이자 미감이었다. 감추기를 택한 것은 근대의 대량 시공이 만든 습관이다. 유형우는 조각 전공자이면서 건축 시공의 언어를 다루는데, 그 교차가 이 작업을 단순한 재료 유희에서 구해 낸다.
점선이야말로 이 작품의 핵심이다. 제도에서 점선은 아무 선이나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은선, 곧 다른 물체에 가려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모서리를 표시하는 약속된 기호다. 도면을 읽는 사람은 점선을 보고 '여기 가려진 것이 있다'고 이해한다. 감춰지는 부분을 드러내겠다는 작가가 그 표면에 그은 선이 하필 점선이라는 사실은, 그러므로 우연한 조형 선택이 아니다. 그는 감춰짐을 표기하는 규약을 그대로 가져와 화면 위에 놓았다. 이 작품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린 그림이 아니라, 보이지 않음을 표기한 기호다.
색을 노랑으로 정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노랑은 산업 현장의 색이다. 안전모와 경계선, 주의 표지에 쓰이며 인간의 눈이 가장 먼저 감지하는 색으로 알려져 있다. 감춰지는 것을 드러내겠다는 작업이 가장 주목을 끄는 색을 택한 것은 자연스럽다. 게다가 이 색은 이 판이 나무라는 사실도 함께 감춘다. 감춰진 것을 드러내기 위해 표면을 한 번 더 덮는 이 이중성은 모순이 아니라 이 작업의 솔직함이다. 완전한 드러냄이란 없다는 것을 작가도 알고 있다.
이 작가의 전시 제목들은 하나같이 길고 수다스럽다. 《반가운 그는 또 심각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쫄티와 허벙한 바지》, 그리고 원심분리 이후의 조형공장과 융점 연구를 한 문장에 몰아넣은 2026년의 단체전 제목까지. 감추지 않는 태도가 언어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다듬어 짧게 만들면 잃어버릴 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의 문장이다.
컬렉터에게 이 작품은 벽에 거는 조각으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하다. 3.3센티미터의 두께가 벽면에 실제 그림자를 만들어 내므로, 걸리는 자리의 조명이 작품의 절반을 결정한다. 측면광이 드는 벽에 걸면 판의 단차와 겹친 부분이 살아나고, 정면광에서는 평평한 색면으로 보인다. 액자가 필요 없고 못 하나로 걸리는 가벼움도 장점이다. 조각 컬렉션을 시작하고 싶지만 바닥 공간이 마땅치 않은 분들에게 이런 벽면 조각은 좋은 첫걸음이 된다.
글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주)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