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취향의기록] 현수진(b.1995) 탈을 쓰기 직전, 이미 숨겨진 사람 || 취향의기록 | 아트인코리아 ArtIn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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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기록 (36)

『취향의 기록』은 통섭미술 인문학자 이상민이 그림 한 점에서 출발해 철학, 과학, 문학 등 통섭적 지식의 언어로 감상을 확장해가는 연재입니다. 작품 해설에 머물지 않고 동서양의 사유와 작가의 삶을 통섭적 시선으로 엮어, 회화 한 점이 건네는 정서와 통찰을 매회 새롭게 기록합니다.



[이상민의 취향의기록] 현수진(b.1995) 탈을 쓰기 직전, 이미 숨겨진 사람    네이버 구글

현수진(b.1995) (경희대 대학원 26학번 한국화) 〈들여다보다〉 2024, 종이에 먹·펜, 50×65cm — 탈을 쓰기 직전, 이미 숨겨진 사람 —
이상민   승인 2026.08.2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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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진, <들여다보다> 2024, 종이에 먹, 펜, 50×65cm

 

화면에 빈 곳이 없다. 잎과 꽃과 열매가 겹겹이 얽히고, 그 사이로 너구리와 고양이, 새와 나비가 고개를 내민다. 모두 펜과 먹의 가는 선으로만 그려져 있어 화면 전체가 촘촘한 그물처럼 보인다. 한참을 훑고 나서야 가운데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소녀 하나가 짐승 가죽을 두르고 앉아 무언가를 품에 안고 있다. 발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 그것이 이 그림의 첫 번째 장치다.

작가는 이 인물이 호랑이 탈을 쓰기 직전 고뇌하는 순간이라고 설명한다. 자기 보호를 위한 위장이 도리어 세상과의 단절을 초래하는 굴레가 될까 염려하며 주저하는 모습이라고. 아직 쓰지 않은 상태, 쓸지 말지를 정하지 못한 상태를 그린 것이다. 결정 이전의 시간을 붙드는 그림은 결정 이후를 그린 그림보다 언제나 어렵다.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탈이라는 말의 뿌리를 따라가면 라틴어 페르소나에 닿는다. 배우가 무대에서 쓰던 가면의 이름이 그대로 인격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융은 페르소나를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맞춰 우리가 쓰는 가면이라 보았고, 그것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한 가지를 경고했다. 가면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기 시작하면 사람은 병이 든다는 것이다. 위장이 굴레가 될 것을 염려한다는 이 작가의 문장은 그 경고를 정확히 다른 말로 옮긴 것이다.

다만 우리 문화에서 탈은 조금 다른 일을 해 왔다. 봉산탈춤과 하회별신굿의 탈은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탈을 쓰는 순간 그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이 아니게 되고, 그래서 평소에 할 수 없던 말을 할 수 있었다. 양반을 조롱하고 승려를 꼬집는 말들이 탈 뒤에서 터져 나왔다. 우리 탈은 얼굴을 가리는 도구가 아니라 입을 여는 도구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그림 속 소녀를 다시 보면 그의 망설임이 다르게 읽힌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이 정말 단절일까, 아니면 말하게 되는 일일까.

위장을 생물학의 눈으로 보아도 흥미롭다. 동물의 위장에는 배경에 섞여 사라지는 방식이 있고, 다른 종을 흉내 내어 자기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방식이 있으며, 정반대로 화려한 색으로 자신이 위험하다고 광고하는 방식도 있다. 숨는 것만이 살아남는 전략은 아니라는 뜻이다. 호랑이 탈은 세 번째에 가깝다. 그것은 숨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섭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소녀가 고른 위장이 하필 가장 눈에 띄는 종류라는 점을 나는 이 그림의 가장 좋은 아이러니로 꼽고 싶다.

화면의 밀도 이야기로 돌아가자. 인물은 이미 숲에 파묻혀 있다. 탈을 쓰기도 전에 그는 벌써 배경에 녹아들어 잘 보이지 않는다. 위장이 필요한지 고민하는 사람이 이미 위장된 상태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 배치 때문에 제목 〈들여다보다〉가 반드시 필요해진다. 이 그림은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들여다봐야 보인다. 작가가 관객에게 요구하는 행위가 그대로 제목이 되었고, 그 행위를 하는 순간 관객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이 작품의 질문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종이에 먹과 펜이라는 재료도 이 밀도를 만든 조건이다. 펜은 지울 수 없고, 선 하나하나가 그어진 순서대로 남는다. 50×65cm의 화면을 이 굵기의 선으로 채우려면 수만 번의 획이 필요했을 것이다. 한국화를 전공하는 학생이 붓 대신 펜을 들고 이만한 시간을 화면에 넣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진술이다. 망설임을 그리기 위해 가장 되돌릴 수 없는 도구를 골랐다는 점에서 그렇다.

컬렉터에게 이 작품은 가까이 두어야 할 그림이다. 멀리서는 그저 촘촘한 회색 화면이고, 다가서야 동물들이 하나씩 나타나며, 더 다가서야 소녀가 보인다. 볼 때마다 새로 발견되는 것이 있으니 오래 걸어 두어도 지치지 않는다. 종이에 먹과 펜은 자외선에 약하므로 차단 유리를 쓰고 볕이 들지 않는 벽을 골라야 한다. 그리고 이 그림은 소파 뒤 높은 벽보다 복도나 서재처럼 사람이 멈춰 설 수 있는 자리가 좋다. 들여다보라는 제목의 요청을 들어주려면, 우선 멈출 수 있어야 한다.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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