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齒)에 골(谷)이 팰 때까지 - 《쓰임의 미학 | TABLESCAPE》 네 번째 토크 — 몽고트 갤러리 || 갤러리 | 아트인코리아 ArtIn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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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齒)에 골(谷)이 팰 때까지 - 《쓰임의 미학 | TABLESCAPE》 네 번째 토크 — 몽고트 갤러리    네이버 구글

'이골이 난다'의 이골은 이(齒)와 골(谷)이다. 평생 삼실을 이빨로 훑어 잇던 사람의 이에 팬 골짜기. 흙과 철, 모래와 밀가루, 물감과 반죽. 재료는 저마다 달랐지만 네 사람은 같은 골짜기를 지니고 있었다. 《쓰임의 미학 | TABLESCAPE》 마지막 토크, 몽고트 갤러리에서의 한 시간.
이상민   승인 2026.09.07 07:39  |  최종 수정 2026.09.07 10:20
a b

토크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늘 하던 대로 관객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이골이 난다'는 표현, 아시죠? '이골'이 무슨 뜻인지 아시는 분?"

"
지겹다"는 답이 먼저 나왔다. 맞다. 그런데 어원은 다르다. '이골'은 이()와 골()이다. 삼베 실을 잇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삼을 째고, 그 거친 올을 이빨로 훑고 물어 가르고, 허벅지에 대고 비벼 꼬아 한 가닥 실을 만든다. 평생 그 일을 하다 보면 이에 골짜기가 팬다. 그렇게 이에 골이 팬 사람을 두고 '이골이 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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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의 미학 | TABLESCAPE》 마지막 토크, 몽고트 갤러리



나는 이 말을 명인들 앞에서 자주 떠올린다. 지겨움이 아니라 흔적이다. 몸에 남은 시간의 지형(地形)이다. 그날 내가 이 이야기로 문을 연 것은, 앞으로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들을 이야기가 결국 '이에 팬 골'에 관한 것이 되리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 골짜기는 토크의 마지막에 이미향 작가의 어머니가 짜던 삼베 실타래로 다시 돌아왔다. 오프닝의 은유가 클로징의 실물이 되어 돌아오는 일은, 진행자로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순간이다.

《쓰임의 미학 | TABLESCAPE》은 몽고트 갤러리에서 두 달간 이어진 전시였고, 이날은 네 번째이자 마지막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전시 자체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나유석·박이름·이미향 세 작가와, 파리에서 시작해 청담으로 이어진 '보리수 파리'의 배주식 오너 셰프. 도자와 철, 흙과 모래, 물감과 반죽. 재료는 전혀 달랐지만 나는 이 자리를 그렇게 정의했다. 네 분 모두 시간을 쌓아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1.
보통의 작가나유석, 그리고 형벌이 아닌 반복

나유석 작가는 준비해 온 원고를 펼치며 말문을 열었다. "저는 도자기라는 문화적·역사적 혜택을 가지고 작업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장이 좋았다. 대부분의 작가는 자기만의 시그니처를 갖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그는 도예라는 유산이 이미 그 몫을 상당 부분 해주고 있어서 미안하면서도 행복하다고 했다. 한때는 반복적으로 그릇을 만드는 일이 자신을 가두는 것 같아 싫었고, 같은 크기의 화면이라도 캔버스와 도판(陶板)의 무게가 다르다는 사실에서 '영역의 벽'을 느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1250도라는 특수한 체험 방식이 오히려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압권은 시지프스였다. 그는 시지프스의 형벌이 사실은 벌이 아니라고 했다. 매일 바위를 밀어 올리는 그 반복이 당사자에게는 평범한 일상이고 어쩌면 행복일 수도 있다는 것. "단지 타인이 바라보는 시선이 형벌처럼 보일 뿐이겠죠."

작품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그는 제목을 동의어와 반의어로 나눈다고 했다. 남자를 설명하려면 여자가 있으면 된다. 내가 나이고 싶을 때, 우리이고 싶을 때, 각자 다른 무엇이고 싶을 때그래서 비슷하지만 다른 유닛들을 정해진 캔버스 안에 배열하고, 그 배열의 간격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룬다고 했다. 사회와 나, 나와 타인 사이에 지켜져야 할 보이지 않는 간격. 우리는 그 간격이 억지로 벌어지거나 아예 없어져 하나로 묶여버린 시대개성이 사라진 독재의 시대를 이미 겪어보았고, 물리적 간격이 무너졌을 때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지도 목격했다.

그러면서 그는 관객에게 부탁했다. 자기 작품은 좀 더 멀리서 봐 달라고. 그리고 방금 자신이 한 설명을 100퍼센트 믿지 말아 달라고. "작품이 작가의 강요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현대미술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의미가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강요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여지'가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그를 '순수한 철학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 난 틈에 대해 이야기했다. 항아리는 틈이 없으면 숨을 쉬지 못한다. 빌딩도 그냥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유격이 있다. 그 유격이 없으면 지진에 무너진다. 유격을 정교하게 조절했기에 건물은 똑바로 선다. 작가가 말한 간격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지와 유연함에 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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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의 미학 | TABLESCAPE》 마지막 토크, 몽고트 갤러리


2.
, 그리고 부피를 늘려간다는 것박이름

박이름 작가는 원래 자동차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소묘를 더 잘해서 공예과로 들어갔고, 흙을 만지던 실습 시간에 교수의 한마디에 사로잡혔다.

"
이 흙이라는 것이 아주 오랜 시간 이 지구에서 부서지고 부서져 잘게 부서진 입자다. 그 작은 입자들이 품고 있는 시간에 너희가 불을 가하고 너희의 의지로 특정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아느냐."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창세기를 떠올렸다. 흙으로 사람을 빚었다는 그 문장. 가장 잘게 부서진 것에 불과 의지를 더해 다른 시간을 살게 하는 일그것은 생명의 시작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그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흙이 자신과 더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고향인 강릉의 모래를 직접 퍼다 쓴다. 작은 기물에는 주문진의 모래를, 조금 더 큰 작업에는 경포의 모래를 쓴다. 재미있게도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입자가 굵고 북으로 올라갈수록 고와지기 때문에, 해변마다 입자를 나누어 정리해 둔다고 했다. 백자토에 모래의 퍼센티지를 조절하고 금속 산화물을 조합해 흙의 빛깔까지 직접 만든다.

나는 솔직히 흙에 금속 산화물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제대로 인식했다. 도자를 볼 때 형태와 유약만 보았지, 흙 자체가 조색(調色)의 대상이라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순간이 나에게는 토크의 보상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방향이다. 그는 대학원을 졸업한 뒤 반년쯤 일부러 전시도 나가지 않고 자신이 쓰고 싶은 그릇만 만들었다고 했다. 흙에 대한 고민은 어느 정도 기반이 다져졌으니, 이제는 형태와 실제 사용성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학부 졸업 전시 때 만든 커다란 스툴 작업의 제목이 〈피그말리온〉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
제가 탄생시킨 것들의 부피를 늘려나가는 일."

그것은 물질의 부피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일상 속에 차지하는 부피이기도 하다. 아침에 커피를 마실 때 꼭 함께하는 컵, 저녁에 샐러드를 담는 볼. 그래서 그는 세비체를 담을 납작한 플레이트를 만들고, 드레싱을 받을 저그를 만들고, 왼손잡이용 컵과 오른손잡이용 컵을 따로 만들고, 손잡이가 유난히 두꺼운 뚱뚱한 컵을 만든다. 사물 하나하나에 '후킹 포인트'를 심어, 이것이 나를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라고 느끼게 하려는 설계다.

이 작가가 1998년생이다. 아직 서른이 되지 않았다. 내 딸이 1997년생이니 딱 그 또래인데, 그런 생각의 깊이 앞에서 나는 여러 번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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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의 미학 | TABLESCAPE》 마지막 토크, 몽고트 갤러리



3.
밀가루와 물이 친해지는 시간배주식

그날의 가장 뜨거운 이야기는 예상대로,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깊게, 빵에서 나왔다.

배주식 대표는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방황하던 시절에 이모의 빵집에서 일주일만 해보라는 말에 시작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아닌 반죽이 부풀고 냄새가 나고 색이 나는 것이 그저 신기했다. 한국에서 12, 일본 연수, 그리고 유학. 그런데 6년을 준비해 간 일본에서 그는 실패했다. "6년 동안 내가 성장한 걸 계산하지 못했던 거예요." 어학 2년을 마치고 들어간 학교의 참관 수업에서 실망하고 짐을 쌌다. 그리고 곧장 프랑스로 갔다. 보통 보름은 걸린다는 유학 비자가 나흘 만에 나왔고, 그는 그것을 자기 길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서른둘에 간 늦은 유학이었다. 3년만 있다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실습을 나갔다가 점심시간에 쏟아져 나오는 파리 사람들이 저마다 빵을 하나씩 들고 있는 광경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여기서 빵집을 하면 되겠다. 그러나 외국인이 프랑스에서 가게를 하려면 세금을 내고 정식 직원으로 일하며 10년을 채워 체류 자격을 얻어야 했다. 12년이 걸렸다. 파리 15구에 자기 가게를 연 것이 2005, 그의 나이 마흔둘이었다.

동양인이 만든 프랑스 빵이라며 집어 던지고 간 사람도 있었다. 유기농 빵이라 값이 비싸다고 욕하고 간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1, 2년이 지나자 프랑스에서도 이제는 하는 기술자가 거의 없는 옛 방식의 호밀빵 맛에 이끌려 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네가 어떻게 옛날 프랑스 호밀빵 맛을 내느냐"고 묻는 프랑스인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지금도 쓰고 있는 밀가루 회사 물랭 부르주아(Moulin Bourgeois)의 대표를 만난다. 프랑스에는 우리 방앗간보다 제분소가 많다. 여섯 군데를 다 찾아다니며 고른 곳이다. 3대째 이어지고 있고, 2010년 화재 이후 최첨단 설비로 바뀌면서 품질이 더 좋아졌고 맷돌로 간 밀가루도 나온다.

그가 밀가루 수입만 하고 판매는 다른 업체에 넘긴 사연도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직접 수입해 판매할 생각이었는데, 그 제분소 대표가 말렸다고 한다. "하지 마라. 밀가루 수입해서 팔면 너는 빵을 못 만든다. 내가 이렇게 좋은 밀가루를 만들면서 왜 프랑스에서 빵집을 안 하겠냐." 그 한마디에 정리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좋은 밀가루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한 그의 답이다.

"
중요한 건 이 밀가루의 본질의 맛을 어떻게 끄집어내느냐입니다."

그는 스트레이트법과 저온 숙성법을 비교했다. 반죽을 강하게 쳐서 글루텐을 억지로 만들면, 억지로 만든 근육을 먹는 셈이라 질기고 소화도 잘 되지 않는다. 그 뻑뻑함을 풀어주려고 버터와 설탕을 넣어 눌러버린다. "속이는 거죠." 그래서 그는 오토리즈(autolyse)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나온 말이 그날의 백미였다.

"
물과 밀가루는 지금 막 만났어요.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최소 30분은 줘야 돼요. 서로 알아야 돼요."

그 다음에야 소금과 이스트를 넣고, 그것도 저속으로 천천히 돌린다. 온도에 따라 글루텐 형성이 늦어지면 고속으로 돌리기도 하지만, 반드시 다시 저속으로 낮춰 릴랙스시킨 뒤 휴지를 준다. "마라톤을 하고 갑자기 멈추면 심장에 무리가 가듯이, 반죽도 똑같아요." 이 과정에만 두 시간 반. 그 뒤 5~6도의 냉장고에서 최소 여덟 시간 이상 저온 숙성. 그러니 아침에 반죽해서 오후에 빵을 낼 수가 없다. 전날 반죽해서 다음 날 쓴다.

빵을 그는 신생아에 비유했다. 잠깐 한눈팔면 사고가 난다. 오버되고, 색이 잘못 나온다. 자기 기분이 나쁜 상태로 만들면 색이 탁해지고, 기분 좋게 만들면 황금빛이 곱게 나온다. 그런 날은 하루가 좋다. 그런데 그 하나에 신경 쓰느라 다른 것을 놓치면 그놈이 또 삐진다. "자식을 열, 열다섯을 매일 키우는 겁니다."

작품과 빵의 차이도 그가 스스로 짚었다. 작가는 몇 달, 몇 년에 걸쳐 한 점을 만든다. 그의 빵은 하루면 끝난다. 팔리지 않으면 버려야 한다. 35년 동안 한 번도 만족한 적이 없고, 오늘 잘 만들었다 싶으면 내일은 어제보다 못한 것 같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똑같은 퀄리티를 매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그의 목표다.

나는 그를 끊지 못했다. 진행자로서 끊었어야 하는 대목이 몇 번 있었는데, 내가 먼저 빠져들었다. 밀가루와 빵 이야기를 이 정도 밀도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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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의 미학 | TABLESCAPE》 마지막 토크, 몽고트 갤러리


4.
소나무 갈비, 그리고 엉키지 않는 실선이미향

이미향 작가는 올해 4~5월 몽고트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끝나자마자 뉴욕에서 전시를 이어갔다. 그가 해외 경험에서 얻은 것은 시선의 차이였다. 해외에서는 관객이 작품 앞에 바짝 다가서서 물었다고 한다. 이건 어떻게 한 것이냐, 이 색감은 어디서 나왔느냐. 그 질문들이 그를 다시 작업으로 돌려보냈다. 어떤 깊이를 가져야 하는가, 색감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는 공간에 대해 말했다.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이 주는 에너지와 힘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작품이라도 국내 전시장과 해외 전시장에서 관객과 만나는 방식이 달랐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트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을 정확히 짚은 발언이다. 작품은 홀로 완성되지 않는다. 공간과 관객이 개입해서 마지막 한 겹을 얹는다.

그의 작업은 덩어리다. 재료를 두텁게 쌓고 다시 깎아내고 다듬는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한다. 그는 스스로 그것을 '반죽 단계'라고 불렀다. 캔버스 위에 재료가 올라가는 첫 단계가 곧 반죽이고, 그 뒤로 층이 차곡차곡 쌓인다. 물감과 물감이 부딪히며 일어나는 색의 변주에 감동해서 작업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고 했다.

신작은 회색 계열과 갈색 계열이다. 오방색을 쓰되 다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드러내기를 반복하는 기법을 썼다. 갈색 작품의 모티프는 '갈비'였다. 소나무에서 떨어져 켜켜이 쌓이는 솔가리를 강원도에서는 갈비라고 부른다. 그 갈색은 한 가지 갈색이 아니다. 쌓인 솔가리 사이로 빛이 들어올 때 드러나는 무수한 색들물감으로 만들 수 있는 색감이 그 화면 안에 다 들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갈비는 시간이 지나면 덩어리가 되고 거름이 되어 자양분이 된다. 그의 화면에 숨은 덩어리들이 바로 그것이다. 작품 사이즈에 따라 두세 군데 포인트가 드러나는데, 그것은 소나무 숲에서 갈비를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의 기쁨을 붙잡아 둔 자리라고 했다.

그는 이 작품에 '시크릿 코드'가 있다고 말했다. 보는 방향과 조명에 따라 다르게 보이니, 돌아가기 전에 각도를 바꿔 다시 보시라고 관객에게 권했다. 감상의 주도권을 관객에게 넘기는 방식이다. 나유석 작가가 말한 '여지'와 정확히 같은 자리에 있는 태도다.

그리고 마지막에 삼베가 돌아왔다. 어렸을 때 색깔 있는 옷이 흔하지 않던 시절, 유일하게 오방색이 있던 것이 한복에서 입던 색동저고리였다. 친정어머니는 산에서 나무를 베어 삼을 찌는 것부터 실을 잣고 베틀에 앉는 것까지 전 과정을 했다. 그의 화면에 길고 가는 선들이 유난히 많은 이유가 여기 있었다. 어머니가 둥글게 감아 만든 실타래는 엉키지 않는다. "관계 속에서 엉키지 않고 풀리는 실선을 생각하면서 작업했습니다."

오프닝에서 꺼낸 '이골'이 마지막에 어머니의 베틀로 돌아왔다. 나는 그 순간 이 토크가 하나의 원()으로 닫혔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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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의 미학 | TABLESCAPE》 마지막 토크, 몽고트 갤러리



5.
통섭적으로 읽기네 사람이 공유한 하나의 문법

서로 다른 네 개의 재료를 놓고 한 시간을 보내면 보통은 차이가 남는다. 그런데 그날은 반대였다. 정리하면서 나는 세 개의 공통 문법을 발견했다.

첫째, 간격이다. 나유석은 유닛과 유닛 사이의 배열 간격을 이야기했고, 배주식은 밀가루와 물이 친해지는 30분을 이야기했다. 박이름은 흙 입자의 굵기를 해변별로 나누어 관리하고, 이미향은 엉키지 않는 실선을 그린다. 붙이는 기술이 아니라 띄우는 기술이다. 좋은 것은 붙여서 만들어지지 않고 알맞게 떨어뜨려서 만들어진다. 반죽을 고속으로만 돌리면 억지 근육이 생기고, 유닛을 다 붙여버리면 개성이 사라지며, 건물에 유격이 없으면 지진에 무너진다. 이것은 재료의 문제이자 곧 사회의 문제다.

둘째, 불완전함을 재료로 삼는 방식이다. 나유석의 철망과 흙은 화학적으로 완벽히 맞지 않는다. 부스러지고 찌그러진다. 그는 실패했다고 여긴 작업을 작업장 한구석에 몇 달간 먼지가 쌓이도록 방치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귀찮음을 가장한, 계속되는 실패의 우울증"이었다고. 그런데 지나다니며 자꾸 보다 보니 그것이 꼭 실패로만 보이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닮아 보였고, 사람의 약한 내면의 본질이 저렇지 않을까 싶었다는 것이다. 철은 1250도에서 산화되어 빛을 잃고, 흙은 소성 과정에서 갈라지고 깨진다. 그러나 둘을 함께 쓰면 철이 흙을 부스러지지 않게 지탱하고, 흙이 철의 표면에서 산화를 막아준다. "무너지고 갈라지는 사람의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붙잡으려 애쓰는 삶과 닮아 있습니다." 그는 이 실험을 두고 밀란 쿤데라를 비틀어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도자'라고 표현했다. 무거운 것이 중요하고 가벼운 것이 하찮다는 상식, 도자는 무겁다는 편견을 벗기려는 시도였다.

셋째, 본질을 끄집어내는 사람의 문제다. 배주식 대표의 결론이 여기서 가장 선명했다. 재료는 다 거기서 거기다. 자기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서 쓰는 것이고, 그가 수입한 밀가루도 그만 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쓴다. 물만 부으면 되도록 설계된 산업용 밀가루도 있다. 시스템화와 인건비 문제를 생각하면 그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의 신념은 분명했다. "더 중요한 건 그 밀가루로 본질을 끄집어낼 수 있는 숙련된 사람입니다."

나는 이 문장을 오래 붙잡고 있다. 지금 우리는 도구가 결과를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좋은 재료, 좋은 장비, 좋은 모델. 그러나 재료의 평준화가 완성된 자리에서 최종적으로 갈리는 것은 언제나 사람의 숙련과 판단이다. 물과 밀가루에게 30분을 줄 줄 아는 사람, 실패작을 몇 달 방치했다가 거기서 인간의 본질을 읽어내는 사람, 강릉 어느 해변의 모래 입자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채는 사람. 취향과 안목은 그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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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의 미학 | TABLESCAPE》 마지막 토크, 몽고트 갤러리



6.
백락일고그리고 몽고트라는 자리

이 토크를 가능하게 한 것은 몽고트 갤러리다. 나는 마무리에서 관객에게 고사성어 하나를 꺼냈다. 백락일고(伯樂一顧). 백락은 춘추시대에 말을 볼 줄 알았던 사람, 본명은 손양(孫陽)이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던 보통의 말도 백락이 한 번 돌아보면 명마가 되었다. 말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다.

몽고트 갤러리의 장은미 대표를 나는 그렇게 본다. 흩어져 있던 작가와 셰프를 발굴해 한자리에 모으고, 도자를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쓰이는 대상'으로 되돌려놓는다. 이날 관객 앞에 놓인 박이름 작가의 그릇은 만져도 되고 물로 씻어도 되고 음식을 담아 먹어도 되는 것들이었다. 작품과 식기 사이의 벽을 허무는 이 감각이 몽고트의 매력이고, 나는 이것을 단순한 갤러리스트나 큐레이터의 일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네 번의 프로그램을 지나오며 만난 이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명화옥의 강동하 셰프, 김선경 작가, 도예가 신유희, 향유수산의 김종한 대표, 우창민 작가, 드로잉레시피의 장세영 대표, 그리고 갑기회관의 김정옥 대표까지. 각기 다른 영역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쓰임'이라는 하나의 별을 향해 모였다. 나는 졸저 『취향과 안목, AI를 이기는가』 4장에서 이 갤러리와 대표를 다뤘는데, 그날 현장은 그 챕터의 가장 좋은 각주였다.

 

에필로그쓰임이란 무엇인가

토크를 마치며 나는 관객에게 물었다. 어떤 느낌이 드시느냐고. "행복해요"라는 답이 나왔다. 나는 거기에 한 단어를 더 얹었다. 장인정신, 그리고 이골.

《쓰임의 미학 | TABLESCAPE》이 두 달 동안 이야기해온 것은 결국 이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쓰임은 기능이 아니다. 흙을 만지고, 철과 세라믹을 연결하고, 밀가루와 반죽을 다루고, 물감을 화면 위에 쌓아 올리는 과정에는 예외 없이 오랜 시간과 손의 감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은 누군가의 삶 속에서 사용되고, 바라보이고, 먹히고, 느껴지는 하나의 경험이 된다. 한 사람의 손에서 시작된 재료가 시간이 쌓여 작품이 되고 빵이 되고, 다시 우리 일상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기술이 사람의 손을 대신하는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그날 나는 대체 불가능한 것의 목록을 넷이나 확인했다. 물과 밀가루가 친해질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인내, 실패작 앞에서 몇 달을 서성이다 거기서 인간을 발견하는 시선, 고향의 모래를 퍼다 자기 흙을 짓는 고집, 어린 시절 솔가리 사이로 스며들던 빛을 삼십 년 뒤 화면에 되살리는 기억.

이에 팬 골은 스캔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몸에 남는다.

전시는 그날로 끝났다. 그러나 그 골짜기들은 각자의 작업실에서 계속 깊어질 것이다.



*
《쓰임의 미학 | TABLESCAPE PROGRAM 04 TALK SHOW*
*
모더레이터 이상민(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장) | 패널 나유석(Artist), 박이름(Ceramist), 배주식(Master Baker · 보리수 파리 대표), 이미향(Pa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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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몽고트 갤러리(장은미 대표)*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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