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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기록] 이정아 작가 @jeongaleee

아트인코리아   승인 2026.07.25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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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기록] 이정아 작가 @jeongaleee  이정아 초대전 《다중적 지각의 팔림프세스트》 2026. 7. 24(금) ~ 8. 5(수) 11:00~18:00 · 월휴무 갤러리 내일 @gallery_naeil <전시감상 요약문> 전시감상 - 이정아(b.1961) 몸을 움직여야 보이는 그림 이 상 민 | 미술인문 작가,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장 모르포나비의 눈부신 청색 날개에는 파란 색소가 한 톨도 없다. 비늘의 나노 구조가 특정 파장만 되돌려 보낼 뿐이다. 색이 물질이 아니라 형태에서 나오는 이 현상을 물리학은 구조색이라 부른다. 자개의 무지갯빛도, 묘안석 속을 미끄러지는 빛줄기도 같은 원리다. 이런 아름다움에는 공통점이 있다. 정면에서 가만히 보면 죽는다는 것. 몸을 기울여 빛과 눈과 표면이 특정한 삼각형을 이룰 때만 비로소 나타난다. 색이 칠해진 것이 아니라 발생하는 것이라면, 그 그림의 진짜 저자는 누구인가. 지난해 갤러리미쉘의 《shape+》를 보고 나는 이정아의 작업을 '팔림프세스트'로 요약했다. 열 달 뒤 갤러리 내일의 초대전은 그 낱말을 아예 전시명에 내걸었다. 《다중적 지각의 팔림프세스트》. 다만 한 단어가 더 붙었다. 작년의 팔림프세스트가 화면 안에 쌓인 시간의 층이었다면, 올해의 그것은 그 층을 읽어내는 사람의 몸에 쌓인다. 겹쳐진 것은 물감이 아니라 시선이고, 그 시선을 옮겨 다닌 관람자의 걸음이다. 감상의 주어가 작품에서 관람자로 옮겨왔다. 모르포나비가 그렇듯, 그 광휘에 해당하는 물감은 어디에도 칠해져 있지 않다. 그라인더로 갈아낸 방향성 있는 미세 홈과 그 위에 얹힌 투명한 수지 레이어뿐이다. 작가가 만든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가 발생할 조건이며, 그림이 완성되는 자리는 판 위가 아니라 판과 눈 사이의 허공이다. 이 작업을 확인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은 관람객을 관찰하는 것이다. 고개를 기울이고, 물러섰다 다가서고, 곁눈질하고,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낮춘다. 미술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자세다. 원근법 이래 회화가 전제해온 '하나의 고정된 눈', 그 정면성이 해체된다. 깁슨의 말처럼 시각 정보는 정지한 눈에 주어지지 않는다. 본다는 것은 눈이 아니라 움직이는 몸이 하는 일이다. 움직이지 않는 관람자에게 이 그림은 거의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스티브 라이히의 〈피아노 페이즈〉에서 두 연주자의 미세한 어긋남이 악보에 없는 제3의 선율을 만들듯, 금속의 반사층과 수지의 굴절층이 어긋나 겹치고 관람자의 이동이 거기에 속도를 부여한다. 작품은 악보이고 관람자는 연주자다. 같은 전시에서 누구는 수양버들을 보고 누구는 빗소리를 듣는다. 옻칠의 검은 심연 위에 자개를 앉혀 어둠 속에서 빛이 태어나게 한 나전칠기의 후예라 불러도 좋겠다. 나전은 형광등 아래 정면에서 보면 죽고, 흔들리는 등불 아래 몸을 기울일 때 살아난다. 빛을 담지 않고 빛을 초대한다는 태도가 같다. 벤야민은 기술복제가 아우라를 소멸시킨다고 했지만, 이정아는 산업용 기계로 오히려 복제 불가능한 아우라를 제작한다. 사진에도 도록에도 담기지 않고 지금 여기 선 사람에게만 발생하는 이미지다. 메를로퐁티의 말대로 봄(vision)은 눈의 기능이 아니라 세계에 던져진 몸의 사건이며, 들뢰즈의 주름은 화면 안이 아니라 관람자와 화면 사이에서 접힌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초당 수천 장의 이미지를 쏟아내는 시대에, 그 이미지들에는 각도가 없다. 스크린은 언제나 정면이다. 취향과 안목이 알고리즘을 이기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나는 그의 이력을 '평면을 의심해온 시간'으로 읽는다. 회화 석사에서 조형예술학 박사로 건너간 그는 박사논문에서 들뢰즈의 주름을 빌려 기계적 마모가 새로운 공간성을 얻는다고 주장했다. 캔버스를 지우고 금속판으로 옮겨간 선택은 우연한 재료 실험이 아니라 이론적 확신의 귀결이었다. 스물네 차례 넘는 개인전은 그 확신을 밀고 나간 횟수다. 국내외 아트페어와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 여러 수상 이력이 그 옆에 놓인다. '몸을 움직여야 보이는 그림'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도 여기 있다. 이 전시에서 완성의 마지막 공정은 작가의 손이 아니라 관람자의 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두르지는 마시라. 마음을 건드리는 작품 하나 앞에서 최소한 세 번 자리를 바꿔 서보시라. 왼쪽에서 한 번, 정면에서 한 번, 눈높이를 낮춰 한 번. 세 번째쯤에서 나타나는 것은 작가가 만든 것이 아니라 당신이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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