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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SC 특집 컬럼 2] 화이트월 이후의 갤러리; 감각의 확장 - 공간연출과 미식, 몽고트에서 뒤슬레이드 농장까지    네이버 구글

갤러리가 팔아야 할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경험이다. 갤러리 공간 연출이란 결국 작품이라는 텍스트를 공간이라는 문법으로 다시 쓰는 일이다.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더 흰 벽이 아니라 더 두꺼운 맥락이라는 것. 취향은 정보로 형성되지 않는다. 취향은 체류 시간 안에서 형성된다.
이상민   승인 2026.07.2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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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럼 연재 목차> 


제1회  무너진 사다리 - 한국 갤러리 생태계의 진단

제2회  감각의 확장 - 공간연출과 미식, 몽고트에서 뒤슬레이드 농장까지

제3회  연합과 공유 - 컬렉터가 작가를 후원하기 위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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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담동 몽고트갤러리의 전시 전경 (사진: 몽고트갤러리)

  


2  감각의 확장 - 공간연출과 미식

1. 왜 몸인가 - 총체적 신체 경험이라는 개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지각이 눈의 작용이 아니라 몸 전체의 작용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 안에 있으며, 지각은 언제나 몸이 놓인 자리, 온도, 냄새, 발밑의 감촉과 함께 일어난다.(참고: Maurice Merleau-Ponty, 『지각의 현상학(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 1945.) 이 관점에서 보면 '작품만을 순수하게 본다'는 화이트큐브의 이상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허구다. 우리는 언제나 어떤 공간 안에서, 어떤 몸의 상태로 작품을 만난다.

AI가 시각과 청각을 완전히 장악한 시대에 이 오래된 현상학적 통찰은 갑자기 지극히 실용적인 전략이 된다. 갤러리가 팔아야 할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경험이며, 그 경험은 디지털이 복제할 수 없는 감각들 위에 세워져야 한다. 나는 이것을 두 개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번역할 수 있다고 본다. 하나는 공간연출이고, 다른 하나는 미식이다.

공간연출은 촉각과 신체 감각을 다룬다. 벽의 색, 천장의 높이, 동선의 속도, 조도의 온도, 바닥의 소리, 창밖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의 변화. 미식은 후각과 미각을 다룬다. 그리고 이 둘은 기억의 층위에서 만난다. 인간의 기억 중 가장 오래 남고 가장 정서적으로 강렬한 것이 냄새와 맛에 결부된 기억이라는 사실은, 브랜드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갤러리는 뒤늦게 배우고 있는 진실이다.


2. 몽고트(MONGOAT) - 공간의 언어로 번역된 작업

나는 『취향과 안목, AI를 이기는가』에서 서울 청담동의 작은 갤러리 몽고트(MONGOAT)를 사례로 들었다. 규모로만 보면 국제갤러리나 갤러리현대와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AI 이후의 갤러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관해서라면, 나는 이 작은 공간이 훨씬 더 정확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몽고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작업의 개념을 공간의 언어로 번역하며, 함께 구축하는 전시의 감각을 제안한다고. 이 한 문장에 갤러리의 미래가 압축되어 있다. 작품을 '거는' 것이 아니라 작업의 개념을 '번역'한다는 것. 그리고 그 번역의 매체가 텍스트나 이미지가 아니라 공간 그 자체라는 것. 이것은 화이트월의 정반대편에 서 있는 선언이다.

2.1 디렉터의 이력이 곧 공간의 문법이 된다

몽고트를 이끄는 장은미 대표의 이력은 이 갤러리의 성격을 설명하는 열쇠다. 그는 한국에서 회화를, 호주에서 공간 디자인을 전공했고, 영국에서 골동품 감정을 공부했으며, 서양 골동품 관련 일을 20년 넘게 해 왔다. 회화를 아는 눈, 공간을 설계하는 손, 오래된 사물의 진위와 격을 가리는 감별력. 이 세 가지가 한 사람 안에 축적되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통섭적 아트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갤러리 공간 연출이란 결국 작품이라는 텍스트를 공간이라는 문법으로 다시 쓰는 일이다. 회화만 아는 사람은 벽에 걸 줄만 알고, 공간만 아는 사람은 예쁜 방을 만들 뿐이다. 두 언어를 모두 구사하는 사람만이 번역을 할 수 있다. 한국 갤러리 인력 구조에서 가장 결핍된 역량이 바로 이 이중 언어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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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트갤러리의 전시 연계프로그램인 미식과 작가와의 만남 사진(출처: 몽고트갤러리)


2.2 유럽의 골목이라는 공간 서사

청담동의 몽고트 아트컬렉션 스토어는 마치 유럽의 골목을 연상케 하는 작고 아늑한 장소에서 드로잉, 오브제, 생활공예, 플라워, 굿즈 등을 함께 다룬다. 이 문장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작고', '아늑한', 그리고 '골목'이다.

화이트큐브의 이념은 넓고, 비어 있고, 광장 같은 공간을 지향한다. 몽고트는 정확히 반대의 선택을 한다. 좁고, 채워져 있고, 골목 같은 공간. 골목은 한눈에 전체가 파악되지 않는다. 모퉁이를 돌아야 다음 장면이 나타난다. 즉 골목은 관람객의 신체 이동을 서사의 구성 요소로 삼는 공간 구조다. 스크롤 한 번으로 전체가 소진되는 온라인 뷰잉룸이 결코 만들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다음 모퉁이'.

또한 회화와 드로잉 옆에 오브제와 생활공예와 꽃이 놓인다는 것은, 작품을 미술사의 위계 안이 아니라 삶의 밀도 안에 배치한다는 뜻이다. 컬렉터 교육의 관점에서 이것은 결정적이다. 처음 미술을 접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장벽은 가격이 아니라 '이것을 내 삶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라는 상상력의 부재다. 몽고트의 공간은 그 상상을 대신 해 준다. 여기가 이미 하나의 삶의 장면이기 때문이다.

2.3 팝업 <작가의 집>과 길드형 연합

2024 4, 몽고트는 성수동의 복합문화공간 성수연방에서 <작가의 집>이라는 제목의 팝업 갤러리를 열었다. 제목부터가 화이트월의 반대말이다. 전시장이 아니라 ''이다. 집에는 부엌이 있고 식탁이 있고 냄새가 있고 앉는 자리가 있다.

장소의 선택도 의미심장하다. 성수연방은 30년간 화학공장으로 쓰이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마당을 중심으로 ''자 형태를 이루는 공간으로, 입점한 테넌트들이 중세의 길드처럼 상생하는 일종의 연합체를 구상하며 기획되었다. 개별 매장이 각자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고객과 분위기와 서사를 공유하며 함께 밀도를 높이는 구조다. 이것은 제3부에서 다룰 '연합형 갤러리' 모델의 소매 버전이라 할 만하다. 몽고트는 자기 갤러리를 확장한 것이 아니라, 이미 밀도가 형성된 생태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작은 갤러리의 활로는 더 큰 흰 벽을 얻는 데 있지 않다. 이미 감각의 밀도가 높은 장소 안으로 들어가, 그 밀도에 미술이라는 층위를 한 겹 더하는 데 있다.


3. 미식 - 가장 오래 남는 브랜드 각인

몽고트가 보여 주는 공간연출의 원리를 미식의 차원까지 밀고 나간 해외 사례들이 있다. 이들은 식음 공간을 갤러리의 부대시설이 아니라 전시 경험의 일부로 설계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3.1 하우저 앤 워스 서머셋 - 농장 전체가 전시장이 되다

영국 서머셋의 작은 마을 브루턴. 2014년 하우저 앤 워스는 이곳의 폐허가 된 18세기 농장 뒤슬레이드 팜을 갤러리로 되살렸다. 이완 워스와 마누엘라 워스 부부가 대도시 바깥에 세운 이 첫 거점은, 오늘날 갤러리 공간연출의 가장 완성된 형태로 꼽힌다.

핵심은 이곳이 전시장과 식당과 정원과 농장을 분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지 안에는 갤러리와 함께 레스토랑 로스 바 앤 그릴, 농장 상점 더슬레이드 팜숍, 그리고 네덜란드 조경가 피트 아우돌프가 설계한 다년생 초지 아우돌프 필드가 함께 놓여 있다. 아우돌프 필드는 갤러리와 서머셋의 전원 풍경 사이를 매끄럽게 잇도록 설계되어, 관람객이 각자의 속도로 자연 속에서 머무는 안식처 역할을 한다.

식음 공간의 처리는 특히 급진적이다. 로스 바는 다이터 로스의 아들과 손자가 만든 장소 특정적 작품 그 자체다. 인근 자재 폐기장에서 수거한 재료와 사물들로 구성되어 뒤슬레이드 팜의 역사를 참조하는, 계속 변화하는 설치 작업이며, 갤러리 개관 시간에는 작품으로 관람되고 특정 행사 때는 실제로 작동하는 바로 활성화된다. 관람객은 자기가 술을 마시는 카운터가 동시에 작품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경험한다.

음식 또한 마찬가지다. 이곳은 실제로 운영되는 방목 농장 위에 있고, 레스토랑은 그 농장에서 기른 소와 양과 돼지를 자체 염장실에서 숙성시켜 낸다. 미쉐린 가이드는 이 농장 부속 건물을 개조한 식당과 인상적인 전시를 여는 갤러리를 함께 언급한다. 다시 말해 이 갤러리에서는 관람객이 눈으로 본 풍경과 입으로 먹은 고기가 같은 땅에서 나온다. 시각과 미각이 하나의 장소성 안에서 통합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디지털이 결코 복제할 수 없는 정보다.

이완 워스는 이 프로젝트를 두고, 미술과 건축과 풍경과 보존과 정원과 음식과 교육과 공동체라는 자신들의 모든 관심사를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특별한 장소를 원했다고 밝혔다. 갤러리를 작품 유통 창구가 아니라 삶의 총체를 담는 그릇으로 정의한 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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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해살이식물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사시사철 다른 풍경을 연출 해내는 아우돌프 정원(Oudolf Field) 모습. 하우저앤워스 서머싯 (Hauser & Wirth Somerset)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출처: 스타일조선, Photo by

Jason Ingram)  


3.2 폰다치오네 프라다의 바 루체 - 카페가 곧 연출이다

밀라노. 렘 콜하스의 OMA 20세기 초 증류소를 개조해 만든 폰다치오네 프라다 안에는 바 루체라는 카페가 있다. 2015년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이 직접 설계한 공간이다.

앤더슨은 이 작업의 접근법이 자신이 영화 세트를 만들 때와 정반대였다고 말한다. 이 공간에는 이상적인 앵글이 없으며, 실제 삶을 위한 곳이고,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읽기 좋은 자리가 여럿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촬영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머무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이 선언은, 앞서 진단한 '촬영 스튜디오가 된 전시장'에 대한 정확한 반대 명제다.

공간의 세부는 1950~60년대 밀라노 카페의 기억을 불러낸다. 아치형 천장은 갈레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의 유리 지붕을 축소해 재현하고, 포마이카 가구와 목재 패널, 파스텔 색조가 이탈리아 대중문화의 미감을 환기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카페가 비아 오로비아 쪽에서 직접 출입할 수 있어 갤러리 개관 시간 밖에도 열려 있다는 점이다. 즉 이 공간은 전시를 본 사람만을 위한 부대시설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장소로 설계되었다. 갤러리가 지역 생활권 안으로 스며드는 통로를 미식이 만들어 낸 것이다.

3.3 국내 사례 - 사랑방으로서의 식탁

한국에도 선례가 없지 않다. 국제갤러리의 '더 레스토랑', 갤러리현대의 '두가헌'은 오랫동안 원로 작가와 컬렉터의 사랑방 역할을 하며 감상의 분위기를 고취하고 갤러리의 정체성을 공고히 해 왔다. 다만 이 사례들이 여전히 대형 화랑의 전유물로 남아 있다는 점이 문제다.

루이비통, 구찌, 디올 같은 럭셔리 브랜드가 팝업 레스토랑과 카페를 통해 고객에게 파인다이닝 경험을 제공하며 팬덤을 확장하는 전략은 이미 정교하게 검증되었다. 브랜드가 미식을 통해 하려는 일은 매출이 아니라 각인이다. 갤러리가 배워야 할 것도 정확히 그것이다.


4. 소결 - 화이트월에서 감각의 무대로

몽고트에서 뒤슬레이드 농장까지, 그리고 바 루체에서 두가헌까지 이 사례들을 관통하는 원리는 하나다.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더 흰 벽이 아니라 더 두꺼운 맥락이라는 것. 향이 있고, 온도가 있고, 앉을 자리가 있고, 다음 모퉁이가 있는 공간에서 작품은 비로소 이미지 이상의 것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컬렉터 교육과 직결된다. 취향은 정보로 형성되지 않는다. 취향은 체류 시간 안에서 형성된다. 사람이 한 공간에 오래 머물수록, 그 공간에서 몸이 편안할수록, 작품 앞에서 나누는 말이 길어질수록 눈은 정교해진다. 미식과 공간연출은 사치가 아니라 체류 시간을 늘리는 가장 효율적인 장치이며, 체류 시간이야말로 컬렉터를 길러 내는 배양액이다. AI는 정보를 무한히 제공하지만 체류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취향과 안목이 AI를 이기는 자리가 있다면, 바로 여기다.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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