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후기] 양자주 개인전 — 피비갤러리 북촌 전시
아트인코리아
승인 2026.09.10 13:10
[전시후기] 양자주 개인전
— 피비갤러리 북촌 전시
작가 : 양자주 @jazooyang_art
전시명 : 남아 있을 모든 것,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어떤 것
일정 : 2026. 8. 12 ~ 10. 3 (화~토 11:00~18:00)
장소 : 피비갤러리 @pibigallery_official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125-6)
북촌 피비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양자주 작가의 개인전 《남아 있을 모든 것,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어떤 것》에 다녀왔습니다. 한국과 베를린을 오가며 활동해 온 양자주 작가는 머무는 장소에서 비전통적인 재료를 채집해 회화와 설치, 라이브 페인팅으로 확장해 왔습니다.
이번 전시의 중심에는 신작 〈불가살이〉 연작이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작가가 영덕에 머물며 접한 설화 속 존재로, 밥풀만 한 크기로 태어나 쇠붙이를 먹으며 몸집을 키우고, 불에 타 재가 되어도 다시 살아나는 불사의 형체입니다. 화면 위에서 이 존재는 하나의 고정된 형태로 그려지지 않고, 볼 때마다 비늘 같기도 가시 같기도 한 모습으로 계속 변화 됩니다.
재료 선택에는 개인적인 기억이 얽혀 있습니다. 작가는 어릴 적 어머니가 바느질을 하며 진주핀을 바늘겨레에 꽂아두던 모습에서 뾰족하게 뻗어나오는 형태에 대한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영덕에서 마주친 엄나무 가시가 그 기억과 겹쳐지며, 안에서 밖으로 돋아나는 가시와 바깥에서 안으로 찔러 넣는 진주핀이라는 방향이 다른 두 재료가 한 화면 위에서 만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가 떠오릅니다. 매일 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혀도 다음 날이면 다시 돋아나 벌을 영원히 반복해야 했던 존재. 불가살이 역시 불에 타 없어져도 다시 형체를 얻는다는 점에서, 소멸을 통과하고도 끝나지 않는 생명력이라는 오래된 신화적 원형을 공유합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신화를 하나의 원본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장소를 옮겨 다니며 끝없이 변형되는 이야기들의 총합으로 보았습니다. 이번 전시의 〈불가살이〉가 뚜렷한 서사나 정해진 형상을 제시하는 대신 선과 면, 재료의 질감만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설화가 본래 정해진 형태 없이 전해지듯, 작가의 화면도 특정한 의미로 고정되기를 거부합니다.
〈모든 것의 피부〉 연작에서는 손으로 안료를 문지르고 두드린 흔적이 화면 위에 부조처럼 도드라집니다. 인류학자 미나토 지히로는 피부를 눈과 달리 늘 열려 있는 촉각의 기관으로 설명한 바 있는데, 작가의 캔버스 역시 그렇게 열린 채로 신체의 움직임과 소리를 흡수합니다. 실제로 전시장에는 작가가 캔버스를 문지르고 두드릴 때 발생한 진동과 마찰음을 채집한 사운드 설치도 함께 놓여 있어, 보는 감각과 듣는 감각이 서로를 자극합니다.
학부에서 한국 고대사를 전공한 양자주 작가는 30대에 독학으로 미술을 시작해, 2000년대 초반 재개발이 한창이던 도시 곳곳에서 벽화와 거리예술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사라지는 건물과 물건들, 그 곁의 사람들과 나눈 기억이 지금까지도 작업의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 형태를 바꾸며 살아남는 존재 앞에서, 우리가 이미 잃어버렸다고 여긴 감각과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을 다시 더듬어보게 하는 전시입니다.
글: 손만승 @art.connec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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