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취향의기록] 임채홍(b.1995) 여백이었던 것을 화면 전체로
임채홍(b.1995) (경희대 대학원 22학번 한국화)
〈하늘 연작〉 2025, 장지에 수묵담채, 29.7×21cm
— 여백이었던 것을 화면 전체로 —
이상민
승인 2026.08.29 11:45
짙은 청회색 화면이 온통 구름으로 뒤덮여 있다. 지평선도 없고 위아래의 구분도 없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구름인지 가를 수 없는 상태에서, 군데군데 밝은 파랑이 층을 뚫고 새어 나온다. 흰 알갱이들이 흩뿌려져 표면이 미세하게 거칠다. 하늘을 올려다본 그림이라기보다 하늘 속에 들어가 있는 그림이다.
산수화에서 하늘은 그리지 않는 것이었다. 종이를 비워 두면 그것이 곧 하늘이 되고 물이 되고 안개가 되었다. 여백은 게으름이 아니라 규칙이었고, 그 규칙 덕분에 산과 나무가 또렷해졌다. 임채홍은 그 오래된 배분을 뒤집는다. 배경으로 물러나 있던 것을 화면 전면으로 불러오는 것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이 바탕과 형태라 부르는 그 관계에서, 바탕이 형태의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우리는 늘 보아 왔지만 본 적 없는 것을 처음 보게 된다.
그런데 하늘을 그린다는 일에는 근본적인 난제가 있다. 하늘에는 색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파랑은 하늘이라는 물체가 지닌 색이 아니라, 대기의 분자들이 짧은 파장의 빛을 더 많이 흩뿌린 결과다. 레일리 산란이라 부르는 이 현상이 없다면 하늘은 검을 것이다. 그러니 하늘을 그리는 화가는 사물이 아니라 현상을 그려야 한다. 임채홍이 입체와 평면의 경계 없이 색과 색이 안팎으로 스미고 포개진다고 쓴 문장은, 그 현상의 성질을 정확히 옮긴 말이다. 그리고 수묵담채의 번짐만큼 산란을 닮은 기법도 없다.
작가는 때로 실제 하늘을 벽처럼 두고 선다고 덧붙인다. 그리는 하늘과 실제 하늘이 나란히 놓이면 두 하늘이 서로 배경의 자리를 허문다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나는 이 작업이 회화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을 받았다. 그림을 창문 앞에 세우는 순간 회화는 대상을 재현하는 물건이 아니라 시야를 구성하는 장치가 된다. 화가는 자기 그림이 놓일 자리까지 사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2025년 개인전 《나그네의 외투》도 짚어 두고 싶다. 북풍과 태양이 나그네의 외투를 누가 벗기는지 내기했다는 그 우화 말이다. 거센 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했고, 따뜻한 볕이 스스로 옷을 벗게 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실 나그네가 아니라 하늘이다. 바람과 해, 곧 하늘이 하는 일이 사람의 태도를 바꾼다는 우화이니, 하늘을 그리는 화가가 이 제목을 골랐다면 그것은 소재의 선택이 아니라 태도의 선언에 가깝다. 밀어붙이지 않고 스미게 하는 방식.
화면의 크기가 29.7×21cm, 손에 들 수 있는 종이 한 장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무한을 다루는 주제를 가장 작은 규격에 담았다. 대개 하늘을 그리는 화가들은 화면을 키우려 한다. 크기로 광대함을 흉내 내는 것이다. 임채홍은 반대로 간다. 작은 화면 안에서 위아래를 지우고 지평을 없앰으로써, 관객이 이 그림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하게 만든다. 스케일의 단서를 제거하면 작은 것도 무한해진다.
컬렉터에게 이런 소품 연작은 모으는 재미가 있다. 연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면 서로 다른 하늘이 여러 점 있다는 뜻이고, 두세 점을 나란히 걸었을 때 각 화면의 온도 차가 드러난다. 낱장으로는 조용하지만 함께 걸면 하늘의 변화를 보여 주는 하나의 문장이 된다. 장지에 올린 수묵담채는 직사광선에 약하니 볕이 들지 않는 벽을 고르고, 액자는 여백을 넉넉히 두는 편이 좋다. 하늘을 다룬 그림에는 숨 쉴 자리가 필요하다.
글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주)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