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취향의기록] 장연지(b.1992) 흐르는 것들은 섞이지 않고 나란히 간다 || 취향의기록 | 아트인코리아 ArtIn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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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기록 (5)

『취향의 기록』은 통섭미술 인문학자 이상민이 그림 한 점에서 출발해 철학, 과학, 문학 등 통섭적 지식의 언어로 감상을 확장해가는 연재입니다. 작품 해설에 머물지 않고 동서양의 사유와 작가의 삶을 통섭적 시선으로 엮어, 회화 한 점이 건네는 정서와 통찰을 매회 새롭게 기록합니다.



[이상민의 취향의기록] 장연지(b.1992) 흐르는 것들은 섞이지 않고 나란히 간다    네이버 구글

장연지(b.1992) (가천대학교 서양화 학사 /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 석사) 〈Trace〉 2026, 캔버스에 유채, 72.7×53.0cm — 흐르는 것들은 섞이지 않고 나란히 간다 —
이상민   승인 2026.08.2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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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e 2026, 캔버스에 유채, 72.7×53.0cm

 

화면을 가로지르는 띠들이 물결처럼 흐른다. 회색과 크림색, 짙은 갈색이 서로 스치며 지나가는데 어느 것도 뚜렷한 윤곽을 갖지 않는다. 비단이 흘러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물 위에 뜬 기름 같기도 하며, 창밖으로 스쳐 지나간 풍경을 긴 노출로 찍은 사진 같기도 하다. 형체는 없는데 운동은 분명하다. 이 그림에서 그려진 것은 사물이 아니라 지나감이다.

작가는 경험되는 시간 속에서 남겨진 흔적을 응시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흔적은 하나의 사건이나 순간으로 고정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이 두 문장이 이 화면의 문법이다. 우리는 대개 흔적을 과거의 한 지점이 남긴 표식으로 이해한다. 발자국은 발이 지나간 순간을 가리킨다. 그런데 장연지의 흔적은 특정 순간을 지목하지 않는다. 여러 시간의 층위가 겹쳐 지금도 계속 움직이는 중이다.

사진의 역사에 이와 닮은 시도가 있었다. 19세기 말 에티엔 쥘 마레(Étienne-Jules Marey)는 셔터를 오래 열어 두어 사람의 움직임 전체를 한 장에 겹쳐 담았고, 그 이미지에서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가 나왔다. 여러 순간을 하나의 프레임에 축적하는 방식이다. 장연지는 카메라 없이 같은 일을 한다. 반복되는 붓질과 레이어의 축적이라는 그의 말은, 기계가 한 번의 노출로 하는 일을 손이 수십 번의 겹칠로 대신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화면의 흐림은 초점이 나간 흐림이 아니라 쌓여서 생긴 흐림이다.

흐름의 물리로 보면 이 띠들은 층류를 닮았다. 유체가 느리게 흐를 때는 층이 서로 섞이지 않고 나란히 미끄러진다. 속도가 어느 문턱을 넘어서면 그 질서가 무너져 소용돌이가 생기고, 그것을 난류라 부른다. 이 화면은 아직 그 문턱을 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색의 층이 만나되 섞이지 않고 각자의 결을 유지한 채 나란히 흐른다. 시간의 층위가 겹쳐지고 스며든다는 작가의 표현에서 '겹치되 섞이지 않음'을 읽어 내는 것이 이 그림을 보는 열쇠다.

기법으로 보면 이것은 글레이징의 논리다. 유화에서 얇고 투명한 물감층을 여러 번 올려 아래층이 비쳐 보이게 하는 방식은 베네치아 화파가 완성한 기술이었다. 색을 팔레트에서 섞지 않고 화면 위에서 층으로 겹쳐 만들면, 물감을 섞어 얻은 색과는 다른 깊이가 나온다. 빛이 여러 층을 통과했다 되돌아 나오기 때문이다. 시간을 다루는 화가가 층으로 색을 만드는 오래된 기법을 택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개인전 제목들도 이 태도와 이어진다. 2025년의 《가장 멀리서 보기, 가장 가까이서 보기》는 하나의 화면이 거리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된다는 사실을 제목으로 삼았다. 실제로 이 그림은 멀리서는 풍경이고 가까이서는 붓질이다. 2026년의 《Endless Form》은 다윈이 《종의 기원》 마지막 문장에서 쓴 표현을 떠올리게 한다. 끝없는 형태들이 가장 아름답게 생겨나고 있다는 그 문장 말이다. 부제로 붙은 꼬리가 머리와 함께 숨 쉰다는 구절은 시작과 끝이 맞물리는 순환을 가리킨다. 흔적이 고정되지 않는다는 이 작가의 명제가 여러 제목에 걸쳐 반복되고 있다.

이 그림 앞에서 나는 오래 서 있었는데, 무엇을 보고 있는지 끝내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편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대개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은 관객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 화면이 그렇지 않은 이유는 운동의 방향이 일관되기 때문이다. 무엇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디로 가는지는 알겠는 상태, 회화가 관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편안한 미결정이다.

컬렉터에게 이런 추상은 오래 곁에 두기 좋다. 구체적 형상이 없으니 싫증이 늦게 오고, 색이 절제되어 있어 다른 작품과 다투지 않는다. 72.7×53cm의 세로 화면은 소파 옆이나 침대 머리맡 같은 자리에 알맞다. 다만 글레이징으로 쌓은 표면은 광택이 부분마다 다르므로, 정면에서 쏘는 조명보다 위에서 부드럽게 내려오는 빛이 낫다. 그리고 이 그림은 앉아서 볼 때가 가장 좋다. 흐름의 높이가 눈높이에 맞을 때 화면이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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