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승의 ONE PIECE M] 바람 앞에 선 여인, 무너지지 않는 이유 —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보레아스」와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원피스 | 아트인코리아 ArtIn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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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만승의 ONE PIECE는 전시 전체가 아닌 작품 하나에만 집중해, 다양한 분야와 연결 짓는 통섭적 감상문 연재입니다. '많이'보다 '깊이' 보자는 다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https://artinkorea.kr/one





[손만승의 ONE PIECE M] 바람 앞에 선 여인, 무너지지 않는 이유 —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보레아스」와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네이버 구글

신화 속 여인은 매서운 북풍 앞에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30여년의 시간을 건너, 시대의 격변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한 여인의 이야기와 만납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보레아스」와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두 작품이 그려낸 '바람 앞의 의지'를 들여다봅니다.
아트커넥터   승인 2026.07.0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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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은 원래 순합니다. 꽃잎을 살랑살랑 흔들고, 사람들 뺨을 간지럽히다 지나가는 정도죠. 그런데 여기, 순한 봄바람이 갑자기 사나운 북풍으로 돌변한 순간을 담은 그림이 있습니다.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가 1903년에 그린 「보레아스」입니다.

화면 속 여인은 걷고 있습니다. 회청색과 파란빛이 도는 옷자락이 사방으로 휘날리고, 머리카락은 얼굴을 뒤덮을 듯 흩어집니다. 배경은 분명 봄입니다. 분홍빛 꽃과 노란 수선화가 피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하늘에서 내려온 것인지, 신화 속 존재가 내뿜은 것인지 모를 매서운 바람이 이 평화로운 풍경을 순식간에 뒤흔들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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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보레아스, oil on canvas, 94.0 X 68.6cm, 1903 우)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출처: 구글 아트앤컬처, 위키아트)     

그림의 제목 '보레아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북풍의 신입니다. 매섭고 거친 바람을 다스리는 신으로, 한 번은 아테네의 공주를 억지로 데려가 아내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힘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 그림 속에는 정작 보레아스 신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워터하우스는 신을 그리는 대신, 그 신이 만들어낸 '바람'과 그 앞에 선 '인간'만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눈여겨볼 디테일이 하나 있습니다. 여인의 귀 뒤에 꽂힌 노란 수선화 한 송이입니다. 온통 회청빛으로 가라앉은 화면에서 유일하게 밝은 이 색채는, 거센 바람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어떤 생명력을 은근히 드러내는 장치처럼 보입니다.

이 그림에는 드라마 같은 뒷이야기도 있습니다. 완성된 지 90년 가까이 행방이 묘연했다가, 1990년대 중반 갑자기 경매에 나타나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놓았거든요. 당시 워터하우스 작품 역대 최고가로 낙찰되며 화려하게 재조명받았습니다. 오랜 시간 잊혔다가 다시 세상에 나온 그림이라니, 마치 거센 바람을 뚫고 나온 그림 속 여인의 운명을 그대로 닮은 듯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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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포스터 우) 마거릿 미첼 (출처: 구글, 나무위키)     

그런데 이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입니다.

제목부터 이미 '바람'입니다. 다만 이 소설 속 바람은 자연의 바람이 아니라, 남북전쟁이라는 시대의 격변입니다. 풍요롭던 농장은 잿더미가 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곁을 떠나며, 익숙했던 삶의 질서는 통째로 무너져 내립니다. 그야말로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휩쓸어버릴 만한 바람이었죠.

하지만 스칼렛은 주저앉지 않습니다. 굶주림 앞에서 다시는 배고프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흙투성이 밭에 손을 파묻고, 폐허가 된 고향 타라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시대가 무너뜨린 것을 자신의 손으로 다시 쌓아 올린 셈입니다. 소설의 마지막,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순간에도 그녀는 내일 다시 방법을 찾겠다는 다짐을 놓지 않습니다. 바람이 아무리 거세도, 걸음을 멈추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두 작품은 하나의 문장으로 만납니다. 「보레아스」 속 여인이 몸으로 맞바람을 받아내며 두 발로 땅을 딛고 있듯, 스칼렛 역시 시대의 바람에 온몸으로 맞서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둘 다 바람을 피해 도망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바람과 맞붙어 싸우지도 않습니다. 그저 바람이 부는 그 순간에도, 걷기를 멈추지 않을 뿐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삶에도 크고 작은 '바람'이 수시로 불어옵니다. 예상치 못한 시험 성적표, 갑작스러운 이별, 계획이 틀어지는 하루. 그럴 때마다 우리는 바람이 잦아들기를 가만히 기다리기도 하고, 바람을 피해 몸을 웅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워터하우스의 여인과 스칼렛 오하라는 우리에게 조금 다른 선택지를 보여줍니다. 바람이 부는 그 한가운데서도, 일단 한 걸음을 내디뎌보는 것 말입니다.

100여 년 전 캔버스에 그려진 한 장면과, 150여 년 전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한 소설 한 편이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시대도 다르고 장르도 다르지만, 바람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는 사람의 마음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양입니다.

: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 손만승 @art.connec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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