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승의 ONE PIECE] 알 속에서, 알 속으로 — 채단 작가의〈186,〉
알 속에서, 알 속으로 — 채단(b.1999)의 〈186,〉
AR갤러리 벽 한 면을 채운 것은 186개의 투명한 알이다. 정확히는 알이 아니라 알 모양의 레진 덩어리, 그 안에 껍질을 봉인한 것들이다. 오프닝 당일, 작가는 사람들에게 이 배열이 뭐 같냐고 먼저 물었다. 계란 트레이 같다는 답도 나왔고, 순서대로 밀려 나오는 자판기 같다는 답도 나왔다. 작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달력이에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곱 칸씩, 1월부터 7월까지 층층이 쌓인 선반. 186개는 올해 1월 1일부터 오프닝일인 7월 4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지나온 날의 수다. 제목 끝에는 마침표 대신 쉼표가 붙어 있다. 끝난 게 아니라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전시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알은 하루에 하나씩 늘어난다.
<186,>, 레진, 가변크기, 2026
레진 속을 들여다보면 온갖 것들이 있다. 계란 껍질, 바나나 껍질, 복숭아 껍질, 양파 껍질, 계란 안쪽의 얇은 막, 라면 스프 봉지, 초코파이 포장지, 심지어 손에 끼던 장갑까지. 작가는 이걸 "껍질을 깐 흔적"이라 불렀다. 그런데 다음 말이 이 작업의 핵심이었다. "근데 그게 다시 알 속에 들어간 거예요. 나는 계속 껍질을 까고 어딘가로 가고 있다고 착각을 한 게 아닐까, 여전히 알 속에 머물러 있는데." 하루하루 무언가를 벗어던지고 있다고 믿었지만, 돌아보니 그 벗은 흔적조차 또 다른 알 속에 갇혀 있더라는 것이다.
몰드는 실제 메추리알에서 떴다. 스무 개 정도의 원형으로 186개를 만들다 보니 미묘하게 다르게 생겼다. 흥미로운 건 달력의 요일이 실제 날짜와 같게 배치돼 있다는 점이다. 1월 1일이 목요일이었다면 그 줄은 목요일부터 시작하고, 다음 줄은 다시 일요일부터 시작하는 식이다. 작가는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다 달력인 줄 알겠지"라고 생각했다는데,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이 세부 규칙을 한눈에 알아채지 못했다.
<186,>, 레진, 가변크기, 2026
이 작업을 보면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떠오르는 건 자연스럽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이 문장은 오랫동안 성장의 교과서처럼 읽혀왔다. 그런데 채단은 이 서사를 정면으로 뒤집는다. 알을 깨고 나왔다고 믿는 그 순간이, 실은 더 큰 알로 들어가는 입구였다면? 187번째, 188번째 알이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문학에서 이 감금의 감각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건 이상의 「날개」다. 정오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라고 외치던 사내는, 그 외침이 향하는 곳이 결국 다시 방 안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데미안의 새가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쪽이라면, 이상의 사내는 애초에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날개를 상상하는 쪽이다. 채단의 알은 이 둘 사이 어디쯤에 있다. 벗어났다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는, 뒤늦게 도착하는 깨달음.
여기서 멈추면 이 작업은 우울한 고백에 그친다. 그런데 현장에서 작가가 반복해서 쓴 말은 "불안"과 "의구심"이었지, 절망이 아니었다. 매일 껍질을 모으고 씻고 레진을 붓는 이 노동을 작가는 스스로 정화하는 과정이라 여긴다고 말했다. 이 지점에서 카뮈의 시지프스가 겹쳐진다.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질 걸 알면서도 시지프스는 매번 밀어 올린다. 카뮈는 그 반복 속에서 그가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고 썼다.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일 손을 놀리는 것 — 그 지속 자체에 절망과는 다른 결이 있다. 신화가 거짓이라는 걸 알고도 멈추지 않는 것.
작품 앞에서 사람들의 반응도 재미있었다. 누군가는 알약이 늘어선 약장 같다고 했고, 다른 이는 어릴 적 던지고 놀던 유리구슬을 떠올렸다. 나는 처음엔 레진 속 상표들 — 초코파이, 맥심 커피 — 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자본주의라는 알을 깨고 나갔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 안에 있는 현대인이라는 해석을 떠올리기도 했다.
작가는 이 작업이 처음이 아니라고도 했다. 2023년 학교 갤러리에서 선보인 작업에서는 작은 방에 석고 껍질을 깔아두고,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은 채 안쪽에서 소리만 흘러나오게 했다. 껍질을 깨는 과정은 언제나 "내 세계 바깥에 누군가 있다는 걸 아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같은 전시장 한편에 걸린 방충망 작업 〈몇 칸이나 들어갈까〉도 다르지 않다. 격자 안에서만 자라는 식물들 — 개인의 알과 사회의 그리드는 크기만 다를 뿐 같은 모양이다.
전시장을 나오며 생각했다. 나 역시 매일 아침 씻으며 어제를 벗어 던졌다고 믿지만, 결국 같은 알 속을 돌고 있는 게 아닐까. 187번째 알은 이미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글쓴이 :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 손만승 @art.connecter
[전시정보]
작가 : 채단 @dano_kunst
전시명 : 몇 칸이나 들어갈까 — CUBIC WORLD
일정 : 2026. 7. 4 ~ 7. 22 (일·월·화 휴관)
장소 : AR갤러리 @ar.creator.space (0도씨 2관)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33길 34, 1층 2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