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인터뷰] 상하이의 한상(韩商), 박상윤 "사람을 남기는 것이 사업이다"
상하이의 한상(韩商), 박상윤
"사람을 남기는 것이 사업이다"
— 무역상에서 문화 후원자로, 30년 대륙의 기록
인터뷰·글 | 이상민 (이노바랩㈜ 대표, 미술인문학자)
장소 | 중국 상하이 구베이(古北) 상업지구
이상민
승인 2026.08.21 16:20
프롤로그 — 상하이에서 만난 사람
상하이 구베이 상업지구의 한 빌딩 8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중국어가 먼저 들려왔다. 통유리창 너머로 상하이 시가지가 아득하게 펼쳐지는 사무실 한쪽에서, 그는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명함을 받아들었을 때 나는 잠시 멈칫했다. '회장'도 '대표'도 아닌 CHO(Chief Happiness Officer, 최고행복책임자)라는 직함이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상하이 구베이 상업지구의 한 빌딩 8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중국어가 먼저 들려왔다. 통유리창 너머로 상하이 시가지가 아득하게 펼쳐지는 사무실 한쪽에서, 그는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명함을 받아들었을 때 나는 잠시 멈칫했다. '회장'도 '대표'도 아닌 CHO(Chief Happiness Officer, 최고행복책임자)라는 직함이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박상윤 회장. 1963년생. 상하이 한인 사회에서 그를 부르는 이름은 따로 있다. '상하이박'. 본명보다 이 닉네임이 먼저 통하는 사람. 그의 이력은 한 줄로 요약되지 않는다. 대기업 주재원으로 상하이에 발을 디딘 것이 1996년, 12년간의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2008년 자본금 2억 원의 1인 기업으로 창업해 5년 만에 연 매출 400억 원대 강소기업을 일궈낸 무역인. 상해한국상회(한국인회) 제25대 회장으로 팬데믹의 한복판을 지휘한 교민 대표. 갤러리 '윤아르떼'를 운영하며 한국 청년 작가들을 대륙에 소개해온 컬렉터이자 후원자. 그리고 두 권의 에세이를 펴낸 저자.
사실 인터뷰어이자 필자인 나에게도 중국은 낯선 나라가 아니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나 역시 중국에서 친환경 생활용품 사업과 VR 미디어콘텐츠, 미병(未病)케어 비즈니스의 총경리를 맡으며 대륙의 속도와 벽을 동시에 겪었다. 코로나19 이후 귀국해 전략기획 컨설팅펌을 경영하며 에너지 기업, 반려동물, 아트플랫폼 등 여러 중소기업의 CSO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왔다. 그러니 이 인터뷰는 취재이면서 동시에, 같은 강을 건너본 두 사람의 대화이기도 했다.
미술인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오래전부터 '경영'과 '예술'이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두 영역이 아니라고 믿어왔다. 통섭(統攝)이란 결국 하나의 원리가 서로 다른 표면으로 드러나는 방식을 읽어내는 일이다. 박 회장을 만나고 싶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의 무역업과 장학사업과 갤러리는 정말로 별개의 활동인가, 아니면 하나의 문장이 세 번 다르게 쓰인 것인가.
1. 경영의 북극성 — "나로 인해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나아졌는가"
이상민(이하 이): 명함부터 여쭙겠습니다. '회장' 대신 CHO, 행복 담당이라고 쓰셨습니다. 기업의 최고 목적이 이윤이라는 통념을 정면으로 비껴가는 표현인데요. 회장님이 정의하는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박상윤(이하 박): 랄프 왈도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존재했기에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더 나아졌다면,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이죠. 저는 거기서 경영의 목적을 찾았습니다. 기업 경영도 다르지 않아요. 직원들이 우리 회사를 통해 더 행복해지고 성장하면, 그 에너지는 반드시 고객과 사회로 흘러갑니다. 그 선순환의 스위치를 켜두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이: 회사 이름 '상윤(相潤)'에도 그 철학이 담겨 있다고 들었습니다.
박: 제 이름이기도 하지만, 본래는 아버지의 가르침입니다. 서로를 윤택하게 한다는 뜻이죠. 내가 먼저 부유해지고 남는 것을 나눠준다는 순서가 아닙니다. 서로 윤택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비로소 사업이 오래간다는 뜻입니다.
박: 제 이름이기도 하지만, 본래는 아버지의 가르침입니다. 서로를 윤택하게 한다는 뜻이죠. 내가 먼저 부유해지고 남는 것을 나눠준다는 순서가 아닙니다. 서로 윤택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비로소 사업이 오래간다는 뜻입니다.
취재 노트 — 그가 2014년 펴낸 책의 제목이 『선한 영향력』이다. 창업 5년 반의 경험과 중국 비즈니스에서 얻은 성공론·인생론을 담은 책으로, 1인 기업에서 출발해 연 매출 400억 원대 무역회사를 일궈낸 저자가 '중국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본 기록으로 소개된다. 인터뷰 내내 그가 반복한 단어가 '선한 영향력'이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성공담이라기보다 자기 선언에 가깝다.

박상윤 회장의 저서 <선한 영향력>
2. 출발점 — 주재원 12년, 그리고 사표
이: 창업 이전의 시간을 짚고 싶습니다. 처음 상하이에 오신 것이 1996년이라고요.
박: 평범한 대기업 직원이었는데 어느 날 상하이 주재원 발령을 받았습니다. 1996년에 가족과 함께 건너왔죠. 대학에서 중국어를 배운 적이 없었지만 입사 후 매일 아침 7시반에 회사에 도착하여 혼자서 독학으로 중국어를 공부하기를 몇 년째 하던 모습을 지켜 보았던 회사 사장님이 저를 베이징으로 1년간 중국어 어학 연수를 보내주었지요. 그후 상하이 주재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12년의 주재원 생활 끝에 한국 복귀 시점이 왔을 때, 결국 다시 상하이로 돌아오셨습니다.
박: 2007년 8월 복귀 시점에 아이들 교육과 생활환경을 생각해 저 혼자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품어온 무역회사 창업의 꿈을 끝내 접지 못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사표를 내고 가족이 있는 상하이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회의실도 없는 작은 사무실에서 몇 안 되는 직원들과 시작했고, 아이템 발굴부터 거래와 정산까지 전부 맨몸으로 헤쳐나갔습니다.
이: 그 선택의 순간에 두려움은 없으셨습니까.
박: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다만 저는 '무엇을 잃을까'보다 '무엇을 남길까'를 먼저 생각하는 편입니다. 회사에 남았다면 몇년 동안 안정된 임원의 자리는 얻었겠지만, 제 이름으로 된 문장은 하나도 남지 않았을 겁니다.
박: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다만 저는 '무엇을 잃을까'보다 '무엇을 남길까'를 먼저 생각하는 편입니다. 회사에 남았다면 몇년 동안 안정된 임원의 자리는 얻었겠지만, 제 이름으로 된 문장은 하나도 남지 않았을 겁니다.
3. 파격적 인재 등용 — "스펙이 아니라 눈빛과 태도를 읽는다"
박 회장의 경영 스토리 중 상하이 한인 사회에서 가장 널리 회자되는 것은 중졸 학력의 운전기사 세 사람을 각각 영업 총괄, 팀장, 공장장으로 키워낸 일화다.
박 회장의 경영 스토리 중 상하이 한인 사회에서 가장 널리 회자되는 것은 중졸 학력의 운전기사 세 사람을 각각 영업 총괄, 팀장, 공장장으로 키워낸 일화다.
이: 무엇이 그들에게서 가능성을 보게 했습니까.
박: 저는 이력서의 전공이나 대학 이름을 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눈빛과 목소리에 실린 태도를 봅니다. 첫 번째 운전기사는 밤늦게까지 손님을 모시고 새벽에 다시 출근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사내에서 '스마일 가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스스로를 믿지 못하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당신을 못 믿겠으면, 당신을 믿는 나의 믿음을 믿어보라." 영업직을 권했고, 이후 그는 우리 회사 최고의 영업 인재가 되었고, 지금은 스스로 창업하여 큰 사업을 이루고 있습니다.
박: 저는 이력서의 전공이나 대학 이름을 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눈빛과 목소리에 실린 태도를 봅니다. 첫 번째 운전기사는 밤늦게까지 손님을 모시고 새벽에 다시 출근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사내에서 '스마일 가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스스로를 믿지 못하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당신을 못 믿겠으면, 당신을 믿는 나의 믿음을 믿어보라." 영업직을 권했고, 이후 그는 우리 회사 최고의 영업 인재가 되었고, 지금은 스스로 창업하여 큰 사업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학벌이라는 안전장치 없이 사람을 뽑는다는 건 리스크를 감수하는 일입니다.
박: 제가 판 것은 믿음이었고, 그들은 저에게 신뢰를 샀습니다. 돈은 제가 버는 것이 아니에요. 제가 얻은 이 훌륭한 사람들이 벌어다 주는 겁니다. 스펙은 과거의 기록이지만 태도는 미래의 지표입니다. 저는 과거를 사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를 사는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인터뷰어의 시선 — 미술을 감상할 때 가장 흔한 실수가 '작가 이력'을 먼저 읽는 것이다. 어느 대학, 어느 수상, 어느 갤러리 소속인가. 그러나 진짜 안목은 작품 앞에서 스스로 반응을 감지하는 데서 시작된다. 박 회장의 인재관은 정확히 컬렉터의 안목과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이력서라는 라벨을 걷어내고 대상 자체를 본다는 것. 그가 훗날 갤러리를 열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4. 중국 비즈니스의 승부수 — '경쟁력 100, 경쟁자 0'
이: 수많은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고전합니다. 상윤무역이 단기간에 입지를 구축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박: 저희는 진입 장벽이 높은 복합재료 원료에 집중했습니다. 고성능 섬유와 화공 제품이죠. 탄성과 강도가 뛰어난 초고강력 폴리에칠렌, 파라아마미드, 탄소섬유 등과 같은 첨단 산업의 필수 소재를 다루었는데, 이 분야 전체를 아우르는 회사는 현지에서도 드뭅니다. 지금은 반도체 공정에 투입하는 특수 화학물질을 포함한 화학 화공제품, 무인 주차 로봇 등을 포함한 로봇, 각종 기계 설비, 최근에는 애완동물 의류, AI 에너지 EMS 등 다양한 산업으로 분야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걸 '경쟁력은 100, 경쟁자는 0'이라고 부릅니다. 남들이 다 뛰어드는 링에서 이기려 하지 말고, 링 자체를 옮기라는 뜻이에요.
이: 그 정도 전문성이면 정보를 독점하는 편이 유리하지 않습니까.
박: 정반대였습니다. 저희는 한국 기업과 거래할 때 모든 진행 상황을 공유하는 '위클리 리포트'를 제공해 왔습니다. 처음엔 주변에서 왜 패를 다 보여주느냐고 했죠. 그런데 정보를 열어놓으니 오히려 신뢰가 단단해지고 사업이 확장되더군요. 투명성은 비용이 아니라 가장 저렴한 마케팅입니다.
이: 창업 환경 자체에 대한 평가도 궁금합니다.
박: 중국은 창업에 후한 나라입니다. 한국과 달리 초기 자본금을 즉시 납부할 의무가 없었기 때문에 2008년에 회사 문을 열 수 있었어요. 지금은 제도가 더 정비됐습니다. 자유무역시험구에서는 네거티브 리스트를 적용해 리스트에 없는 항목이면 내자 기업과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고, 외국인 단독 투자 법인(WFOE)부터 중외합자·합작까지 다양한 형태의 창업이 가능합니다. 다만 제도가 열려 있다는 것과 내가 그 안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죠.
5. 58일 — 팬데믹, 경계를 넘은 헌신
2020년, 그는 상해한국상회 제25대 회장이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왔다.
이: 사재를 털어 마스크를 지원하고, 전세기를 다섯 차례나 운항하며 교민 이동을 도우셨습니다. 기업인으로서는 감수하기 어려운 리스크였을 텐데요.
박: 재앙처럼 찾아온 코로나였지만, 저에게는 오히려 천재일우처럼 교민들에게 봉사할 기회가 온 것이었습니다. 매뉴얼 없이 시작한 일이라 쉽지 않았어요. 코로나가 발발하자 즉시 비상대책위원회를 세우고 58일 연속 무결근 출근을 감행했습니다. 상회 구성원 전원이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이: 전세기 운항은 실무적으로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박: 상해시 정부의 방역 당국 루트를 찾아 전화를 하고 공문을 보내고 직접 방문해 운항 허가를 요청했습니다. 회원사와 교민들이 참여한 위챗 단체방에 신청 양식을 만들어 배포하고 탑승 신청을 받았죠. 2020년 8월 11일 1차 전세기로 교민 101명이 상하이에 도착했고, 이들은 푸둥공항 입국 수속을 마친 뒤 민항구 화차오진의 격리호텔에서 14일을 보낸 뒤 25일 오후 전원 귀가했습니다. 격리 해제일에 호텔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초콜릿을 나눠드린 기억이 아직 선명합니다. 코로나 이후 막혀 있던 한중 항공편이 전세기 형태로나마 처음 뚫린 순간이었습니다.
이: 상회 운영 측면의 성과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박: 전세기를 5차에 걸쳐 운항하고, 상해 교민들의 해외 가족과 유럽 미주 동남아 중동 등 전세계 한인 사회에 마스크를 보내면서 상회 재정을 튼튼히 했고, 지역 정부와 협상을 진행하여 코리아타운 자영업자들의 임대료 안정에도 기여했습니다. 이런 활동으로 2021년 제15회 세계 한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상보다 크게 남은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 무엇이었습니까.
박: 충격이었습니다. 마스크 배포에 이어 소외 교민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교민들의 삶을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보게 됐어요. 이곳에도 예상치 못한 절실한 상황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충격에 가까웠습니다. 발굴하고 지원하기를 되풀이하면서 내면이 정화되고, 봉사심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전까지 저는 잘나가는 무역회사 대표였고 갤러리를 운영하며 균형 잡힌 삶을 산다고 자부했지만, 코로나는 제 삶의 진짜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6. 만원클럽 — 1만 위안이 만든 159개의 문장
이: 그 충격이 '상하이 화동 한인장학회 만원클럽'으로 이어졌습니다.
박: 한국상회 회장이 되면 당연직으로 한국학교 이사장을 겸임합니다. 교민들을 챙기던 중 도움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정을 알게 됐고, 그 집 자녀들이 학비 때문에 또 다른 고통을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해 송년회 때 각 단체 기금으로 마련한 장학금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면서, 임기와 상관없이 장학회를 계속 운영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러다 양장석 KC이너벨라 화장품 대표를 만나 의기투합했고, 2022년 8월 회원 26명으로 출발했습니다. 지금은 약 80여명의 회원의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이: 운영 방식이 매우 정교하다고 들었습니다.
박: 단순합니다. 연 1회 1만 위안, 한화로 약 200만 원을 기부하면 누구나 회원이 됩니다. 대상은 상해와 화동 지역 한국학교 학생이나 다문화가정 자녀로 초등부터 고등부까지고요. 중요한 건 기준입니다. 학교 성적이나 모범생 여부는 일절 보지 않습니다. 오직 경제적 환경만을 기준으로 합니다. 공정성을 위해 접수된 신청서는 회원 중 희망자를 선정해 블라인드 채점으로 심사합니다. 연 2회 지급하며, 첫해인 2022년부터 2025년 1월까지 총 159명에게 159만 위안, 한화 약 3억 2,000만 원이 전달됐습니다.
이: 수혜 사실을 철저히 비공개로 한다는 원칙이 인상적입니다.
박: 장학금 대상이 되더라도 어느 학교의 누가 받았는지 알 수 없게 철저히 비밀에 부칩니다. 스스로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학생과 그 가정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입니다. 도움이란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는 순간 도움이 아니게 됩니다. 한참 뒤에야 학생이나 학부모의 손편지가 총무와 선생님을 통해 전달되고, 그 내용을 회원 단체방에 공유하며 함께 감동하는 것이 유일한 보람이에요.
이: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으신지요.
박: 홀어머니가 네 자녀를 부양하는 가정, 한중 커플이었지만 아버지가 한국으로 귀국한 뒤 연락이 끊긴 가정,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한국에 돌아가지도 못한 채 학업을 중도에 포기해야 하는 학생… 안타까운 사연이 많습니다. 최근 경제 상황 때문에 기부를 이어가지 못하는 회원이 있어 안타깝지만, 한국으로 귀국한 뒤에도 성금을 보내오는 회원이 있어 이 활동의 가치를 더 절감합니다.
7. 윤아르떼 — 무역상이 화랑을 연 이유
내가 가장 궁금했던 대목이다. 첨단 소재를 다루는 무역상이 왜 갤러리를 여는가.
내가 가장 궁금했던 대목이다. 첨단 소재를 다루는 무역상이 왜 갤러리를 여는가.
이: 갤러리 '윤아르떼'는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박: 2015년 5월 14일 윤상윤 작가 초대전으로 첫걸음을 뗐습니다. 해외 진출을 꿈꾸는 유능하고 촉망받는 한국 작가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지원해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시키는 데 목표를 둔, 기업이 운영하는 화랑입니다. 홍콩과 상하이가 세계적인 아트마켓으로 부상하는 흐름을 보고 시장조사 끝에 개관했습니다.
이: 취미가 아니라 전략이었군요.
박: 둘 다입니다. 다만 순서가 있어요. 좋아하지 않으면 오래 못 하고, 전략이 없으면 작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못 됩니다. 저희 갤러리를 거쳐 간 작가 중에 쑤저우에서 달려온 애호가가 80호 작품을 포함해 여섯 점을 한 번에 구입해 작가가 눈물을 비쳤던 전시도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확신했어요. 한국 작가의 언어가 중국 관객에게 통한다는 것을요.
이: 그동안 윤아르떼가 함께해온 작가들의 면면도 궁금합니다.
박: 김석영, 장은경, 박지은, 김성석 작가처럼 자기 언어가 분명한 분들을 꾸준히 소개해왔습니다. 화랑이 작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작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계속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시 한 번으로 인생이 바뀌지는 않아요. 다만 그 한 번이 다음 한 번을 가능하게 하죠. 저는 그 '다음'을 만드는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이: 한국작가후원연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그 말씀이 가장 아프게 들립니다. 후원의 본질은 결국 시간을 사주는 일이니까요.
박: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가에게 "언제까지 결과를 내달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소재 무역에서는 납기가 생명이지만, 예술에는 납기가 없습니다. 이 두 시간 감각을 동시에 다루는 법을 배우는 데 10년이 걸렸어요.
이: 전시 외에도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하셨습니다.
박: 월드옥타 상해 지회장을 지낸 직후인 2019년, 한국상회 회장에 당선되기 전부터 이미 윤아르떼를 통해 청년 미술작가를 위한 페어 행사를 주도하고 시인과 작가 등 다방면의 아티스트를 상해로 초청해 교민 대상 무료 강연을 열어왔습니다. 사업하는 사람들만 모이는 도시는 오래 못 갑니다. 문화적 토양이 없으면 교민 사회는 그냥 '체류자들의 집합'이 되어버려요.
이: 최근에는 활동 무대가 더 넓어졌다고 들었습니다.
박: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문화 CSR 담당 초대 부회장으로 임명돼 2024년 비엔나 아트페어를 기획·총괄했습니다. 무역인 네트워크와 예술을 연결하는 첫 실험이었죠. 그리고 2007년 중국 쓰촨성 쯔궁시 명예시민, 2018년 코트라 사장상과 장보고 한상 어워드, 문체부장관상을 받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상보다 전시장에서 작가가 웃는 얼굴이 더 오래 남습니다.
인터뷰어의 시선 — 그의 사업(고성능 소재)과 후원(장학회)과 예술(갤러리)은 겉으로는 무관해 보인다. 그러나 세 활동은 모두 '아직 값이 매겨지지 않은 것의 가치를 먼저 알아보는 일'이라는 하나의 구조를 공유한다. 아무도 다루지 않는 소재를 취급하고, 성적표가 아닌 형편을 보고 학생을 고르고, 이름값이 아직 없는 청년 작가를 상하이에 세운다. 통섭이란 이런 것이다. 서로 다른 영역이 하나의 안목 위에서 만나는 순간.
8. 다시, 대륙으로 — 반려동물과 에너지, 두 사람의 다음 프로젝트
이 인터뷰에는 사적인 동기가 하나 더 있었다. 나 역시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에서 사업을 운영했고, 지금은 국내 중소기업들의 전략을 설계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업들 중 상당수가 지금 다시 중국을 바라보고 있다.
이 인터뷰에는 사적인 동기가 하나 더 있었다. 나 역시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에서 사업을 운영했고, 지금은 국내 중소기업들의 전략을 설계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업들 중 상당수가 지금 다시 중국을 바라보고 있다.
이: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자리는 취재이면서 제안이기도 합니다. 제가 CSO로 참여하고 있는 반려동물 기업과 에너지 기업의 중국 진출을 회장님과 함께 도모하고 싶습니다.
박: 두 업종 모두 지금 중국에서 온도가 올라가 있는 영역입니다. 반려동물 시장은 1선 도시의 소비 구조가 이미 한국과 유사한 궤도에 올라섰고, 브랜드보다 '신뢰할 수 있는 성분과 스토리'를 사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어요. 한국 기업이 잘할 수 있는 지점이 분명 있습니다. 에너지는 결이 다릅니다. 정책과 표준의 게임이기 때문에 파트너 선정이 성패의 8할입니다.
이: 회장님께서 늘 강조하신 '경쟁력 100, 경쟁자 0' 관점에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박: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실패하는 가장 흔한 패턴이 이미 붐빈 링에 늦게 올라가는 것입니다. 반려동물이든 에너지든, 카테고리 전체로 들어가면 반드시 집니다. 중국 기업이 아직 진입 장벽을 넘지 못한 좁은 구간을 찾아 그 안에서 압도적이 되어야 해요. 그리고 처음부터 판매가 아니라 관계를 설계해야 합니다. 저희가 '위클리 리포트'로 얻은 것도 결국 계약이 아니라 관계였습니다.
이: 실무적으로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박: 세 가지입니다. 인증과 규격, 대금 회수 구조, 그리고 현지에서 대신 분투해줄 사람. 앞의 둘은 돈으로 해결되지만 마지막 하나는 시간으로만 얻어집니다. 30년 걸려 제가 얻은 것이 그 세 번째예요. 이 대표께서 저와 함께하자고 하신 것도 실은 그 시간을 빌리자는 뜻일 테고요. (웃음) 기꺼이 빌려드리겠습니다.
이: 한 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사업과 후원을 병행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으십니까.
박: 저는 순서를 반대로 봅니다. 사업은 봉사다, 이것이 제 모토입니다. 나눔이 성공의 결과가 아니라 출발점이에요. 먼저 나누면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사업이 됩니다. 순서를 거꾸로 잡은 회사들이 오래 못 가는 것을 30년간 지켜봤습니다. 이대표께서 한국에 설립한 비영리단체 한국작가후원연대도 좋은 봉사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고, 상윤무역 신사업총괄인 원장석 대표도 함께 KASC의 후원이사로 가입하고 싶습니다.
9. 조언 — "먼저 중국인의 진정한 벗이 되어라"
이: 스스로를 '한 살'이라고 부르며 인생의 후반전을 새로 정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박: 중국은 저에게 감사한 나라입니다. 30여 년간 사업하며 다수의 현지인을 고용한 덕에 외국인으로서는 얻기 어려운 영주권도 취득했습니다. 한때는 교민의 대표였지만, 이제는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 처음 중국에 온 목적대로 꿈과 목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나이를 다시 세기로 했습니다.
이: 중국 진출을 꿈꾸는 젊은 혁신가들에게 마지막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박: 세 가지입니다. 첫째, 중국을 기회의 땅으로만 보지 마십시오. 먼저 중국인의 진정한 벗이 되어야 합니다. 시장은 벗이 된 다음에 열립니다. 둘째, 중국어를 반드시 익히십시오. 통역을 통한 신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어는 신뢰로 가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셋째, 꿈을 크게 꾸되 구체적인 이미지로 그리십시오. 막연한 야망은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선명한 이미지는 사람을 끌고 갑니다.
이: 회장님 자신의 이미지는 지금 무엇입니까.
박: 어디서든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제 인생이 세상에 남길 향기가 무엇일지 요즘도 매일 생각합니다. 나로 인해 누군가의 삶이 바뀌는 일, 저는 그걸 '사람 사업'이라고 부릅니다. 그 짜릿한 재미를 여러분도 꼭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상윤무역 박상윤 회장과, 원장석 대표 그리고 필자는 '서로의 친구에게 배우자'는 의미로 사우회(師友會)라는 모임을 결성하고 사업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관련 일들도 함께 해나가기로 했다.
에필로그 — 남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구베이의 저녁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나는 그가 CHO라는 직함을 명함에 새긴 이유를 그제야 다르게 이해했다. 그것은 겸손의 수사도, 마케팅 문구도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 매일 물음을 던지기 위한 장치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구베이의 저녁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나는 그가 CHO라는 직함을 명함에 새긴 이유를 그제야 다르게 이해했다. 그것은 겸손의 수사도, 마케팅 문구도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 매일 물음을 던지기 위한 장치였다.
미술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으로서 나는, 좋은 작품이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무엇을 남기는가로 판별된다는 것을 안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매출 400억이라는 숫자는 언젠가 바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믿지 못하던 운전기사가 영업 총괄이 된 사실, 이름조차 공개되지 않은 159명의 학생이 학업을 이어간 사실, 상하이의 낯선 벽에 걸린 한국 청년 작가의 그림 앞에서 누군가 걸음을 멈춘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상윤(相潤)' — 서로를 윤택하게 한다. 30년 대륙의 시간을 관통한 그의 문장은 결국 이 두 글자였다.
'상윤(相潤)' — 서로를 윤택하게 한다. 30년 대륙의 시간을 관통한 그의 문장은 결국 이 두 글자였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우리 둘이 결국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상하이에서 윤아르떼로 김석영·장은경·박지은·김성석 작가 등 수많은 작가의 시간을 사주었고, 나는 서울에서 한국작가후원연대의 이사장으로 작가들의 다음 한 걸음을 만들어왔다. 방식은 달랐지만 전제는 하나였다. 나눔을 먼저 실천하면 그것이 돌아 기업의 성공으로 순환된다는 믿음. '사업은 봉사다'라는 문장은 낭만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검증해온 실무적 결론이었다.
이제 그 두 개의 선이 만난다. 반려동물과 에너지라는 산업의 언어로, 그리고 미술과 후원이라는 문화의 언어로. 중한(中韓)과 한중(韓中), 방향이 다른 두 화살표가 겹치는 자리에서 무엇이 만들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만남은 두 나라 모두에게 선한 영향력이 될 것이다.
박상윤(b.1963) 상윤무역 회장 프로필
1996년 대기업 상하이 주재원 부임, 이후 현지 사무소장 역임
2007년 중국 쓰촨성 쯔궁시 명예시민 선정
2008년 상하이에서 상윤무역(윤네트웍스) 창업
2014년 저서 『선한 영향력』 출간
2015년 갤러리 '윤아르떼' 개관
2018년 코트라 사장상, 장보고 한상 어워드, 문체부장관상 수상
2019년 월드옥타 상해 지회장 역임, 제25대 상해한국상회 회장
2020년 코로나19 비상대책위 운영, 교민 전세기 5차 운항
2021년 제15회 세계한인의 날 대통령 표창
2022년 상하이 화동 한인장학회 '만원클럽' 출범(현 회원 84명)
2024년 월드옥타 문화CSR 담당 초대 부회장, 비엔나 아트페어 총괄
1996년 대기업 상하이 주재원 부임, 이후 현지 사무소장 역임
2007년 중국 쓰촨성 쯔궁시 명예시민 선정
2008년 상하이에서 상윤무역(윤네트웍스) 창업
2014년 저서 『선한 영향력』 출간
2015년 갤러리 '윤아르떼' 개관
2018년 코트라 사장상, 장보고 한상 어워드, 문체부장관상 수상
2019년 월드옥타 상해 지회장 역임, 제25대 상해한국상회 회장
2020년 코로나19 비상대책위 운영, 교민 전세기 5차 운항
2021년 제15회 세계한인의 날 대통령 표창
2022년 상하이 화동 한인장학회 '만원클럽' 출범(현 회원 84명)
2024년 월드옥타 문화CSR 담당 초대 부회장, 비엔나 아트페어 총괄
인터뷰어 | 이상민 (이노바랩㈜ 대표)
미술인문학자이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연세대에서 수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언론학을 전공했다. 출판·언론 현장에서 책을 만들고 음악저작권을 수출입했으며 매체전략을 기획했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에서 친환경 생활용품 사업, VR 미디어콘텐츠, 미병케어 비즈니스의 총경리를 역임했다. 코로나19 이후 귀국해 전략기획 컨설팅펌 이노바랩㈜을 경영하며 에너지 기업, 반려동물, 아트플랫폼 등 다방면의 중소기업 CSO로 전략을 수립·실행하고 있다. 비영리단체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으로 작가 후원과 문화 생태계 구축에 힘쓰고 있으며, 『통섭미술관 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등 통섭미술 시리즈와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통섭과 협업, AI 이후 인간의 전략』을 썼다.
※ 본 인터뷰는 이노바랩㈜ 이상민 대표가 상하이 현지에서 진행했으며, 일부 사실관계는 재외동포신문, 경기일보, 국민일보, 상하이저널 등의 기존 보도를 참고해 보완했습니다.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