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인터뷰 / 지광준 이사장] 역사는 침묵했지만, 우리는 침묵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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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자령 대첩 전황 기록 · 1933년 6월 30일 만주 항일독립전쟁 역사상 최대의 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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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6월 30일 새벽. 만주 대전자령(大甸子嶺)의 깎아지른 절벽 위 참호 속에서 한국독립군과 중국 길림 구국군으로 이루어진 한·중 연합군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사흘간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며 기다린 끝에, 이케다 신이치 대좌가 이끄는 간도 파견군 1,600여 명이 드디어 협곡으로 들어섰다. 오후 1시, 총성이 울렸다. 4시간의 격전 끝에 일본 정규군 연대 병력은 격멸되었다. 노획 물자만 군수품 200여 마차, 소총 1,500정, 대포 3문. 봉오동·청산리와 함께 만주 항일독립전쟁 3대 대첩으로 꼽히는 전투였다.
그러나 역사는 침묵했다. 교과서는 이 이름을 가르치지 않았고, 대부분의 국민은 대전자령을 모른다. 그 전투를 기획하고 지휘한 한국독립군 총사령·한국광복군 총사령 지청천(池靑天, 1888~1957) 장군 역시 마찬가지다. 봉오동의 홍범도, 청산리의 김좌진은 알아도, 지청천은 모른다. 이 거대한 역사적 공백을 채우기 위해 한 법학자가 나섰다. 법학박사이자 지청천 연구가인 지광준 이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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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공백을 채운 법학자의 집념
올봄, 도서출판 더선(THESUN)에서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제목은 『침묵한 영웅 지청천』. 부제는 '한국독립군·광복군 총사령의 불꽃 같은 생'. 저자는 법학자 지광준(池光準) 이사장. 조선대학교와 미국 Michigan 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강남대학교 법학과 교수와 사법시험 5급 국가고시 출제위원을 역임한 중견 법학자다. 역사학자가 아닌 법학자가 독립운동사 평전을 집필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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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역사학자가 아닌 법학자가 독립운동사 평전을 집필했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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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청천 장군은 평생 자서전을 거부하셨습니다. '군대 무용담이라는 게 결국
자기 자랑이 된다. |
지광준 이사장이 집필에 나선 것은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뉴라이트 학자들의 역사 왜곡, 국군 정통성 논란, 친일파들의 독립운동사 폄하 — 이 시대의 역사 전쟁 앞에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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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자령의 공격은 이천만 대한 인민을 위하여 원한의 복수를 갚는 것이다. 총알 한 개 한 개가 우리 조상의 수천수만의 영혼이 보우하여 주는 피의 사자이니 최후까지 싸우라." — 지청천 장군, 1933년 6월 28일 대전자령 출정 연설 / 독립기념관 어록비 수록 |

쌍성보 전투 당시 한국독립군 사령관이었던 지청천 장군.
그는 훗날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역임한다. (사진출처 공훈전자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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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항일 3대 대첩 — 왜 대전자령만 모르는가
봉오동(1920년 6월), 청산리(1920년 10월), 그리고 대전자령(1933년 6월). 이 세 전투는 만주 항일독립군 3대 대첩으로 함께 거론된다. 그러나 국민 인지도에서 대전자령은 두 전투에 비해 현저히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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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봉오동 대첩 |
청산리 대첩 |
대전자령 대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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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
1920년 6월 |
1920년 10월 |
1933년 6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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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홍범도·최진동·안무 |
김좌진·홍범도 |
지청천 (한·중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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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 |
일본군 대파 |
10여 차례 연속 전투 |
연대 병력 격멸, 최대 전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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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수록 |
수록 |
수록 |
미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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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봉오동과 청산리는 교과서에 실려 있지만, 대전자령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과 규모로 보면 결코 작지 않은데, 왜 이런 불균형이 생긴 것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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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시기의 문제입니다. 봉오동·청산리가 1920년이라면, 대전자령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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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책에서 지청천 장군이 일본 육사 선배인 이케다 대좌의 심리를 꿰뚫어 매복 위치를 예측했다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전략가로서 지청천의 면모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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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전자령 전투의 핵심은 정보전이자 심리전이었습니다. 철수하는 간도 파견군의
경로는 두 가지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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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만주지역에서 전개된 무장 독립전쟁. [출처=두피디아]
광복회장 추천사 — '역사 왜곡을 막는 방패'
이 책에는 광복회장의 추천사가 실렸다. 추천사는 단순한 칭찬이 아니었다. 뉴라이트 학자들의 역사 왜곡, 국군 정통성 논란에 정면 대응하는 선언문이었다. '우리 국군은 임시정부를 계승한 헌법정신에 따라 의병, 독립군의 항일정신을 계승하여 창군한다는 광복군 선언문의 정통성을 재인식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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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광복회장의 추천사가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였습니다. 이 책이 현재의 역사 논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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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금 일부 뉴라이트 계열에서는 '일제 강점기 한국인은 일본 국적이었다'는 식의 주장을 서슴없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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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준 교수의 출간을 계기로, 우리 국군은 의병, 독립군의 항일정신을 계승한 우리 민족의 유일한 정규군이라는 광복군 선언문의 정통성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광복회장, 『침묵한 영웅 지청천』 추천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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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이유 — 겸손이 만든 역사적 공백
지청천 장군은 생전에 자서전 쓰기를 극구 사양했다. 부하들이 권유할 때마다 '훗날 역사가 나를 평가하는 게 맞는 일'이라며 거절했다. 그러나 역사는 그를 평가하지 않았고, 그 겸손은 결과적으로 거대한 공백을 남겼다. 지광준 이사장은 이 아이러니를 책 곳곳에서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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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청천 장군의 침묵 — 그것이 이 책의 제목 '침묵한 영웅'의 의미이기도 할 텐데요. 연구자로서 그 침묵을 어떻게 이해하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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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청천 장군의 침묵은 고결한 침묵이었습니다. 공을 내세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셨습니다. |

1947년 4월 21일 이승만과 함께 귀국한 광복군 총사령 지청천 (이청천) 을 김포공항에서 환영 하는 모습. 왼쪽부터 김규식, 김구, 지청천, 이승만, 프란체스카.(출처 : 자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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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을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
인터뷰의 마지막, 이상민 수석전문위원은 오늘 이 날짜의 의미를 물었다. 93년 전 오늘, 굶주림과 추위를 사흘간 견딘 한국독립군이 일본 정규군을 격멸했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고, 이겼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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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6월 30일을 기억한다는 것, 대전자령을 기억한다는 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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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독립은 누가 거저 주는 것이 아닙니다. 지청천 장군이 평생 되뇌셨던 말씀입니다. |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독립기념관 어록비에 새겨진 지청천 장군의 말이 오래도록 귓가를 맴돌았다. '총알 한 개 한 개가 우리 조상의 수천수만의 영혼이 보우하여 주는 피의 사자이니 최후까지 싸우라.' 93년 전 그날, 대전자령의 능선에서 총성이 울렸다. 오늘, 그 총성을 기억하는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지청천 장군 어록비 (천안독립기념과 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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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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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지광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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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
도서출판 더선(THES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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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신국판 (148×210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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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
30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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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97103-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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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
22,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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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처 |
교보문고 등 전국 서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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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이상민 수석전문위원 미술인문학자·커뮤니케이션 연구자 연세대 수학 학사·중앙대 언론학 석사 이노바랩(주) 대표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
인터뷰이 지광준 이사장 법학박사·지청천 연구가 조선대·Michigan 대학원 법학 전공 강남대 법학과 교수·사법시험 출제위원 역임 현 사회복지법인 다니엘 이사장 『침묵한 영웅 지청천』 저자 |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