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④】 페어 이후를 설계하라 - 미술감상교육의 필요성
마곡 코엑스에서 동시에 열린 제1회 하이브 아트페어는 국내 36곳, 해외 12곳 등 총 48개 갤러리가 참여하며, 158명의 작가가 참여하는데 갤러리마다 단 한 명의 작가도 중복되지 않는다. 규모로는 아트부산의 절반에 못 미친다. 그러나 하이브가 던지는 질문은 규모를 넘어선다.
높은 부스비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전시형 아트페어'를 표방하며, 단순 판매 중심의 아트페어가 아니라 갤러리의 기획력과 작가의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가나, 갤러리현대, 리안, 예화랑, 도쿄화랑, 뉴욕 CANADA, 독일 에스더쉬퍼, 상히읗 등 국내외 주요 갤러리가 이름을 올렸다. 이 라인업을 보면 불편한 진실이 하나 드러난다. 갤러리현대, 에스더쉬퍼, CANADA — 이 갤러리들은 아트부산에는 없었다. 즉, 하이브는 신생 페어임에도 불구하고 아트부산이 확보하지 못한 갤러리들을 데려왔다. 이것을 단순히 '규모가 작아서 가능했던 것'으로 읽으면 안 된다. 이 갤러리들이 하이브를 선택한 이유 — 부스비 구조, 서울이라는 위치, 마곡이라는 기업 집적 지역의 잠재 컬렉터층 — 를 아트부산은 정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하이브 아트페어는 향후 기업들이 많이 모여 있는 마곡이라는 위치의 장점을 활용해 기업들과 갤러리의 아트 콜라보를 통한 수익 확대를 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업 컬렉터'를 겨냥한 이 전략은 실제로 한국 미술 시장에서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이다. 만약 하이브가 이 문을 여는 데 성공한다면, 아트부산이 경쟁해야 할 판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나 하이브 역시 '신생'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첫 해의 실험이 얼마나 실제 거래와 지속 가능한 생태계로 이어지느냐는 두고 봐야 한다. 아트부산은 지금 가장 위험한 종류의 경쟁 상대를 만났다 — 잃을 것이 없는 도전자.
부산이라는 이름의 무게 — 아직 다 쓰지 않은 것들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온다. 아트부산은 부산이어야 하는가. 만약 벡스코 대신 서울의 어떤 전시장에서 똑같은 페어가 열렸다면 무엇이 달라졌겠는가. 이 질문에 "부산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있다"고 명확하게 답할 수 있어야, 아트부산은 비로소 '부산'이라는 이름을 온전히 가질 자격을 갖는다.
이번 페어에서 '부산성(Busanness)'은 얼마나 구현됐는가. 도모헌 오프사이트 전시, 부산아트위크, 커넥트 섹션의 '어바니즘과 로컬리티' 주제 — 방향은 맞다. 그러나 전시장 안에서, 부스 하나하나에서, 작가 선정의 논리에서 '부산'이 얼마나 작동했는지는 여전히 아쉽다. 국제 갤러리들이 가져온 블루칩 작품들은 어느 도시의 페어에 가든 만날 수 있는 것들이다. 부산에서만 볼 수 있는 것, 부산이라는 맥락이 작품의 의미를 바꾸는 경험 — 이것이 아트부산이 아직 충분히 만들지 못한 영역이다.
부산비엔날레는 부산의 항구와 역사, 아시아라는 지정학을 전시의 언어로 삼는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해운대라는 공간 자체가 축제의 일부가 된다. 아트부산은 어떤가. 벡스코는 부산의 어떤 기억도 담고 있지 않은 컨벤션 센터다. 그 안에서 부산을 말하는 것은 내부로부터의 노력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정선주 이사는 "이는 기성 페어 간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협업 기반 네트워크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글로벌 시장과 연결하는 글로컬 플랫폼으로, 아트부산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만들어 가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선언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아트부산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는 아직 완성된 문장으로 쓰이지 않았다. 그 문장을 써내는 것 — 그것이 16회, 17회, 20회를 향해 가는 아트부산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숙제다.
페어는 4일로 끝났다. 그러나 이 질문들은 내년 5월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트부산은 해마다 조금씩 더 선명해진다.
미술감상 교육이 예비 컬렉터를 양성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KASC 이사장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학자로서 미술인문학 강사로서의 경험을 꺼내야 할 것 같다.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미술인문학 강의를 하고, 갤러리에서 아트살롱을 운영하면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림이 잘 보여요?" 이 질문에는 전제가 들어 있다. '나는 지금 그림이 잘 안 보인다.' 그런데 정확히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말해지지 않는 것이다. 그림 앞에서 무언가 느끼는데, 그것을 언어로 꺼내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받은 미술 교육을 솔직하게 돌아보자. 이 그림이 몇 년 작인지, 작가가 누구인지, 어느 사조에 속하는지 등등 많은 정보는 배웠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드는가?"를 물어본 선생님은 없었다. 지식은 주었지만 감상의 능력은 주지 않았다. 작품에 대해 말하는 법은 가르쳤지만, 작품과 대화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았다.
이것이 구조적 문제다. 한국 미술 시장은 지난 10여 년간 공급 측에서 크게 성장했다. 작가는 늘었고, 갤러리는 생겨났으며, 아트페어는 100개를 육박한다. 그런데 정기적으로 작품을 구매하는 진성 컬렉터의 수는 그 성장을 따라오지 못했다. 이것은 공급의 문제가 아니다. 수요의 문제, 보다 정확하게는 감상 교육의 공백이 만든 수요 부재의 문제다.
독후감이 독서 문화를 만들었다면
독서에는 '독후감'이라는 훈련 장치가 있었다. 방학 숙제로, 백일장으로, 독후감 대회로. 귀찮았지만 그 귀찮음이 수십 년에 걸쳐 작동하면서 독서 인구를 만들어냈다. 지금 이 나라에 북클럽이 있고, 출판 시장이 살아 있고, 베스트셀러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것은 그 유산이다. 미술에는 그에 상응하는 장치가 없었다. 그림감상문 대회는 없었다. 그림을 보고 느낀 것을 글로 쓰는 훈련은 없었다. 다산 정약용은 "손으로 쓰지 않으면 읽은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보기만 하면 지나간다. 쓰면 남는다. 이 원리는 문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작가후원연대(KASC)가 오는 하반기 송파 엠아트센터와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창학 60주년 특별전을 계기로 '어린이그림감상문대회'를 준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린이들이 전시장에 가서 작품을 보고, 그 느낌을 글로 쓴다. 틀려도 괜찮다. 어색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그 행위 자체다. 그림 앞에 서서 자기 안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언어로 꺼내는 경험.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아트페어에 들어서도 말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 대회의 교재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인 것이 『통섭미술 그림감상문 - 세상의 모든 지식으로 그림을 읽는 법』이다. 나는 이 책에서 '통섭미술감상법'이라는 방법론을 제안한다. 핵심은 단순하다.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미술사를 알 필요가 없다.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 - 수학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어머니의 밥상이든 - 그 모든 것이 그림을 읽는 렌즈가 될 수 있다. 수학을 전공하고 언론학을 공부한 필자가 350여 명 작가의 전시 감상문과 전시서문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유다.
'취향의 기록 6단 프레임'이 만드는 일
그림감상문을 쓰기 어렵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형식'이 없기 때문이다. 독후감에는 '줄거리 요약 + 느낀 점'이라는 최소한의 틀이 있었다. 그림감상문에는 그 틀조차 없었다. 나는 이것을 '취향의 기록 6단 프레임'으로 정리했다. 훅(Hook) - 연결(Bridge) - 분석(Analysis) - 확장(Expansion) - 작가(Artist) - 기록(Record). 제3의 지식으로 그림에 들어서고, 그림과 지식을 잇고, 작품을 들여다보고, 의미를 넓히고, 작가의 맥락을 녹여 자신만의 기록을 완성하는 6단계다.
이 프레임은 감상의 결과물을 만드는 도구가 아니다. 감상 자체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 그림에 대해 뭔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그림 앞에 더 오래 서 있게 된다. 보통 5초면 지나쳤을 작품 앞에 5분을 서 있게 된다. 색을 더 자세히 본다. 붓 자국을 따라간다. 제목을 다시 읽는다. 쓰기가 보기를 바꾼다.
나는 지난 5년간 350여 명 작가의 작품에 그림감상문을 써왔다. 그 과정에서 세 가지 변화를 목격했다. 감상자 자신이 달라진다. 한 번 깊이 들여다본 작가의 작품은 이후에도 다른 눈으로 보이고, 그것이 관심으로, 관심이 애정으로, 애정이 컬렉팅으로 이어진다. 또한 작가와의 관계가 달라진다. 내 감상문을 읽은 작가들 중 다수가 "이렇게 읽어주신 분은 처음"이라며 연락을 해왔고, 그 감상문에서 새 시리즈의 영감을 받았다는 작가도 있었다. 그리고 생태계가 달라진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감상문을 읽고 전시장을 찾아간 사람들이 있었고, 그중 일부는 작품을 구매했다. '취향의 기록' 한 편이 잠재 컬렉터를 전시장으로 이끌고, 작가와 컬렉터를 연결하는 다리가 됐다.
아트페어는 미디어다
커뮤니케이션학자로서 나는 이것을 '수용자 개발(Audience Development)'의 관점으로 본다. 아트부산이 4일간 수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것은 미디어 이벤트로서의 페어가 만드는 도달(Reach)이다. 그러나 그 도달이 실제 컬렉터로의 전환(Conversion)으로 이어지려면,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도달만 있고 전환이 없으면, 미술 시장은 늘 잔치는 크고 거래는 적은 구조를 반복한다. 미술감상 교육은 그 전환율을 높이는 가장 근본적인 투자다.
아트페어의 성패를 판매 금액과 관람객 수로만 재는 시대는 이제 지나야 한다. 이번 페어를 다녀간 사람 중 몇 명이 6개월 후 갤러리를 찾아갔는지, 1년 후 처음으로 작품을 구매했는지 — 이 후행 지표가 페어의 진짜 성과다. 그리고 그 지표를 움직이는 것은 '좋은 전시'가 아니라 '감상할 수 있는 관람객'이다.
그 관람객을 만드는 일 - 그것이 아트부산이 4일 이후에도 해야 할 일이고, 한국작가후원연대가 어린이그림감상문대회를 시작하는 이유이며, 이 책을 쓰는 이유다.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