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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02] 안목: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경영의 눈 - <AI시대를 예술로 준비하는 리더십>    네이버 구글

렘브란트가 해부학 강의실에서 발견한 리더십의 비밀
이상민   승인 2026.08.0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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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명 : AI시대를 예술로 준비하는 리더십 (총 12회)

01회차 취향 / 경영자는 왜 미술관에 가야 하는가

02회차 안목 / 안목: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경영의 눈

03회차 통섭 / 통섭: 경계를 넘나드는 지식의 리더십

04회차 협업 / 협업: 거인들도 홀로 서지 않는다

05회차 관점 / 줌 아웃: 관점을 확장하는 리더의 기술

06회차 직관 / 직관: 압축된 경험이 만드는 결정의 힘

07회차 상상력 / 상상력: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보는 힘

08회차 미적감수성 / 미적 감수성: 감도가 곧 경쟁력인 시대

09회차 회복탄력성 / 애질리언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탄력성

10회차 문제 재정의 / 문제 재정의: 질문을 바꾸는 자가 미래를 만든다

11회차 큐레이션 / 큐레이션 리더십: 선택하고 버리는 결단력

12회차 인간다움 / 인간이라는 유일한 예술: AI 이후 리더의 본질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2, 전시실 하나가 유난히 조용하다. 방문객들이 입구에서 발걸음을 늦추고, 어떤 이는 아예 멈춰 선다. 그림의 크기는 170×216cm. 제목은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De anatomische les van Dr. Nicolaes Tulp).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van Rijn) 1632, 26세에 완성한 이 작품은 오늘도 보는 사람을 붙잡는다. 나는 이 그림 앞에서, 리더십의 핵심 키워드인 '안목'의 본질을 처음 제대로 이해했다. 그것은 단순한 미적 체험이 아니었다. 경영 현장에서 수없이 마주쳤던 질문—"왜 같은 상황을 보고도 사람마다 다른 결론을 내리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이었다.

단체 초상화다. 암스테르담 의사 조합의 위촉을 받아 그린 그림으로, 당시 이런 그림은 의뢰인들을 가지런히 나란히 세워놓고 얼굴을 하나씩 그리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렘브란트는 관례를 깼다. 그림 속 인물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다른 표정을 짓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중앙의 튈프 박사는 해부 도구로 시신의 팔뚝 힘줄을 들어 올리며 무언가를 설명 중이다. 그 주위에 모인 일곱 명은 각자 다른 단계의 이해와 반응을 보인다. 놀란 얼굴, 집중하는 얼굴, 메모하는 눈빛, 그리고 화면 밖의 우리를 똑바로 응시하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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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 —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헤이그

 

렘브란트가 포착한 것은 '한 장면'이 아니라 '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 안에서 각 인물이 어떤 인식의 단계에 있는지를 빛과 그림자로 구분했다. 같은 해부 장면을 보면서도 어떤 이는 경이로움을 느끼고, 어떤 이는 냉정하게 분석하고, 어떤 이는 이미 다음 질문을 품고 있다. 렘브란트는 이 차이같은 현실 앞에서 각자 다른 것을 보는 인간의 본성를 그림 안에 담았다. 그 순간 렘브란트 본인도 이 그림의 일곱 번째 관찰자였다. 자신이 그리는 것을 동시에 해부하는 눈. 이것이 안목이다.


안목(眼目): 눈 속에 또 하나의 눈을 갖는 일

안목(眼目)은 한자 그대로 풀면 '눈 안()' '눈 목()'의 결합이다. 두 글자 모두 눈이니 동의어 반복처럼 보이지만, 그 속뜻은 다르다. '()'이 사물을 물리적으로 포착하는 육안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이라면, '()'은 그 사물의 핵심과 질서를 꿰뚫어 보는 심안(心眼)이다. , 안목이란 '눈 속에 또 하나의 눈을 갖는 일'이다. 현상 너머의 본질을 인식하는 힘.

AI '()'의 영역에서는 인간을 압도한다. 수백만 장의 의료 영상에서 종양을 찾아내고, 재무제표 수천 건에서 이상 패턴을 발견하며, 고객 행동 데이터에서 이탈 신호를 감지한다. 빠르고, 정확하고, 지치지 않는다. 그러나 '()'의 영역왜 이 패턴이 지금 이 조직에 중요한가, 이 숫자 뒤에 어떤 사람의 어떤 결정이 있었는가, 이 위기가 사실은 어떤 기회의 다른 얼굴인가은 여전히 인간 리더의 몫이다.

그렇다고 AI와 안목이 경쟁 관계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AI '()'의 부담을 덜어줄수록, 리더는 '()'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데이터 수집과 패턴 탐지를 AI에 맡기고, 그 패턴이 의미하는 바를 해석하고 방향을 결정하는 데 인간의 에너지를 쏟는 것. 이것이 AI 시대 리더십의 새로운 분업이다. 문제는 많은 경영자들이 AI에게 '()'을 넘기면서 동시에 '()'까지 넘기려 한다는 데 있다. AI가 제안한 전략을 검토 없이 실행하고, AI가 분석한 우선순위를 판단 없이 따른다. 그 순간 리더는 안목을 잃는다.

렘브란트의 위대함은 단순히 '빛을 잘 그린 것'이 아니다. 그는 인간의 내면 상태를 빛과 어둠의 배치로 번역하는 능력, 즉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안목을 가졌다. 〈해부학 강의〉에서 가장 밝게 조명된 인물은 튈프 박사도, 시신도 아니다. 그림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화면 오른쪽,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인물이다. 렘브란트는 이 그림을 보는 사람도 이 사건의 일부가 되도록 구성했다. 관찰자를 참여자로 끌어들이는 것. 이것이 안목이 만들어내는 힘이다. 5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그림 앞에서 사람들이 말을 잃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렘브란트는 단순히 의사들의 얼굴을 그린 것이 아니라, 인간이 무언가를 '알아가는 순간'의 본질을 빛으로 번역했다.


두 개의 눈으로 조직을 보는 리더

경영자에게 '()'은 데이터, 지표, 보고서다. 매출 곡선, 이탈률, 팀별 성과 지표. 이 정보들은 지금 어떤 조직도 실시간으로 추적한다. AI 대시보드는 24시간 숫자를 갱신하고, 알고리즘은 이상 징후가 보이면 즉각 경고를 보낸다. 그러나 같은 데이터를 보고도 리더마다 내리는 결론이 다른 이유는 '()'이 다르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보여주지 않는 것팀원들의 사기, 문화의 균열, 시장이 아직 말하지 않은 욕망을 읽는 능력이 안목이다. 팀원 한 명이 말을 줄이기 시작했을 때, 회의에서 예전처럼 아이디어를 내지 않을 때이런 변화는 어떤 지표에도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안목 있는 리더는 그것을 먼저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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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자화상〉(1659)  — 렘브란트 하우스 박물관, 암스테르담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평생 100점 이상 그렸다. 20대의 자신감 넘치는 얼굴부터 파산 후 주름진 노년의 얼굴까지. 같은 사람이지만 10년마다 전혀 다른 인물처럼 보인다. 그가 자화상을 반복해서 그린 것은 자기 PR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 관찰, 즉 자신의 '()'을 훈련하는 행위였다. 매년 스스로를 다시 그리면서 무엇이 변했는지, 무엇이 남아있는지, 무엇을 아직 보지 못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리더의 안목도 이렇게 기른다. 자기 조직을 반복적으로 다시 보면서, 어제 보지 못했던 것을 오늘 발견하는 훈련.

안목 훈련에는 의도적인 '느린 관찰'이 필요하다. 렘브란트가 자화상 하나를 완성하는 데 며칠을 투자했듯, 리더도 숫자를 빠르게 스캔하는 것을 멈추고 한 장면을 오래 들여다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분기 보고서를 30분 만에 읽는 것과, 한 팀의 이탈률 곡선 앞에서 "이 꺾임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그 시점에 조직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30분 동안 묻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다. 전자는 '()'이고, 후자가 '()'이다.

현장을 걷는 것도 안목 훈련의 핵심이다. 렘브란트가 암스테르담 시장과 유대인 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의 얼굴을 스케치했듯, 리더도 보고서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고객이 실제로 제품을 쓰는 현장, 팀원들이 점심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 영업 사원이 거절당하는 순간의 표정이런 것들이 숫자로 포착되기 전의 신호다. 데이터는 이미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현장의 안목은 아직 숫자가 되지 않은 것을 먼저 감지한다. 렘브란트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 반드시 모델을 직접 관찰했듯, 리더의 안목도 현장 없이는 깊어지지 않는다.


〈선지자 예레미야〉: 안목이 있는 자의 고독

렘브란트는 종교화도 많이 그렸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에 소장된 〈예루살렘의 멸망을 슬퍼하는 선지자 예레미야(Jeremia treurend over de verwoesting van Jeruzalem)(1630)를 보면, 나이 든 선지자가 홀로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의 뒤로는 불길에 휩싸인 도시가 보인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예언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도시는 결국 무너졌고, 그는 그 폐허 앞에서 홀로 앉아 있다. 아는 것의 고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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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예루살렘의 멸망을 슬퍼하는 선지자 예레미야〉(1630) —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안목 있는 리더는 종종 이 고독을 겪는다. 시장의 변화를 남보다 먼저 보고, 위기를 먼저 감지하지만, 조직이 아직 그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구성원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혼자 보고 있는 순간의 무게감. 렘브란트가 예레미야의 얼굴에서 포착한 것은 절망이 아니라 '이미 본 자의 침묵'이었다. 안목이 있다는 것은 편리한 능력이 아니다. 보지 않아도 될 것까지 보게 되는 무거운 책임이기도 하다. 그래서 렘브란트는 예레미야를 화려하게 그리지 않았다. 홀로, 낮게, 조용하게.

그렇다면 안목이 가져오는 고독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렘브란트의 예레미야는 포기하지 않았다. 폐허 앞에 앉아 있지만, 그것은 도망이 아니라 증언이다. 자신이 본 것을 끝까지 기억하겠다는 자세. 리더에게도 이 자세가 필요하다. 혼자 보이는 것을 말하는 데는 타이밍이 있고, 방법이 있고, 인내가 필요하다. 안목은 '무엇을 볼 것인가'만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말할 것인가'까지 포함하는 능력이다. 그것이 안목이 단순한 인식 능력을 넘어 리더십이 되는 이유다.

그러나 그 안목이 결국 조직을 살린다. 예레미야가 아무도 듣지 않을 때도 경고를 멈추지 않았듯, 안목 있는 리더는 조직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도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혼자 보이는 것을 끝내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안목이 리더십이 되는 지점이다. AI가 오늘의 숫자를 완벽하게 분석하는 시대,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내일의 숫자가 만들어지기 전에 그 방향을 감지하는 눈이다. 데이터가 현상(現象)을 보여준다면, 안목은 본질(本質)을 본다.

렘브란트는 평생 가난과 파산을 겪으면서도 그림을 멈추지 않았다. 1656년 파산 선고를 받고 집과 소장품을 모두 잃었지만, 그의 붓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기 이후의 작품들이 더 깊어졌다. 그의 안목은 성공한 시절보다 실패한 시절에 더 깊어졌다. 실패가 그에게 성공의 시절에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리더의 안목도 성공 사례보다 실패 경험에서 더 빠르게 자란다. 미술관에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500년 전 화가의 실패와 발견이 지금 여러분의 안목 훈련 교재가 된다.

다음 달에는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페르메이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 앞에 선다. 일상의 한 장면에서 우주를 본 화가,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통섭'의 리더십이 주제다. 취향이 방향이라면, 안목은 나침반의 바늘이다. 그 바늘이 진북(眞北)을 가리킬 때, 조직은 비로소 제대로 된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 바늘을 갈고닦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늘도 변함없이, 명화 앞에 오래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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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산성본부 <월간품질경영> KSA 매거진 - 연재명 : 명화와 마주한 경영자 202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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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산성본부 <월간품질경영> KSA 매거진 - 연재명 : 명화와 마주한 경영자 2026년 8월호

                


이 칼럼에서 소개한 명화

렘브란트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 —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헤이그

렘브란트 〈자화상〉(1659)  렘브란트 하우스 박물관, 암스테르담

렘브란트 〈예루살렘의 멸망을 슬퍼하는 선지자 예레미야〉(1630) —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글쓴이: 이상민

미술인문학자·커뮤니케이션 연구자. 연세대 수학·중앙대 대학원 언론학 전공. 전략기획 컨설팅펌 이노바랩() 대표,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취향과 안목, AI를 이기는가』 『통섭과 협업, AI 이후 인간의 전략』 『통섭미술관기행·네덜란드』 저자. 대학 평생교육원 미술인문학 강의, 갤러리 아트살롱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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