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오디세이" - 김석영 서양화가, 수십 년의 붓질을 언어로 풀어내다
이상민 | 수석전문위원 · 미술인문학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 통섭미술 비평가
2026년 5월 6일 수요일 저녁 7시, 한강 위 새빛섬 애니버서리 뮤지엄. 서울의 야경이 유리창 너머로 번지던 그 공간에 2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화가 김석영(b.1966)의 첫 번째 그림에세이집 『돈키호테 오디세이』(도서출판 더썬)의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전시와 출판기념회를 동시에 여는, 드문 형식의 저녁이었다.

층고가 높은 뮤지엄 공간에는 김석영 작가의 신작들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의 평생 화두인 말이 강렬한 붉은색과 파란색, 거친 나이프 터치 속에서 돌진하고 있었다. 누군가 "캔버스가 조용히 걸려 있지 않다"고 했다. 무언가를 향해 돌격하는 느낌. 그 표현이 이 날 저녁의 분위기를 가장 정확하게 요약했다.

새빛섬 애니버서리 뮤지엄 실내 전경
■ 콜라 한 병에 시작된 그림, 책이 되다
행사의 백미는 김석영 작가 본인의 이야기였다. 그는 거창한 선언 대신 열세 살 소년 시절의 에피소드로 말문을 열었다. 초등학교 미술 특활 선생님이 '한 달 그림을 배우면 콜라 한 병과 모나카를 매일 주겠다'는 제안을 했고—스스로 "거부할 수 없는 마피아식 제안"이라 부른—그 한 달이 평생 그림을 그리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 대회에서 1등을 했어요. 13살 때나 지금이나 제가 콜라에 장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장내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웃음 이면에는, 허황된 동기에서 시작된 예술이 어떻게 수십 년의 진지한 탐구로 이어지는가 하는 묵직한 진실이 담겨 있었다.
책이 탄생한 경위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글을 쓰려고 쓴 게 아닙니다. 그림을 그리기 전, 그리는 도중, 그리고 그 이후에 자신과 나눈 대화들이었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려두었던 에세이들이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상민 이사장의 눈에 들었고, "술 한 잔 사면서 책 내자고 꼬드겼다"는 이사장의 권유에 결국 응했다.
"이 춤이 막춤인 줄 압니다. 하지만 모든 춤의 뿌리가 막춤이고, 자신의 실수와 상처를 솔직하게 인정한다면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책을 썼으니까요."
— 김석영 작가, 출간기념회 인사말에서

■ "이 책을 안 읽으면 그를 모르는 것"—김종근 평론가
첫 번째 축사는 미술평론가 김종근(전혁림 미술상 심사위원장)이 맡았다. 오랫동안 김석영 작가를 지켜봐온 그는 이 책의 추천사에서 이미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 책을 읽지 않고 그의 작품을 온전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지 않고 작가를 사랑한다거나 안다는 사람들은 거짓말장이거나 배신자이다." 그 발언이 "너무 세다"는 반응을 얻었다고 스스로 웃으면서도, 그것이 진심임을 강조했다.
"말을 잘 그리는 화가는 많습니다. 그러나 검은 말, 빨간 말, 파란 말—말이 가진 모든 감정의 스펙트럼을 표현하는 화가는 드뭅니다. 그것이 김석영의 차이입니다." 쉬베이훙(徐悲鴻)의 말 그림과 비교하면서, 그는 동양의 기(氣)를 현대 표현주의로 번역하는 김석영만의 언어를 짚어냈다. "그 작품의 언어를 완벽히 이해하려면, 이 책 속 심장 소리를 먼저 들어야 한다."

축사를 맡은 김종근 평론가
■ "음악도, 그림도 결국 같은 곳을 바라본다"—재즈보컬 웅산의 축사
이날 행사의 예상 밖 화제는 재즈 보컬리스트 웅산의 축사였다. 그는 작가의 작품을 SNS에서 우연히 발견한 뒤 "너무 갖고 싶다"고 올렸다가, 그것을 본 김석영 작가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은 인연을 소개했다. "그림을 잘 모르는데, 작품 앞에서 그냥 지나가다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어요."
그는 금강경의 구절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딱히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 가는 대로 행하라—을 인용하며, "김석영 작가님의 작품과 행보가 그러한 듯하여 마음이 더 가기도 합니다"라고 했다. 음악과 미술이 다른 장르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그의 말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작가님의 아주 강렬한 색깔들로 표현하는 세상을 더 많이 또 접하고 싶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기도 한데요.
"
— 웅산(재즈 보컬리스트), 축사 말미에서

■ 공간이 그림을 껴안다—새빛섬에서의 전시
전시를 기획하고 공간을 연출한 새빛섬 애니버서리 뮤지엄 이경진 대표는 "작가님의 출판기념회와 개인전을 동시에 진행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너무 뜻깊다"고 밝혔다. 층고가 높은 이 공간은 김석영 작가의 대형 캔버스들을 압도되지 않고 품어냈다. 평택 창고에서 직접 공수해온 조형물도 이 공간에 안성맞춤이었다. "공간과 그림이 너무 잘 맞는다"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경진 대표는 책의 추천사에서 "인간 존재와 예술의 의미를 되묻게 하는 솔직하고 깊이 있는 생각의 기록"이라고 썼다. 그 공간적 메시지와 텍스트가 이날 한 장소에서 교차했다. 출판기념회가 단순한 책의 론칭 행사가 아니라 작품·공간·사람이 어우러진 하나의 예술적 이벤트가 된 것이다.

■ 200명이 찾은 출판기념회, 그리고 사인회
행사 직후 사인회가 이어졌다. 자리가 부족할 만큼 사람들이 몰렸다. "200명이 넘은 것 같다"는 말이 오갔다. 갤러리스트, 컬렉터, 작가, 음악인, 기업인, 미술 애호가들이 뒤섞인 군상. 사인을 받으러 줄을 선 사람들의 손에는 한결같이 붉은 표지의 책이 들려 있었다. 김석영 작가의 사인은 마치 사인받는 사람의 자화상 같았다. 사인 속 말은 동일한 말이 하나도 없이 모두 다른 말이었다. 그래서 사인 시간과 대기 줄이 길었음에도 작품을 받아가는 설렘으로 가득찼다.
행사를 기획한 이상민 이사장은 "이 책은 작가의 명함"이라고 했다. "2만 2천 원짜리 한 장인데, 그 안에 작품도 들어가 있고 삶도 들어가 있습니다. 이렇게 강력한 명함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이 출판 프로젝트가 한국작가후원연대가 추진하는 예술가 출판 후원 프로그램의 첫 번째 사례임을 밝히며, 앞으로도 매달 새로운 작가 프로젝트를 이어나갈 계획임을 소개했다.

■ 기자의 눈 | 막춤의 미학과 돈키호테의 귀환
이 책의 제목 『돈키호테 오디세이』는 단순한 인문학적 수사가 아니다. 김석영은 실제로 돈키호테처럼 산다. 중국, 모로코, 포르투갈, 크레타를 바이크로, 도보로, 비행기로 가로지르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그 글들은 처음부터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솔직하다. 작업일지이자 여행기이며, 독서 노트이자 자기 고백이다.
한국 화단에서 '화가의 에세이'는 종종 해설과 자기 미화 사이 어딘가에 머문다. 그러나 이 책은 그 함정을 피한다. 그가 쓴 에세이는 그림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림을 그리기 전의 두려움, 그리는 도중의 회의, 그린 이후의 고요함—그 시간들의 언어적 기록이다. 색과 글이 서로를 반사하는 거울처럼 작동하는 구조다.
이 책을 편집하고 인쇄한 도서출판 더썬은 이 책을 3주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3주 만에 책을 만들어낸 기적적인 일"이라는 작가의 말에서 이 출판이 하나의 긴박하고 유기적인 과정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거인과 맞붙어라(Dare at the giant)." 이상민 이사장이 폐회 인사로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장내는 짧은 정적에 빠졌다. 돈키호테의 말이기도 하고, 김석영 작가의 말이기도 하며, 이 책을 손에 든 200명 모두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한 문장. 그 정적 속에서 이날의 행사가 완성됐다.

■ 한국작가후원연대(KASC)와 '출판후원프로그램'
이날 행사의 또 다른 주인공은 작가 뒤에 있었다. 행사를 기획하고 사회를 맡은 한국작가후원연대(Korea Artist Sponsor Club, KASC) 이상민 이사장이다. 그는 이 단체를 "예술가의 창작과 발간을 지원하고, 예술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함께하는" 비영리 단단체라고 소개했다. <통섭미술관기행>의 저자이자 미술인문학자인 그가 주도하는 KASC는, 창작 역량은 있으나 출판·홍보·기획의 진입 장벽 앞에 멈춰 선 예술가들에게 그 장벽을 허물어주는 실질적인 지원을 표방한다.
이번 김석영 작가의 출판이 그 첫 번째 사례였다면, KASC는 이미 매월 다른 작가를 선 보일 준비하고 있다. 이상민 이사장이 공개한 '출판후원프로그램'은 예술가의 글이 담긴 그림에세이 시리즈를 연속 출간하는 프로젝트다. 현재 확정된 라인업을 보면, 시리즈 1번인 김석영의 『돈키호테 오디세이』에 이어 시리즈 2번으로 화가 김선희의 『나의 월든은 그림 속에 있다』, 시리즈 3번으로 김미현 작가, 4번 권순익 작가가 출간을 앞두고 있다.

한국작가후원연대 두 번째 출판후원프로젝트 홍보물
김선희의 책은 부제 '혼자가 아닌 나를 발견하는 가장 다정한 방법'이 말해주듯, 상실을 견디며 붓을 든 한 사람의 가장 솔직한 이야기다. 출판기념 사인회는 오는 6월 14일(일) 오후 3시 30분, 아트노이드178(성북구 삼선동1가 178)에서 열릴 예정이다. 전시는 6월 11일부터 15일까지 같은 장소에서 진행된다.
이상민 이사장은 이 프로그램의 핵심 철학을 이렇게 설명했다. "책은 작가의 명함입니다. 그림만 그려서는 안 되고, 계속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출판기념회도, 전시도, 그 모든 것이 작가를 알리는 이벤트가 돼야 합니다. 가수에게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생긴 것처럼, 화가에게도 그런 체계가 필요합니다."

K-팝 아이돌 시스템을 예술 생태계에 적용하겠다는 발상이라고도 읽힌다. 이상민 이사장은 "매달 새로운 작가 프로젝트를 이어갈 것"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KASC의 출판후원프로그램이 한국 미술 생태계에서 하나의 작은 실험이 될지, 아니면 지속 가능한 새로운 플랫폼이 될지—그 첫 번째 증거가 이날 새빛섬 애니버서리 뮤지엄에 200명이 넘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 책 정보 ] 『돈키호테 오디세이』 김석영 글·그림 | 도서출판 더썬 | 2026년 4월 30일 | 276쪽 | 22,000원 | ISBN 979-11-997103-7-5
[ 전시 정보 ] 새빛섬 애니버서리 뮤지엄 | 서초구 반포동 650 | 전시기간 2026. 4. 22 ~ 5. 28 (전시 연장)
[ 기획 ]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상민 이사장
이상민 | 수석전문위원 · 미술인문학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 통섭미술 비평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