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심층전시리뷰] 강선미 개인전 《고요한 사색 — Tranquil Thoughts》, 갤러리 로윤
서울 용산구 갤러리 로윤에서 열리고 있는 강선미 작가의 개인전 《고요한 사색 — Tranquil Thoughts》(8.3~9.3)는 언뜻 조용한 전시처럼 보인다. 큰 소리도, 자극적인 색도, 논쟁적인 메시지도 없다. 그러나 이 전시가 지닌 파장은 그 고요함의 반대편, 즉 지금 우리가 얼마나 시끄러운 삶을 견디고 있는지를 비추는 거울에서 나온다. 나는 이 리뷰를 미술사적 분석으로 시작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하겠다. 우리는 언제부터 '쉼'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내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는가.
왜 지금, '쉼'을 그리는 화가인가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번아웃(burnout)을 만성적인 직장 스트레스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발생하는 '직업적 현상'으로 공식 분류했다. 질병은 아니지만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상태로 인정한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 팬데믹과 재택근무, 초연결 사회를 지나며 '쉼'은 역설적으로 가장 상품화된 개념이 되었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휴식을 계획하고, 명상 애플리케이션 사용 기록으로 자기관리 실적을 증명한다. 쉼조차 수행해야 할 과제가 된 시대에, 강선미는 정반대의 태도로 화면 앞에 선다. 그는 화면을 채우지 않는다. 오히려 비워둔다.
이 전시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소진된 자를 다그치지 않는 시선이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쉼은 몸의 피로를 푸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안정시키고 다시 일어설 힘을 기르는 내적 에너지"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작가 노트가 아니라, 생산성 신화에 지친 현대인을 향한 하나의 처방전에 가깝다.
통섭의 시선으로 읽는 숲과 달빛
강선미의 화면은 하나의 언어로 다 설명되지 않는다. 통섭적 독법으로 이 전시를 읽는다는 것은, 동양의 사유와 서양의 개념, 그리고 오늘의 사회과학을 하나의 화면 위에 겹쳐 놓는 일이다.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는 '쓸모없음의 쓸모'를 이야기한다. 강선미의 숲은 바로 그 무용(無用)의 공간이다. 나무는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 서 있지 않다. 그저 존재함으로써 스스로를 완성한다. 서구의 개념으로 옮기면 이는 안식일(Sabbath)의 시간, 즉 생산성과 무관하게 존재가 정당화되는 시간의 회화적 번역이다. 그리고 오늘의 언어로 보자면, 이는 철학자 한병철이 진단한 '피로사회'에 대한 조용한 반박이다. 그는 현대인이 외부의 억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성과주체'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강선미의 화면에는 그 어떤 채찍질도, 서사의 긴장도 없다. 오직 달빛이 내려앉는 속도, 색이 스며드는 속도만이 존재할 뿐이다.
작가가 반복적으로 다루는 소재 — 숲, 하늘, 집, 그리고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달빛 — 은 각기 다른 층위의 쉼을 상징한다. 숲은 공동체적 쉼이다. 개별의 나무가 아니라 군락으로 존재하며 서로에게 그늘이 되어주는 연대의 형식이다. 하늘은 초월적 쉼이다. 손닿지 않는 곳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여백이다. 집은 회귀적 쉼이다. 밖에서 소진된 것을 다시 채우는 원점이다. 그리고 화면 위쪽에서 가늘게 내리꽂히는 은빛 달빛은, 빛이라기보다 차라리 비처럼 보인다. 빛과 비, 본래 다른 두 자연현상을 하나의 시각언어로 통섭시킨 이 장치는, 비가 대지를 적셔 생명을 돋우듯 마르고 굳은 마음을 다시 부드럽게 만드는 은유로 읽힌다.
여백이 말을 거는 방식
기법적으로 볼 때 이 전시의 힘은 재료의 정직함에서 나온다. 강선미는 한국화의 전통 재료인 장지와 분채를 고집한다. 분채는 아교에 개어 농도를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운 재료지만, 인위적이지 않고 한지와 잘 어우러지며 견고하고 안정적인 흔적을 남긴다. 장지 위에 무수히 찍어낸 짧은 점선의 붓질은 단번에 그려낸 획이 아니라, 수백 번의 손길이 쌓여야 완성되는 표면이다. 이 반복적인 붓질은 그 자체로 '반복되는 돌봄'의 은유가 된다. 쉼도 그러하다. 한 번의 휴가로 완성되지 않고, 매일의 작은 돌봄이 쌓여야 비로소 몸에 새겨진다.
그리고 이 절제된 화면을 완성시키는 것은 결국 여백이다. 형상을 다 채우지 않고 남겨둔 자리, 색을 다 칠하지 않고 숨 쉬게 둔 공간. 그 여백은 관람자를 위한 자리다. 화가가 모든 것을 말해버리지 않기에, 우리는 그 안에 들어가 잠시 머물 수 있다. 작품이 '느껴라'라고 강요하지 않고 다만 '머물러도 좋다'고 허락하는 것, 이것이 이 전시가 지닌 가장 정직한 미덕이다.
나를 멈춰 세운 그림 한 점
여기서 감상자의 자리를 잠시 내려놓고 고백해야 할 것이 있다. 나 역시 그림 앞에서조차 온전히 쉬지 못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한국작가후원연대가 성장하면서 챙겨야 할 일이 많아졌고, 본업의 프로젝트들도 겹쳐 돌아갔다. 부족한 시간을 메우는 유일한 방법은 잠을 줄이는 것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원형탈모가 찾아왔고, 몸이 여기저기서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강선미의 숲과 달빛 앞에 서서야, 비로소 그 신호를 제대로 들었다.
이 작품들은 내게 다정하지만 단호한 경고장처럼 다가왔다. 쉬어가라고. 더 아프게 깨달은 것은 따로 있었다. 그림을 좋아하고 감상문을 쓰는 일 자체가 본래 나 자신의 안온함을 위한 일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새 또 하나의 '일'이 되어, 나에게서 쉴 틈마저 빼앗고 있었다. 쉼을 위해 시작한 일이 쉼을 잠식한다면, 그것은 작품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어긋난 것이다.
다시, 쉼을 배우다
강선미의 전시는 거창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숲과 하늘과 집과 달빛이라는 익숙한 자연의 얼굴을 빌려, 우리가 잊고 있던 감각 하나를 되돌려준다. 멈춰도 괜찮다는 감각이다. 겨울을 견딘 나무가 새순을 틔우듯, 쉼은 삶을 지속하게 하는 근원적 힘이라는 작가의 말을 이제야 제대로 받아들인다. 이 전시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당신은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고 그저 머문 적이 언제였는가.
오늘은 이 작품 앞에 조금 더 오래 머물러 보려 한다. 서둘러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지 않고, 저 달빛이 내려앉는 속도만큼 나도 천천히. 그렇게 쉬어 가자.
전시 개요
- 전시명 강선미 개인전 《고요한 사색 — Tranquil Thoughts》
- 기간 2026. 8. 3(월) ~ 9. 3(목)
- 장소 갤러리 로윤 4층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2가 86-3 와이빌딩 3, 4층)
- 작가 강선미(전북대학교 한국화 학사, 동대학원 미술교육 석사)
글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주)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