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심층전시리뷰] 강영롱·박효진·전지은 3인전, - 《성수의 기록》 레온갤러리 성수커넥트
성수동은 오래 머무르지 않는 동네다. 브랜드 팝업은 일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걷히고, 그 자리에 다음 팝업이 들어선다. 짧은 명멸(明滅)이 이 거리의 리듬이자 상업적 문법이다. 《성수의 기록》은 그 문법 위에 정확히 5일 동안, 자리를 빌려 다른 질문을 걸었다.
일시적인 공간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강영롱(b.1982), 박효진(b.1981), 전지은(b.1977) 세 작가가 이 질문에 내놓은 답은 회화도, 도예도 아닌 '관계' 그 자체였다.
기획이 아니라 관계가 만든 전시
세 사람의 이력을 나열하면 미술사적 접점은 거의 없다. 서양화, 동양화, 도예. 서로 다른 대학, 다른 사사(師事) 계보다. 그러나 이들을 묶은 것은 학맥이 아니라 생활사였다. 셋 다 아동미술 프랜차이즈 학원의 원장으로 시작해, 본사 지침과 무관하게 자기들끼리 연맹을 꾸려 아이들을 인사동과 역삼동의 전시장으로 데리고 다녔다. 지금은 흔해진 '어린이 작가전'을 이들은 그보다 훨씬 먼저, 순전히 아이에게 전시를 시켜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해왔다.
이 사실은 비평적으로 중요하다. 한국 청년·중견 작가 그룹전의 상당수는 기획자의 담론이 먼저 있고 작가가 뒤에 섭외되는 구조다. 반면 《성수의 기록》은 정반대의 경로를 밟았다. 관계가 먼저 있었고, 전시는 그 관계가 20년 가까이 누적된 뒤에야 겨우 형태를 얻었다. 그래서 이 전시를 기획전의 문법으로 채점하면 헐거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관계사의 문법으로 읽으면, 헐거움 자체가 이 전시의 진짜 재료다.
강영롱 - 하나의 도상이 견뎌온 시간
강영롱은 2005년 졸업 작품에서 세운 사각형, 곧 문(門)의 도상을 20여 년째 반복하고 있다. 새로운 소재를 찾기보다 변하지 않는 것에 골몰하게 되었다는 작가의 말은 자기 갱신을 미덕으로 여기는 동시대 미술 담론과는 결이 다르다. 오히려 이는 한국 단색화 세대가 견지했던 반복과 지속의 태도에 가깝다.
화면 속 문은 풍랑 한가운데 놓여 있다. 관람 중 박효진 작가가 던진 질문 - “저 문 밖이 처음일까, 아니면 다시 들어갔는데 또 다른 풍랑일까” - 은 이 도상의 해석을 한 겹 비틀었다. 강영롱의 문이 구원의 출구가 아니라 순환의 매듭일 수 있다는 것. 좋은 상징은 답을 봉인하지 않고 다음 질문을 여는데, 이 장면이 바로 그 사례였다.
이번 신작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영상과 사운드의 자체 제작이다. 상업 외주에 의존하지 않고 학원 강의를 마친 밤 시간을 쪼개 혼자 익힌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이 영상은 완성도보다 제작 조건이 먼저 평가되어야 한다. 다만 비평적으로는 이 지점에서 아쉬움도 남는다. 회화의 정적인 시간성과 영상의 서사적 시간성이 아직 완전히 통합되지는 않았다. 병치는 이루어졌지만 융합은 다음 단계의 과제로 남아 있다.
박효진 - 축적의 기술, 관계의 물리학
박효진의 작업은 이 전시에서 가장 방법론이 뚜렷한 축이다. 장지에 아교 농도를 짙게 하여 호분을 반복해 올리고, 그 위에 먹과 안료를 붓·스포이드·스프레이로 각기 다르게 떨어뜨린다. 호분은 한 번의 붓질로 완성되지 않는 안료다. 얇게 여러 겹 쌓여야 비로소 흰색의 밀도에 도달한다. 이 물성 자체가 작가의 주제를 선취한다.
여기서 그의 이력을 짚지 않을 수 없다. 동양화를 전공한 뒤 미술치료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매체마다 인간에게 일으키는 심리적 작용이 다르다는 것을 임상 현장에서 체득했다. 수채는 이완을, 드리핑은 해소를 일으킨다는 미술치료학의 명제가 그의 조형 언어의 배후에 있다. 즉 그의 드리핑은 표현주의적 우연성의 미학이 아니라, 임상적으로 검증된 정서적 방출 행위의 조형적 번역이다. 이것이 그의 작업을 잭슨 폴록류의 액션 페인팅과 구별짓는 지점이며, 필자가 이 작가의 화면에서 가장 눈여겨본 부분이다.
작가가 반복적으로 발화한 개념은 '관계의 온도'다.
“오래된 인연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깊이 쌓였고 아주 적당한 온도로 오래 유지되었다는 거잖아요.”
뜨거웠던 관계는 어느 순간 소식이 끊기지만, 미지근하게 유지된 관계는 남는다는 관찰이다. 이 명제는 그의 화면 구조와 정확히 대응한다. 강렬하게 한 번에 떨어진 안료는 눈에 띄지만 쉽게 흩어지고, 여러 번 얇게 쌓인 호분만이 화면에 남아 다음 층을 받아낸다. 조형과 주제가 이렇게 물리적으로 일치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도자기 슬립을 이용한 드리핑이라는 신규 매체 실험도 병행했다. 종이 위에서는 번지던 안료가 흙 위에서는 반대로 오그라든다는 사실을 작가는 직접 확인했고, 이 발견을 아직 완결된 작품으로 내놓지 않은 채 바닥에 내려두는 선택을 했다. 미완의 실험을 그대로 전시장에 노출하는 이 태도는, 결과 중심의 갤러리 관행에 대한 조용한 이의 제기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전지은 — 도구의 자기부정, 세라믹 연필의 역설
전지은의 세라믹 연필 연작은 이 전시에서 가장 개념적으로 도발적인 작업이다. 먹감지를 찢어 붙여 만든 연필 획의 몸체가 조명을 받으면 하나의 선이 여러 선으로 분화한다.
이 작업의 핵심은 재료의 자기모순에 있다. 흑연 연필은 마모됨으로써, 즉 자신을 소진함으로써 기록이라는 기능을 완수하는 도구다. 반면 고온의 불을 거쳐 탄생한 세라믹은 마모되지 않고 영속한다. 작가는 이 두 물성을 하나의 형태 안에 겹쳐, 스쳐 지나가는 무형의 일상을 소진되지 않는 영구적 사물로 응결시켰다. 도구로서의 기능을 스스로 폐기하는 순간, 연필은 '기록하는 주체'에서 '기록된 객체'로 신분을 바꾼다. 이것은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수행한 전복과는 다른 종류의, 그러나 구조적으로는 유사한 개념적 전환이다.
작가가 셀프 인터뷰에서 밝힌 창작 동력도 흥미로운 참조점이다. 그는 자신을 움직이는 힘이 도파민이며, 영감이 아니라 마감이 작업을 시작하게 만든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이는 낭만주의적 영감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태도지만, 동시에 다작을 지속하는 실무형 작가들의 공통된 생산 방식이기도 하다. 교육이 작업의 방해 요소가 아니라 가장 큰 축이라는 그의 말은, 예술 노동과 재생산 노동을 분리해온 근대적 작가상에 대한 실천적 반박으로도 읽힌다.
통섭적으로 읽기 - 완성은 관객에게 위임된다
이 전시의 구조적 핵심은 벽이 아니라 벽 앞의 여백에 있다. 전시장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옆에는 관객이 메모를 붙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작가의 기록 위에 관객의 경험이 얹힌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틀로 보면 이는 발신자가 메시지를 완결하고 수신자가 그것을 해독하는 선형적 구조가 아니라, 수신자의 개입이 있어야 비로소 텍스트가 완성되는 상호작용적 구조다. 전시는 폐막 시점이 아니라 방문자가 늘어난 만큼 두꺼워진다. “우리는 기록하는 사람들”이라는 세 작가의 선언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관객을 포함하고 있었던 셈이다.
세 사람의 매체는 회화, 영상, 드리핑, 세라믹으로 완전히 갈라지지만 태도는 하나로 수렴한다. 결과보다 과정에 값을 매기고, 그 과정을 반드시 기록으로 남긴다는 원칙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이들은 셀프 인터뷰, 3인 대담, 계절의 기록을 엮어 매거진 창간호까지 발행했다. 작가 노트라는 관습적 형식이 부담스러워 의도적으로 '날것'을 택했다는 설명대로, 찜질방에서 새벽까지 이어진 대화가 거의 각색 없이 지면에 옮겨졌다.
이 전시의 미덕은 명확하다. 담론이 작품을 앞서 설계하는 대신, 20년의 생활사가 자연스럽게 조형 언어로 응축되었다는 점. 미술치료학이라는 인접 학문이 회화의 물성 실험에 실질적인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는 점. 그리고 참여형 구조를 통해 '완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관객에게 위임했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성수동 팝업 특유의 일회성을 오히려 주제화하는 데 성공했다.
AI가 문장의 격을 대신 다듬어주는 시대에, 흉내 낼 수 없는 것은 결국 콘텐츠다. 무엇을 겪었고 무엇을 물었는가 하는 축적. 세 작가는 이미 그 축적을 20년째 진행해왔고, 이번 전시와 매거진 창간호는 그 긴 과정의 첫 공식적 매듭이다. 다음 매듭이 베이징에서 지어질 때, 이 관계의 조형적 언어가 어떤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7월 30일은 필자의 생일이었다. 목요일이라서 갤러리투어하는 날이었고, 오후에 양천문화재단 강의를 마치고 바로 성수로 이동했다. 작품이 궁금해서 방문하기도 했지만 전시를 감상하며 세 작가의 다른 듯 같은 결의 생일선물을 한꺼번에 받은 느낌이었다.
박효진 작가는 이제 한국작가후원연대 ‘아트인코리아’ 매체의 중국특파원으로도 활동하기로 했다. 중국 베이징에 주재하며 전시소식도 전하고, 중국 미술인들도 인터뷰하고, 꼭 미술이 아니어도 문화예술 전반의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다. 맛집도 빼놓지 않고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필자는 아마도 어제의 생일을 평생 잊지 못할 거 같다. 세 작가와 새로운 관계를 벽에 걸고 왔으니 말이다.
<작가 소개>
박효진(b.1981)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차의과학대학교 미술치료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치료를 전공했다. 그림을 잘 그리게 가르치는 일보다, 아이가 행위를 통해 무엇을 해소하는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이후 아동미술학원을 운영하며 강영롱·전지은 작가를 만났고, 세 사람은 본사와 무관하게 자체 연맹을 꾸려 아이들의 전시를 기획해왔다. 현재는 기업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베이징에 거주하며, 북경 ISB 국제학교의 학부모 방과후 클럽 지도교사로 아이들과 미술 활동과 책 읽기를 나누는 것으로 가르치는 일에 대한 갈증을 달랜다. 작업은 장지에 아교와 호분을 반복해 쌓아 올리고 그 위에 먹과 안료를 떨어뜨리는 방식이다. 쌓이는 것과 흘러내리는 것, 그 사이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다 흐려지는 것들을 통해 ‘관계의 온도’를 묻는다. 최근에는 도예의 슬립을 활용한 드리핑으로 매체를 확장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강영롱(b.1982) 경북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2005년 졸업 작품에서 처음 세운 사각형을 20여 년간 이어오며,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빛을 그린다. 김포와 목동에서 아동미술 교육을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영상과 음악을 직접 제작해 회화와 병치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전지은(b.1977)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교육 석사, 도예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방배동에서 아동미술학원을 운영하며 작가·교육자·전시기획자의 역할을 함께 수행한다. 세라믹으로 만든 연필 연작과 일상의 기록을 담은 다이어리 설치를 통해 ‘기록으로서의 교육’을 이야기한다.
글 이상민
미술인문학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이노바랩(주) 대표. 연세대학교 수학,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통섭미술관기행》,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등 통섭미술 및 경제경영 시리즈 저술.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기획이사.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