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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 (34)

전시Review는 동시대 전시를 깊이 있게 바라보는 리뷰 콘텐츠입니다. 작품과 공간, 전시의 흐름과 맥락을 기록하며 다양한 시선과 해석을 함께 소개합니다. 단순한 관람 후기를 넘어 전시가 전달하는 의미와 감각을 함께 탐색합니다.





색은 어떻게 공간이 되는가 - 천미진 개인전, 라흰갤러리    네이버 구글

천미진 개인전 <어디서 색이 접히는가 Where Hue Is Folded> 2026.6.18. - 7.25. | 라흰갤러리 색은 더 이상 캔버스 위에 머무르지 않는다. 천미진의 화면에서 색은 겹겹이 쌓이고 스며들며 마침내 평면을 빠져나와 공간이 된다. 회화와 건축을 전공한 작가의 손끝에서 구조는 골격이 아니라 관계가 되고, 회화는 오브제가 아니라 신체와 맞물리는 지각의 사건이 된다. 칼비노의 도시, 안토니오니의 색면이 그러했듯, 천미진의 색 또한
이상민   승인 2026.06.19 23:38  |  최종 수정 2026.06.2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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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각지 라흰갤러리에서는 천미진의 개인전 <어디서 색이 접히는가 Where Hue Is Folded> 2026 6 18일부터 7 25일까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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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미진 작가

 

세잔은 빛에 따라 변하는 색을 그리기보다 사물의 본질적 색을 분할해 여러 겹으로 얇게 덧칠하는 방식으로 입체감을 만들었다. 색채를 '재현'이 아니라 '구성'의 수단으로 삼아 대상의 본질을 포착하려는 이러한 접근은 천미진 작가의 색에 대한 철학과 닿아 있다. 그러나 천미진의 색채론은 세잔의 색채론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색이란 '구성'의 주체이기 때문에 빈 공간에 비추든 종이, 섬유에 얹히든 기본적으로 유동적인 것이며, 그 색을 관찰하는 감상자 또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에 감상하는 색 또한 가변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천미진의 색은 캔버스에, 천에 또는 가변설치에서 더 돋보인다. 아크릴을 얇게 펴바르고 지우고 쌓으며 만들어진 색은 시간을 담고 우리에게 부유하는 색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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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phorama> Acrylic on fabric, Aluminum structure, Metal joints, Silicone, Urethane cord, Thread, 245 x 150 x 277 (D) cm, 2026 (출처: 라흰갤러리 홈페이지)

 

돌이켜보면 2024 8, 갤러리인에서 열린 작가의 20년 만의 첫 개인전 <Trans in Trance>에서 나는 작가가 한국과 독일, 이탈리아를 오가며 축적해온 물리적·문화적·언어적 경계의 감각을 회화와 건축의 교차점에서 읽어낸 바 있다. 그때의 색은 내면과 외면의 경계, 초월의 순간을 담아내는 매체였다. 얇게 바른 아크릴에 물을 뿌리고 말리고 다시 쌓아올리는 그 반복의 시간 속에서, 색은 감정을 실어 나르는 그릇이었고, 중첩된 색과 보색의 마주침은 관람자에게 일종의 초월적 체험을 건네는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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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흰갤러리 전시장 전경

 

이번 라흰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어디서 색이 접히는가 Where Hue Is Folded>는 그로부터 다시 한 걸음 나아간 자리에 있다. 라흰갤러리 조은영 큐레이터의 전시글에 따르면, 작가가 천착해온 '접힘'이라는 화두는 표면의 굴곡이 아니라 평면을 넘어선 색이 밀도와 거리의 감각으로 입체적 관계를 활성화하는 '상태의 전환'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형상이 구부러지는 사건이 아니라, 색이 표면을 초월해 공간의 차원으로 감지되기 시작하는 찰나를 포착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이는 색을 작가의 통제 아래 놓인 결과물이 아니라, 재료와 조건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호 교섭의 관계로 바라보는 천미진다운 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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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흰갤러리 전시장 전경 


여기서 나는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떠올린다. 이 소설은 늙어가는 황제 쿠블라이 칸과 젊은 탐험가 마르코 폴로의 가상 대담을 다루고 있다. 소설의 제6 '눈과 시선의 도시들'에서는 도시를 보는 방식이 도시의 의미를 바꾸며, 보는 사람의 시선이 도시를 만든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도시는 객관적 실체보다 보는 방식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천미진의 작품에서도 색을 보는 방식이 색의 의미를 바꾸며, 보는 사람의 시선이 색을 만든다. 칼비노는 도시를 하나의 완결된 형상이 아니라, 기억과 욕망과 시간이 끊임없이 겹쳐 쓰여지는 '접힌 텍스트'로 그려냈다. 마르코 폴로가 전하는 도시들은 결국 하나의 베네치아가 여러 겹의 시선으로 펼쳐진 변주에 다름 아니었듯, 천미진의 화면 또한 하나의 색이 여러 겹의 시간을 통과하며 다시 쓰여진 결과다. 칼비노의 도시가 서술될 때마다 새로운 층위를 얻듯, 천미진의 색은 보는 이의 위치와 시간에 따라 매번 다른 깊이로 '접혔다 펼쳐진다'. 문학이 언어의 층위로 공간을 구축하듯, 천미진은 색의 층위로 공간을 구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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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미진 작가 작품 모음 (출처: 라흰갤러리 홈페이지)

     

또 한편으로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붉은 사막 Red Desert>(1964)이 겹쳐 떠오른다. 안토니오니는 산업화된 풍경 속 인물의 불안과 소외를 채도와 색면 그 자체로 표현했다. 그에게 색은 배경이 아니라 심리적 공간을 조형하는 주체였고, 건축적 구조물과 안개, 연기, 오염된 빛이 뒤섞이며 인물의 내면을 대신 말해주었다. 천미진이 독일에서 익힌 건축적 구조 감각과 이탈리아에서 체득한 색과 빛의 교섭을, 회화와 설치의 경계에서 풀어내는 방식은 안토니오니가 영화적 미장센으로 심리적 공간을 구축했던 태도와 닮아 있다. 두 작가 모두에게 색과 구조는 재현의 도구가 아니라, 보는 이의 지각을 재편하는 능동적 장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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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미진 작가 작품 모음 (출처: 라흰갤러리 홈페이지)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조형 언어의 근간에 건축이 자리한다는 점이다. 조은영 큐레이터는 이러한 작가의 시각이 독일에서 건축을 전공하며 쌓은 실무 경험에 근간을 둔다고 짚으며, 작가가 구조를 형상을 지탱하는 골격이 아니라 요소 간의 관계를 조직하는 '조건'으로 파악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독일 유학 시절부터 발전시켜 온 구조적 아이디어를 구현한 2024년 밀라노 설치작 《Morphorama》가 구조 자체의 운동성을 겨냥했다면, 이번 개인전은 그 구조적 감각에 색채와 회화의 논리를 결합해 평면 너머의 실제적 지각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변별점을 갖는다는 것이 큐레이터의 진단이다. 수평에서 수직으로, 다시 수직에서 수평으로 전환되는 설치 구조물들은 관객의 위치에 따라 색채와 선형이 여러 방향에서 촘촘히 읽히도록 만들고, 보는 이의 이동에 맞춰 색의 순서와 전후 관계를 끊임없이 재배열한다. 회화가 더 이상 멈춰 있는 오브제에 머물지 않고, 신체의 능동적 지각과 맞물리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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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phorama> Acrylic on fabric, Aluminum structure, Metal joints, Silicone, Urethane cord, Thread, 245 x 150 x 277 (D) cm, 2026

 

라흰갤러리의 복층 구조와 계단, 지하와 1층을 잇는 보이드 공간은 이러한 작업의 성격을 가장 적확하게 현시하는 무대가 되어준다. 조은영 큐레이터의 글이 짚어내듯, 보이드 중앙의 대형 설치물은 지하와 1층에 나뉘어 배치된 회화와 조형물을 유기적으로 매개하며 작업 사이를 연결하는 움직임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시선의 고저차와 보행의 변화를 경험하는 동안, 관람객은 면과 색의 가변적 관계가 빚어내는 시각적 징후들을 몸으로 마주하게 된다. 관람은 정해진 형식을 따르는 행위가 아니라 시점의 변화에 따라 색과 구조가 실시간으로 재구성되는 생성적 지각의 과정으로 전환된다. 마치 칼비노의 독자가 도시를 한 바퀴 돌 때마다 새로운 층위의 서사를 발견하듯, 관람객은 갤러리를 오르내릴 때마다 색과 구조가 새로 접히고 펼쳐지는 또 하나의 도시를 경험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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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미진 작가 작품 모음 (출처: 라흰갤러리 홈페이지)    

 

결국 천미진이 다루는 색이란 작가의 의도로 귀착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재료와 조건의 우발적 조응으로 빚어지는 잠정적 상태, 곧 색과 재료와 구조가 매 순간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색이 구조를 만나 공간의 지평으로 확장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조형적 조건과 그것을 경험하는 능동적 지각 사이의 긴밀한 교차를 통해 고동하는 감각의 풍경과 마주한다. 한국과 유럽, 회화와 건축, 평면과 공간, 그리고 문학과 영화의 서사적 층위까지 가로지르며 경계 위에 서 있던 작가가 그 경계면에서 끓고 있는 동적인 변화를 마침내 실제 공간으로 풀어낸 자리, 이번 전시는 그렇게 천미진의 작업이 도달한 뚜렷한 도약의 국면을 보여준다.


작가 소개

천미진(b.1979)은 홍익대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 조형예술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르 코르뷔지에, 루이스 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카를로 스카르파의 작업을 통해 빛과 물성, 구조적 균형에 대한 안목을 키웠으며, 동시에 줄리 메레투, 알베르트 외렌, 빌렘 데 쿠닝, 헬렌 프랑켄탈러, 마크 로스코 등 추상 회화 작가들의 영향 속에서 공간과 색, 형태를 깊이와 움직임, 감정을 실어 나르는 동적인 힘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한국에서 자라며 전통과 현대의 조화, '비움' '균형'이라는 개념에 예술적 감수성의 뿌리를 두었고,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재료와 색, 빛과 공간이 얽혀드는 방식에 깊이 매료되며 최근 작업의 토대를 다졌다. 20년 만에 한국 갤러리에서 연 개인전 <Trans in Trance>(2024.8)에서는 거주지를 옮기며 체득한 물리적·문화적·언어적 경계의 감각을 회화와 건축의 교차점에서 풀어냈고, 같은 해 밀라노에서 발표한 설치작 《Morphorama》에서는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모듈형 시스템을 통해 정체성이 유동하는 과정 자체를 작품화했다. 2026년 라흰갤러리 개인전 <어디서 색이 접히는가 Where Hue Is Folded>는 이러한 건축적 구조 감각과 회화적 색채 언어를 결합하여, 평면에서 출발한 색이 공간의 차원으로 확장되는 지점을 탐구하는 작가의 최근작이다.


글쓴이 소개

이상민은 미술인문학자이자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다. 수학과 매스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으며, 전략기획 컨설팅펌 이노바랩()을 경영하고 있다. 미술품 컬렉팅과 더불어 비영리단체 한국작가후원연대(Korea Artist Sponsor Club) 보딩멤버 겸 이사장으로 예술가 후원과 문화 생태계 구축에 힘쓰고 있다. 미술감상에 통섭적 아트커뮤니케이션 이론을 도입하여 <통섭미술관기행> <통섭미술 취향의기록> <아티스트 코드 80> <컬렉터스 코드 80> 등 통섭미술 시리즈를 저술했으며, 최근에는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통섭과 협업 AI 이후 인간의 전략> 등 리더십·경제경영서 시리즈를 출간했다. 대학교 평생교육원의 미술인문학 강의와 갤러리의 미술인문 아트살롱을 통해 컬렉터를 발굴하는 등 미술감상 교육에 매진하고 있으며, 한국구상조각회, 양평아트로드포럼 등 예술인 단체의 기획이사로, 여러 갤러리·단체와 함께 전시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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