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년의 시간을 건넌 붓질 - ART SPACE X 한불교류전이 묻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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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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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년의 시간을 건넌 붓질 - ART SPACE X 한불교류전이 묻는 것    네이버 구글

ART SPACE X | 한불교류전 심층 리뷰 Art Space X, 서울시 서초구 청룡마을길 31 2026.06.02 – 06.28 참여작가: 강경구 · 김민성 · 김시현 · 김인중 (한국) / Denis Brihat · Cesare Di Liborio · Thomas Besset · Florence Dussuyer · Florence Verrier (프랑스)
이상민   승인 2026.06.12 00:19  |  최종 수정 2026.06.12 00:44

전시장 문을 들어서는 순간, 하나의 질문이 공중에 떠 있다는 것을 느낀다. '140년이라는 시간은 두 나라의 예술가들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한국과 프랑스는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이후 공식 외교 관계를 맺었다. 그 해로부터 꼭 140년이 지난 2026년 여름, Art Space X는 한국 작가 4인과 프랑스 작가 5인을 한 공간에 불러 모았다. 기념전이라는 말이 주는 의례적 무게가 없지 않으나, 이 전시는 과거를 박제하는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예술을 통한 만남, 미래를 잇는 동행'이라는 주제가 암시하듯, 회고보다는 전망, 완결보다는 열린 구조를 선택한다. 나는 그 선택이 옳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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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포스터 (자료제공: 아트스페이스X)    


통섭미술의 관점에서 이 전시는 여러 층위를 동시에 읽어낼 수 있는 풍경이다. 수묵의 시간성과 사진의 물질성, 민화의 집단적 기억과 조각의 사이보그 미학이 같은 공간을 나눠 쓴다. 그것들은 서로 닮아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기 때문에 대화할 수 있다. 예술의 교류는 언제나 동일성의 확인이 아니라 차이의 발견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이 전시가 단순한 국제 교류전 이상의 함의를 갖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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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오프닝 행사 장면(자료출처: 아트스페이스X 제공)       

 

I. 140년의 맥락: 한불 예술 교류의 지층

1886년의 조불조약은 단순한 외교 협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선이 서구 문명과 본격적으로 접속하는 하나의 통로였고, 그 이후의 역사는 격랑 속에서도 두 나라의 문화적 감수성이 서로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었다. 20세기 초 이응노·남관·김환기가 파리에서 자신의 언어를 벼렸고, 20세기 후반에는 이우환이 일본을 경유해 유럽 현대미술의 지형도를 바꿔 놓았다. 프랑스는 한국 작가들에게 오랫동안 '증명의 무대'였다.

그러나 세계는 달라졌다. K-팝과 K-시네마가 문화 수출의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처럼, K-아트 역시 이제 '인정받기 위해 파리를 향하는'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번 한불교류전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 전환의 가능성이다. 한국 작가들은 이미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컬렉션에 작품을 올렸고, 국립현대미술관·리움·서울시립미술관이라는 내적 토대를 갖추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유럽과의 관계를 '비교'가 아닌 '공동 창조'의 프레임으로 재설정하는 것이다. Art Space X의 이번 기획은 그 전환의 감각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있다.

파리 Magna Gallery와의 협력 구도 또한 상징적이다. 단순 순회 전시가 아닌 양국 갤러리의 파트너십으로 구성된 이 전시는, 한국 갤러리가 유럽 미술계와 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선례가 될 것이다. 140년을 기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음 140년을 설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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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 전경


 

II. 한국 작가 4뿌리, , 포용, 그리고 빛

강경구 (b. 1952) — 기억이 풍경이 될 때

강경구의 소나무 앞에 서면, 우리는 그것이 나무를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즉각 안다.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이중섭 미술상(2000)을 수상한 그는, 국립현대미술관·리움·서울시립미술관 등 한국 최정상의 컬렉션을 아우르는 작가다. 그러나 그의 회화적 의지는 상찬의 목록이 아니라 장소와 기억의 문제로 수렴된다.

비평가 심상용의 표현을 빌리면, 강경구에게 소나무는 '역사를 매개하고 기억을 불러오는 시간적 기제'. 2011년 남한산성에서 포착한 병자호란의 기억무릎 꿇은 인조와 거만하게 팔짱 낀 적장이 적송(赤松) 사이로 현현하는 그의 화면은, 단순한 자연주의적 묘사를 넘어 역사 서술의 방식으로 기능한다. 붓질은 기록이 되고, 캔버스는 역사적 담지체가 된다.

그의 그림이 오늘의 미술 지형에서 갖는 독특한 위치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글로벌한 동시대 미술이 탈-장소성과 유목적 감수성을 전략화할 때, 강경구는 오히려 정주(定住)의 미학을 선택한다. 이것은 시대착오가 아니다. 뿌리 없는 아름다움은 결국 부유(浮遊)에 그치고 만다는, 오랜 미술사적 진실에 대한 그만의 응답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수묵별미》(2024), 3회 전남 수묵 비엔날레(2023) 등 주요 기획전에서의 꾸준한 존재감이 그 신뢰를 뒷받침한다.

"나의 작업에서 소나무는 재현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바람이 불 때마다 소리를 내며 되돌아오는 기억의 일환들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 비평 텍스트(심상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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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b. 1971) — 결핍에서 출발하는 복의 회화

민화를 현대회화의 문법으로 재번역하는 작가 가운데 김민성만큼 자신의 방법론을 내밀하게 언어화하는 이는 드물다. 그는 '나는 한때 복이 없다고 생각했다'는 고백으로 자신의 복주머니 연작을 시작한다. 결핍의 자리를 채우려는 강렬한 욕구가 오히려 충만을 향한 예술적 의지로 전화(轉化)된다. 이 역설이 그의 회화를 단순한 전통 도상의 재현과 구별한다.

기술적으로도 그의 작업은 주목할 만하다. 석채·아크릴·분채를 혼합하여 화면을 층층이 쌓아 올리는 방식은, 자수의 시간성한 땀 한 땀의 반복과 집중을 회화의 시간으로 번역한다. 붓이 바늘을 대체하고, 안료가 실의 촉감을 대신하는 그 순간, 김민성의 화면은 물질성과 시간성이 중첩된 특유의 밀도를 얻는다. 검은 배경 위에 떠오르는 복주머니는 어둠 속의 존재론적 발광(發光)처럼 빛난다.

터키 CerModern(2023), 스위스 초대전(2022), 밀라노 특별전(2017) 등 국제 무대에서의 활동이 보여주듯, 그의 민화 현대화 작업은 한국 전통 문화의 세계화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실증한다. 유럽 관객에게 복주머니는 낯설지만, 욕망과 불안과 치유라는 보편적 주제는 어느 문화권에서도 동일하게 공명한다.

"복주머니는 욕망을 담는 그릇이자, 불안을 치유하는 표면으로 기능한다." — 김민성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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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현 (b. 1971) — 보자기, 세계를 품는 유연한 철학

김시현은 550회 이상의 전시 이력이 보여주듯 왕성한 창작력의 작가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단순히 '다작'으로 읽는 것은 오독이다. 그는 보자기라는 단일한 모티프 안에서 한국 문화의 철학적 핵심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보자기의 미학적 본질은 유연성이다. 둥근 것을 싸면 둥글게, 길쭉한 것을 싸면 길쭉하게 변하는 그 유동적 포용성은, 서양의 고정된 용기(容器) 개념과 근본적으로 다른 동양적 사유를 체현한다. 故 이어령 선생이 '보자기처럼 디자인된 문명'을 미래의 인간적 문명상으로 제시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김시현의 화면에는 오방색의 화려함 안에 현대 명품 로고가 살짝 얼굴을 내밀며, 전통적 포용성과 현대적 욕망의 긴장이 한 화면 위에 공존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주일 한국대사관저, 코카-콜라, 그랜드하얏트제주 등 공공·기업 컬렉션에 걸쳐 있는 그의 작품 이력은, 보자기라는 모티프가 한국 문화의 브랜드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이지리아 아부자에서의 한복 전시(2025)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은 이미 글로벌 유통의 회로를 타고 있다.

"보자기는 자연이든 인간이든 무생물이든 그것들의 아픈 사연이나 상처를 품어 안아 치유해 주고 삶을 보듬어준다." — 김시현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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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중 (b. 1940) — 빛의 사제, 동서의 경계를 지우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기는 이름은 아마도 김인중 신부일 것이다. 도미니코 수도회의 사제이자 화가인 그는, 1940년생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가장 날카로운 예술적 질문과 씨름한다. '빛이 있으라(창세기 1 3)'는 하느님의 첫 명령이 그의 전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명제다.

그의 이력은 한불 예술 교류의 생생한 축약본이기도 하다. 서울대 회화과에서 남관과 장욱진의 영향을 받은 그는 스위스로 유학하여 동양적 감수성여백, 번짐, 강약의 조화을 서양 유화 재료와 삼투시켰다. 그 결과는 세계 50여 개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로 현현했고, 2010년 프랑스 정부는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를 수여함으로써 화답했다. 스위스 《Le Matin》이 선정한 세계 10대 스테인드글라스 작가(2021), 프랑스 가톨릭 아카데미 회원(2016)은 그가 단순히 한국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작가가 아니라, 유럽 미술 문화의 내부에서 그 패러다임을 전환시킨 작가임을 증명한다.

샹보르성 개인전(2025), 파리 갤러리 장 프르니에 전시(2022)에 이어 이번 Art Space X 전시는, 엄격히 상업 갤러리를 멀리해 온 그가 '오랜 신뢰'를 기반으로 허락한 드문 기회다. 김인중의 '빛의 추상'은 동서양이 하나의 예술적 언어로 수렴될 수 있음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증거다. 유럽의 성당 창문에서 추상적 영성으로의 전환, 그것은 단순한 미술사적 사건이 아니라 문명 간 대화의 가장 아름다운 형태였다.

"그는 예술과 빛, 그리고 하느님을 동일체로 본다. 예술이란 어둠에서 벗어나 빛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다." — 작가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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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프랑스 작가 5경계, , 자연, 그리고 사이보그

Denis Brihat (1928–2024) — 식물을 보는 눈, 사진을 예술로 끌어올린 거장

드니 브리아는 이번 전시의 작고 작가이자, 동시에 가장 묵직한 역사적 무게를 지닌 이름이다. 1928년생으로 2024년 타계한 그는, 사진이 회화나 조각과 동등한 예술 형식으로 인정받던 시대의 최전선에 있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퐁피두센터, 뉴욕 현대미술관(MoMA),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등 세계 최정상 기관의 컬렉션이 그의 위치를 말해준다.

그는 식물의 미세한 형태에서 인간의 눈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우주를 끌어냈다. 화학적 토닝(toning) 기법을 마치 화가처럼 사용하며 사진을 순수 예술의 위상으로 끌어올린 그의 방법론은,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해체하는 동시에 자연의 내면을 응시하는 사유와 맞닿는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작품은 한국 수묵화의 여백과 묘한 공명을 이룬다.


Cesare Di Liborio (b. 1960) — 이원론의 경계에서 찍는 사진

이탈리아 레조에밀리아 출신으로 프랑스 파르마에 거주하며 작업하는 체사레 디 리보리오는 경계(frontière)와 자연(nature)을 병치하여 현실과 비현실, 알려진 것과 미지의 것, 삶과 죽음의 이항대립을 사진의 언어로 탐구한다. 자크 르 고프, 이탈로 찬니에르 등 저명한 지식인들의 텍스트를 담은 다수의 저서, 프랑스 국립도서관·뮤제 레아튀·J. 폴 게티 미술관·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등 20여 개 세계 기관의 소장 이력은 그가 얼마나 깊이 현대 사진사에 각인된 작가인지를 보여준다.

그의 작업이 한국의 관객에게 흥미롭게 읽히는 지점은 이분법에 대한 태도다. 경계를 허무는 것이 아니라 경계 자체를 주제로 삼아 그 긴장을 가시화하는 방식은, 음양(陰陽)의 상호 생성적 관계를 탐구해 온 한국 사유와 의외의 접촉면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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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Besset (b. 1998) — 사이보그 조각과 탈인간 중심의 세계

이번 전시의 세대적 긴장감은 1998년생 토마스 베세로부터 온다.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와 낭트 미술학교를 거친 그는 조각, 3D 프린팅, 전자 기술, 종이 마셰를 하나의 작업 안에서 결합하며 자연과 기계, 생명체와 인공물의 이분법 너머를 탐구한다.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은 야콥 폰 윅스퀼의 '움벨트(Umwelt)'—각 생명체가 세계를 지각하는 고유한 인식의 지평. 인간 중심적 지각에서 비인간적 지각으로의 이동, 이것이 그의 조각이 제기하는 근본적 물음이다. 금속 와이어의 복잡한 가지 구조 안에서 건축, 식물, 뼈의 형태가 어렴풋이 겹치고, 공기와 물의 통과로 불규칙한 소리의 범위가 생성되는 그의 작품은, 마치 정해지지 않은 지성을 지닌 새로운 존재처럼 공간을 점유한다.

2025년 파주 레지던시 참여는 그가 한국 미술계와 교류의 씨앗을 심은 순간이기도 하다. 세브르 국립도자제작소, 유럽 도예 연구소 레지던시, 조제프 엡스타인 조각상 수상(2024) 등으로 이미 유럽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그에게, 이번 한불교류전은 아시아 무대를 향한 첫 공식 발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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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ence Dussuyer (b. 1978) & Florence Verrier — 몸의 회화, 정물의 추상

플로랑스 뒤수이에의 작가노트는 이번 전시의 가장 긴 물음표 하나를 품고 있다. '예술 작품 창작에서 인간의 자리는 무엇인가?' AI가 창작의 영역까지 침투하고 이미지가 과잉 생산되는 시대, 그는 회화의 물질성과 작가의 몸을 통해 창작을 옹호한다. 리옹 응용미술, 생테티엔 조형예술 석사, 호치민 미술대학 연수로 이어지는 그의 교육 이력은 경계를 넘는 감수성의 토양이다.

특히 폴 디니 미술관 소장작 《Quand viendront les jours indomptables(6m × 2m)로 대표되는 기념비적 형식에 대한 탐구는, 여성의 몸과 존재와 욕망을 역사적 서사 안에 위치시키는 그의 방법론을 집약한다. Les Endormies(잠든 여인들, 2014–), Les Éveillées(깨어난 여인들, 2019–) 같은 연작의 시간적 지속성은, 반복을 통해 의미가 쌓이는 방식에서 동아시아 회화의 수행적 태도와 공명한다.

플로랑스 베리에는 정물 사진가로서 대상에 극도로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형상과 추상의 경계를 해체한다.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더 가까이'라는 그의 태도는 현상학적 탐구에 가깝다. 스위스 CEPV와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ENSBA), 아트마켓 석사를 거친 그는 프랑스·룩셈부르크·스위스의 개인 컬렉션에 작품을 올리며 유럽 컬렉터 시장에서 확실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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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통섭의 시선으로 읽는 전시차이가 만드는 의미

이 전시의 9인을 하나의 맥락으로 관통하는 키워드를 찾는다면, 나는 '경계의 해체와 재구성'을 들겠다. 강경구는 시간과 장소의 경계를, 김인중은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김민성은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김시현은 기능과 예술의 경계를 다룬다. 프랑스 측에서 브리아는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디 리보리오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베세는 생명과 기계의 경계를, 뒤수이에는 몸과 이미지의 경계를, 베리에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탐구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경계들이 하나같이 이분법적 해소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어느 쪽도 '결국 하나다'는 합일론적 결론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강경구의 소나무는 현재도 과거도 아닌 그 긴장 속에 머물고, 베세의 조각은 자연도 기계도 아닌 그 사이에서 호흡한다. 이것이 이 전시가 '대화'를 말하는 방식이다. 합의가 아니라 긴장의 유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교류의 형태다.

컬렉터의 눈으로 보면 이 전시는 매우 실용적인 기회이기도 하다. 140년 수교 기념이라는 역사적 맥락, Art Space X Magna Gallery Paris의 협력 구도, 중견과 신진이 교차하는 작가 구성은 컬렉션의 서사를 구축하기에 이상적인 조건이다. 김인중의 '빛의 추상'은 이미 검증된 가치이고, 토마스 베세의 조각은 유럽 미술계가 주목하기 시작한 미래 가치다. 두 작가를 같은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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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 전경      


 

V. K-아트의 유럽 진출, 이 전시가 열어야 할 문

나는 이 전시를 K-아트 유럽 진출의 하나의 모델로 읽는다. 지금까지 한국 미술의 유럽 진출은 대부분 개인 작가 단위의 레지던시·비엔날레 참가나, 정부 주도의 홍보성 기획에 의존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속 가능성의 측면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반면 이번 전시처럼 갤러리 대 갤러리의 파트너십, 양국 작가의 큐레이션적 병치, 그리고 수교 기념이라는 역사적 내러티브의 활용은 훨씬 더 단단한 구조를 갖는다.

유럽 미술 시장에서 한국 미술의 인지도는 아직 K-팝이나 K-드라마에 비해 현저히 낮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성의 증거이기도 하다. 이우환의 모노파 미학이 유럽에서 재발견된 것처럼, 수묵의 시간성과 민화의 상징 체계, 보자기의 철학적 함의는 충분히 유럽 컬렉터와 기관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고유한 언어다. 필요한 것은 그 언어를 번역할 플랫폼과 네트워크다.

Art Space X의 이번 기획이 파리 Magna Gallery와의 파트너십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단순한 전시 교류를 넘어 한국 갤러리가 유럽 미술 유통 구조에 직접 참여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한국작가후원연대(KASC)의 입장에서도, 이런 갤러리 주도의 국제 협력 모델은 적극 지지하고 확산시켜야 할 방향이다. 작가 지원이 단순 후원을 넘어 세계 무대로의 진출 경로를 개척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한국 미술의 유럽 진출에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고유한 미적 언어의 확신모방이 아닌 우리만의 미학적 문법. 둘째, 수평적 네트워크갤러리·기관·컬렉터 간의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 셋째, 서사의 힘단순 작품 소개를 넘어 한국 미술의 역사적·철학적 맥락을 함께 전달하는 스토리텔링. 이번 한불교류전은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시작점으로서 이보다 좋은 설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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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 전경    


 

VI. 에필로그 - 열린 결말의 의미

전시 서문은 이렇게 끝난다. '작품들 사이의 간극과 연결은 하나의 결론이 아닌 열린 구조로 남아, 관람자 각자의 해석과 경험 속에서 다시 이어집니다.' 이 문장이 나는 마음에 든다. 좋은 전시는 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질문을 남긴다.

140년 전 조불조약이 열린 이후, 두 나라의 예술가들은 서로의 언어를 탐색하며 각자의 미학을 깊게 했다. 그 긴 시간의 축적이 2026년 여름, 서울 서초구 청룡마을길의 작은 갤러리에서 조용히 응축된다. 강경구의 소나무와 김인중의 빛, 김민성의 복주머니와 김시현의 보자기 옆으로, 브리아의 식물 우주와 디 리보리오의 경계, 베세의 사이보그 존재들, 뒤수이에와 베리에의 몸과 사물들이 나란히 호흡한다.

이 전시가 진정으로 '미래를 잇는 동행'이 되려면, 이후의 일이 중요하다. 파리에서의 전시로 이어지는가. 한국 작가의 유럽 컬렉션 진입이 이루어지는가. 프랑스 작가의 한국 상설 네트워크가 형성되는가. 140주년 기념이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 전시가 그다음 전시를 부르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나는 지난 3개월 여 간 Art Space X의 봄학기 아트슐레 강의를 맡았다. 통섭미술을 베이스로 컬렉터를 위한 미술인문학 강의를 진행했고, 갤러리의 컬렉터 수강생들과 많은 교감을 나누었다. 단순히 전시와 판매가 목적이 아닌 컬렉터 발굴과 양성이 선행되는 그런 갤러리였다. 역시 이번 기획전도 특별한 감상을 안겨주었다. 나는 Art Space X를 응원한다. 그리고 이 전시에 온 모든 관람객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 눈앞의 작품들을 천천히 보라. 140년의 시간이 그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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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스페이스X 아트슐레 강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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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미술인문학자·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본 기사는 전시 자료(작가 CV, 전시 서문, 작가노트)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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