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언어, 혹은 잔해가 말을 걸 때 - Department of Cynical Delight, 갤러리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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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 (23)

전시Review는 동시대 전시를 깊이 있게 바라보는 리뷰 콘텐츠입니다. 작품과 공간, 전시의 흐름과 맥락을 기록하며 다양한 시선과 해석을 함께 소개합니다. 단순한 관람 후기를 넘어 전시가 전달하는 의미와 감각을 함께 탐색합니다.





재난의 언어, 혹은 잔해가 말을 걸 때 - Department of Cynical Delight, 갤러리온도    네이버 구글

Department of Cynical Delight는 2025년 미국 중부를 강타한 토네이도의 잔해를 기상학·언어학·체스 이론·디자인이 교차하는 통섭적 시각 언어로 번역해낸다. 이것은 재난의 기록이 아니라 재난을 해독하는 방법에 관한 전시다. Department of Cynical Delight 《Natural Disasters and Other Fantasies》 갤러리온도 · 2026.06.06 – 06.23
이상민   승인 2026.06.07 12:59

갤러리온도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잠시 멈췄다. 전시장 바닥을 점령한 녹색 플라스틱 팔레트들이 층층이 쌓이고, 그 위에 새하얀 3D 프린트 잔해들이 흑색 펠트 매트 위에 흩어져 있었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동시에 불편했다. 두 감각이 동시에 밀려오는 이 전시, 나는 그 순간부터 이미 이 작업에 깊이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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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artment of Cynical Delight - 조셉 버웰(Joseph Burwell, b.1970, 좌측) , 이우진(Woojin Lee, b.1971, 우측)      


Department of Cynical Delight - 이우진(Woojin Lee, b.1971)과 조셉 버웰(Joseph Burwell, b.1970)이 설립한 뉴욕 기반의 콜라보레이션 그룹이다. 디자이너이자 전 구글 재직자인 이우진과, 조각과 드로잉을 기반으로 초자연적 서사를 탐구하는 조셉 버웰. 부부이자 듀오 작가인 두 사람은 소비주의 미학과 기업 디자인 프로세스를 적극 차용하면서도 그것을 전복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한다. '냉소적 기쁨의 부서'라는 팀명부터 이미 그들의 태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현재 이우진은 뉴욕주립대학교 뉴팔츠 전임 교수로 재직 중이며, 조셉은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강의하고 있다.

재난을 언어로 읽는 방법

이 전시의 출발점은 2025년 미국을 강타한 일련의 토네이도 사건들이다. 아칸소주 디아즈, 켄터키주 런던, 일리노이주 매리언 - EF4급 강풍이 할퀴고 간 세 도시. 두 작가는 그 자리에서 미학적 소비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대신 연구자로 들어섰다. 드론 영상을 분석하고, NOAA(미국 해양대기청)의 기상 데이터를 수집하고, 뉴스 제보와 위성 이미지를 교차 검토했다. 이 치밀한 리서치의 결과물이 바로 이 전시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재난을 재현하거나 고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재난을 언어로 번역하려 했다는 점이다. 토네이도가 남긴 잔해를 단순한 파괴의 결과물이 아니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시각 언어의 체계로 바라본다. 실제 현장에서 재난 수습 용역이 투입될 때 잔해를 분류하는 세 가지 범주 - 식물성, 건축물, 인간이 만든 기계류 - 를 그대로 가져와, 그것들을 체스의 말로, 퍼즐 조각으로, 출판물의 언어 단위로 재전환한다. 분류는 이미 언어다. 그들은 그 사실을 예술로 증명한다.

 

 

재난을 경험으로 소비하지 않고, 언어와 역사와 문화적 맥락 속에서 꼼꼼하게 해독한다. 단어 하나에 담긴 중층적 의미의 층위 - 이것이 바로 이 작가들이 세계를 읽는 방식이다.

이상민, 전시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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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Tale of Two Cities(두 도시 이야기, 2026) 

       

팔레트 위의 체스판

전시의 중심에는 《A Tale of Two Cities(두 도시 이야기, 2026)가 자리한다. 48×48인치의 검은 펠트 매트 위에 23개의 3D 프린트 잔해 조각들이 배치된 대형 설치 작업이다. 작가들이 켄터키주 런던의 재난을 연구하다, 동일한 이름의 도시 - 영국 런던 - 에서 1851 6 21일에 체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국 중 하나인 '불멸의 게임(The Immortal Game)'이 치러졌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착상의 시작이었다.

체스에서의 공격과 방어, 그리고 토네이도와 인간 사이의 관계. 두 도시, 두 개의 런던, 두 종류의 전쟁이 하나의 작업 안에서 오버랩된다. 찰스 디킨스의 1859년 소설 제목을 빌린 것은 그러므로 단순한 언어 유희가 아니라, 역사와 재난과 게임이 공유하는 내러티브적 구조에 대한 통찰이다. 작업에는 '정해진 배치'가 없다. 전시장에서 보이는 구성은 하나의 예시일 뿐, 소장자나 미술관이 작품을 구입하면 원하는 방식으로 언제든 재배치할 수 있다. 재난 이후의 잔해처럼, 작품도 고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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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mage Reheasal No. 1 & No. 2 with Movable Pieces(2026) 


그리드가 말하는 것들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시각 문법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드다. 팔레트의 격자, 펠트 매트 위의 격자, 잉크 드로잉들 안의 격자. 이 좌표들은 여러 겹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위도와 경도를 나타내고, 체스판의 좌표가 되고, 3D 프린트와 디지털 출력 작업의 기준선이 된다. 그리드는 질서이자 분류이자 전장(戰場)이다.

물류와 운송의 도구인 팔레트는 근현대 자본주의 물류 체계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 위에 재난의 잔해를 올려놓는 행위는 파괴와 유통, 재난과 소비 사이의 아이러니한 관계를 조용히 폭로한다. 작가의 말처럼, 팔레트 자체가 이 그리드 시스템의 물질적 구현이다. 디자인과 예술에서 컴포지션을 구성할 때 그리드 시스템을 활용하듯, 이 팔레트의 격자는 재난의 지도학과 예술의 구성 원리를 하나로 묶는 매개가 된다.

주요 작품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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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fall · Xtratropical Subplot · Supercellular2026 · 종이에 잉크 · 각 50.2×50.2cm       


드론 영상·위성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잉크 드로잉 연작. 각각 64셀로 구획된 체스판 판형이다. Windfall(낙과)》은 뜻밖의 횡재와 토네이도로 쓰러지는 나무의 추락이라는 상반된 의미를 겹쳐놓는다. Supercellular(슈퍼셀 구조)》는 토네이도 발생과 밀접한 슈퍼셀의 회전기류를 좌표계로 포획한다. Xtratropical Subplot(비열대성 서브플롯)》은 열대 외 지역에서 형성되는 저기압 시스템이라는 기상 개념을 재난의 풍경으로 번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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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nius Loci · Casual Friday · 《《Diego's Day2026 · 종이에 잉크 · 각 50.2×50.2cm     


《Casual Friday》는 1856 '불멸의 게임' 2025 5 16일 금요일 켄터키 런던을 강타한 EF4 토네이도가 같은 요일에 발생했다는 우연의 교점에서 출발한다. 정식 대회가 아닌 '캐주얼' 게임이었음에도 전설이 된 체스 대국처럼, 재난 역시 일상의 금요일을 역사로 만들었다. Genius Loci(잔해의 지형)》는 특정 장소를 보호하는 수호령, 즉 장소의 정신을 의미하며 재난 이후 장소 정체성의 소멸을 묻는다. Diego's Day》는 디아즈(Diaz)가 스페인어로 '디에고의 아들'이라는 뜻임을 발견한 언어적 유희다. 64, 체스판과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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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llable2026 · 20×5.5×4cm,  PLA    2026 · PLA / 방모·PLA·ECO-UV5잉크·       


3층에 조용히 놓인 《Syllable(음절)》은 이 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였다. 쓰러진 나무의 파편을 하나의 언어적 단위인 '음절'에 비유한 3D 퍼즐로, 두 개의 나무 파편과 두 개의 정렬 핀으로 이루어진 이 작은 조각은 분해된 채로 전시된다. 완성된 결합이 아니라, 결합 이전의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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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Indoor Voice2026 · 78.7×152.4cm, 방모·PLA·ECO-UV5 잉크· 


Indoor Voice(실내용 목소리)》는 잔해의 실루엣들을 언어 단위로 배열하여 아직 쓰이지 않은 출판물 - 어린이책, 시집, 찬송가, 역사서 - 이 될 수 있는 언어 체계를 상상한다. 재난의 조각들이 책이 되고, 언어가 되고, 기억이 된다.


Whisper》는 3D로 제작된 잔해들이 포인트 클라우드로 변환되어 흩어지고 다시 결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물질이 데이터가 되고, 데이터가 다시 형태를 잃는 순환. 재난의 기억이 인간 의식 속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디지털 재현으로 시각화한 작업이다. 3-Day Narrative》는 NOAA 2025 Storm Data 기록에서 디아즈(아칸소), 런던(켄터키), 매리언(일리노이) 세 도시의 토네이도 사건 데이터를 추출하여 서사 구조로 재구성한다. 기상 데이터가 이야기가 된다. 숫자와 좌표가 인간의 사건이 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영문 원본이 한국어로 전환 작업되었으며, 전시 전날까지도 작업이 이어졌다는 사실이 이 전시의 현재진행형 성격을 잘 말해준다.

재난을 가지고 놀다

전시에서 가장 도발적인 제안은 《Debris Simulation Kit–V2(잔해 시뮬레이션 키트–V2, 2026). 실제 잔해를 스캔해 제작한 3D 프린트 조각들을 격자 매트와 함께 패키지로 담은 이 키트는, 관람자가 직접 나만의 재난 장면을 연출하고 인스타그램에 #mydisasterfantasy로 공유하도록 안내한다. 런던(켄터키)과 디아즈(아칸소) 에디션 두 종으로 구성되며, 자연물과 건축물 두 팀으로 나뉜 잔해 조각들은 체스 게임처럼 배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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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bris Simulation Kit–V2(잔해 시뮬레이션 키트–V2, 2026)


재난을 장난감으로. 파괴를 게임으로. 이 충격적인 제안은 그러나 단순한 조롱이 아니다. 우리가 이미 재난을 알고리즘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 - 뉴스 클릭, 드론 영상 감상, 재난 관련 콘텐츠의 알고리즘 소비 - 을 거울처럼 돌려 보여주는 장치다. '냉소적 기쁨'은 그래서 조롱이 아니라 비판적 각성의 다른 이름이다.

통섭미술의 시선으로

미술인문학자로서, 그리고 통섭미술(Consilience Art)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이 전시는 매우 인상 깊은 통섭의 실천을 보여준다. 에드워드 윌슨이 말한 '지식의 대통합'이 예술 현장에서 구현될 때 어떤 형태를 취하는지, 이 전시는 하나의 모범 사례가 된다. 이우진의 디자인·영상 언어와 조셉의 조각·고고학적 사유가 만나는 접점이 이미 통섭적이거니와, 그 결과물이 기상학·지리학·체스 이론·언어학·소비 문화 비평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특히 체스 이론과 재난 이미지의 접속, 언어 단위로서의 잔해, 데이터의 서사화 같은 시도들은 단일 전공의 논리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다. 이것이 바로 협업이, 그리고 통섭이 필요한 이유다. 이우진과 조셉 버웰은 각자의 전공 언어가 충분히 이질적이었기에, 그 마찰 속에서 단독으로는 불가능했을 시각 언어를 발명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어떻게 이게 예술이 되지?" 나는 그 질문이 이 전시의 가장 적확한 감상이라고 생각했다. 예술이 된다는 것, 혹은 예술로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묻게 만드는 전시.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상민, 전시 오프닝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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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전시를 보며 나는 자꾸 질문이 생겼다. 재난은 왜 아름다울 수 있는가? 파괴의 흔적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이 불편한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전시는 그 질문들에 직접 답하지 않는다. 대신 잔해들을 새로운 언어로 번역하여 우리 앞에 내려놓고, 각자가 그 의미를 읽어내도록 초대한다. 재난이 남긴 것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다시 언어화하며, 어떤 방식으로 다음 세대에 전달할 것인가이 전시는 그 불편한 질문 앞에 우리를 세운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갤러리온도 (ONDO)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7-1, 2–3F

T. +82-2-730-0120   galleryondo@gmail.com   @galleryondo

전시 기간: 2026.06.06 –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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