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 찬란하다 - 조상은 개인전 〈가장 깊고 눈부신 날들의 이야기〉
조상은 작가의 캔버스들은 어둠을 배경 삼아 스스로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조명이 아니라 물감의 겹겹한 시간에서 나오고 있었다. 빛을 그린 그림인데, 그림이 먼저 나를 비추는 것 같았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 만들어낸 감각이었다.
작가는 스스로 이렇게 밝힌다. "어두운 화면에서 점점 빛을 밝히는 과정을 통해 깊은 울림이 있는 빛을 발견하고 형상화한다." 그 한 문장이 이 전시 27점 전체를 관통하는 선언이다.
어둠을 지킴으로써 빛을 안다
노자(老子)는 말했다. 知其白,守其黑 — 흰 것을 알면서 검은 것을 지킨다. 빛의 본질은 어둠을 통해서만 드러난다는 역설은 동양 철학의 오래된 통찰이다. 조상은은 서양 유화 기법으로 그 동양적 사유를 구현한다. 8~10겹의 물감 중첩은 수묵화의 먹 쌓기와 닮아 있고,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구성은 '무(無)에서 유(有)를 낳는' 노장 미학의 회화적 번역이다.
서양 회화사에서 렘브란트는 빛으로 어둠의 신비를 극대화했고, 터너는 대기 속 빛의 운동을 포착했다. 조상은은 그 두 전통을 동시에 계승하면서 거기에 동양적 수행성(修行性)을 더한다. 한 점을 완성하는 데 3개월에서 6개월. 이 긴 시간은 단순한 제작 기간이 아니라 사유의 밀도다. 물감 한 겹 한 겹은 작가의 성찰이 쌓인 지층이다.
심리학자 칼 융은 '그림자(Shadow)'를 억압된 것이 아니라 통합되어야 할 전체성의 일부로 보았다. 조상은의 어둠은 바로 그 융의 그림자론으로 읽힌다. 어둠은 빛의 반대가 아니라 빛을 잉태하는 공간이다. 생명이 자궁의 어둠 속에서 자라듯, 그의 빛은 어둠이라는 모태에서 태어난다.
캔버스 위의 파동 방정식
물리학에서 빛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다.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Complementarity Principle)에 따르면 빛은 어느 하나의 성질만으로 규정될 수 없다. 조상은의 회화도 마찬가지다. 그의 화면에서 빛은 정지하지 않는다. 물감의 궤적은 파동이고, 겹겹이 쌓인 색채는 빛의 간섭 무늬다.
중첩 기법은 수학의 급수(級數) 개념과도 닮아 있다. 하나의 항이 다음 항을 만들고, 그 합이 수렴할 때 비로소 완성된 값이 나타나듯, 8~10겹의 물감은 각각의 항이며 최종 화면은 그 급수의 극한값이다. 예술은 감성의 영역이지만, 동시에 이처럼 정밀한 논리의 산물이기도 하다.
전시장을 채운 27점의 빛
전시장에는 대형 캔버스부터 손바닥만 한 소품까지 27점이 놓여 있다.
이 전시에서 가장 큰 작품인 《기나긴 삶은 빛이 되어: 생명의 탄생, 성장, 영원의 세계 no.33》 앞에서 나는 오래 서 있었다. 화면 중앙에서 빛이 상승한다. 아니, 빛이 태어난다. 어두운 아래에서 밝은 위로 흐르는 수직의 운동은 생명의 방향성 그 자체다. 지층처럼 쌓인 유화가 만들어낸 깊이는 단순한 두께가 아니라 시간의 축적이었다.
나를 가장 오래 붙잡은 것은 오히려 정사각형의 소품 《소우주 no.03》이었다. 40센티미터의 캔버스 안에 우주가 있었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거니와, 조상은의 소우주는 갈대의 내면에서 우주를 발견하는 행위다. 《끝없는 빛의 여정》 시리즈는 그 제목 그대로였다. 화면의 빛은 프레임 밖으로 계속 나가려 한다. 경계를 거부하는 빛 — 그것이 이 작가의 철학이다.
빛은 물리학이면서 철학이고, 음악이면서 회화다
릴케는 『말테의 수기』에서 "나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썼다. 보는 것은 단순한 시각 행위가 아니라 존재를 감지하는 행위다. 조상은의 빛은 눈으로 보이기 전에 몸으로 느껴진다.
이는 드뷔시의 음악과도 닮아 있다.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의 세 번째 곡 〈달빛〉이 소리로 빛을 그린 음악이라면, 조상은의 회화는 물감으로 빛을 연주한 악보다. 같은 빛, 다른 언어.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는 모든 예술과 학문이 하나의 언어로 통합되는 이상적 세계가 그려진다. 통섭미술의 감상은 그 유희를 현실에서 실천하는 행위다. 조상은의 빛 앞에서 나는 릴케를 읽었고, 드뷔시를 들었으며, 노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캔버스 앞에서 만났다. 지식의 분과(分科)는 인간이 만든 편의적 구분이지 세계의 본질적 구조가 아니다. 빛은 물리학이면서 철학이고, 음악이면서 회화이며, 우주이면서 내면이다.
컬렉터에게 권한다
나는 컬렉터 교육을 할 때 "작품은 벽에 거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들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 기준으로 조상은의 작품을 보면 이 회화들은 놀랍도록 일상친화적이다. 빛을 그렸기 때문이다. 빛은 삶의 모든 순간에 있다. 아침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저녁 식탁 위의 촛불, 새벽 홀로 켜는 스탠드 불빛. 그 모든 일상의 빛이 조상은의 캔버스 앞에서 철학이 된다.
특히 《하루의 빛과 사랑으로》, 《마음의 빛》, 《끝없는 빛의 여정》 소품 시리즈는 입문 컬렉터에게 적극 권하고 싶다. 크기는 작지만 철학은 크다. 이 작품들은 책상 위에, 침실 벽에, 서재의 한 켠에 놓였을 때 매일 아침 조용한 질문을 던진다. '오늘 당신의 빛은 어디에 있습니까?'
컬렉팅의 핵심은 '작가의 시간을 사는 것'이다. 조상은의 작품 한 점에는 3~6개월의 시간이 담겨 있고, 30년의 작업 이력이 그 뒤에 있다. 서울특별시청, 인천미술은행,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등 공공기관이 소장한 이유가 있다. 이 작품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질 회화다. 빛처럼.
전시를 나오면서 나는 한 가지 확신을 갖게 되었다. 조상은 작가의 예술은 '완성된 빛'이 아니라 '빛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는 것. '가장 깊고 눈부신 날들'이란 가장 빛났던 순간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어두웠던 날들, 그 어둠을 통과하면서 마침내 발견한 빛의 날들이다. 조상은의 캔버스는 그 역설을 8~10겹의 유화로 증명한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 찬란하다.
조상은 개인전 〈가장 깊고 눈부신 날들의 이야기〉는 2026년 6월 3일부터 6월 22일까지 더스퀘어즈 갤러리에서 열린다. 화~토요일 오전 12시~오후 7시.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