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의 배신, 역상(逆相)의 인식론 - 이용덕 개인전(삼청동 아트파크)
전시장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무언가가 나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그것을 보고 있었는데 그것도 나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발을 멈췄다. 몇 발자국도 채 들어서기 전이었다. 오목하게 파인 음각의 조각이 볼록한 양각의 입체로 지각되고, 내가 움직이자 그것도 움직였다. 이것이 이용덕의 역상조각(Inverted Sculpture)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착시가 아니다. 인간 지각의 구조를 정면으로 해부하는, 40년의 밀도가 응축된 철학적 조형 언어다.
위상수학이 만난 조각 - 오목이 볼록이 되는 순간
수학을 전공한 사람의 눈으로 보면, 역상조각의 원리는 명료하다. 오목과 볼록. 음수와 양수. 부재와 현존. 그것은 마치 위상수학(topology)에서 뫼비우스의 띠가 안과 밖의 경계를 무너뜨리듯, 이용덕의 조각은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해체한다. 그런데 수식처럼 명료한 논리가 눈앞에서 배신당하는 순간, 그 배신이 너무 아름다워서 잠시 멍해진다.
이 작업의 핵심은 음각(陰刻)의 역설에 있다. 3차원 공간에서 인간의 시각 체계는 볼록한 형상을 기본값(default)으로 처리하도록 진화해 왔다. 태양빛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쬐고, 그림자는 아래에 생긴다. 뇌는 이 수백만 년의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오목한 형상도 볼록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이용덕은 바로 이 진화적 알고리즘의 허점을 40년간 탐구해 왔다.
이 역설을 집합론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Absence of Matter → Presence of Form
이용덕 작가는 이것을 "없는 걸 통해서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라 표현했다. 수학자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것은 영집합(empty set)이 의미를 생성하는 역설적 연산이다. 기호는 비어 있지만, 해석의 순간 의미가 발생한다. 언어학자 소쉬르가 말한 기표(signifier)와 기의(signified)의 자의적 결합처럼, 역상조각에서 오목한 물질과 볼록한 지각은 서로 자의적으로, 그러나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색깔의 평균치 — 통계학이 된 팔레트
전시장에서 파스텔톤의 비현실적인 색감이 눈에 들어왔다. 왜 자연색을 쓰지 않는가. 작가의 답변은 뜻밖에도 매우 수학적이었다.
평균치(Average Value). 이 말이 수학자의 귀에 닿는 방식으로 울렸다. 통계학에서 평균이란 개별 사건들을 넘어선 가장 보편적인 진실의 추정량(estimator)이다. 이용덕의 색은 특정 오후 3시의 빛이 아니라, 인류가 기억하는 모든 오후의 빛의 기댓값(expected value)이다. 수학적으로는 E[X] - 확률변수 X의 기대값. 모든 시간대의 하늘 색이 갖는 확률적 평균.
이것은 형태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색깔도 '빈 그릇'으로 설계되어 있다. 특정 시간에 속박되지 않은 색이기에, 감상자는 자신만의 시간과 기억을 그 안에 투영할 수 있다. 이로써 색채가 비워져 있기에 나의 기억이 채워지는 것이다. 형태의 역상뿐 아니라 색채의 역상(色彩逆相)까지 실현된 셈이다.
일루전의 소재지 — 수신자가 곧 발신자다
작가의 말 중 가장 충격적인 대목이 있었다. 전시장에서 "작품이 움직이는 것 같다"고 말하자, 이용덕은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단순한 착시 예술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철학적 선언이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전통적 '전달 모델(transmission model)'은 발신자(sender) → 메시지(message) → 수신자(receiver)의 단방향 흐름을 가정한다. 그러나 이 모델은 20세기 후반부터 근본적으로 해체되어 왔다.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의 '인코딩/디코딩(Encoding/Decoding)' 이론이 보여주듯, 수신자는 수동적 수취인이 아니라 능동적 의미 생산자다.
이용덕의 역상조각은 이 이론을 조각으로 완전하게 체화한다. 작품(발신자)은 오목한 팩트만을 제공한다. 이 물질적 팩트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오롯이 관람자(수신자)의 지각 체계다. 작품은 신호(signal)만 있고, 의미(meaning)는 수신자의 머릿속에서 생성된다.
관람자 = 지각 알고리즘 (의미 생산 엔진)
감상 = 기표 × 지각 → 볼록한 기의 생성
따라서: 예술적 의미는 작품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람자의 신경 회로 안에서 매 순간 새로 생성된다.
이것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말한 '저자의 죽음(Death of the Author)'을 조각 언어로 구현한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물질을 빚지만, 작품은 관람자가 완성한다. 발신자가 사라지는 순간, 수신자의 창조가 시작된다. 역상조각이 전 세계 어디에도 유례가 없는 독창적 양식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이 커뮤니케이션 구조의 전복이 미술사적으로 전례 없이 철저하기 때문이다.
미술계 문법 바깥의 시선 - 독후감으로서의 감상
오프닝에서 작가는 미술계의 문법에 대한 솔직한 불편함을 드러냈다. "미술계 안에서의 문법이 있는데, 굉장히 재단이 돼버리고, 본론을 상실하고 거기에 부류화되니까 되게 기분이 나빠요. 나는 출발이 그게 아니니까." 이 말이 깊이 공명했다. 이론의 언어가 작품을 해방하기보다 구획 짓는 역설. 미술비평의 오래된 아이러니다.
나는 미술계 바깥에서 이 세계에 들어온 사람이다. 평론의 언어가 아닌 감상의 언어로, 미술사의 문법이 아니라 삶의 문법으로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그림 감상문을 쓰는 컬렉터라는 정체성을 택했다. 우리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듯, 그림을 보고 감상문을 쓰는 것. 350여 편을 쓰고 나서야 깨달았다. 평론이 작품의 '의미'를 규정한다면, 감상문은 작품이 내 안에서 '생성한 의미'를 기록한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바로 이것이 역상조각의 논리와 겹친다. 작가가 형상을 규정하지 않고 관람자가 완성하듯, 감상문은 작품의 의미를 선언하지 않고 독자 안에서 의미가 발아하도록 씨앗을 심는 글이다. 평론이 양각(陽刻)이라면, 감상문은 음각(陰刻)이다. 그 빈 자리에서 독자 각자의 의미가 채워진다.
통섭미술의 시선 - 역상(逆相)은 삶의 위상기하학
역상조각을 통섭적으로 읽으면, 이것은 단지 시각적 역설이 아니다. 삶의 구조에 대한 위상기하학적 통찰이다. 우리는 늘 볼록하고 확실한 것에만 시선을 준다. 취업, 성과, 스펙, 수익 - 이것들이 양각이다. 반면 상처, 부재, 상실, 공백 - 이것들은 음각이다. 그런데 인간의 내면을 가장 깊이 형성하는 것은 후자다. 없는 것, 빠져나간 자리, 채워지지 않은 공간. 그것이 오히려 우리를 완성시키는 본질적 요소다.
노자(老子)는 도덕경 11장에서 말했다. "삼십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이는데, 그 바퀴통의 빈 곳이 있어 수레의 쓸모가 생긴다(三十輻,共一轂,當其無,有車之用)." 도자기는 그릇 안의 빈 공간 때문에 쓸모 있고, 방은 벽 안의 빈 공간 때문에 살 수 있다. 이용덕의 역상조각은 이 2,500년 전의 통찰을 동시대 조각 언어로 번역한 것이기도 하다.
○ 철학적 층위: 노자의 無用之用 / 비어 있음의 쓸모
○ 인지과학 층위: 지각의 능동성 / 뇌는 보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
○ 커뮤니케이션 층위: 수신자 중심 의미 생산 / 저자의 죽음
○ 실존적 층위: 상실과 부재가 오히려 인간을 완성한다
이 다섯 층위가 하나의 조각 앞에서 동시에 공명하는 것. 이것이 내가 '통섭미술(Consilience Art)'이라 부르는 감상의 방법론이다. 미술 작품을 미술의 언어로만 읽지 않고, 수학·철학·과학·커뮤니케이션·삶의 경험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읽는 것. 이용덕의 역상조각은 이 통섭적 독법에 가장 풍성하게 반응하는 작품 중 하나다.
비워진 공간에서 채워지는 것들
전시 제목이 다시 읽힌다. Voided Space, Filling Presence. 이용덕은 40년을 이 한 문장 안에서 살았다. 물질을 비우고, 형상을 지우고, 그 부재의 자리에서 관람자의 지각이 스스로 작품을 완성하게 했다. 그것은 작가의 겸손인 동시에 가장 강렬한 예술적 의지다.
나는 이 전시가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스타그램으로 미술을 소비하는 시대에, 반드시 와서, 반드시 움직이며, 반드시 자신이 완성시켜야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너머로는 절대 전달되지 않는 그 경이. 몸이 작품의 일부가 되는 그 순간. 이것은 디지털 복제 시대가 빼앗아 갈 수 없는 예술의 마지막 요새다.
나도 멈춰 서서 한동안 그 빈 공간을 바라봤다. 그 빈 공간은 어느 순간, 가득 차 있었다. 무엇으로 채워졌는지는 내가 완성한 것이기에, 오롯이 나의 것이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 대학원 조소과 졸업. 독일 베를린 예술 종합대학 마이스터 쉴러(Meister Schüler) 학위 취득. 1984년 역상조각(Inverted Sculpture) 창안 이후 40여 년간 독창적 표현 양식을 일관되게 탐구. 2006년 마카오 미술관 개인전을 통해 '역상조각'으로 공식 명명되며 미술사적 위치 확립.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 수상. 서울 명동 성당 김수환 추기경상·안중근 의사상·프란치스코 교황상 등 주요 공공 미술 조성. 서울대학교 조소과 명예교수. 국내외 유수 미술관 및 비엔날레 참가.
글쓴이 : 이상민 · 미술인문 작가 /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 이노바랩(주) 대표 / 연세대학교 수학 전공 · 중앙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전공 / 저서 『통섭미술관기행』 『취향과 안목 왜 AI를 이기는가』 외 다수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