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 없는 연극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 김희태 개인전
올봄, 김희태(b.1969)는 두 개의 전시로 서울과 인천을 잇는 하나의 긴 문장을 완성했다. 5월 23일과 24일 이틀간 서울 서초구 모나코 스페이스에서 열린 오프닝 전시 «Theatre of Being»과, 5월 27일부터 7월 4일까지 인천 영종도 갤러리파이 영종에서 이어지는 개인전 «Mime and Le Petit Prince»가 그것이다. 전자가 서막이라면 후자는 본론이다. 전자가 선언이라면 후자는 고백이다. 그러나 두 전시를 관통하는 질문은 단 하나다. 우리는 지금 어떤 몸으로, 어떤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가.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자는 즉각적인 물리적 압박을 경험한다. 검은 캔버스 위에서 인체가 솟아 있다. 노인의 몸이다. 구부러지고, 뻗어내고, 허공에 떠 있는. 살갗의 혈관, 힘줄, 발바닥의 주름까지 입체로 도드라진 이 몸들은 눈이 아니라 피부로 먼저 반응하게 만든다.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거의 촉각적 긴장. 이것이 김희태 회화의 첫 번째 특성이다.
하늘을 직업으로 삼은 자의 눈
김희태는 현역 항공 승무원이다. 정년까지 약 4년을 남긴 그는, 새벽 비행을 마치고 붓을 들고 늦은 밤 붓을 내려놓는 삶을 수년째 이어왔다. 그의 인스타그램에 적힌 이 짧은 문장은 단순한 일상의 기록이 아니다. 두 개의 노동, 두 개의 삶이 한 몸 안에서 공존하는 방식에 대한 선언이다.
갤러리파이 영종의 도슨트에서 작가는 자신이 원래 미대 준비생이었다고 밝혔다. '미대 갈까, 음대 갈까' 고민하다 결국 공대를 선택했다고. 음악도 좋아하고 미술도 좋아했지만, 어느 것 하나 천재적 확신이 없었고 부모님의 뜻도 있었다. 그 선택은 수십 년의 우회로가 되었고, 미술은 그 끝에서 비로소 '맞는 옷'으로 돌아왔다. 나는 도슨트를 들으며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걸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을 때 불편하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누더기라도 자기한테 딱 맞는 옷을 입으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지요." 작가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력은 작품을 이해하는 결정적 열쇠다. 고도(高度)를 몸으로 기억하는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부유하는 인체, 중력과 불화하는 자세들이 작품 곳곳에 새겨져 있다. 하늘을 직업으로 삼았던 사람의 눈은 땅 위의 몸을 다르게 본다. 지상의 모든 몸짓이 그에게는 중력과의 협상처럼 보일 것이다. 그것이 이 그림들의 비밀이다.
회화인가, 조각인가 - '구조(構造)'라는 새로운 범주
김희태의 작품은 장르 분류를 거부한다. 공식 표기는 혼합 매체(mixed media oil on canvas)지만, 실제로 마주하면 회화와 조각의 경계에서 아찔하게 균형을 잡는 무언가다.
기법부터 비범하다. 그는 생쌀을 제소(Gesso)에 불려 마티에르를 만들고, 마트에서 구한 계란판을 종이죽으로 녹여 바탕 질감을 구축했다. 물감 덩어리로 저글링하는 공을 빚고, 악기의 볼록한 몸체를 입체로 제작했다. 유화 물감을 두껍게 쌓아 덩어리를 직접 빚고 나이프로 다듬어 붙이는 이 방식에서 붓은 마지막 채색 단계에서야 등장한다. 이것은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 즉 제작(製作)이다.
그 절정이 「첼로 켜는 노인」이다. 작가는 아내 — 첼리스트인 — 에게 이 작품을 헌정하며, 자신이 가장 아끼는 첼로의 실제 활털을 뜯어 캔버스에 붙였다. 물감이 아니라 아내의 음악이 작품 안에 물질로 새겨진 것이다. 사랑을 재료로 삼은 이 행위 앞에서, 회화와 조각이라는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나는 이 작품들을 '구조(構造)'라고 부른다. 이미 평면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은 배경은 이 모든 물질성을 받쳐주는 심연이다. 그것은 단순한 무대 장치가 아니라 존재론적 공간이다. 인물들은 그 심연으로부터 겨우 떠올라 있다. 마치 의식이 망각으로부터 부상하듯. 검음과 솟아오름의 대비가 이 작품들의 극적 긴장을 만들어낸다.
삐에로 — 한 번도 주인공이 되지 못한 자의 인문학
김희태의 노인은 단순한 노인이 아니다. 그는 삐에로다.
작가는 도슨트에서 직접 말했다. "삐에로라는 캐릭터는 주인공이 아니잖아요. 항상 극 중 또는 극 전에 흥행 도우미 역할을 하는, 그래서 한 번도 주인공이 돼 본 적은 없어요." 그래서 그가 포착하고자 했던 것은 삐에로의 무대가 아니라 퇴근이다. 분장을 지우지 않은 채, 막간(幕間)에 홀로 첼로를 켜거나, 혼자 춤을 추거나, 고양이를 바라보는 그 찰나. 관객도, 박수도, 조명도 없는 그 시간이야말로 그 인물의 가장 진실한 얼굴이다.
이것은 동시에 작가 자신의 고백이다. "저도 비행기에서는 슈퍼 을로 존재합니다. 대형기 같으면 300분의 승객의 감정이 저한테 다 이입이 돼요. 제 감정을 거기서 절대 표출할 수 없죠." 300명의 희로애락을 삼키고, 분노와 불편과 요구를 모두 미소로 받아내는 사람. 흥행은 시키되 무대 뒤로 사라지는 사람. 그것이 또 다른 삐에로다.
문화사적으로 삐에로는 서양 희극 전통에서 가장 오래된 비극적 캐릭터다. 이탈리아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피에로(Pierrot)는 항상 짝사랑하고, 조롱당하고, 웃음을 팔지만 결코 사랑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백색 분장 뒤에 감춰진 것은 웃음이 아니라 눈물이다. 보들레르는 이 삐에로를 '영혼의 방랑자'라 불렀고, 카프카는 웃음을 주는 자가 가장 깊이 슬프다는 역설을 그의 문학 곳곳에 새겨넣었다.
김희태의 삐에로 노인은 그 오랜 역설의 계보 위에 서 있다. 손과 발은 거칠게 왜곡되어 있고 목은 비틀려 있다. "삶이 녹록지 않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손과 발을 거칠게 만들었고 형태를 왜곡시켰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신체의 변형은 표현주의적 과장이 아니라 삶의 누적을 재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 앙상한 몸은 악기를 놓지 않는다. 관객 없이도 연주는 계속된다. 그것이 이 인물의 위엄이다. 동정이 아니라 경의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그 지점에서다.
어린왕자 — 심연으로부터의 구출자
«Mime and Le Petit Prince»라는 전시 제목이 예고하듯, 갤러리파이 영종의 작품들에서 어린왕자는 삐에로의 영원한 동반자로 등장한다. 그런데 작가의 설명은 예상 밖으로 솔직하다. "삐에로를 작업하면 저기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 스스로도 너무 심각해져요. 그때 어린왕자를 보면 쉽게 빠져나갑니다. 어린왕자를 그리다가 이제 좀 살 것 같네 하면 다시 또 심각하러 가고." 두 도상(圖像)은 그에게 단순한 소재가 아니다. 각각은 심리적 진자 운동의 양 끝이다. 한쪽은 우울과 고독의 심연이고, 다른 한쪽은 순수와 경이의 회복이다. 그는 이 두 극점 사이를 오가며 작업하고, 그 진동 자체가 작품이 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지구에서 한 가지를 배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장미꽃 한 송이에 우주를 걸고, 여우와의 짧은 우정에서 '길들임'의 의미를 발견한다.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도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린왕자는 문명의 표면 위를 미끄러지며 결코 착륙하지 않는 존재다.
흥미롭게도 김희태는 이 어린왕자를 한국으로 데려왔다. "저는 한국으로 데리고 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늘도 약간 동양화처럼 느껴지게 묘사하고, 남산 위의 소나무도 등장시켰죠." B612 소행성에서 온 왕자가 남산 소나무 아래 서 있다. 이 낯선 병치는 하나의 명제를 품고 있다. 이방인의 시선으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그것을 보는 자만이 세상의 진실에 가까이 간다는 것. 그리고 어린왕자는 어쩌면 승무원인 작가 자신의 비유다. 늘 땅을 떠나 있어서, 땅 위의 것을 더 선명하게 보는 사람.
삐에로와 어린왕자가 한 화면에 공존할 때, 그것은 단순한 구성이 아니다. 노년의 상처 위에 동심의 시선이 내려앉는 것이다. 앙상하게 닳아버린 몸과, 아직 닳지 않은 눈. 두 존재는 서로의 결핍을 채운다. 이것이 이 전시의 가장 핵심적인 인문학적 주장이다.
자코메티의 그림자와 김희태의 응답
갤러리파이 영종에서 작품들을 보다가 나는 문득 3년 전 네덜란드 크뢸러뮐러 미술관에서 마주쳤던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Walking Man)」을 떠올렸다. 자코메티의 조각은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인물이 그럼에도 걷는다. 모든 것을 잃고 남은 최소한의 인간이 멈추지 않고 전진한다. 그것이 자코메티가 말하고자 했던 '존재 자체'였다.
이 연상을 작가에게 직접 전했더니, 그는 조용히 말했다. "꼭 나만을 묘사한 건 아니에요. 보시는 분이 나 같기도 하다." 그 한마디에서 이 작품들의 사명이 선명해졌다. 자기 고백인 동시에 보편의 거울. 감상자 자신을 투영하게 만드는 장치.
자코메티가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서 '남은 것'을 물었다면, 김희태는 300명의 감정을 삼키고 착륙하는 새벽의 삶 위에서 같은 물음을 던진다. 무엇이 버텨내는가. 무엇이 끝까지 남는가. 그 답이 이 노인의 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자코메티의 인물이 고독한 전진을 하는 데 반해, 김희태의 노인은 악기를 켜고, 고양이를 바라보고, 어린왕자와 손을 잡는다. 앙상하지만 연결되어 있다. 마지막까지 관계를 끊지 않는다. 삶이 우리를 앙상하게 만들어도,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위해 연주한다. 자코메티의 인간이 실존주의적 고독의 표상이라면, 김희태의 인간은 관계론적 생존의 표상이다. 이 지점에서 두 작가의 세계관은 갈라지고, 김희태의 고유한 철학이 시작된다.
자작나무에서 삐에로까지 — 작가적 계보의 독해
이 작품들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초기작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작가가 자작나무 연작을 시작한 것은 러시아 모스크바 첫 취항 때 공항 옆 자작나무 숲에 압도된 30년 전 기억에서 비롯된다. 그는 당시의 충격을 이렇게 설명했다. "자작나무 꽃말이 기다림이래요. 그래서 꽃잎을 그려놓으면 기다림이 사라질 것 같은 거예요."
자작나무의 옹이는 다른 나무의 나이테와 다르다. 추운 땅에서 위로 뻗어 올라가기 위해 스스로 가지를 끊어낸 흔적이다. 성장의 흉터이자, 살아온 시간의 지문이다. 나는 이것이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상처를 내고, 고름이 생기고, 다시 아물기를 반복하는. 그 아픔의 흔적들이 곧 옹이다. 작가가 이 자작나무를 선택한 것은 자기 자신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소재를 본능적으로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 옹이가 훗날 삐에로 노인의 왜곡된 손발로 형태를 바꾸어 다시 나타난다. 자작나무는 노인 삐에로의 원형이었다. 드러낼 수밖에 없는 몸, 숨길 수 없는 상처.
각본 없는 연극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Theatre of Being». 존재는 연극이다. 그러나 이 연극에는 각본이 없다.
김희태의 노인들은 저마다의 몸짓으로 고해하고, 균형 잡고, 노래하고, 날고, 침묵한다. 삐에로는 무대에서 웃음을 팔지만, 퇴근 후 분장을 지우지 않은 채 혼자 첼로를 켠다. 어린왕자는 낯선 별들을 떠돌며 어른들이 잊어버린 것들을 기억한다.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잃고도 멈추지 않는다. 이 세 존재가 김희태의 캔버스 위에서 만나며, 그것이 곧 살아 있다는 것의 전부임을 조용히 증언한다.
미술은 때로 설명되지 않는 존재의 몫을 대신 붙든다.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까지 몸이 닿는 마임처럼, 이 작품들은 말없이 웅변한다. 하늘을 비행하는 자가 가장 예민하게 인식하는 것은 고도와 자세, 그리고 한계다. 김희태는 그 감각을 평생 몸으로 익혔고, 마침내 캔버스로 옮겨왔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문득 스스로의 몸, 스스로의 자세, 스스로의 고도를 묻게 된다.
당신은 지금 몇 도(度)에서 비행하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의 분장 밖에서, 당신은 누구를 위해 연주하고 있는가.
«Theatre of Being» 2026.5.23~5.24 | 모나코 스페이스,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397
«Mime and Le Petit Prince» 2026.5.27~7.4 | 갤러리파이 영종 @gallery_pi_yeongjong
@iartno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