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경고가 될 때,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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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 (23)

전시Review는 동시대 전시를 깊이 있게 바라보는 리뷰 콘텐츠입니다. 작품과 공간, 전시의 흐름과 맥락을 기록하며 다양한 시선과 해석을 함께 소개합니다. 단순한 관람 후기를 넘어 전시가 전달하는 의미와 감각을 함께 탐색합니다.





아름다움이 경고가 될 때,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네이버 구글

네온빛 재난의 초상 — 이진주의 회화는 왜 아름다울수록 더 불편한가 이진주·김지섭 2인전 《우리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아트스페이스와이 | 2026.05.08~05.30
이상민   승인 2026.05.25 15:55  |  최종 수정 2026.05.25 16:03

분홍빛 빙산, 진홍의 파도, 형광으로 타오르는 허리케인의 잔해. 이진주(b.1988)의 캔버스 앞에서 관람객은 모순에 봉착한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감각이 스며든다. 이것이 함정이다. 그리고 이것이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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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토크에서 관람자에게 도슨트하는 이진주 작가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눈이 먼저 멈췄다. 분홍과 자주, 심홍과 코발트가 뒤섞인 화면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오듯 걸려 있었다. 형광에 가까운 색채들이 만들어내는 첫인상은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 속에서 뭔가 이상한 감각이 슬며시 올라왔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어딘가 불편했다. 이 불편함이 이진주 작가가 설치한 첫 번째 함정이다.


돈 드릴로의 소설 《화이트 노이즈》에는 화학물질 유출로 하늘이 기묘하게 아름다운 색으로 물드는 장면이 나온다. 마을 사람들은 그 색이 아름답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이 죽음의 색임을 안다. 드릴로는 현대 소비사회가 재난조차 스펙터클로 만들어버리는 방식을 비판했다. 이진주의 네온 팔레트는 정확히 그 지점을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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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 온도 맵이 캔버스가 될 때 — 데이터가 회화가 되는 순간

이진주의 색채 문법은 명확한 출처를 갖는다. 위성 온도 맵, 즉 지구 열지도에서 빌려온 네온 팔레트다. 과학자들이 지구의 온도 변화를 시각화하기 위해 설계한 데이터의 색채 코드를 작가는 유화 캔버스 위로 옮겨온다. 데이터가 회화가 되는 순간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물감의 제작 방식이다. 작가는 안료(피그먼트)를 직접 구입해 오일을 섞어 물감을 만든다. 이렇게 하면 채도가 극도로 높은 색을 낼 수 있지만, 투명도가 높아 은폐력이 낮다. 밑색이 보이지 않으려면 일곱, 여덟 겹을 겹쳐 그려야 하고, 건조 시간도 오래 걸린다. 작은 물범 그림 한 점에만 4개월 이상이 걸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수고로움 자체가 이미 이진주 회화의 윤리적 태도다. 서두르지 않겠다는, 쉽게 소비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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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uardian》 — 무너지는 세계 위의 시선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에서 주인공은 문명이 닿지 않는 극한의 자연 속에서 혼자 살아남는다. 그 혹독한 자연이 지금도 존재하는가, 혹은 우리가 이미 그것을 잃어버리고 있는가 — 영화는 그 질문을 남긴다.

이진주의 《The Guardian》 앞에 서면 그 물음이 되살아난다. 위성 온도 맵 특유의 파랑과 청록으로 빛나는 빙산 위로 붉은 열기가 용암처럼 흘러내린다. 비스듬한 능선을 타고 북극곰 한 마리가 위태롭게 오르고 있다. 작가는 이 구성의 의도를 명확히 밝혔다. "북극곰이 마치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 자연에 속하지 않은 인간들을 향해 '이곳, 나의 터전에 왜 왔느냐'라고 묻는 것 같습니다."

수호자(Guardian)라는 이름을 달고, 무너지는 세계 위에서 홀로 버티는 북극곰의 시선은 관람객을 향해 정면으로 꽂힌다. 작품은 묻지 않는다. 다만 그 시선만을 남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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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범의 눈빛 — AI 시대가 잃어버린 날것의 생동감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서 바다는 숭고하고 두렵고 측량할 수 없는 존재다. 멜빌의 바다가 인간의 오만에 대한 경고였다면, 이진주의 바다는 그 오만의 결과다.

진홍의 파도 속에서 두 마리 물범이 머리를 내민다. 작가는 이 작업의 발단을 AI가 만든 음악에서의 고질적인 답답함에서 찾았다. "점점 아날로그가 사라지고 인간의 손길 없이 만들어진 작품들이 넘치는 세상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생명이 남기는 흔적을 다시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그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생동감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작가가 이 그림에서 반드시 구현하고자 했던 세 가지는 이렇다.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파도, 차가운 바닷속에서 막 고개를 든 호기심 어린 자세, 그리고 살아 숨 쉬는 동물들만이 가지는 영롱하고 반짝이는 눈빛. 두 마리인 이유도 의미심장하다. "관계를 맺는 생명체가 인간만의 특권이 아닌 것처럼, 이 물범들도 한 쌍을 이루고 있어요." 붉게 물든 파도는 온도가 오른 바다이고, 그 속의 물범은 그 변화를 선택하지 않은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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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의 선인장과 카나리아 — 화면 속에 숨겨진 현실의 보고서

이진주의 회화에는 오래 들여다볼수록 발견되는 비밀 메시지들이 있다. 허리케인 밀턴 시리즈 속 식물 그림이 그러하다. 작가는 인터넷 기사에서 선인장 종이 알프스 지방에서 자생하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이를 이스터 에그처럼 화면 속에 몰래 숨겨두었다.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등장하는 현실 — 이진주는 이것을 충격적 이미지 대신 숨겨진 단서로 표현한다. 공포 영화처럼, 귀신이 등장하지 않는데 그 분위기와 낯선 색감이 주는 오싹한 느낌이 더 오래, 더 깊이 남는다.

《폭풍 후》 연작에 숨겨진 카나리아도 같은 층위에서 읽힌다. 과거 광부들과 군인들이 갱도와 전장에서 가스 탐지용으로 카나리아를 데리고 다녔듯, 작가는 묻는다.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폭풍을 마주한 지금, 우리 인류야말로 카나리아처럼 더 기민하고 예민하게 움직여야 될 때가 아닐까요." 동시에 이 새는 인간들의 모습을 원망하듯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경고자인 동시에 고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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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트 토크에서 관람자에게 도슨트하는 이진주 작가


 

마샬 맥루한으로 읽는 이진주 — 색채가 곧 메시지다

이진주의 작업은 탁월한 미디어 전략을 내장하고 있다. 마샬 맥루한이 말한 "미디어는 메시지다"를 이진주 식으로 번역하면 이렇다. 색채가 메시지다.

환경 재난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들이 직접적 충격 이미지를 사용한다. 그러나 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에서 경고했듯, 충격적 이미지는 반복 노출되면 오히려 무감각을 만들어낸다. 이진주는 그 반대를 택한다. 아름다움으로 포장된 경고. 방어 기제가 낮아진 상태, 즉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에 메시지를 심는다. 그리고 화면 속 곳곳에 발견을 유도하는 단서들을 배치함으로써, 작품이 단 한 번의 감상으로 소비되지 않도록 설계한다. 이것은 영리한 전략인 동시에, 진지한 예술적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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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토크에서 관람자에게 도슨트하는 이진주 작가



우리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 지리의 질문이 아닌 인식론의 질문


전시 제목 《우리는 어디에 존재하는가》는 지리적 물음이 아니다. 인식론적 물음이다. 우리는 재난을 알면서도 아름다움에 멈추는 존재인가. 경고를 들으면서도 일상으로 돌아가는 존재인가. 이진주의 회화는 그 모순을 고발하지 않는다. 다만 그 모순 안에 관람객을 가만히 세워둔다.

작가의 말이 오래 남는다. "같은 도상을 색만 바꾸어 재생산하는 작가가 아닌, 다음 작품이 기대되고 궁금한 작가로 가고 싶습니다. 이 세상은 늘 변화하고 있으니, 제가 동시대를 예술로 기록한다는 아젠다를 갖고 있는 한, 제 그림은 늘 변화할 것입니다."

전시장을 나서며 생각했다. 분홍빛 설원을 오르는 북극곰, 진홍의 파도 속 물범의 반짝이는 눈빛, 알프스 산중에 피어난 선인장 — 이 이미지들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리고 바로 그 아름다움 때문에, 더 오래 남을 것이다.

이진주는 그것을 알고 그린다. 그것이 이 작가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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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 작가



이진주 작가 약력


이진주(b.1988)는 2005년 이천 양정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건국대학교 현대미술과에서 수학하고, 2013년부터 2021년까지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학에서 클래스 Cordula Güdemann 사사로 수학하며 유럽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뎠다.

개인전으로는 2025년 서울 Gallery Color Beat에서의 《마지막 봄》을 비롯해, 독일 슈투트가르트 Gallery Z에서의 《Tipping Point》(2022), 서울 Gallery Color Beat에서의 《복경쾌찬》(2022), 독일 슈투트가르트 Zero Arts e.V.에서의 《clearance sale》(2020) 등을 개최했다. 그룹전에는 독일 뒤셀도르프 Art gallery von Fraunberg의 《Follow up》(2025), 뒤셀도르프 《Color fascination》(2024) 등 국내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아트페어로는 독일 칼스루헤 Art Karlsruhe(2024), 베를린 Positions(2023), 부산 Lotte Art Fair(2023)에 참가했으며, 수상 및 지원 실적으로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Gallery Z 공모전 'Magnifik' 3위(2021), Special Funding Program Kickstarter·Kunstfonds Bonn 수상(2021), 슈투트가르트시 작업실 지원(2021), 독일 연방 교육연구부 25주년 공모 노미네이션(2020), Schlossberg Scholarship(2017), GOPEA 지원(2017) 등 독일 현지에서 다수의 공신력 있는 지원과 수상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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