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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 (34)

전시Review는 동시대 전시를 깊이 있게 바라보는 리뷰 콘텐츠입니다. 작품과 공간, 전시의 흐름과 맥락을 기록하며 다양한 시선과 해석을 함께 소개합니다. 단순한 관람 후기를 넘어 전시가 전달하는 의미와 감각을 함께 탐색합니다.





"빛은 오지 않는다, 이미 거기 있다"    네이버 구글

박진흥 개인전 《빛이 여무는 자리》 오프닝, 감동과 울림으로 가득 부친 박성남 화백 통풍으로 불참 속에도 5페이지 친필 축사 보내 '점·선·면의 3대 조형 계보' 선언
이상민   승인 2026.05.20 19:54  |  최종 수정 2026.05.2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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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흥(b.1972) 작가의 개인전 《빛이 여무는 자리(Where Light Ripens)》 오프닝 행사가 5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라움아트센터 1층 갤러리화이트원에서 열렸다. 전시는 오는 6 21일까지 계속된다(·금 휴관). 이날 행사에는 박수근 화백의 손자이자 국내외에서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해온 박진흥 작가를 응원하는 미술 애호가, 컬렉터, 동료 작가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폭염에 가까운 더위 속에서도 뜨거운 인파가 몰리며 갤러리 내부는 활기와 열기로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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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에 참석한 박진흥 작가


최경미 관장 "찾아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그것으로 충분"

행사는 이서휘 큐레이터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갤러리화이트원 최경미 관장은 간결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인사말로 분위기를 열었다. 관장은 작가의 작품 속 파란색을 좋아한다며 이날 의상을 맞춰 입었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고, "많은 이야기보다는 여러분들이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드린다"는 짧고 따뜻한 말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송은주 부관장 "작품 탄생 이후, 빛의 속도로 달려가다 우리가 잡은 시간"

이어 송은주 부관장이 인사말에 나섰다. 갤러리 관장 경력을 가진 그는 최경미 관장의 예술 혼에 이끌려 갤러리화이트원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박진흥 작가의 대규모 전시를 맞이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표현했다.

"이런 자리는 태초 천지창조, 작품이 탄생한 이후 정말 이 순간을 잊을 수 없는 빛의 속도로 달려가고 있다가 우리가 잡은 시간입니다. 오늘 이 시간을 즐겁게, 또 행복하게 맞아주셨으면 합니다." — 송은주 갤러리화이트원 부관장

그는 또한 박진흥 작가 부인과 짧게 나눈 대화를 언급하며 "작가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정말 위대하시고 감사드리고, 그런 노력에 동참할 수 있게 돼 영광스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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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미 관장(좌측), 이서휘 큐레이터(중앙), 송은주 부관장(우측)


박성남 화백 친필 축사 대독 — "점 빛·선 빛·면 빛, 3대의 조형 계보"

이날 가장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킨 순간은 엄선미 전 박수근미술관 관장의 박성남 화백 축사 대독이었다. 박진흥 작가의 부친인 박성남 화백은 당일 오프닝에 직접 참석하여 축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전날 갑작스러운 통풍 발병으로 걷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5페이지에 달하는 친필 축사를 급히 보내왔다.

엄선미 전 관장은 " 5페이지가 되는데, 첫 단락과 마지막 단락만 낭독하겠다"며 조심스럽게 마이크를 잡았다. 낭독된 축사에서 박성남 화백은 박수근에서 자신으로, 그리고 박진흥으로 이어지는 3()의 예술적 여정을 점((()이라는 조형의 핵심 요소로 압축해 선언했다.

"할아버지 박수근은 점에 새겨진 상처를 선한 질박한 우리 빛으로 가꾸신 분이었습니다. 전쟁과 가난, 그로 인해 빈 그릇 같은 시대의 깊은 상처, 서민들의 가난함을 자기비움(케노시스)으로, 소박한 점으로 하나하나에 부요를 더해 얽혀내며 깊이를 더했습니다." — 박성남 화백 친필 축사 중

이어 대독된 축사의 마지막 단락에서 박성남 화백은 아들 박진흥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형식으로 자신의 회화 철학 전체를 압축했다.

"아들 진흥아, 네가 오늘 펼쳐 보이는 빛이 여무는 자리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따뜻하고 진심 어린 할아버지의 답이다. 할아버지의 점 빛, 아버지의 선 빛, 그리고 네가 그린 드리워진 면()의 빛이 너의 얼굴이란다. 많은 사람들의 상처를 따뜻한 시선으로 어루만지고, 오래도록 여물어가는 위로가 너의 얼굴이 되기를 아빠는 진심으로 바란다. 사랑한다." — 박성남 화백 친필 축사 중

낭독이 끝나자 장내에는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이서휘 큐레이터가 "너무 감동적인 축사"라며 마이크를 받아 분위기를 추슬렀고, 박성남 화백의 마음을 대신 전해 준 엄선미 전 관장에게 특별한 감사 인사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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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선미 전 박수근미술관 관장


박진흥 작가 인사말 —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걷는 여정"

오프닝의 주인공 박진흥 작가는 큰 박수를 받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아버지의 축사가 낭독된 직후의 감회를 추스르며 담담하게 자신의 예술적 여정을 고백했다.

"아버님께서 상처의 아픔이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 그림을 그리기 전에 어둠 속에 친숙한 작가라고 할까요. 잎이나 보석 같은 데서 살아오지 않는, 그런 그늘 속 식물로서 작업을 했습니다. 결국 그림자를 그려왔고요. 그런데 어느 날, 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빛으로 다가가고 싶어졌습니다." — 박진흥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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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흥 작가


작가는 그 빛이 결코 가까이 있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 빛은 저한테 굉장히 먼 곳이었고, 그늘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바라보는 과정에서 중요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점점 생각하게 된 것이, 빛은 저에게 오지 않고 이미 저 옷을 입고 그곳에서 점점 위로 익어가고 있더라고요. 제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모든 고통의 순간들, 기쁨의 순간들, 모든 것이 빛으로 이루어졌던 저곳에 있지만, 정작 다가가기는 힘들었습니다." — 박진흥 작가

작가는 이번 전시가 그 빛을 향해 점점 다가가는 여정의 기록임을 밝혔다. 그리고 자리에 함께한 관람객들에게 진심 어린 메시지를 전했다.

"혹시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빛에 다가가고 싶고, 빛이 되길 원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혹시 당장은 힘들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마시고, 저처럼 빛 안으로 못 들어가더라도 계속 바라보시고, 그 빛의 느낌과 기운과 희망을 잊지 않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박진흥 작가

작가는 전시 준비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최경미 관장과 이서휘 큐레이터, 갤러리화이트원 스태프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인사말을 마무리했다. 오프닝 이후에는 박진흥 작가와 함께하는 갤러리 투어가 진행되어, 관람객들은 작품 앞에서 직접 작가의 설명을 들으며 이번 전시를 보다 깊이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시 읽기통섭미술 비평의 시각으로

오프닝 현장의 감동이 가시기 전에, 이 전시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박진흥의 회화는 언뜻 조용하고 내성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박수근 3대가 반세기에 걸쳐 쌓아온 예술적 질문과 미학적 탐구가 응축되어 있다. 이 전시를 통섭미술의 관점에서 읽으면 세 개의 핵심 층위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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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전경


포착이 아닌 숙성빛을 기다리는 회화

갤러리화이트원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람객은 묘한 정지감을 경험한다. 화면들이 무언가를 주장하거나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거기에 있다. 이 고요한 존재감은 수동적인 침묵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이 만들어낸 능동적인 깊이에서 비롯된다.

통섭미술은 완성된 결과보다 진행 중인 과정에 더 큰 미적 가치를 두어왔다. 장자(莊子)포정해우(庖丁解牛)’ 우화처럼, 소를 가르는 포정의 칼은 결코 힘으로 베지 않는다. 소의 결을 따라, 그 사이의 빈 공간을 찾아 자연스럽게 미끄러질 뿐이다. 박진흥의 붓도 그런 방식으로 화면을 대한다. 빛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결을 기다리고, 그 흐름 안에 조용히 자신을 놓아두는 것이다. “여문다는 것은 곡식이나 열매가 충분한 시간을 거쳐 내면부터 익어가는 상태를 가리킨다. 박진흥에게 빛은 순간에 터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화면 안쪽으로 천천히 스며들며 깊어지는 존재다.

((() ― 박수근 3대의 조형 계보

박성남 화백은 오프닝 축사에서 3대의 예술적 계보를 조형의 원리로 압축해 선언했다. 점은 존재의 최소 단위이자 상처의 원초적 형태다. 선은 그 존재들 사이의 관계이고 기억이다. 면은 그 모든 관계가 시간 속에서 숙성되어 이루는 총체적 장()이다. 박수근이있음을 증언했다면, 박성남은이어짐을 실천했고, 박진흥은여무는 것을 화폭에 담는다.

박수근 화백은 전쟁과 가난이라는 시대의 상처를 화강암 질감의 거친 마티에르 위에 작고 소박한 점들로 새겨 넣었다. 박성남은 그 점들의 상처를 선()으로 이어왔다. 단절된 것들을 잇고, 비대칭의 흐름 속에서 삶의 아픔을 끌어안는 탈미학의 선으로. 그리고 박진흥은 이제 그 점과 선의 긴 여정이 마침내 하나의 넓은 면()에 여무는 순간을 보여준다.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가 말한 점··면의 조형 원리가 이 가족의 3대 예술 언어와 기이할 만큼 정확하게 포개진다.

시간의 지질학쌓임과 스밈의 회화

박진흥의 화면을 가까이에서 오래 들여다보면 하나의 역설을 발견하게 된다. 화면 위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는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특정하기 어렵다. 나무인 듯하면서 그림자이고, 그림자인 듯하면서 빛이다. 이 모호함은 기술적 미숙함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설계된 존재론적 애매성이다. 각각의 물감 층은 하나의 시간이다. 지질학자가 암석의 단면에서 억겁의 시간을 읽듯, 박진흥의 화면 단면에는 작가가 살아온 시간의 퇴적층이 새겨져 있다.

동양 예술론의기운생동(氣韻生動)’은 그림에 생명의 기운이 살아 흐를 때 비로소 예술이 된다고 말한다. 박진흥의 화면에서 그 기운은 완성된 형상이 아니라, 형상이 완전히 드러나기 직전의 순간아직 스며드는 중인 빛의 움직임, 한 층의 물감이 다음 층과 조화를 이루며 깊이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에서 온다.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가 영화를시간을 조각하는 예술(sculpting in time)”이라 정의했듯, 박진흥은 붓의 반복적 레이어로 시간을 쌓는다. 그 쌓임 속에서 나무 그림자는 현재의 오브제가 아니라 과거의 빛이 남긴 기억의 형상이 된다.

《빛이 여무는 자리》는 그 도달의 증거다. 이 전시장에서 우리는 박수근의 점 빛이, 박성남의 선 빛이, 박진흥의 면 빛으로 천천히 익어가는 과정을 목격한다. 외부에서 비추는 빛이 아니라, 상처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스스로 피어나는 내면의 빛. 그것이 박수근 3대가 반세기 넘게 물어온 질문에 대한, 박진흥이 이 봄에 내놓는 따뜻하고 조용한 대답이다.” — 이상민, 통섭미술 전시감상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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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흥 작가(우측)와 필자(좌측)

【전시 정보】

전 시 명: 박진흥 개인전 《빛이 여무는 자리(Where Light Ripens)

    : 2026 5 21() – 6 21() / 휴관: ·

    : 갤러리화이트원 (서울 강남구 라움아트센터 1)

관람시간: 오전 11오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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