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빈 작가의 전시에 다녀왔습니다. @seongbin.gam
아트인코리아
승인 2026.06.29 10:14
감성빈 작가의 전시에 다녀왔습니다.
@seongbin.gam
감성빈 GAM SEONGBIN solo exhibition
<겸허히 어두운 밤을>
2026/6/27 ~7/18
갤러리벨비 @gallery_bellevie
<전시감상 요약문>
전시감상 - 감성빈(b.1983)
어둠 또한 삶의 일부임을 알기에
이 상 민 | 미술인문 작가,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장
감성빈(b.1983)의 개인전은 꼭 8년만이다. 그 침묵이 무색하게 작가는 여전히, 그리고 끝까지, 슬픔이라는 단 하나의 광맥을 파고드는 사람이었다.
작가노트의 첫 문장은 딜런 토머스의 시구를 빌려온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시인이 임종을 앞둔 아버지를 위해 쓴 이 시는,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쿠퍼가 병든 지구를 떠나 우주로 향할 때 브랜드 박사가 암송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격렬한 저항의 시구를 앞세우지만, 전시는 결코 저항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2년 전 화재로 무너진 집, 다 타지 못한 숯덩이와 떠나지 못한 그을음들. 작가는 그 잔해를 다시 품에 안고, 빻아 물감으로, 먹으로 되살린다. 그리고 칼로 나무를 새겨 사람의 형상을 만든다. 칼날이 지나간 자리마다 밝은 상흔이 남고, 그 상흔들이 모여 비로소 한 사람이 된다.
감성빈을 처음 마주하는 이들은 흔히 그를 슬픔의 화가로 기억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내가 본 것은 슬픔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슬픔 안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차이의 생성이었다. 질 들뢰즈는 반복을 동일한 것의 재생산이 아니라 차이를 생산하는 운동으로 이해했다. 겉으로 같아 보이는 것도 매 순간 다르게 진동한다는 것. 어제와 오늘이 똑같은 하루처럼 보여도, 그 안에 삼킨 침묵과 떠오른 질문 하나가 이미 어제와는 다른 존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자유란 반복을 끊는 것이 아니라, 반복 속에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감성빈의 작업이 바로 그렇다. 그는 8년 전에도, 이전 개인전들에서도 슬픔을 그렸다. 가족의 상실, 타인의 표류, 사회적 참상에 대한 동병상련. 같은 주제의 반복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슬픔은 더 이상 저항의 언어가 아니다. "도래한 어두운 밤, 이제는 그 어둠마저 자연의 조화임을 압니다"라는 문장에서, 작가는 슬픔을 극복의 대상에서 받아들임의 대상으로 옮겨놓는다. 같은 재료, 즉 숯과 그을음과 슬픔을 들고도 전혀 다른 존재로 도착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들뢰즈적 반복 — 동일성의 감옥이 아니라 차이를 낳는 생성의 자리다.
이전 전시에서 김기림 큐레이터는 그의 작업을 피카소의 청색시대와 나란히 놓았다. 개인의 상실이 보편의 정서로 번역되는 지점에서 둘은 분명 닮아 있다. 그러나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피카소의 청색이 애도의 색이었다면, 감성빈의 검음은 애도 이후의 색이다. 소진되지 않은 열기를 품은 숯은 죽음의 잔여물이 아니라 다시 칠해질 수 있는 안료다. 죽음이 작품의 재료로 전환되는 순간, 상실은 더 이상 멈춰선 사건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른 형상으로 재배치되는 생성의 질료가 된다.
얼굴 없이, 풀이 죽어 움츠러든 어깨와 서로에게 의지해 간신히 서 있는 형상들은 바로 그 차이의 운동을 신체로 보여준다. 같은 슬픔의 포즈처럼 보이지만, 한 줄 한 줄 새겨진 칼선마다 미세하게 다른 결이 새겨진다.
감성빈의 이력 자체가 통섭적이다. 창원공단의 엘리베이터 부품공장 노동자에서 북경 중앙미술학원 유학생으로, 다시 형의 죽음 앞에 멈춰선 아들에서 슬픔을 조형하는 작가로. 그의 삶은 매끄러운 직선이 아니라 균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들뢰즈가 말했듯, 그 균열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생성된다. 공장에서 미술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던 강행군, 인력시장에서 만난 모델들에게서 발견한 이방인의 아픔, 갑작스러운 가족의 죽음. 이 모든 단절이 오히려 그를 지금의 자리로 차이 나게 밀어 올렸다.
이번 전시의 진짜 미덕은, 같은 슬픔을 반복하면서도 매번 거기서 빠져나갈 작은 틈을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다른 길로 걸어보고, 다른 책을 읽고, 다른 질문을 던지는 일상의 작은 차이들처럼, 그는 같은 재료를 들고 매번 조금씩 다른 인간을 새긴다. 그 반복은 감옥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다. 우리도 매일 같은 방, 같은 문제, 같은 현실 속에 있다고 느끼지만, 오늘 견딘 침묵과 오늘 떠오른 질문 하나가 이미 어제와는 다른 우리를 만들어 놓았다. 감성빈의 검은 밤은 그래서 절망의 색이 아니라, 겸허히 받아들인 차이의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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